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turalwoman
들꽃사랑(naturalwoman)
New York 블로거

Blog Open 08.03.2011

전체     678789
오늘방문     113
오늘댓글     0
오늘 스크랩     0
친구     102 명
Blog News Citizen Reporter
블로그 뉴스 시민 기자
2015 Koreadaily Best Blog
2014 Koreadaily Best Blog
2013 Koreadaily Best Blog

  달력
 
24. 북미대륙 일주 여정의 끝, Colonial Williamsburg, VA
07/06/2018 08:06
조회  3807   |  추천   28   |  스크랩   0
IP 72.xx.xx.179



90일간의 북미 대륙 일주 자동차 여행의 마지막 방문지로, 영국 식민지 시절 주정부가

있었던 버지니아주의 Colonial Williamsburg를 찾았다. 그 곳에는 1926, 록펠러가의

도움으로, 18세기 식민지 시절의 주요 건물들이 복구, 재건축되어 있었다.








 

1698, Jamestown에 있던 Statehouse3번씩이나 화재로 소실되자, Middle 

Plantation에 의사당 Capitol과 Governor's Palace를 신축하고 계획 도시를 만들었다

주정부가 이 곳으로 옮겨져 Williamsburg라 개명되고, 1780년 주정부가 리치몬드로 

옮겨질 때 까지 버지니아의 주도가 되었다.




 

1570년, 처음으로 버지니아에 스페인 예수회의 단체가 정착하여 선교지를 세웠으나,

인디언들에 의해 전멸되었다. 1584,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는 월터 롤리에게

식민지 설립을 허락하였으나, 이들 역시 영국으로 부터의 공급 부족으로 실패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엘리자베스 여왕의 은혜에 감사하여, 이 지역을 "버지니아"라 불렀다.

그 이름은 "처녀 여왕"이라고 알려진 엘리자베스의 명예를 기린 것으로, 독립 후에도

버지니아 주라는 미국의 주 이름이 되었다.




 

이 곳은 1776 5 15미국 독립 지도자들이 모여 독립을 위한 회의를 개최한 

역사적인 장소이다. 버지니아 주에서는 미국의 초기 대통령 5명 중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제임스 매디슨과 제임스 먼로 등 4명을 배출하기도 하였다.






 

주민의 절반이 흑인 노예였던 영국 식민지 시절의 유적들과 생활 모습을 재현해 놓은

그 곳에서 독립 등 미국의 역사를 배웠다. 이 곳은 옛 것을 그대로 보존하여, 선조들의

모습을 후손들이 직접 보고 느끼며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교육장이 되어 있었다.




 

Peyton Randolph House, 안내자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가 18세기 생활 모습을 돌아

보았다. 노예들이 초를 만들던 공방에서는 당시 복장을 한 젊은이들이 소귀나무 

bayberry의 열매를 끓여 왁스를 추출, 초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정원 까지도 잘 조성해 놓은 The Governor’s Palace에는 건물 입구에서 부터 각종 칼과

총들이 진열, 전시되어 있었다. Patrick Henry, Thomas Jefferson 7명의 주지사가

살았던 공관으로, 접견실, 서재, 침실, 식탁 위 셋팅 까지 되어있었다.




















Public Gaol(Jail)








Capitol,








1607년 부터 영국 이민자가 늘어난 영국은 1733년까지 13개의 식민지를 대서양 

연안에 만들었다. 7년 전쟁에서 프랑스를 이긴 영국이 식민지 통제를 강화하자

1776 7 4, 13개 식민지 주 대표들은, 필라델피아의 현재 독립기념관이 된 

의사당에 모여 독립을 선언하였다.  


프랑스의 지원에 힘입어 독립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은, 1783년 영국으로 부터 독립을 

승인받았다. 1787년 미합중국 헌법을 선포하고, 1789년 독립군 사령관이었던 

조지 워싱턴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하였다.

 





미국은 독립 후에도 프랑스, 스페인 등으로 부터 영토를 획득하여, 1848년에는 31개의

주로, 거의 현재의 규모로 까지 발전하였다. 원주민 인디언을 몰아내고 서부를 개척해

나갔던 서쪽으로의 발전은, 이른바 프론티어 운동으로 알려져 있다.

