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branch
Leesaesoon(newbranch)
기타 블로거

Blog Open 04.13.2016

전체     318194
오늘방문     262
오늘댓글     0
오늘 스크랩     0
친구     637 명
  달력
 
66. 화평을 전할 때와 싸울 때(슥9:9-17).
04/04/2019 01:15
조회  224   |  추천   2   |  스크랩   0
IP 122.xx.xx.229

66. 화평을 전할 때와 싸울 때(9:9-17).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를 따르는 종입니다. 하나님이 화평 하라고 할 때에 화평하고 싸우라고 할 때에 싸우는 것이 주님을 따라가는 생활입니다. 화평 하라고 할 때에 화평을 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요 싸우라고 할 때에 싸우지 않아도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입니다. 화평을 전할 일과 싸울 일에 대하여 성경은 다음과 같이 가르쳤습니다.

 

1. 화평을 전할 때 (9:12)

 

첫째: 겸손하게 나귀를 타심(9)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죄를 짊어지고 유대 땅 베들레헴 말구유에 탄생하시어 나사렛 동네의 목수 생활을 거쳐 불쌍한 양떼를 위하여 쉬지 못하고 일하는 길을 거쳐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에 모든 유대인들은 호산나를 부르며 이스라엘의 왕이시여라고 말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 박힐 적에 그들은 훼방을 하고 조롱하는 말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네가 왕이라면 너를 때리는 우리는 누구냐하면서 예수를 핍박했던 것입니다. 그때에 예수님은 일언반구에 불평의 말 한마디 없이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말씀이 이 무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저들이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고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화목제를 드리는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함

 

십자가는 잃었던 백성을 찾는데 있어서 아무리 과거에는 이방과 유대가 원수였지만 이방인을 압박하던 유대인들이 사도가 되었을 때는 오히려 이방 사람에게 핍박을 받으면서 화평의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율법 시대에는 유대인이 이방 사람은 대하지도 않고 좌담을 하거나 음식을 함께 먹은 일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를 통하여 화평의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게 된 동기는 베드로가 해변 욥바 땅 피장이 시몬의 집에 머물러 있을 때에 묵시를 보았습니다. 이 묵시는 기도 중 하늘로부터 둥근 보자기가 내려 왔는데 보자기 속에 더러운 짐승들이 있었습니다. 소리가 들리기를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으라.” 하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는 말하기를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물건은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라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는 음성이 2. 3차 들려왔습니다. 그때에 문 밖에서 베드로를 찾는 사람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이방 사람 고넬료가 보낸 하인이었습니다. 그때에 성령께서 의심 말고 따라가라는 지시를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순종의 걸음을 걸어 이방 사람의 집에 처음으로 발걸음을 놓게 되었습니다. 고넬료는 말하기를 자기 집에서 기도를 하던 중 천사가 나타나서 말하기를 해변 욥바 땅 피장이 시몬의 집에 베드로라는 사람이 있으니 그 사람을 데려다 복을 받으라고 했는데 이렇게 오시니 감사하다고 했던 것입니다. 그때에 베드로는 입을 열어 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게 했으니 이 복음을 들어라하면서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 했을 때에 그 말을 듣던 이방인들이 즉시 성신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때부터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성신을 부어주니 우리가 어찌하여 이방 사람을 무시할 수 있느냐는 생각에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여 온 세계에 전파된 것입니다. 이로서 이방에 화평을 전한다는 말씀이 오늘날 응한 것입니다.

 

셋째: 언약의 피로 구원함 (11:12)

 

화평이라는 것은 얼마든지 민족적 국경의 차별이 없이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는 자는 다 구원한다는 언약의 말씀이 온 세계에 전파된 것입니다. 그러나 화평을 전하여도 하나님을 반대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죄 언약을 믿지 않는 자는 용서 없이 없앤다는 것이 곧 심판이 되는 것입니다.

 

2. 싸워야 할 때 (13-17)

 

첫째: 진노의 날입니다 (13-14)

 

아무리 화평을 전해도 짐짓 하나님을 대적하고 심지어 무신론 사상을 가지고 진리를 대적하는 세상을 없애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을 들어 이방을 치게 하되 하나님은 남방 회리바람을 타고 행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북방을 때려 부수는 일을 뜻했습니다. 어느 선지나 종말에 기독교의 원수는 북방이라고 했으니 짐승의 표를 받는다는 것은 북방을 때려 부수는 것이 아니요 북방과 타협하는 것을 말하고 붉은 짐승의 표를 받은 자를 없애는 일은 북방을 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날 북방 세력을 치는 일이 진노의 날에 올 일입니다.

 

둘째: 원수를 진멸함 (15)

 

이날까지는 화평을 전하는 때이므로 원수를 사랑했지만 진노의 날에는 원수를 몽땅 없애는 날이므로 피로 이 땅을 적시는 일이 있게 됩니다. 의인들의 피를 흘리게 한 세상을 모두 없이할 때에는 피가 흐르되 비참하게 될 것을 가르쳤습니다.

 

 

 

셋째: 주의 백성이 구원을 받아 새 땅 축복을 받게 됨 (16-17)

 

원수를 없이하므로 이 땅은 복된 땅이 되어서 모든 생산의 큰 축복을 받아 즐거움을 누리는 새 시대가 옵니다.

 

결 론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큰 일은 화평을 전하는 일이며 싸우는 일입니다. 인간이 볼 때에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자를 어리석게 보았고 새 시대에 들어가는 역사를 비방하지만 끝까지 회개치 않는 자는 전멸을 시키고 새 땅의 축복이 옴으로서만 성도의 나라가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 블로그의 인기글

66. 화평을 전할 때와 싸울 때(슥9: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