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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종주기
03/31/2016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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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종주기


정진옥  


저는 몇달전(10/22~11/5/2015)에 딸아이의 혼사때문에 모처럼 한국에 다녀왔었습니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틈틈히 지리산 종주에 이어 진주성과 남강, 익산 미륵사 및 왕궁리 석탑, 남산 동서종주, 남대문, 불암산, 서울대 관악캠퍼스와 관악산, 수락산, 인왕산, 도봉산 등을 찾아 갔었습니다. 그 가운데 특히 지리산을 종주한 것은 평소에 오랫동안 벼르던 일이어서 저로서는 더욱 감회가 컷고 또 이 산이 대한민국 국민들로 부터 가장 사랑받는 명산임을 고려하여, 또 이원익법사님의 우담바라지 원고독촉이라는 대의명분을 표방한  자비없는 가렴주구의 학정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려는 방편으로, 부족하지만 이를 허겁지겁 정리하여 소개합니다.


 


13년만에 고국에 가게 되었다. 반드시 시간을 내어 지리산을 가보리라는 마음으로 여행 짐을 꾸린다. 배낭에 몇가지 등산용품을 챙겨 넣는다. 내가 아끼는 튼튼한 LL Bean통가죽 등산화는 부피가 너무 커서 그냥 신고 가기로 한다. 이 때문에 좁은 기내의 좌석공간에서 발을 움직이기가 힘들어 크게 내내 불편을 겪게 된다. 평소에 트레킹폴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 편인데 꽤 힘든 등산이 될지도 몰라서 다리의 힘을 아껴야 한다는 차원에서 망서리다가 결국은 트렁크에 챙겨 넣는다.


결혼식을 마친 딸과 사위가 신혼여행을 떠나면서, 다음날 아침에 사위의 차를 운전하여 강릉을 이렇게 저렇게 찾아가면 우리 내외를 위한23일의 관광일정이 미리 수속되어 있으니 꼭 다녀 오라며 자동차 키를 넘겨준다. 물론 기꺼운 마음으로 이를 수락했다. 그러나 막상 다음날 아침 8시쯤이 되어 강릉으로 가려고 나서는 순간에 돌연 아내가 피곤해서 도저히 못 가겠다며 주저 앉고 만다. 딸아이의 혼사를 치루느라고 엄마로서의 제 번사에 피로가 쌓이고 또 긴장했던 마음이 풀린 때문이라고 이해를 한다.


갑자기 할일이 없게 되어져 잠시 멍한 심정이었다. ‘그럼 오늘 당장에 지리산으로 가볼까하는 생각이 불현듯 난다. 원래는 다음 주 쯤 이것 저것을 알아본 다음에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던 터다. 아무런 준비나 정보가 없어 다소 막연하다. 허나 예전에 군에서 제대를 하자마자 친구들 몇이서 전라남도 구례에 가서 노고단까지 힘들게 산을 올랐었던 경험이 있던 터라, 일단 구례로 가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참에 다녀 오겠다며 아내의 허락을 받는다.


집을 나선 것이 아마도 아침 9시가 안되었을 시각이었겠다. 택시를 타러 동네길을 내려가다가 생각하니 트레킹폴을 챙기지 않았다. 돌아갈까 하다가 그냥 버텨보자고 마음 먹는다. 택시를 탄다. 강남고속터미날로 가자고 한다. 구례에 간다고 했더니 다른 터미날로 가야된다고 하며 그곳으로 실어다 준다. 일상의 인생행로에서 또 하나의 고마운 은덕을 입었다.


 


고속버스 차창으로 흐르는 조국의 산하가 정다우면서도 또 생경하다. 건물들이 많아졌고 추수를 끝낸 논에 하얀 비닐로 싼 큰 덩어리들이 많이 보이는데 아마도 볏짚이려니 추측해보나 무슨 일인지 영문은 잘 모르겠다. 따라가기가 어려울 만큼 세상사가 급변한다.


구례역에 도착했다(10/26 13:00). 버스터미날 건물 안에 국한문 혼용의 붓글씨로 쓴 큰 현판이 유독 시선을 잡는다. ‘함평천지 늙은 몸이 광주고향을 보려하고 제주어선을 빌려타고 해남으로 건너갈제 흥양에 돋은 해는 보성에 비쳐있고~’로 시작된다.  무려443자에 이르게 되는 호남가전문을 심병탁이라는 분이 쓴 것으로 적혀있다. 다소 소박한 필치의 글씨에서 오히려 자기 고향산천과 이웃을 사랑하는 어느 한 향민의 진솔함이 진하게 느껴진다.


화엄사를 들러가는 버스표를 구입한다. 간출하기만한 구내매점에서 무슨 기념된 물건이 없을까를 살핀다. 마침 지리산 전체 등산로가 인쇄되어 있는 Bandana가 눈에 들어온다.  반갑다. 마음으로는 LA의 등산친구나 지인들에게 선물을 하기위해 더많이 사고 싶지만, 산행을 하는 동안에는 이도 짐이 되겠기에, 작은 것 1매를 합하여, 3매를 사는 것으로 그친다.  등산을 끝내고 하산하는 곳에서도 당연히 구입할 수 있을 거니까 우선 당장 내가 필요한 것만 사자는 요량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하산시에는 이러한 기회가 없었다. 건물 밖으로 나오니 동쪽으로 커다란 산줄기들이 우뚝우뚝 펼쳐져 있다. 지리산의 준령일 것이다.





버스에는 배낭을 걸머진 등산객들이 대여섯명이나 타고있어 반갑다. 이 버스를 타는 산객들이라면 모두가 나와는 동행이 될 것이겠다.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지리산을 가는냐 묻는다. 그렇다 한다. 이 버스로 화엄사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가를 묻는다.  자기는 성삼재까지 더 간다며, 화엄사에서 내리면 등산길이 길어지니, 자기와 같이 성삼재로 가야 하는데, 예약이 안되어 있으면 산장을 이용할 수 없다 한다. 이들 모두가 성삼재로 간단다. 물론 난 예약을 못했다. 난 화엄사로 갈 마음을 먹고 있다고 말하고 화엄사 앞에서 먼저 차를 내린다(13:30).


막상 나홀로 내리게 되고보니 다소 난감하다. 내가 굳이 화엄사를 고집한 것은 딱 40년전인 1975 8월에 제대를 한 기념으로 몇몇 죽마고우들과 노고단까지 걸었던 그리운 추억의 구간이기 때문이다.  


화엄사 입구를 찾아 가노라니, 길가에서 감, , 호박 등으로 좌판을 벌리고 앉아있는 세명의 나이든 시골여인들이 나를 바라본다. 뭔가를 사드리고 싶다. 역시 짐이 되겠기에 주저하다가, 가운데에 앉은 나이가 더 지긋한 분의 좌판에서 감 3개를 집어든다(14:00). 3개를 집는 작은 손이 부끄럽다. 자초지종을 해명할 수도 없어 민망하다.  이 감3개가 나중에 아주 소중한 내 식량이 되리라는 것을 이 때에는 전혀 모른다.


가까이에 있는, 노랗게 또 붉게 만발하여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국화화분 10여개를 가게 앞에 잘 진열해 놓은, ‘산나물 밥상식당에서 점심으로 된장찌게를 시킨다(14:10). 5000원이다. 밥과 찌게 외에도 입에 맞는 깔끔한 반찬이 무려 13가지나 된다. 주인댁의 후한 인심에 비해, 혼자와서  1인분을 먹는 내 처사가 인색하게 느껴져 송구스럽다.


대가람의 언저리답게 오른쪽으로 흐르는 계곡의 물길을 따라 정갈하게 다듬어진 숲속의 가로수길이다. 10여분을 걸어가니, 치밀한 무늬의 단청으로 아름답게 채색되어져 있는 일주문에 이른다. 한자로 지이산대화엄사라고 새긴 큰 글씨에 이어 석전 91세 황욱이라는 작은 글씨가 새겨져 있다. 그러고 보니 이 글씨를 쓰신 분은 40년전에 이곳에 나와 같이 왔었던 친구 황병태군의 조부뻘이 되시는 분임을 알겠다.  91세가 되셨을 때는 수전증을 앓고 계셔서, 붓을 주먹으로 꽉 움켜잡고 글씨를 쓰는 세칭 악필법을 구사하실 때 였겠다. 그래서 그런지 떨림이 있는 획필인데 그렇기에 더욱 강직한 느낌을 받게 되나보다.


