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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 변론 증거 34. 11장(3). 두 선지자, 삼일 반 동안 죽음.(11:7~11)
09/27/2019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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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 변론 증거 34. 11(3). 두 선지자, 삼일 반 동안 죽음.(11:7~11)

 

  # 두 선지자, 삼일 반 동안 죽음 #

 

* 11:7~8.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일 터인즉 저희 시체가 큰 성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니라.

* 강해) 짐승이 이긴다는 것은 두 종이 정한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종들의 전도와 예언하는 일을 못하게 능력을 거두십니다. 왜냐하면 일할 기한이 찼기 때문입니다. 7:21~22에 넷째 짐승이 성도들로 더불어 싸워 이겼더니 때가 이르매 성도들의 나라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13:7에 성도들과 싸워 이긴다고 하였습니다.(후 삼년 반 동안 통치) 그러므로 두 선지자라고 한 것은 대표적인 것입니다.

증거를 마칠 때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전쟁을 일으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종을 통하여 짐승의 정책을 대항해서 싸우는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거짓선지는 짐승의 뒤를 따라가며 그 앞에 굴복하도록 하고 참된 증인은 짐승 앞에 절하면 구원이 없다고 전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예언의 말씀을 다 증거 한 다음에는 그 역사를 거두시는 동시에 짐승 앞에 쓰러져서 죽은 시체가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26:19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우리의 시체들은 일어나리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의 역사가 걷히는 동시에 그 모든 종들은 입신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시체가 있는 성을 소돔과 애굽이라는 것은 멸망의 도성이라는 것입니다.

   첫 번엔 쫓아 들어가 증거를 하다가 마지막에 싸움을 하게 되는데 그때는 하나님께서 권세를 거두면서 죽은 사람처럼 되는데 계6:11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하신 것처럼 쓰러지게 했다가 하늘로 올라가게 되는 것인데 예수님도 몸이 죽었다가 썩지 않고 올라가듯이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멸망의 대상이요, 심판의 대상이요, 타락한 세상이요, 음란한 세상이요, 마귀권세의 악한 세상이라는 말입니다.

 

 # 전쟁을 하게 되는 일 #

  이날까지의 전쟁은 하나님의 사람과 싸우는 전쟁이 아니고 세상 사람이 정치적인 야욕을 가지고 1,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가 망하고 결국은 민주주의 나라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 세계를 사상으로 정복하려는 짐승의 정책은 계13장 과 같이 붉은 용의 권세를 받아 가지고 나오므로 하늘 권세를 받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고는 그 권세를 막을 자는 전혀 없게 된 것을 주 재림기에 오 는 환란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계적인 문제를 놓고 나오는 사상전이므로 자동적으로 마지막 증인과 전쟁을 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참된 종만을 한곳으로 모으기 위하여 인력으로 당할 수 없는 마귀권세를 받은 짐승을 들어서 교회를 시험해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마지막 승리를 이루어 성도의 나라를 이루기 위하여 마귀의 권세를 개방시키는 것입니다.

  증인권세로 세계를 통일하기 위하여 증거를 마칠 때에 전쟁을 일어나게 합니다.

  이 전쟁이라는 것은 영토를 위하여 싸우는 전쟁이 아니고 세계통일의 왕국을 놓고 짐승과 싸우는 전쟁인데 짐승은 자기가 세계통일을 할 것을 확신하고 나오는 것이요 하나님의 사람은 짐승을 이기므로 성도의 나라가 올 것을 확신하고 싸우게 되는 것입니다증인권세 역사로 짐승의 나라를 정복하고 들어갈 때에 모세 앞에서 바로가 발악을 하며 엘리야 앞에서 이세벨이 발악을 하듯이 마지막 증인 앞에서 짐승의 정권이 발악을 하고 나오게 됩니다.

그러나 이때에는 짐승을 없애버리는 심판을 내릴 때가 아니고 끝까지 싸우던 종을 휴거 시킬 때이므로 하나님께서는 모략적인 방법으로 당신의 종을 죽은 자 같이 쓰러지게 합니다. 십자가에서 당신의 아들을 죽게 한 것도 그 아들로 말미암아 세계를 통일 할 목적이요, 마지막 증인이 쓰러지게 하는 것도 그 증인을 통하여 세계를 통일하는 새 시대를 이루기 위한 목적입니다.