 





식민지 초기 부터 종교나 경제 체제를 달리하고 있었던 미국의 남부와 북부는, 식민지

건설 당시 부터 싹 터 온 대립이 점점 커져, 양립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되었다.

노예 해방 문제 등으로 갈등이 깊어진 미국은 1861년 남북 전쟁을 치르게 된다.

 

남북 간의 내전 초기에는 남부가 우세하였으나 언론, 유럽 국가들의 지원으로 북부가

우세해져, 1865년 북부의 승리로 끝났다. 이것은 북부의 생산력, 특히 공업력이

남부의 농업에 대하여 거둔 승리이기도 하였다.




 


19세기 중엽 까지 지속된 산업 혁명, 그리고 남북 전쟁 후의 국내 자원 개발과 교통

발달에 힘입은 미국의 산업 자본주의는 약진을 거듭하였다. 공업 도시의 형성, 현저한

빈부의 격차, 슬럼가나 범죄의 발생이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노동 운동이 거세어졌다.

 

1차 세계 대전 때에는, 멕시코 전쟁으로 얻었던 땅을 뺏길 위험에 처하자, 독일에

선전 포고를 하고, 전승국이 되었다. 1차 세계 대전의 결과 세계 최고의 부를 쌓게

된 미국은 전쟁 후에도 번영을 유지하였으나, 공업의 번영에 비하여 농촌은

불황으로 허덕였다.




 


유럽 여러 나라의 전후 불황과 더불어 1929년에는 대공황이 엄습하였다. 1932년에

대통령이 된 루스벨트(1882∼1945)는 경기를 회복하기 위하여 국고를 대량 사용하는

뉴딜 정책으로, 불황으로부터 탈출하는데 성공하였다. 새로운 정책을 통해서

연방 정부의 권한은 크게 확대되었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을 계기로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미국은 전승국이 되었다.

참전국 중에서 전화를 입지 않은 유일한 나라로, 경제력이 비약적으로 확대되었기에,

전쟁 후에는 피폐한 여러 나라의 부흥과 후진국 원조 등에 적극적이었다.

 

소련과의 냉전 체제에서 자본주의 진영을 이끈 미국은, 1960-70년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여 역사상 처음으로 대패를 하였다. 1990-2000년대에는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과 전쟁을 하였다. 2018년 이후에는 북한과 이란의 비핵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큰 숙제에 직면해 있다.  

 

90일 동안의 숙박료로 4,400불을 지불하였고, 지구를 한바퀴 돌고 다시 NY에서 LA

까지 갈 수 있는 28,515마일을 달린 개스비와 타이어 교체비는 2,500불이 들었다.

국립공원은 씨니어 패스로 무료 입장하였으나, 주립공원과 관광명소 등의

입장료로 500여불이 들어, 총 경비 7,400불로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식비는 아주 기본적인 여행생활자의 식단을 유지하여 별도 경비로 계산하지 않았고,

브리타 휴대용 정수기를 가지고 다녔다. 정수한 물을, 집에서 가져 간 물병에

담아 사용하여, 물값을 전혀 들이지 않았고, 자연 환경 보호에도 일조하였다.

 

북미 대륙 전역의 수도물은 일단 정수기를 거치면, 소독약 냄새도 없어지고 금새 

마법 처럼 맛있는 식수로 변했다. 개솔린 보다 훨씬 비싼 유명 상표의 물보다 더 

맛있게 마셨다면 과연 누가 믿을 것인가? 한번 시도해보면 아마도 다시는 

유명 상표 병물을 비싼 가격에 구입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 여행은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살아갈 미국이, 얼마나 아름답고 넓고 풍요로운지

새삼 확인해 보는 기회가 되었고, 많은 것을 보고 느끼는 귀한 시간이었다. 그동안

해외 여행에서 접했던 진기한 풍경들이, 거의 다 있는 미국 내 여행을 하면서,

매일매일 기대와 감동 속에 보낸, 90일간의 꿈같은 여행이었다.

 

 

 





북미일주, 버지니아, 윌리엄스버그, 독립, 콜로니얼,
이 블로그의 인기글

24. 북미대륙 일주 여정의 끝, Colonial Williamsburg,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