이 분도 내 친구도 지금은 모두 고인이 되었다. 인생은 광음속의 덧없는 나그네라는 말이 되뇌어진다. 이런 저런 크고 작은 우리네 인간사 모두가 일장춘몽이고 수유이며 순간이고 찰나이다.


다시 10분쯤 길을 따라가니, 오른쪽에 개천을 건너는 큰 돌다리가 있고 시의 동산이라는 안내표석이 있다. 사찰에 시의 동산이라니 궁금하여 다리를 건너간다. 아마도 절과는 관계없이 구례시에서 마련한 동산인 듯 한데, 고금의 명시들이 새겨진 40개 가량의 현대적 조각작품들이 둥글게 조성한 숲길을 따라 설치되어 있어, 향상된 조국의 경제와 문화의 수준을 느끼게 한다. 뿌듯하다.


이곳에서 보게 된, 홍준경이란 분이 작자로 적혀있는 노고단 운해라는 제하의, 시인지 시조인지 그 전문을 옮겨본다. - “화엄사 새벽범종 넘실대는 구름바다/ 만선의 꿈을 꾸며  닻을 내려 그물을 편다/ 일출이 집어등인가 목어가 파닥이네


다시 사찰로 들어가는 길로 걸어나와서 몇 분을 더 가니, 왼쪽으로 1500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는 이 사찰을 거쳐간, 이 사찰에 머물며 신산한 삶을 살아가는 아랫세상 사바세계의 뭇 중생들과 호흡을 같이했을, 수많은 고승들을 기리는 부도탑들이 있다.


사자를 닮아뵈는 동물의 석상이 수호신이 되어 양쪽 어귀를 지키고 있는 아름다운 석조교량을 지난다. 화엄사 경내로 들어선 것이겠다. 얼핏 이 사바세계가 아닌 신묘한 청정 불국토가 아닌가 싶은 신령하고도 상서로운 분위기에 감싸인 사찰건물들이 나타난다(15:00). 이 울창한 산림속에 돌연 수십개는 족히 될듯한 수많은 건축물들이 빼꼭히 들어 차 있다. 아름다운 불국의 성스러운 궁성이 바로 여기이다. 국보 제67호라는 각황전은 그 단장이 오히려 소박해 더욱 원숙한 아름다움으로 느껴진다. 앞에 있는 석등은 국보 제12호라고 한다.


수많은 사찰건축물들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는다. 여기저기10여명의 참배객들을 보게 된다. 구내 매점이랄 수 있을 곳에 이르른다. 담당 보살님이 내어주는 특수한 펜으로 기와 한장에 가족의 이름을 써넣고 불사에 필요한 티끌 하나를 더한다. 그 분이 문득 미소로 건네주는 감 1개가 더없이 따뜻하다. 염화시중 이심전심의 경지도 바로 이런 것이려니.


등산로 초입이 어디인지 몰라 이리저리 서성인다. 구석진 위치에 있는 퇴색한 옛 건물을 보수중인 인부에게 길을 묻는다. 나무로 만든 단아한 붉은 구름다리를 건너 사찰의 경내를 나와 지리산 신령님의 영역으로 들어선다( 15:27). 지리산 종주의 산행을 시작하는 것이다.



 


 


  1. 화엄사 (전남 구례) ~ 노고단 대피소

    통계 : 7.0 km ( 2015-10-26 15:27~17:44; 2h 17m )


다리를 통해 계곡의 시냇물을 건넌다. 길이 왼쪽으로 꺾인다. 다듬지 않은 큰 돌들이지만 걷기에 전혀 불편하지 않게 촘촘히 잘 깔아 놓은 오름길이 펼쳐진다. 몇 분정도는 빽빽하게 자란 시나대가 길섶에 가지런한 행렬을 이루고 서서, 타관 길손이 낯선 산길에 잘 적응되도록 도와주는 듯 하다. 노고단까지는 7km이며 4시간이 걸린단다. 자잔한 시나대지대를 지났다. 이름을 모르는 나무들 속에 군계일학으로 곱게 물든 단풍나무가 이따금씩 섞여있는 삼림이 펼쳐진다. 남가주의 숲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뭐랄까 그냥 한국적인 느낌이라고나 할까보다.


가끔씩 산객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담은 홍보판들이 사진이나 그림을 겯드린 깔끔한 모습으로 길변에 세워져 있다. 예컨대, ‘피톤치드란? 나무가 내뿜는 천연항균물질로 사람의 면역력을 높이고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오전 10~12시에 많다는 식의 유익하고 흥미로운 내용이다.


이런 홍보판을 통해 이곳 산행을 하면서 알게 된 진달래와 철쭉의 구별법은 다음과 같다. “진달래는 이른 봄에 잎보다 꽃이 먼저 피고  잎은 한장씩 어긋나게 난다. 먹을 수 있어 참꽃이라고 부른다. 철쭉은 진달래가 지고 난 후에 잎과 꽃이 같이 난다. 잎이 둥글고 5장씩 돌려난다. 꽃에 적갈색 반점이 있고, 독이 있어 개꽃이라고 한다.” - 나이60이 넘은 지금에서야 이들의 차이점을 명확히 알게되니 조금은 민망하지만, 그래도 반가움이다.


높이가13m에 달하는 대한민국 최대의 문수보살상이 조성되어있다는 연기암 가는 길이 왼쪽으로 갈라진다(15:51). 그 옛날 이곳에 화엄사를 창건한 분이 연기대사라고 하니 그 분을 기리기 위한 이름이겠으나, 그 분의 이름 또한, ‘석가모니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에서  대각을 이루셨다고 할 때의 그 깨달음의 핵심이 연기인연생기였다고 들었는 바, 이 암자는 이름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네 중생들을 적극 교화하고 있는 셈이다. 갈길이 멀고 마음이 바쁜 나는 그냥 직진한다. 주마간산이겠다.


길이 조금은 더 가팔라진다. 짙은 수림사이로 난 길을 계속 오르다 보니 왼쪽 길섶 바위 아래로 맑은 물이 고인 조그만 웅덩이가 나온다(15:58). 참샘터라는 표지판이 있다. 원색의 프라스틱 표주박이 작은 말뚝에 걸려있다. 차갑고 시원하다. 참된 좋은 물이라는 뜻을 담은 이름이려니 한다. 하산객 하나가 말없이 스쳐간다. 이 늦은 시각에 등산객은 나 혼자일 듯 하다.


국수등이라는 표지가 있는 곳에 이른다(16:21). 노고단까지의 딱 중간이 되는 자리이다. 국수등 주변에 국수나무가 있어서 이런 이름으로 불렸다는 말이 있고, 1970년대 까지 이곳에 있던 매점에서 국수도 팔았기에 산객들이 그리 부르지 않았나 하는 말도 있다고 한다.


시원한 폭포가 일품이라는 집선대를 지난다(16:50). 물 흐름을 이리저리 찾아보지 못한 채, 2.5km 남은 노고단 길을 계속 오른다. 단풍숲이 더욱 가관이다.


뒤돌아 아래를 보니 아름다운 수림 사이사이로 하얀 띠를 구비구비 펼쳐놓은 듯한 먼 물줄기가 보인다(17:16). 전북 진안의 마이산/팔공산에서 발원하여 임실 순창 곡성 남원을 거치고 다시 구례에서 이 화엄사 계곡의 물도 품에 안고서 하동 광양을 지나 남해로 유입되는 섬진(두꺼비나루)강의 흐름이겠다. 한줄기 띠 같은 강물을 바라보면서 배낭에서 감 2개를 꺼낸다. 달다. 감미롭다는 말의 의미가 이런 것이겠다.


여기서부터는 경사가 더 급해지기에, 힘들고 지쳐서 허리를 굽히고 오르다 보면 코가 땅에 닿게 된다고 해서 코재라고 부른다는 구간이다. 힘든 줄 모르겠다.


드디어 잘 닦아놓은 포장도로를 만난다(17:30). 성삼재에서 노고단 대피소로 이어지는 도로이다. 무넹기라는 표지판이 있다. 1930년경의 가뭄 때, 전북지역으로 흘러가는 노고단의 물 흐름을 이곳에서 200m쯤 길이의 인공수로를 만들어 전남의 화엄사 계곡으로, ‘물을 넘긴 곳이라고 하여 이런 이름이 붙은 곳이란다. 어릴때는 나도 넘긴다는 말이 아닌 넹긴다라는 말을 항용했었으니, 당연히 반갑게 이해가 된다.