마지막 심판은 증인이 증거 하던 예언에 따라서 심판하는 것입니다. 그 예언을 지키는 자를 구원하고 지키지 않는 자를 심판하기 위해서는 증거를 마칠 때에 증인을 휴거 시키고 세상을 마흔 두 달 동안 짐승에게 맡기게 됩니다. 이때에 아무런 환란이 와도 예언을 지키는 자는 보호하고 지키지 않는 자는 다 짐승의 표를 받게 한 후에 도둑같이 지상강림하면서 증인의 예언을 지키는 자는 구원하고 지키지 않고 짐승의 표를 받은 자는 전멸시키는 것이 새 시대를 이루는 재앙 심판이라는 것입니다.

 

 # 쓰러지게 하는 이유;

  악한 자의 손에 그 몸이 피해를 당치 않게 하기 위하여 쓰러지게 하는 것이요.

  예수님같이 한 길을 가게 하기 위하여 3일반 동안 쓰러져 있게 하는 것입니다.

  완전한 변화승천을 그 몸에 주기 위하여 죽은 사람같이 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영혼이 세상을 떠나게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모략적인 방법으로 죽은 사람같이 보이도록 한 것뿐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변화성도를 아주 무덤에 장사하게 한다면 안 되겠으므로 인간이 볼 때에 죽은 사람같이 보였으나 실지는 죽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사26:19에 죽은 자는 살아나고 우리 시체는 일어나리라 했던 것입니다. 여호와의 영광은 말세증인을 통하여 나타나되 마지막 증거로써 택한 백성을 환란에서 구출시키는 일을 하는 데는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찾아내기 위해서 역사했으나 이때는 인간을 버리는 때이므로 역사를 거두시고 남은 자로 새 시대를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독교 종말의 역사를 재앙으로 땅을 치게 하는 것으로 마지막 경고를 하고는 누구든지 믿고 순종치 않는 자는 환란에 떨어져 죽도록 버려둡니다.

왜냐하면 말세증인의 역사 이상에는 더할 수 없는 때이니 만큼 하나님은 어떻게 하든지 택한 자를 강권으로 찾기 위하서 가장 모략적인 방법으로 택한 종을 들어 쓰는 것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일이요 만민을 깨우치는 역사입니다.

 

# 짐승의 세력이 증인을 죽인다는 것에 대해 (11:8)

이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습니다.

1) 그리스도께서 3일 만에 부활하신 것같이 말세의 증인도 3일반 아무런 역사도 못하고 쓰러져 있게 되는 것인데 이것은 완전히 짐승에게 죽어진다는 것보다도 하나님의 모략적인 방법으로 짐승에게 피해를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한 권세를 걷는 동시에 죽은 시체와 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2) 짐승에게 죽음을 당한 것 같이 된 이유는 짐승의 세력이 그 몸에 더 피해를 주지 못하게 하는 동시에 세상에 모든 일을 짐승에게 맡겨 이 땅에 둘째 화가 오도록 하는 기간입니다. 왜냐 할 때에 택한 자를 한데로 모았기 때문에 다시는 전도할 필요도 없고 세상을 버리는 뜻이 내포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땅을 영적으로 소돔입니다, 애굽이라 합니다.

 

* 11:9.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목도하여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 강해)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3일 반 동안 목도하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모략적으로 그 종을 원수 앞에 죽은 시체와 같이 되게 했지만 장사하지 못하게 한 것은 아주 그 영혼을 걷어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장사하지 못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백성들과 족속들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사흘 반 동안 목도한다는 것으로 보아서 두 사람만이 아니고 그 때 역사하는 종들의 두 클럽으로 볼 수 있습니다.

 

# 모든 백성이 3일반 목도하는 일에 대하여 (11:9)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로 그들로 그 시체를 장사하지 못하게 한 것이니 만일 장사한다면 안 될 일은 완전히 죽은 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원수가 그 몸에 피해를 못주도록 하는데서 그들은 해칠 마음이 없이 보고만 있다는 것입니다.

* 11:10.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고로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 강해) 이 종들은 선지적인 사명을 다하던 종들이므로 이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하는 재앙으로 땅을 치던 자이므로 악당들은 그가 쓰러져 시체가 되어 있을 적에 너무 기뻐서 서로 예물을 보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승리했다고 좋아하는 것이지요. 원수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하며 예물이 왕래할 때 주님이 오십니다.

살전5:3에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하였습니다.

