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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이스라엘 최후의 항전지 - 마사다 국립공원
06/25/2018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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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물 보다 10배나 짠 염도 34%의 사해에 둥둥 떠서 신문을 보는, 잊지못할 추억을

간직하고 Masada 국립 공원으로 향했다. ‘산의 요새라는 마사다는 이스라엘 남쪽,

유대 사막 동쪽에 우뚝 솟은 거대한 바위 절벽 위에 자리잡은, 고대 헤롯 대왕의 

별궁이 있는 곳이다.






 

유대인들이 로마에 항거했던 최후의 격전지 마사다에 도착하여, 케이블카로 길이 

600m, 250m의 평평한 정상에 올랐다. 그 곳에는 유대 저항군의 막사, 창고 

등이 발굴되어 복원되어 있었다. 저 아래에는 로마군이 쌓았던 토성과 

로마군 막사의 유적도 보였다.












 

거대한 원기둥을 잘라놓은 듯한 450m 높이의 마사다는, 나무 한 그루 없는 돌산으로

한여름에는 섭씨 43, 화씨 110도가 넘는 땡볕 날씨이다. 가파른 길을 40분 넘게 

계속 걸어 올라가면 죽을 수도 있다하여, 오전 9시 이후에는 걸어 

올라가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헤롯은 건축의 대가로서 예루살렘 성전 증축, 가이사랴 건설, 헤브론 막벨라 굴 건축 

등 수 많은 건축물을 남겼다. 폭정을 일삼던 그는, 유대인들이 자기를 언제든 죽일지 

모른다는 생각에한나절 안에 피할 수 있는 요새 도시를 만들었는데

그 중 하나가 마사다였다.








 

헤롯은 마사다의 천연적인 지형을 이용하여, 빗물을 저장했던 거대한 수조와 3층으로

이루어진 왕궁, 로마식 목욕탕, 곡식 저장고, 군영, 파수대 등을 만들었다. 그러나.

헤롯의 치세 기간 동안에는 마사다를 이용할 만한 큰 사건이 없었다.







로마식 목욕탕




 

이스라엘에 왕이 태어났다는 소문에, 2세 이하 영아 살해 명령을 내린 헤롯이 죽은 후,

70여 년이 지나 1차 유대인 반란이 일어났을 때, 로마의 티투스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불타 없어졌다. 그 때, 기원전 515년 건축되었던 성전은 

서쪽 벽인 통곡의 벽만을 남겨놓고는 모두 사라졌다.

 

이 때, 최후까지 성전에 남아 저항하던 960명의 유대인 열심당 Zealot들은 마사다로 

피신해 로마 항쟁을 계속하였다. 저항의 불씨를 남겨둘 수 없었던 로마는, Flavius 

Silva 장군이 이끄는 최정예 제10군단을 파견하여, 마사다를 함락시키려 했다.





 

로마군은 유대인 포로를 동원하여, 절벽의 경사로를 완만하게 하는 대대적인 토담  

공사를 시작한지 3년 만에, 성벽에 접근하여 유대인들의 바리케이트를 뚫고 진격해 

들어갔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유대인들의 싸늘한 주검 뿐이었다.






 

지도자 엘르아살은 마지막 연설을 통해서, 로마인들에게 항복하지 말고 자유인으로 

죽자고 말했다. 먼저 가장이 자기 가족들을 죽이고, 가장들이 모여 열 사람을 제비 

뽑아, 그들이 나머지 사람들을 죽였다. 마지막 열사람 가운데 다시 한 사람을 

제비 뽑아, 그가 모두 죽이고 자신도 자살하였다.






 

죽음으로 자존심을 지킨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결코 식량이 없어서 죽은 것이 아님을 

보이기 위하여 모든 것을 불살랐지만, 식량 창고는 남겨 두었다. 이러한 최후의 증언은

집단 자살을 피해 살아남은 두 여인과 다섯 명의 어린이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1842년 미국 선교사 Samuel  W Wlcott가 화가와 함께 처음으로 그 곳에 올라갔다.

1963년 부터 2년 동안, 이스라엘 고고학자 Yadin에 의해 고증을 마친 마사다는,

복원 작업과 함께 국립 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기원후 73, 열심당원들이 항전 끝에 전사, 자결한 후, 올라가는 길이 험난하고 

어려워, 마사다는 2천년 동안 거의 사람의 손에 닿지 않았다. 지금도 이스라엘 군인

들은 훈련의 최종 코스로, 이 곳에 올라, “마사다의 비극은 다시는 없을 것이다!”를 

외치며, 조상들의 저항 의식을 고취시키고있다.




 

로마에 패한 유대인들은 이베리아 반도로 이주하였다. 15세기 말 스페인 이사벨 

여왕이 캐톨릭으로의 개종을 거부한 이들을 추방하자, 유대인들은 유럽의 동쪽으로 

이주하였다. 20세기에 독일 나치가 600만명을 학살하는 등, 반유대 정책을 펼치자

유럽에서 미국으로 유대인 디아스포라가 이전, 확장되었다.




 

팔레스타인의 유대인들은, 로마 치하에서 많은 수가 기독교인이 되었다636년 

야르무크 전투에서 신흥 이슬람 제국이 승리하면서, 팔레스타인 지역도 이슬람에 

넘겨지게 되었으며, 많은 이들이 이슬람교로 개종해 오늘날의 팔레스타인인이 되었다.





1516년 오스만 제국의 영토가 된 팔레스타인의 유대교인들은, 기독교와 이슬람 

국가들의 통치하에서도 정착 생활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오랜시간이 흐르며 

대다수의 유대교인들이 이슬람교도로 개종하였고, 문화적으로도 아랍에 동화

되었으며유대인으로써의 정체성을 유지한 이들은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위임 통치령으로 영국이 팔레스타인을 지배하게 되면서, 2차 세계대전 발발 이전

까지 팔레스타인 일대에서는, 유대인과 아랍인들 사이에서 유혈충돌이 계속되었다

UN은 유대인이 많은 지역만 독립시키는 협상안을 내어, 아랍권의 반대 속에서 

팔레스타인 양분안을, 다수결로 통과시켰다.




 

1948년 미국의 도움으로, 이스라엘 건국이 선포되고, 그곳을 지배하던 영국군은 철수

하였다. 지중해 연안의 비옥하고 공업이 발달한 지역은 유대인이, 척박한 사막 지역은 

아랍인이 차지하게 된 결과에,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은 끊임없는 게릴라전으로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국가 GDP 13% 이상을 국방비로 지출하고, 남녀 모두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들은 인구는 10배 이상, 경제력과 양적 군사력은 19배 이상 차이 

나는 아랍 국가들에 대항하여, 불과 수백의 민간인이 로마 최강의 10군단을 상대로 

3년을 싸운, 마사다의 결사 항전 정신으로 나라를 보존하고 있다.

 

 

구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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