주위에 차츰 어둠이 깃든다. 오른쪽으로 넓은 길을 따라간다. 3층의 목조건물로서 이미 불을 밝힌 노고단대피소가 옅은 어둠속에 드러난다(17:44).


입구로 들어가는 즈음에 낮에 버스에서 얘기를 나누었던 중년남성이 반갑게 인사를 건네온다. 성삼재까지 버스를 타고왔기에 일찍 이곳에 들어와 내일 아침의 산행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리라. 힘든 길을 잘 왔다며 치하한다. 자기는 예약을 했었기에 숙소를 배정받았지만 내가 걱정된단다.  어쨌거나 고맙게도 접수구로 함께 가준다.


젊은 청년직원이 나온다. 예약을 안했으면, 빨리 성삼재로 돌아가서 택시를 불러타고 구례로 내려 갔다가 내일 새벽 3시에 다시 오란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밤을 새워 산행을 하겠노라고 말한다. 입산시간지정제를 시행하는 관계로 지금은 산행을 수락하지 않으며 새벽 3시가 돼야 산행이 허락된단다. 동행한 이가 내가 고국방문차 이곳을 찾은 재미동포라고 밝히면서 선처를 당부한다. 그러나 예외는 없으니 빨리 산을 내려 가란다. 난감하다.


김지운이라고 이름을 밝힌 동행자가 뭘 좀 먹었냐고 걱정하며 라면을 끓여 준단다. ‘인생도처유청산이라더니, 고맙고도 고맙다.


야외의 벤치에 앉아 라면을 먹고 있는데, 접수구 직원이 찾아온다. 상사로부터 외국인 자격으로 선처를 하라는 허락을 받았단다. 기사회생. 거듭 고마움을 표하며 입실수속을 마친다(19:30). 지운씨가 자기 옆자리로 배정받도록 직원에게 부탁한다. 따뜻한 사람이다. 이용료가 11,000원이고 담요는 한장에 2,000원이었다. 필요한 식품을 사고싶다고 하니, 오로지 초코파이만 있단다. 한 상자를 산다. 산장이라고하여 식사도 식품도 가능하리라는 예단으로 준비가 전혀없었던 내 경솔함을 뉘우쳐보나 입실이 허락된 기쁨이 더 크다.


남겨 놓은 감 2개와 초코파이 12개가 내 식량의 전부인데, 내일 하루로 산행을 끝내는 것이니 문제는 없다. 물이 중요한데 물이야 얼마든지 중간 중간의 샘에서 얻을 수 있다. 산장과 대피소와는 차이가 있나본데 이곳은 엄연히 대피소라는 간판을 달고 있다.


배낭을 내 잠자리에 옮겨 놓는다. 지운씨가 9시에 소등이니 그동안 노고단 정상에 다녀오잔다. 따라 나선다. 헤드램프를 지니고 정상을 거쳐 돌탑에 이르렀다. 주위는 완전히 어둠에 잠겼고 바람은 차갑다.


자리를 잡고 앉은 지운씨가 프라스틱 병에 담긴 소주를 권한다. 힘든 산행을 앞둔터라 사양한다. 혼자서 술을 마시면서 본인의 심정을 털어 놓는다. 말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나 보다. 산을 자주 찾아 다니는데,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삶의 의욕이 엷단다. 가끔씩 산에서 죽을만한 곳을 찾아보는 심정이 된단다. 40대의 한창 나이에 불과한 이로서는 너무나 안쓰러운 정황이다. 이목구비도 번듯하고 매너도 다정다감한 젊은 사람이 이런 처지에 놓여있다니. 그 개인의 문제인지 고속성장으로 이룬 선진조국에 드리운 이면의 그늘인지 알 수 없다. 그다지 실익은 없겠으나 여러가지 위로와 격려의 말을 하며 숙소로 돌아온다. 본인은 새벽3시부터 산행을 하지는 않을 거라고 하여 작별의 말을 나누고 자리에 눕는다.


잠이 오지 않는다. 너무 더운 난방이 고통스럽다. 깔끔한 목재를 써서 2층 침상구조로 만든 54명 수용가능한 시설이다. 빈자리도 제법 보인다. 평소에는 아주 쉽게 잠에 빠지는 편인데, 1분도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새벽을 기다린다. 일각이 여삼추. 자꾸 뒤척여진다. 지운씨는 가볍게 코를 골며 잔다. 새벽 2시가 조금 지나니 몇몇 자리에서 사람들이 일어나는 기척이 있다. 반갑다. 다른 사람의 안면을 방해치 않으려 아주 느린 동작으로 짐을 챙긴다. 지운씨에게 고마움과 응원의 마음을 담아 짧은 글과 적은 돈을 남긴다.


비록 잠은 잔게 없으나 그래도 더운 방에서 눈을 감은 채 여러 시간 휴식을 취한 찜질효과때문인지 몸은 아주 거뜬하다. 숙소 밖으로 나와보니 이 시각에 일어난 사람이 나까지 모두 여섯이다. 칠흑으로 어두워 앞이 안보이고 바람이 거세다. 혼자서는 도저히 산행에 나설 용기가 나지 않는다. 일찍 산행에 나서는 이 분들이 너무나 반갑고 고맙다.  반려라는 말의 의미가 새롭게 부각된다.


이들을 따라가니 음식을 조리하여 의자없이 선채로 먹도록 마련된 주방건물이 나온다. 조리할 식품도 도구도 없는 나는 2개 남은 감과 몇개의 초코파이를 꺼내어 밤참을 먹는다. 그들을 따라 산행을 시작하려고 그들의 동정을 살피다 말을 붙인다. 남자 셋에 여성 둘이다. 한 남자와 두 여성이 한 팀이고 나머지 남자 둘은 나처럼 홀로 온 산객이다.  서로 얘기를 나누게 된다. 내가 먹는게 부실해 보였는지 두 여인이 음식을 권한다. 그 중 한 여성은 1500회의 산행을 기록했다니 실로 여간한 산꾼이 아니다. 고마움으로 몇술을 뜬다. 그들과 함께 행장을 차리고 밖으로 나선다.


 

 




2.   노고단 대피소 ~ 천왕봉 ~ 새재마을 ( 경남 산청 )


통계 : 36.0 km ( 2015-10-27 03:03~ 20:05; 17h 02m )


 


0303분이다. 차갑고 거센 바람이 구름을 싣고 마구 달려든다. 이들은 모두 중간의 어느 산장에서 1박을 하는 산행계획이라며, 하나같이 나의 당일 종주는 크게 무리라고 걱정한다.


천왕봉 25.5km라는 이정표가 있는 노고단 대피소(고도1400m)를 떠난지 약 10분이 지난다. 불과 몇 시간 전이었던 간밤에 지운씨와 올랐던 노고단 고개(1440m)에 이른다(03:13). ‘지혜로운 이인들이 거처하는 산이라는 해석도 있다는 이 지리산의 3대봉으로 보통은 천왕봉(1915m), 반야봉(1732m)에 이어 이 노고단을 꼽는다.  노고라는 말이 늙은 할매라는 뜻이 있기에 노고할미단이라는 말도 쓰나 보다. 깜깜한 새벽인데다 구름이 온 산을 휩쓸며 흐르고 있는 전망제로의 상황에서 일행의 뒤를 따라갈 뿐이다.


돼지령이라는 이정표가 나온다(03:55). 멧돼지가 좋아하는 둥글레와 원추리가 많이 자생하고 있어 그들이 빈번히 출몰한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란다. 역시 전망제로. 다시 앞 사람을 좆아 그저 걸어갈 뿐이다.


노루목이라는 이정표가 나온다(04:50; 1500m; 5.0km). 이곳의 지세가 피아골 쪽으로 가파르게 흘러내리다가 잠시 멈추기 때문에 노루의 목처럼 보이는 고개마루라는 의미에서 불려지는 이름이라는 설이 있고, 땅이 넓게 벌어진 곳이라는 우리말의 널목에서 나온 말이라는 설이 있다고 하는데, 두번째의 설명에 더 마음이 끌린다.