 

# 두 선지자에 대하여

두 증인을 사명적으로 일컫는 바 변화성도 십사만 사천 명을 대표한 두 사람을 다시 예언의 사명자이므로 선지자로 말씀하였고 선지자는 기록하는 사명과 전하는 사명이 따로 있음으로 옛날 선자들은 말씀이 임하여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하고 예언을 기록하였고 은혜시대 복음의 일부 선지서가 성취 되었는바 예수 그리스도 메시야의 탄생과 사역, 십자가의 대속 제물의 죽으심과 부활 승천, 성신 강림, 영혼구원의 은혜시대 사도의 사역 등이 성취 되었지만 대부분의 예언서는 재림주의 공중 재림과 지상 강림, 환란 재앙의 심판과 새 시대, 에덴동산 회복의 천년왕국건설 즉 새 일의 역사가 대부분의 내용으로 선지서와 계시록의 그 비밀을 전 삼년 반 동안 두 증인이 포함된 십사만 사천 명의 변화 승천할 변화성도의 사명이 기록된 예언의 비밀을 전하는 다시 예언의 사명이므로 두 선지자라 칭하셨음으로 진정 선지자인 것입니다.

 

@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10:41)

@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고(13:57)

@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는 것이 저희에게 보이거늘(17:1~3) : 부활성도와 변화성도의 대표

@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세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겠느냐(고전12:28~29)

@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4:11)

@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21:22)

@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결코 속히 될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22:6)

 

 

# 기독교의 혼란을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

  기독교는 진리 하나를 바로 전하기 위하여 세상에 교회의 확장을 이루게 한 것이요, 또 진리 하나를 위하여 싸워 승리하기 위한 데서 하나님의 종들을 세운 것입니다.

그러나 금일에 기독교가 세계적인 대종교를 이루어 놓은 것만은 누구나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제 기독교가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 갈 것이냐 이러한 난국을 당하여 하나님께서는 사40:9에 예언처럼 아름다운 소식의 책자를 세상에 내 놓은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성서 본문주의로 깊이 들어가자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완전한 신이신데 목적을 두고 완전한 언약을 하셨고 언약을 따라 역사하는 진리의 신이십니다. 만일 기독교가 십자가의 도로써 세계 인류의 죽은 영을 살려 하나님의 자녀의 명분을 얻게 하는 일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 자녀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로 가르쳐 주는 교회가 못된다면 큰 목적을 달성할 수 없고 오히려 불행을 가져오는 교회가 될 위기에 놓여있는 현실입니다. 성경이라는 자체는 하나님의 법이 인간에게 나타나되 그 시대 시대에 따라 타락한 인류를 어떠한 방법으로 인도하고 다스려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것이 성경이기 때문입니다.

이날까지에 기독교의 진리 운동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이 다 이루어지는 역사에서 진리 운동을 한 것이 아니고 성경대로 십자가에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시고 성경대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그 진리를 사도들에게 성경을 깨닫게 하는 영을 주어 바로 증거 하도록 하신 것입니다(24:44~49). 이 은혜를 받은 사도들은 선지서를 읽을 때에 십자가의 도가 정확히 깨달아지는데서 완전 변론을 하되 율법과 은혜라는 제목 하에서 율법주의에 잘못된 바리새교인들과 피 흘리기까지 싸웠던 것입니다.

   그때는 신약 전서를 손에 들고 싸운 것이 아니고 율법과 선지서의 글을 가지고 예수님의 행적을 전하며 또 십자가의 도를 믿는 신자들에게 율법을 초월한 성도 생활에 지침이 되는 편지를 써서 보냈던 것입니다. 이것은 깨닫는 영을 받은 사도들이 성경이 이루어진 사실을 바로 가르치며 모든 일에 완전한 열매를 맺어야 되는 성신의 도리를 기록했던 것입니다. 그때에 성도들은 예수 행적과 사도행전과 편지서를 사도들에게 받아 가지고 이 글을 읽어가면서 교회를 세우는 동시에 가르치는 일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요즈음 많은 성서 학원이나 신학원 신학대학의 교육으로는 성경을 바로 다 가르치는 일이 불가능함으로 사28:7같이 되는 일이 있게 되는 것은 사람이 억지로 선지서를 해석해 보는 과오가 시작되어 이것은 오히려 기독교에 혼란을 일으키는 현실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사도의 사명은 선지서의 목적을 다 이루는 데가 한계가 아니요 초림의 주가 오시어 신성과 인성을 가진 동정녀 잉태로부터 십자가 부활 승천 성신 강림의 역사로 죄와 사망에 깊이 빠진 영들을 이끌어 내주는 일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래서 선지서의 극히 일부분만 성취된 것이며 그 선지서의 일부분만 증거 한 것입니다. 그 밖의 이사야 전체는 환란과 재앙 속에서 변화 성도로서 눈물 흘려 다시 예언할 복음이 됩니다(10:7).

