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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와 왕과 다빈치의 공간, 앙부아즈와 끌로 뤼세
09/06/2018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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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생미쉘에서 동남쪽으로 263km를 내려와, 르와르 강가 언덕에 있는 앙부아즈성 

Chateaux Amboise을 방문하였다. 왕위를 이어 받을 아들이 없던 루이 12세는,

조카이며 사위가 되는 프랑수와(1494 -1547)에게 왕 위를 물려주었다.





영토 확장을 위하여 이탈리아를 침공했던 프랑스와 1세는, 당대 세도가 메디치

로부터 따돌림 당하고 있던 다빈치 Leonardo da Vinci (1452-1519)를 프랑스로

초청하였다. 끌로 뤼세 저택을 하사한 왕은 다빈치에게 매년 은화 700에퀴의

생활비를 지급하고, 그를 국왕 수석화가및 건축가로 임명하였다.



Loire River




 

자신보다 43세 연상인 다빈치를 아버지라 부를 정도로, 다빈치의 예술을 높이

샀던 프랑수와는 그를 통하여, 프랑스의 문예부흥 Renaissance을 이루었다.

강 건너에서 비스듬이 누워, 프랑수와의 앙브아즈성을 응시하고 있는 다빈치의

청동상을 보며, 그들의 예술에 대한 열정을 확인해 볼 수 있었다.







 


앙브아즈 성 안으로 들어가, 정교한 조각상으로 화려하게 지어진 고딕 양식의

생 위베르 교회 Chapelle Saint Hubert를 찾았다. 이 성당 안에는 1519

5 2일 세상을 떠난 다빈치가 잠들어 있었다.












 

정원과 다빈치의 흉상이 서 있는 곳을 지나, 왕실 본궁으로 들어갔다.









빨간색 부분이 회손되어 없어진 부분이다.
















프랑수와 1세는 수시로 다빈치를 만나 예술에 관한 교감을 나누었다. 다빈치가

임종할 때, 그를 품에 안고 죽음을 애도하였던 프랑수와 1세는, 500년이 지난

지금도 루브르 모나리자관에서 그의 작품을 지키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원으로 가는 길에, 왼편으로 동굴집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10여분 정도 걸어 나타나는 공원으로 들어가자, 200년 동안 프랑스 왕들의 여름

별장으로 사용되었던 클로 뤼세 성 Chateau du Clos Luce이 나타났다.













다빈치는, 프랑수와의 왕궁이 보이는 이 저택에서, 1516년 부터 죽을 때까지 예술

혼을 불태웠다. 미완성으로 이탈리아에서 부터 가지고 온 모나리자’, ‘성 안나와 성

모자’, ‘세례자 요한을 완성하였다. ‘모나리자는 현시가로 4조원으로 추정된다.














 

침실과 접견실, 식당, 작업실 등을 지나 지하로 내려가, 건축, 기술, 기계, 항공 등

4개의 분야별 전시실에서 설계도와 모형들을 돌아보았다. 잠시 외출한 그의 방에

들어온 기분으로, 무기와 비행기 등 상상을 초월하는 다빈치의 세상에 빠져들었다.













중세 암흑기, 천동설을 주장하며 과학적 연구가 신의 섭리에 반한다고 금기시하던

시절에, 다빈치는 은인이자 친구인 프랑수와를 만나 천재성을 발휘하였다. 종교적

신념에 묶여 있었던 교황청과 이탈리아와는 달리, 프랑스는 공상 만화 속에서나

있을 법한 물건들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전시실 한쪽, 500m의 땅굴로 앙브아즈성과 연결해 놓은 통로가 보였다. 프랑스와는

눈덮인 겨울이나, 한 밤중에도 이 지하통로를 통해 다빈치를 찾아 격려하였다. 왕의

열정에 감동받은 엔지니어 다빈치와 후세 과학자들이 연구에 몰두하여, 프랑스는

20세기 초 미국이 부상할 때 까지, 인류의 과학 문명을 이끌어 나갔다.




 

다빈치 공원 숲 속에는 수력과 톱니바퀴를 이용한 공장, 다연발 대포, UFO 모형의

전차가 오솔길 사이사이에 전시되어 있었다. 아이들의 창의력 개발은 물론, 관점의

전환으로, 새로운 도약을 원하는 어른들에게도 좋은 테마 공원으로 보였다.  












  

다빈치는 자연에의 과학적인 접근, 인간 신체의 해부학적 구조, 수학적 비율 등을

완성하였다. 대표 작품 <최후의 만찬>은 그리스도의 눈을 중심으로 원근법이

사용되었고, 배경의 상징적 건물은 구도의 완벽한 균형감과 안정감을 주었다.








 

소나무와 주목 등으로 둘러싸인 다빈치 공원 연못을 한바퀴 돌았다. 사람의 근육을

표현하였던 그의 작품들이, 주위 나무 둥치의 모습과 상관성을 유지하며 전시되어

있었다. 잠시 벤취에 앉아, 힐링되는 기분으로 작품 감상을 할 수 있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이층다리

 


다빈치는 제자겸 동반자이었던 멜지 Francesco Melzi에게 그의 유산을 남기고

67세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모든 작품들은, 멜지가 죽을 때 까지 50년 동안

간직했다가, 정부에 기증되면서 세상에 선 보이기 시작하였다.

 





프랑스 일주, 앙부아즈, 레오나르 다빈치, 프랑수아 1세, 끌로쉬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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