역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빗방울이 떨어진다. 일행들이 우의를 꺼내어 입는다. 나는 아직은 견딜만 하여 그냥 걷기로 한다. 동행하게 된 산객들은 이곳 지리에 밝은 듯하다. 깜깜함에도 불구하고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고마운 만남이다.


반야봉이라는 이정표가 서있다(05:27). 1분 정도 그들의 뒤를 좆으니 둥그스럼한 큰 바위에 지리산 반야봉 1732m’ 라고 새긴 반야봉의 정상에 올라있다(05:28; 6.2km). ‘반야를 지혜라고 풀이한다면, ‘지리산자가 지혜 지를 쓰니, 아무래도 이 산은 지혜로움과 뭔가 깊은 관련이 있나 보다. 지혜의 봉우리에 올라 서있는 나는 지금 도무지 어떠한 전망도 없는 깜깜함에 파묻혀 있다. 반야봉에 오름을 허락하심으로써, 기실 반야란 나같은 속물에겐 언감생심임을 깨닫게 하시려는 신령의 조화인 것인가.


고래로 이곳 지리산의 3대 경관이라고 하면 노고운해, 반야낙조, 천왕일출을 꼽아 왔다는데, 오늘 나는 노고운풍에 이어 반야낙우의 경지를 누린다. 천왕봉에서는, 아예 산행시각이 이렇고 보니, ‘천왕일몰이나 가당하면 좋겠다.


후레쉬를 터뜨려 정상바위의 사진을 찍고나니 이제껏 보슬보슬 내리던 비가 폭우로 급변한다. 서둘러 배낭을 내려 우의를 꺼낸다. 그 중에 누군가가 나를 향해 삼도봉으로 갈 거니까 길이 갈라지는 곳에서 왼쪽으로 오라고 외친다. 우의를 입는 동안 앞서가는 일행이 시야에서 사라진다. 모두 헤드램프를 착용하고 있으나 그 불빛이 뒤에 있는 나에게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비가 억수되어 내리니 그들도 몸과 마음이 바쁠 것이다. 나 역시 바쁜 행보가 된다. 길이 갈라지는 것같다. 왼쪽으로 들어간다. 가다보니, 제대로 된 길이 아닌 듯 하다. 다시 뒤로 돌아가서 다른쪽 갈래의 길을 따라간다. 동서남북 구분이 안되고 길도 전혀 알지 못한다. 이 길이 맞는 것인지 불안하다. 보이지 않는 그들과의 거리를 좁히려 뛰다시피 내려간다. 마침내 그들의 뒤에 따라 붙는다. 잠시였지만 당황스러운 그러나 유익한 교훈이다. 산에서는 잠시라도 일행과 떨어져서는 안된다.


소낙비가 줄기차다. 다행히도, 2년쯤 전에LA에서 여성 등산동료 한분이 나의 등산장비가 부실하다면서, 마침 흔치 않은 세일을 하니 지금 빨리 달려와서 하나 사라고 강권했었다. 그 분의 성의와 서슬에, 내키지 않는 거금을 주고 구입했던 파타고니아 브랜드의 고어텍스 방수복을 그냥 배낭에 넣고만 다녔다. 처음으로 이 옷을 입게 된 오늘 여기서 비로소 이 옷이 아주 고마운 존재가 된다. 보통의 방수복은 여러 시간을 입고 있으면 몸에서 나오는 땀이 고여 그냥 비를 맞는 것이나 별반 다를게 없이 몸이 젖어지는데, 신통하게도 이 옷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휘몰아치는 빗줄기에 배낭과 내 아랫도리는 금방 다 젖어버렸다. 좀처럼은 물이 새어들지 않는 것으로 인정받는  등산화에도 이미 물이 잔뜩 들어가 철떡거리며 걸음을 옮기는 형국이다. 등산이 끝날 때까지 15시간 가까이 이 옷을 입고 다녔으나 나의 상체에는 전혀 물끼가 배어들지 않아 추위를 잘 견딜 수 있었다. 이 옷을 만든 사람들과 이 옷을 나에게 권해 준 분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아직도 어둑한 여명의 시각에 삼도봉에 올라섰다(06:18; 1530m; 7.2 km). 삼각형으로 된 금속상징물이 박혀있다. 전북 전남 경남의 경계가 되는 산이어서 이들 3개도의 이름과 함께, 천지인에 걸친 지역간의 대화합을 기원하는 뜻깊은 내용의 글이 새겨져 있었다. 이제 날이 거의 밝아졌다. 억센 비는 여전하다.


상체와 배낭을 주황색 등 비닐옷으로 감싸고 하체로는 빗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모습으로 소낙비를 견디며 구름이 짙게 낀 산길을 묵묵히 걷고있는 일행을 뒤에서 따르다 보니, 이들의 산행이란게 어떤 거룩한 것을 향한 순례자로서의 고행은 아닌가 싶은 감동이 일어난다.


목재를 이용하여 정갈하게 구축한 계단에 이른다. 소나기를 피해 가려고 걸음을 재촉한  연하천 대피소에 드디어 다다른 것이란다(08:50; 1480m; 12.2km). 산지대이므로 숲속을 누비며 흐르는 개울의 물줄기가 구름속에서 흐르고 있다 하여 연하천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그리 넓지 않은 대피소 건물안에 들어선다. 3인의 젊고 반듯하게 잘생긴 산사나이들이 버너를 켜놓고 라면을 끓이면서 젖은 몸을 말리고 있다. 그들이 내뿜어 놓은 구수함과 온기가 마냥 아늑하다. 그들이 내어주는 더운 물과 따뜻한 웃음으로 차가운 비와 바람에 시달린 몸의 추위를 서서히 녹일 수 있었다. 한 젊은이는 자청해서 빗물에 젖어 온통 김이 서린 내 카메라의 렌즈를 말려준다. 중산리쪽에서 올라왔는데 그만 산행을 중단할 요량이란다. 그만두지 말라고 만류해 본다.


대피소에서 새벽에 같이 출발한 5인의 산악인들 가운데 가장 젊은 청년이 자기는 걸음이 빠르지 못한데, 낮 동안에 장터목 대피소까지 가야하므로 서둘러 다시 산행에 나서겠단다. 모두에게 인사하고 취사장을 나간다(09:20). 남은 분들이 따뜻한 음식과 커피를 나누어 주셔서 좀더 쉬면서 힘을 기른다. 모든 분들이 다 고맙다. 베테랑 여성산악인 두분의 배려도 가슴을 덥혀 준다.


소나기의 빗발이 많이 약해진다. 오늘 안으로 산행을 마쳐야 겠다는 각오로 그들에게 인사를 한다. 산꾼들 사이에서 제대로 지리산을 종주했다고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화대종주라야 한단다. 화엄사~대원사 구간을 의미하는 말이지만, 이런 날씨에 대원사까지는 너무 먼길이 되니, 중산리로 하산하라며 격려해 준다. 내가 가는 길을 걱정하는 그들의 정이 많은 모습을, 대충은 물끼가 마른 카메라에 담는다. 대피소를 나와 아직 만만치 않은 빗줄기속으로 들어선다(09:48).


다시 어제처럼 혼자가 되고보니 외로움이 밀려온다. 흐릿한 시야나마 그것도 기껏20~30m에 불과하다. 지리산 주능선의 전망을 즐기며 걷는다는 것은 아예 바랄 일이 아니다. 내 몸이 나아가는 주위로, 그리 넓지 않은 공간만이 구멍처럼 시야가 트여진다. 마치 운무가 가득하여 시계제로인 큰 바다에 홀로 한척의 배가 나아가고 있는 형국이다.


비옷으로 무장한 한 산객이 무거워 보이는 배낭을 벗어놓고 바위에 올라앉아 쉬고 있다. 사람을 보는 반가운 마음으로 다가가 보니, 대피소를 먼저 나온 젊은 산객이다. 같이 걸을 수 없는 바쁜 내 입장이 유감이다. 이 청년의 모습도 카메라에 담는다( 10:30).