   금일에 기독교는 선지서의 전체를 본문대로 들어가서 그의 경고를 우리가 나가서 전할 말씀이며 우리가 살아서 남은 종이 되고 남은 백성이 될 자들이 걸어 나갈 신앙 노선이 됩니다. 죄인을 부르는 은혜시대와 죄인을 없애버리는 진노의 날이 있고 새 시대가 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성도의 성서적인 활동과 변화성도의 성서적인 활동은 그 시대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명의 획선을 바로 찾자는 것입니다.

  사명은 사도적인 사명의 획선도 있고 선지적인 사명의 획선도 있으니 사도는 예수의 부활을 증거 하는 것만이 그의 획선입니다. 1:21~22의 사명은 속죄 구령의 사명입니다. 이것이 금일까지의 기독교 강단에서 가르치는 사명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재림의 주를 맞이할 생존 성도는 다시 예언의 사명을 하는 선지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11:3~12, 22:6, 17~19). 왜냐하면 여호와의 말씀인 선지서는 목적이 심판과 새 시대를 목적했습니다. 이스라엘 말기에 극도로 선지 국가인 다윗 왕국이 부패하여 바벨론에게 망하게 될 때에 그들은 눈물 흘려서 말씀을 예언 했지만 부패한 정부가 거짓 선지와 합세하여 참된 선지를 축출하고 학살시킬 때 하나님의 묵시가 피 흘리는 선지자들에게 피 값을 갚아 주는 일이 있을 것과 새로운 시대의 왕국이 올 것을 묵시로 보여 주었습니다. 그들은 묵시 가운데서 여호와의 말씀을 받아쓸 적에 심판의 다림줄을 세밀히 변론적으로 하나님께 받아쓰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속죄 구령의 도리는 쓰지 않고 심판과 새 시대를 쓸 적에 그리스도의 탄생이 있을 것과 세계적인 평화의 복음이 전파 될 것과 인류 종말의 재앙이 북방으로 올 것과 환란과 재앙 속에서 남은 자가 있게 될 것을 말할 때에 고레스의 역사로 바벨론에서 남은 자가 예루살렘을 복구한 사실을 들어서 인류 종말에 북방 환란에서 남은 자가 되어서 새 시대에 갈 자는 동방에서 일어나는 역사로 말미암아 완전한 다윗 왕국이 세계를 통일하는 새 시대가 올 것을 말할 때에 이사야 24장에 세계를 뒤집어엎는 진노의 날이 하나님께로 오는 데는 동방 바다 옆에서부터 외치는 소리가 나온다고 사24:14에 말했고 땅 끝에서부터 의로우신 자에게 영광을 돌리세 하는 노래를 부른다고 16절에 말했고 그 노래의 뜻을 설명할 때 25장에 설명을 했고 27장과 같이 심판이 오고 새 시대가 오는 데는 심판의 대상자는 28장과 같이 주의 종들이 이상을 그릇 풀고 재판할 때 실수하는 죄가 많으므로 하나님은 11절과 같이 생소한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안식에 대한 말이라고 12절에 말했고 이것을 듣지 않을 때는 반드시 환란에서 망할 것을 13절 이하에 가르쳤습니다. 그러니 이 시대에 선지를 바로 해석하고 바로 판단하고 전해야만 새 시대에 들어가고 화를 당하지 않는 것입니다.

 

# 땅에 거하는 자를 괴롭게 한다는데 대해 (11:10)

이것은 재앙으로 땅을 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그 종으로 말미암아 큰 피해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표적인 사람을 가르친 것이니 손을 들어 말하는 대로 재앙이 나려서 모든 사람이 어찌할 줄 모르는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원수를 회삼물 같이 짓밟고 나가는 일이 있으며 모든 원수가 무서워서 떠는 상태에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에 죽음을 당한 시체라는 것은 신과 같이 쓰여지던 종들을 가르친 것입니다. 그러나 대표적인 사람을 보여준 것은 변화성도 전체에 대하여 될 일을 보여준 것이니 일차 부활에 대한 일을 말한 것입니다.

 

* 11:11. 삼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가 발로 일어나서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 강해) 3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 생기가 그 속에 들어갔다는 것은 하나님께로 완전 영체가 되는 새로운 힘이 그 몸에 들어가서 썩지 않고 죽지 않는 몸으로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2:7).

@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우리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거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를 내어 놓으리로다.

(2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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