길섶에 수북히 쌓인 낙엽들도 비에 젖고 있는 산길을 계속 바삐 가노라니 바로 3m 앞에 거의 비둘기만한 한마리 산새가 날개를 접고 길 가운데에 서있다. 이 새 역시 흠뻑 비에 젖은 모습인데 날아갈 생각이 아예 없는 모양이다. 새와 나, 지금 다함께 비에 젖어서 춥고, 홀로라서 외롭다는 점에서, 동병상련의 정을 같이 나눌만한 사이가 되는 듯 하다. 새의 안녕을 빌면서 길을 비껴 간다.


단촐한 단독주택을 연상시키는 건물이 비와 구름에 젖은 희미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건물 앞에 놓여있는 피크닉 테이블들도 비에 젖어 있다. 벽소령 대피소이다(11:04; 1350m; 15.8km).


벽소령이라는 이름을 순 우리말로 풀어쓰면 '푸른하늘재'가 되는데, 벽소라는 이름은 벽소한월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겹겹이 쌓인 산 위로 떠오르는 달빛이 희다 못해 푸른빛을 띤다'는 매우 싯적인 이름이다.  그러나 여기서 10 km 거리에 있는 장터목 대피소를 오후 3시 이전에 통과하지 못하면 그곳에서 산행이 저지되는 것이 이 산의 관리규칙이란다. 당연히 마음이 바쁘다. 그냥 통과한다.


가끔씩 길옆으로 구름에 젖어 흐릿하게 드러나는 큰 바위덩이들의 묘한 모습이 마치 화선지에 희미하게 스며든 담묵화가 아닌가 싶게 특별한 아름다움으로 보여진다.


선비샘의 유래라는 제목으로 아름다운 필치의 그림을 겯들인 안내판이 있다(11:45; 18.2km). 가지런히 쌓아올린 돌 사이에 있는 묻어놓은 파이프를 통해 맑은 물이 철철 흘러 나온다. 유래를 읽으며 마시는 한모금 지리산의 생수가 마냥 청량하다.


 


혼자서 가는 산길은 외롭고 호젓하다. 빗방울이 차가운 구름과 함께 몸을 적신다. 고산에 부는 세찬 바람에 주변 숲의 나무들이 온통 요동치고 아우성쳐 댄다. 깊은 산속에 난 한줄기 좁은 길을, 앞에도 뒤에도 전혀 사람이 없는 듯한 상황에서 나홀로 걷노라니 문득문득 두려움이 밀려온다.  포효하는 바다에서 가차없는 풍랑에 떠밀리는 일엽편주가 따로 없다. 뱃전에 부서지는 파도의 포말에 몸이 젖어드는 격으로, 몰아치는 구름바람에 얼굴이 젖어든다.


이따금씩 곰을 조심하라거나 멧돼지를 조심하라는 배너들이 사납게 나풀댄다. 동물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마음을 놓았다. 이다지도 궂은 날씨인데 저희라고 집 밖에 나올 생각이 나겠는가 라는 지극히 일리있는 배짱이다. 하긴 거친 비바람도 따지고 보면 겁날 것은 없다. 바람이 거세더라도 내 몸을 허공에 날려버릴 만큼은 안될 터이고, 다리는 젖어도 상체는 젖지 않고 보온이 되고 있으니, 걱정할 일도 없다. 그러나, 그래도 때론 두려움이 밀려온다.


걸려있는 배너 중에는 오늘이 마지막 산행일 수 있습니다는 제목도 있다. 쓰러져있는 사람을 상대로 인공호흡을 하고 있는 그림과 함께 고산등반의 위험을 경고한다.  비상전화번호도 적혀 있다. 서두르지 말고 무리하지 말라는 좋은 뜻이겠다.


이곳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의 고도가 1915m(6283’)인데, 사실 우리 남가주에는 해발고도 10000’가 넘는 봉우리들만 해도 무려 22개가 되는 점을 생각하면, ‘고산등반이라는 말이 많이 어색하다.  산의 높이가 등산의 전부는 아니지만, 그래도 남가주에서 산을 다니며 살고있는 내 삶의 복된 점 하나를 실감한다.


조정래님의 태백산맥을 떠 올린다. 이태님의 남부군도 떠 오른다. 남부군이라 이름지어진 집단의 일원이 되어 갖은 신고를 겪으며 바로 이 산 이 자리에서 비참하게 죽어가야 했던 이 땅의 젊은 이들의 이야기가 슬프다.


하긴 이 지리산은 원래 쫒기는 자, 힘없는 자가 밀리고 밀리다 도달한 마지막 기댈 땅이었고 또 벼랑끝 땅이었다. 먼 옛적 삼국시대에는 어쨌는지 모르지만, 항일의병들이 그랬고 동학농민군이 그랬다고 읽었다. 동족상잔 6.25 동란의 틈바구니에 깔려진 무구한 백성들이 또한 그러했을 것이다. 내가 밟는 이 흙속에, 나를 휘감아 도는 이 바람속에, 그들의 삭아내린 육신이, 영혼이, 통한이 깃들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념이 떠올라, 감사와 위로의 의념을 바치며 걷는다.


온통 비에 젖고 있는 길 옆 나무의, 내 눈높이 쯤 되는, 가지 하나에 한송이 분홍꽃이 매달려있다(12:11). 단풍이 든 잎마저 성글게 남아있는 이 늦가을의 가지들 사이에 달랑 한송이 분홍꽃이 피어나 그야말로 함초롬이 비에 젖어 떨고 있는 것이다. 신기하다.


진달래가 아닌가 싶다. 아마도 어저께까지는 따뜻한 햇볕을 받고 있었나 보다. 그렇다 하더라도 잎들마저 단풍들어 다 떨어지고 있는 이 마당에 홀로 한송이의 꽃이 피어나 있는 사정이 불가사의하다. 실로 모처럼 고국을 찾아온 우리 한민족의 후예인 내가  열정을 가지고 이곳을 찾았음을 치하키 위해 한점 꽃망울로 발현한 지리산의 정기일까. 상상만으로도 뿌듯하고 행복하다. 옛 이야기에 나오는 병든 어머니께 드릴 영약을 찾아 하염없이 엄동설한의 산중을 헤매이는 아들의 효심에 마침내 천지가 감응하여 -’ 라는 설정이 비단 허황한 일 만은 아니겠다고 깨닫는다.


얼핏 바람결에 사람의 말소리가 들린다. 내 귀가 듣는 저 소리, 과연 사람의 것인가.  왁자지껄한 한 떼거리 남녀 혼성의 산객들이다. 등을 돌리고 뒤돌아 서있는 곰같기도 하고 사람같기도 한 모습을 한 가까운 바위의 주위에 서성이는 그들의 행지가 부산하다. 서로 기념사진을 찍어주고 찍히고 있는 활기찬 분위기이다. 무조건 반갑기만 한 것은 내 마음이지, 어느 누구하나 내게는 한푼어치 관심도 없다. 바위앞에 있는 표지판을 보니 칠선봉으로 되어있다(12:21; 1558m; 20.0km).


자그마한 바위봉들 7개가 옹기종기 고산의 능선에 한데 모여있어 마치 일곱선녀가 선경에서 노닐고 있는 듯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그러고 보니 어느 사이엔가 비가 그쳐있다. 나도 증명사진을 찍을 기회는 바로 이 때 뿐일듯 하여 한 젊은 여성에게 부탁하여 한장의 내 사진을 찍었는데, 이것이 이 지리산종주 전과정을 통해 얻은 유일무이한 내 모습의 기록이다. 이들 또한 내가 지나온 곳으로 가고있는 산객들이다. 하긴 방향이 같더라도 빌붙어 동행을 할 수 있는 여유로운 입장이 아니다. 다시 외톨이가 되어 길을 간다.


문득, 화엄사에서 시작한 이 종주산행이 서포 김만중의 구운몽에 나오는 성진의 얘기와  유사치 않은가 생각된다. 망아의 경지에서 성진이 되어 상상의 나래를 퍼덕인다.


이 몸은 전라도 화엄사주지 육관대사의 상좌 성진이다. 이 산자락끝의 경상도 대원사에 있는 남악 위부인에게 스승의 선물을 전하러 가는 길인데, 여기서 뜻하지 않게 위부인 휘하의 7선녀를 만난 것이다. 이 부근에 있다는 일곱 바위선녀들이 아니더라도 미상불 조금전에 조우했던 산객들이 일곱명쯤 됐던 것 같다. 물론 남녀 혼성이긴 했었다. 대원사는 마침 비구니 사찰이라고 하니 얘기가 그럴듯 하다. 내가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을 한 여인과의 대화는 성진이 선녀들에게 길을 비켜 달라며 말을 건넨 모양새에 부합되는 일이겠다.


부질없이, 외로운 그러나 설레는 상상을 하며 걷다보니 제법 큰 규모의 붉은 색 건물이 구름속에서 희미하게 자태를 나타낸다. 세석 대피소이다(13:01; 1560m; 22.1 km). 큰 건물은 숙소인 듯 한데, 그 옆에 화강암 돌들을 쌓아 만든 아담한 취사장 건물이 있다. 건물안은10여명 산객들로 활기에 차 있다. 비 바람으로 날씨가 궂으니 다들 대피소에 머물고 있는 모양이다. 화장실을 이용하려 배낭을 열어본다. 젖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화장지가 종이죽이 되어있다. 혼자인 듯한 옆의 남성에게서 띠뜻한 물 한잔과 화장지 몇장을 얻는다. 대충 신변을 정리하고 대피소를 나선다(13:29).






지리산의 최고봉인  천왕봉을  불과5 km쯤을 남겨 놓은 지점이라선지, 10m의 극히 짧은 시야이긴 하지만 그래도 등산길 주변의 나무나 돌 바위들의 모습들이 범상치 않음을 알겠다. 점입가경인 것이다.


등산길이 많이 넓어지면서 바닥에 큰 돌들이 고르게 깔려있고, 넓직한 돌계단도 보인다. 양쪽 길변으로는 철봉으로 가드레일이 설치되어있다. ‘촛대봉이라는 팻말이 있다(13:48; 1704m). 주변에 여기저기 바위들이 희미하게 보일 뿐 또렷하게 드러나는것은 하나도 없다.


무엇인가 죄를 지은 한 여인이 용서를 구하기 위해 촛불을 켜놓고 천왕봉을 향해 산신령께 빌었지만 그대로 굳어버린 모습의 돌이 있다고 한다. 짙은 운무로 그러한 정경을 도무지 볼 수가 없다. 가녀린 여인이 도대체 어떤 죄를 지었길래, 용서받지 못한채 그런 벌을 받게 된 것일까. 안쓰럽다. ‘천지불인이만물위추구’ - 이 여인에게 하늘은 역시 불인하셨나 보다. 이 주변을 조성해 놓은 모습에서 평소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인 듯 느껴지나,  지금은 오로지 나 홀로 서성인다.


등산로 주변의 경개나 분위기가 갈수록 더 서기를 띄어 가는 듯 아름답다. 30m 내외에 불과한 갑갑한 시계를 벗어나는 주위의 경관이 도대체 어떤 모습인지 전혀 알 수 없어 크게 아쉽다. 장터목 대피소를 늦어도 오후3시 전에는 통과해야 한다는 부담으로 발걸음이 바쁘다.


연하봉임을 알리는 이정표에 이르렀다(14:41; 1721m; 24.7 km). 장터목 대피소까지의 거리는 0.8 km가 남았고, 통과제한시각인 3시 까지는 19분이 남았다. 불안한 마음이다.


자잘한 기암괴석의 변화감이 큰 바위봉들이 길옆으로 희미하게 많이 나타나곤 한다. 잘 보이지도 않지만 자세히 살펴볼 마음이나 시간의 여유도 없다.


바위들이 날카롭고 경사가 진 곳에 신기루인듯 희미하게 장터목 대피소건물이 윤곽을 드러낸다(14:54; 1653m; 25.5 km). 통금시각 6분을 남겨 놓고 이곳을 통과한다. 어떻든 기쁘다. 그러나 혹시라도 근무하는 직원이 있어, 내가 모르는 또 어떤 이유를 들어 나의 천왕봉행에 대한 부정적 대응을 할까 싶은 불안감이 있어, 누구 눈에 띌까 싶은 조심스런 마음으로 빠르게 그러나 조용조용 살금살금 이 구역을 지난다. 다행히 거친 날씨 때문인지 어느 누구도 건물 밖에 얼씬대는 기척이 없다.


장터목이란, 예전에는 천왕봉 남쪽 기슭의 경남 산청군 시천면의 주민들과 북쪽 기슭의 경남 함양군 마천면 주민들이 매년 봄가을에 장을 열어 서로 필요한 물품들을 교환하던 곳이라서 불리던 이름이라고 한다. 생각해보면, 이 두 지역이 다 한적한 지리산의 기슭이었음을 고려할 때, 주민들 상호간의 교역이라기 보다는, 아마도 이 깊은 심산에서 주민들에 의해 채집 또는 포획된 산물들이,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생필품을 가지고 들어오는 떠돌이 장꾼들을 통하여 모아지는, 이곳 토산품의 1차적 집산시장의 성격을 더 많이 띄고 있었을 것이다.


장터목 대피소를 지나게 되니 마음속에서 쿵쿵거리던 조급함이 누그러진다. 그러나 길은 이제 차츰 가파르고 옹색해 진다. 예사롭지 않게 멋진 크고 작은 바위들이 길 옆으로 불쑥불쑥 나타난다. 등산로의 어느 한쪽은 깊거나 얕은 벼랑의 형태를 띄어간다. 철제 가드레일이 설치된 구간도 잦아진다. 바닥은 이제 거의 거친 돌들이다. 높고 뾰쪽할 천왕봉이 가까와지는데서 나타나는 정상부위의 지리적 특징이겠다.


부지런히 걸어가면서, 정상이 그리 멀지 않은 구간이기에, 혹시라도 나말고 다른 길손이 있어 조우케 되기를 바래본다. 그러나 아무도 없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법과 자신을 등불삼아 무소의 뿔처럼 그렇게 혼자서 가라는 성인의 말씀을 생각해 본다. 가느다랗게 이어지고 있는 산길을 등불삼아 나 혼자서 부지런히 가고 있는 모양새인 것은 분명하지만, 사자나 바람, 연꽃이나 무소의 비유는 나를 턱없이 부끄럽게 한다.


천지가 조판될 무렵의 혼돈기에 이 위에 솟아나 있던 거대한 바위봉이 깨어져 무너져 내리면서 큰 바위 조각들 사이에 생긴 지형일 듯한 바위들 틈새로 길이 이어져있다. 이름하여 통천문이다(15:27; 26.7 km). 정상까지 0.5 km가 남았다는 안내판이 있다. 어제 화엄사 경내를 벗어나 지리산에 발을 들여 놓은지 꼭 24시간이 지난 시각이다.


하늘로 들어가는 문, 천왕봉에 올라가는 문, 속계를 떠나 선계로 오르는 문, 중생고를 벗고 천상락으로 이르는 문이 여기에 있다. 예전에는 죄있는 사람은 결코 지나 갈 수 없는 장소라는 믿음이 있었다고 한다. 아직 원죄설이라는 것을 접할 일이 없었던 시절의, 자연스런 청정한 천성을 지녔던 순박한 우리네 조상님들의 마음가짐 몸가짐이 아니었나 싶어 숙연해 진다. 큰 바위들 사이에 형성된 긴 공동을 지금 막 지났으니 이제 내 몸은 의당 하늘세계에 놓여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주변의 암봉들의 분위기도 범상치 않다. 주위를 가득 채우고 있는 아슴한 운무들은 하늘나라의 상서로운 기운이고 신비로운 경계이다. ‘별유천지비인간이 바로 이곳의 형용이겠다.


통천문을 지나자 곧바로 가파르게 곧추선 철제 계단이 코 앞에 나타난다. 하늘나라로 올라가는 마지막 단계의 두레박이고 동아줄인가 보다. 깎아지른 듯한 바위들 사이로 설치된 계단을 다 오르니 좁은 평지에 내리게 되는데, 저만큼에 다시 철계단이 있다. 스무계단 쯤이 된다. 이를 오르니 굵은 돌을 깔아 만든 길이 나오고 다시 철계단이 나온다. 구름은 계속 두텁게 주변경관을 감추고 바람은 더욱 세차게 불어대며 포말된 물끼를 얼굴에 뿌려댄다. 죄많은 나를 꾸짖어 물리치는 정황이다. 한층 더 용기를  내야겠다.


이제는 다 왔나 싶은데 그게 아니다. 거칠기만한 암봉들 사이로 오른쪽에 또 왼쪽에 나무로 만든 가드레일들이 번갈아 나타남으로써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길을 인도한다. 날카로운 바위틈에 낸 길을 따라 내리고 또 오른다. 시야가 짧음이 거듭 아쉽다. 그러나 희끄므레하고 어렴풋한 주변 형상들이라 더욱 신비롭게 보일 터이다. 오른쪽에 큰 안내판의 형체가 눈에 들어온다(15:43).





, 이제 정상이구나. 그러나 다가가 보니, ‘국립공원특별보호구역안내라는 제하의 홍보판이다. 여기서 부터는 가드레일이 길 양쪽에 다 가설되어 있다. 길이 위태로와서 일까. 거친 돌들을 밟으며 왼쪽으로 굽어지는 길을 오른다. 다시 내려가는 길이 나온다. 다시 올라가는 길이다. 이 오름길의 꼭지에 올라서니 또 내려가는 길이 되어 아쉬운데, 멀지않은 그 너머 저 끝으로 봉긋하게 솟아있는 돌출봉의 형태가 아주 희미하게 보인다. 직감으로 저것이야 말로 정상이구나싶다.


마지막 정상 봉우리 앞에 선다. 오르는 길이 좌우로 나뉜다. 오른쪽이 경사가 좀 급하나 거리는 좀 짧을 듯하다. 중간에 발에 밟히는 넓은 바위면에 이리저리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들 자기 이름을 이곳에 새긴 사람들의 심정을 나름대로 이해해 본다. 찰나에 머무는 우리네 인생살이, 큰맘 먹고 힘들여 이곳 하늘세계의 성소에 오른 감회를, 만수를 누려낼 이 너럭바위에 이름을 새겨넣음으로써, 영세불망의 존재로 승화되고픈, 한 점 초로같은 유한존재의 애절한 희원이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2011년에 John Muir Trail을 종주할 때에, Donohue Pass(11066’)에서 보았던 등산객들이 남겨놓은 수많은 작은 돌탑들이 떠오른다. 땅의 동서, 때의 고금은 비록 달라도, 상상을 절하는 비경을 보는 그 나름의 감탄사이자, 영원한 존재를 대하는 찰나적 존재로서의 애상의 귀거래사는, 이처럼 대동소이한 것인가 보다.


그 중 한곳의 사진을 찍었는데, 나중에 확인한 부분을, 미력하나마 이 분들의 소망에 대한 응답 차원에서 이를 밝혀 본다. ‘윤광안 이락수 남주헌 정유순인데, 기록된 연대를 확인해 보니 1631(숭정3) 봄이 된다. 그 당시 이곳까지 올랐던 것을 감안해보면 그래도 상당한 풍류를 즐길 수 있는 복된 삶을 사신 분들이겠다.


정상에 섰다(15:48; 27.2 km; 1915m). 정상이란 이런 곳인가. 천왕봉 주위의 바람이란 바람은 모두 나에게 몰려들어 내 몸을 어딘가로 날려버리려는 기세이다. 나를 정녕 하늘 세계로 밀어 올려 하늘사람으로 만들어 주려는 축복인가! 죄많은 이 몸이 이 곳을 더럽힌 죄를 물어 깊은 나락으로 날려버리려는 응징인가! 두려운 마음이 덜컥 일어난다. 난 아무래도 축복 아닌 응징의 과보가 합당한 존재이다.


갑작스럽게 몸이 얼어들고 손이 곱아진다. 응징의 시작인가. 카메라의 셔터를 못 누르겠다. 가외의 노력을 기울여 정상에 서있는 비석의 사진을 찍는다.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라고 새겼다. 정상이 분명하다. 허나 천상천하유아독존(‘귀할 존이 아닌 있을 존으로)’이랄까, 어렵게 오른 이곳에서 내 모습이 담기는 사진을 찍어줄 사람은 사방팔방 어디에도 없다. 모든 등산에서의 가히 화룡점정이랄 수 있을 정상에서의 전망도 없다. 좁은 정상이지만 그 전체의 윤곽도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바닥 외에는 보이는 것이 없으니 아마도 그렇기에 바닥바위면에 새겨진 사람들 이름을 보게 됐었나 보다.


오른쪽에 제법 큰 안내판이 바위위로 박혀있다.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역사의 현장에서!’ 라는 제하에 이 산의 전경일 사진이 있고 글이 있다. 한글과 영어가 병기된 글이다. 당연히 느긋한 마음으로 이를 읽으며 하늘세계에 오른 성취를 즐겨야 겠으나, 지금 그럴 수 있는 여유가 전혀 없다. 몸 전체가 마비되듯 얼어들고 숨 쉬기도 쉽지 않다. 손가락이 마비되었다. ‘삼계개고아당피지’ - 온 몸이 아파온다. 다만 탈출해야 한다는 공포가 엄습한다.


우리민족의 영산인 지리산 천왕봉에 오른 한줄기 감회를 새겨볼 어줍잖은 정취나 풍류도 없이, 서둘러 정상점으로 부터10m 쯤 아래의 바람이 잔 곳에 몸을 숨긴다. 마비된 열 손가락을 좌우 양손을 써서 교대로 비벼댄다. 마비가 과연 풀리려나 불안하다. 한참만에 풀린다. 바람이 구름이 매섭게 나를 다그쳤지만, 그래도 한줄기 뇌성벽력만은 막아주신  천지신명에 경의를 드리고, 다시 되살아나 주는 내 몸에 고마움을 느낀다.


천왕봉 밑에서 왼쪽으로 난 길을 조금 따라가니 이정판이 있다. 중산리 5.6 km, 대원사 11.8 km라는 이정이 있다. 은 당연히 중산리 행을 요구해 온다. 그러나, 마음화대종주라야 제대로의 종주라고 본다던 분들의 말을 떨치지 못하고 주저한다. ‘11.8 km라면 7마일 남짓이니 3시간이면 충분하고, 그것도 하산길이니 서두르면 2시간이면 가능하다머리의 판단이다. ‘마음은 물론 도 그렇게 작심한다.


그러나 머잖아 머리가 간과했던 사정이 드러난다. 하산길에는 수많은 철 사다리나 철교가 있었다. 하산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봉우리들은 거의가 다 안부의 바닥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정상으로 올라가야 하는 톱날 모양의 경로이다. 그만그만한 봉우리가 많기도 하다. 하산길이라지만 시간이나 체력의 소모가 예상을 초과한다. 남아있는 거리를 쉽게 줄여가지 못하는데, 이제 해가 기우는 기색은 완연하다.


급하면 돌아서 가랬다. 험하게 이어지는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를 아슬하게 연결해주는 철제교량 바닥에 편한 자세로 홀로 앉아서, 제한된 풍광이나마 잠시 즐겨본다. 유일하게 간직한 식품 초코파이를 몇개 먹는다. 가벼운 간식거리였으나 지금은 필수불가결의 주식이다. 맛을 음미할 경황은 아니다. 기운이 회복된다. 헤드램프는 있지만 험한 길, 생소한 길을 가는데는 아무래도 햇빛만이야 하겠는가 다시 일어선다. 마음은 바쁜데, 이어지는 하산길들은 주능선의 구간보다 더 까다롭고 더디다. 다소 불안하다.


주위가 완전히 어둠에 잠길 즈음에 치밭목 대피소가 나타난다(18:00; 1425m; 31.2 km). 인적이라고는 아예 없는 악천후의 깊은 산 어둠에서 인간의 처소를 만난다는 것의 반가움은 실로 크다. 전설따라 삼천리에나 나오는 , 그런데 그때 저멀리 불빛 하나가 희미하게 보이는게 아닌가!”의 경지가 바로 이것이 아닐 것인가! 그러나 불빛은 보이지 않았다. 반갑기는 했으나 갈길을 가는게 급선무라 생각하고 등산길을 가늠해 본다. 오른쪽으로 바짝 꺾여 계곡의 아래로 급하게 내려가는 길이 보인다.


사위는 이미 어둠에 잠겼다. 밤길에 전혀 모르는 길을 앞에 놓고 그냥 덥썩 그리로 내려간다는게 망서려진다. 아는 길도 물어가랬는데, 이 길은 아는 길이 아니다. 사람이 없으면 몰라도 인간을 위한 인간의 대피기지가 앞에 있는데 그냥 지나친다는 것은 크게 무모하고 어리석은 일이겠다.


인기척이 없으나 문을 두드려본다. 이윽고 중년의 남자가 문을 연다. 대뜸 내 나이를 묻는다. 아니 그런데 그 나이에 집에 계실 일이지 이 시간에 이런데서 뭘 하시냐고 핀잔을 준다. 할말을 찾지 못한다. 대원사로의 하산 길을 묻는다. 응답은 주지않고 음식은 있느냐 되묻는다. 초코파이가 몇개 남았기로, 있다고 답한다. 종이컵에 탄 뜨거운 커피를 과자 몇개와 함께 건네준다. 몸이 많이 풀린다.


두가지 약속을 하란다. 우리는 여기서 결코 서로 만난 일이 없는 것으로 치부해야 한다는 것과 대원사로 가지 않고 새재마을로 간다는 것이란다. 대원사와 새재마을의 거리 차이는 3 km가 된단다. 낯설고 깊은 산에서의 밤길 3 km는 생과 사를 갈라 놓을수도 있다. 새재마을로 가는 길과 거기에서 어떻게 택시를 부르는가 등을 상세히 알려준다. 첫번째 다짐은 아마도 이 분의 직무규정과 맞닥뜨린 현실과의 갈등에 관한 것인 듯 하고, 두번째 다짐은 물론 나의 안전을 위한, 이곳 사정에 정통한 이 산의 전문 지킴이이면서 등산객들의 수호자로서의 따뜻한 배려일 것이다.


이 분과의 첫번째 약속사항을 어기고 여기에 이런 사실을 밝히는 것은 민병태(52)라는 이 분이 국립공원측의 직원이 아니고, 이 산장의 주인이라는 것을 이 글을 쓰는 것을 계기로 알게 됐기 때문이다. 두번째 약속은 잘 지켰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다. 큰 도움을 주신 이 분이 고맙기만 하다.


치밭목이란, 이곳에 예전부터 우리가 취나물로 조리하여 먹는 취가 많이 자라는 곳이란 의미로 부르는 순수한 우리말이라 한다. 이곳 지리산은, 많은 곳의 땅이름을 이 지역 산골사람들이 예전부터 자연스럽게 부르던 이름을 그대로 살려 부르고 있는  아주 모범적인 사례가 아닐까 싶다.


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길은 경사가 급하다. 때로는 개천을 건너고 때로는 큰 바위 지역을 지나게 되니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분명하지 않은 구간이 더러 나온다. 헤드램프를 이리 저리 비춰가며 신중을 기하지만 길을 잘못들어 되돌아 나오는 일이 두번인가 있었다. 흙이나 나무뿌리, 바위에 습기가 많아, 트레킹폴이 없는 상태에서 몇번인가 미끌어지고 넘어진다.


갈림길에 도착했다(19:10; 33.0 km). 치밭목에서부터의 하산길 1.8 km는 결코 쉽지 않았다. 여기서 직진하면 대원사에 이르게 될 것이다. 새재마을은  왼쪽으로 꺾인 길로 간다.  화대종주라는 말에 집착되어 다소 갈등을 느꼈으나, 산장 지킴이의 다짐도 무게가 컷고, 또 내 자신의 사기도 많이 위축되어 있다. 밤길 3 km의 잇점을 외면할 수 없다.  화대종주아닌 화새종주의 길을 택한다.


이제 겨우 3 km가 남았을 새재마을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등산을 하다보면 항상 하산길이 지루하다. 낮에는 조금이라도 시야가 있었다. 지금은 조그만 헤드램프의 옅은 빛이 진한 어둠을 겨우 밀어내며 만들어가는 아주 작은 빛의 공간속을 걷고 있는 것이다.


드디어 마을에 도착한다(20:05; 36.0 km). 새재마을일 마을어귀에 헤드램프의 불빛에 드러나는  이정표 하나가 비스듬히 서있다. ‘치밭목 대피소 4.8 km, 천왕봉 8.8 km’라는 이정이 적혀있다. , 나에게는 이곳이 산행의 종점이지만, 또 다른 어떤 이에겐 이곳이 산행의 시작점이 되는구나 를 깨닫는다.


고요하기만 하다. 산간의 밤은 이렇게 일찍  깊은 잠에 빠지는구나. 10여호의 집들에 불이 다 꺼져 있다. 어느 집에 가서 택시를 불러달라는 부탁을 하나 난감해진다. 많은 시간을 거의 나홀로 악천후의 산길 43km를 걸어온 류의 나의 용기가 불꺼져 잠이 든 사람의 동네에서는 아무짝에도 도움이 안되는 것도 깨닫게 된다. , 아무려나 그래도 용기를 내야겠다. 우선 심호흡을 해본다.


 


  1. 후기


깜깜한 이 윗새재마을의 어느 집을 결국은 찾아가 택시를 불러 달라고 부탁을 드려, 진주로 나가서 저녁을 사먹고, 여관에서 젖은 몸과 소지품들을 말리며 편안하게 휴식을 취한다. , 한칸 따뜻한 방이 주는 도시의 이 아늑함이라니!


‘가던 날이 장날이 아니어서’ 일기때문에도 고생을 더한 산행이 됐다. 하긴 계속되는 비바람도 어려움이었지만, 특히 그 비바람 때문에 더욱 텅비어 있게 된 긴 산길을, 많은 시간동안 홀로, 어둑한 가운데 파도치듯 포효하는 거대한 산을, 정신을 내맡길 만한 주변의 황홀한 전망도 없이, 앞만 보고 걸어야 한다는 것의 단조로움 등이 더 큰 어려움이었다.


우리 민족의 현대사에 크게 점철된 ‘태백산맥’, ‘남부군의 비극을 떠올리며, 이 산의 여기저기에서, 불과 60여년전이라는 가까운 과거에, 비참하게 숨져갔을 그 수많은 영령들에게 경의와 위로를 바치는 후손된 자로서의 순례의 마음을 몇번인가 되새기며 산행을 했다.


마침 지니고 온 다운자켓과 파타고니아 방수자켓, 요소 요소에 마련된 대피소들, 천둥과 벼락이 없이 비바람만으로 한계를 그어주신 황천후토, 중간에 만나고 스쳤던 여러 산악인들, 이 모든 것, 이 모든 분들에게 고마움을 드린다.


지녔던 식품으로는, 구례의 좌판 여인이 담아준 감 3, 화엄사의 어느 보살이 건네준 감 1, 노고단대피소에서 구입한 초코파이 12개가 전부였는데, 그래도 초코파이 2개가 남았기로, 이 또한 내 작은 여정의 ‘52어’가 이 아닐 것인가고 고소를 머금는다.


다시 한번 진짜 지리산 종주를 하고 싶다. 이번 종주에선 민족의 영산 지리산이 품고있을 첩첩한 산줄기나 숱한 암봉, 숲과 바위와 나무들이 보여주는 비경을 전혀 접하지 못했다. ‘지리산종주라기 보다는 오로지 지리산 주능선의 구름터널 관통이 더 적합한 표현이다. 이젠 제대로 된 화대종주를 해봐야 겠다.


천왕봉에서의 정상사진도 정상비의 뒷면만을 허겁지겁 찍었다는 것을 미국에 돌아온 뒤에야 알게 되었다. 정상비의 앞면에 천왕봉이라는 새김이 있다니 이를 직접 가서 보아야 겠다.


언젠가 우리 소중한 우담바라회원님들과 다 같이 지리산을 오르는 날이 있기를 발원한다. 우리 처사님들은 주능선을 통해 천왕봉에 오르고, 보살님들은 5.6 km의 거리가 된다는 중산리에서 출발하여, 천왕봉에서 다같이 합류키로 한다면 별로 어려울 일이 없겠다. 아 참, 고명순보살은 예외가 된다. 어쩌면 주능선 코스를 가는 우리들 처사팀의 리더로  모실만 하다. 정상의 바위면에 회원들의 이름을 새기진 못하더라도, 다함께 어깨동무를 하고서서 원지거사님의 카메라를 향해 활짝 웃는 멋진 단체사진이면 또 어떠리.


모를 일이다. 지리산 정상에서 발원한다는 한국인의 원초적 기상속에다, 우리네 처사님들 보살님들 지극한 발원이 함께 실리면, 혹여 삼천리 금수강산, 한라에서 백두까지, 통일의 우담화 여기저기 무리무리 피어날런지.


2016-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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