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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커트를 입은 남자들, 스코틀랜드
11/01/2017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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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50만의 에딘버러 Edinburgh는 매년 1,300만명이 방문하는 역사적인 곳으로

스코틀랜드의 수도이다. 그 이름은 로마 제국이 기원 후 1세기 경 브리튼 섬을 

지배할 때, 섬의 북동부에 살았던 고도딘족이 세운 요새 딘 에이든 Din Eidyn에서 

유래되었다.




 

7세기경 잉글랜드가 도시를 점령하고 에이든-버르 Eiden-burh에 요새를 구축했다.

10세기에 이르러 스코틀랜드는 도시를 탈환하여 11세기에 에든버러 성을 

축조하였다. 1128년 스코틀랜드의 데이빗 1세가 도시에 홀리루드 궁을 건축하고 

수도로 삼았다.




 

에든버러 성과 홀리루드 궁전을 잇는 로얄마일을 중심으로, 왕이 행차할 때 서민

들이 급히 몸을 낮추고 피했던 클로즈 Close라 불리는 좁은 골목길 구시가지를 

돌아보았다그곳에는 성 자일스 교회와 같은 중세 유적이 많아 

북구의 아테네라 불리운다.





St Giles' Cathedral ?


 

넬슨 모뉴맨트가 있는 Carton Hill에 올라, 북해를 바라다 볼 수 있었다. 그 곳 언덕 

남쪽에는 에든버러 성과 Royal Mile을 중심으로 구시가지가 있고, 북쪽에는 

18-19세기에 조성되어, 근대와 현대가 조화를 이룬 프린시스 스트리트와 

신시가지가 펼쳐져 있었다.








 

로열 마일 윗부분을 따라 좀 가파른 에딘버러 캐슬로 올라가는 길에는, 많은 

예술가들이 거리공연을 하고 있었다. 스코틀랜드 특유의 스커트를 착용한 악사들이 

Bagpipe를 연주하여, 우리가 스코틀랜드에 와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테러 직후여서인지, 가방 검사를 철저하게 한후, 성안으로 입장시켰다. 세개의 철통

같은 성문을 지나자, 마지막 왕이 머물렀던 주거지역에 들어갈 때는 양손을 

벌리면 닿을 정도로 좁게 건물을 배치하여, 마지막 보루를 만들어 놓았다.








 


군사활동의 중심지였던 이 성에는 아직도 주둔 부대가 있었다. 군사박물관에는 

잉글랜드와의 전쟁에서 희생된 14만명의 전몰장병 위패가 모셔져 있었다

그 숫자는 그 당시 스코틀랜드 성인남자의 20%에 달했다고 한다.













잉글랜드는 스코틀랜드 왕위 계승식 때 사용하던 스콘석 Stone of Destiny  

탈취하여 700여년 동안 웨스트민스터 대수도원에 보관하고 있었다.  20여년 전

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그 돌을 이 곳 에딘버러성에 반환하였다.

 

라틴 십자가가 새겨진 이 돌은 무게 152㎏ 가로 66㎝ 세로 41, 높이 28㎝인 직

6면체의 사암이다. 켈트족의 전설에 따르면, 옛날 야곱이 베델에서 돌을 베개 

삼아 누워 자다가 천사들의 환상을 보았는데, 그 때 베개로 삼았던 돌이 

바로 이 돌이라고 한다.





돌이 있는 방은 촬영금지...


 

이 돌은 성지에서 이집트와 시칠리아 및 스페인을 거쳐 BC 700년경 아일랜드에 

도착한 뒤, 고대 아일랜드 왕들이 대관식을 올렸던 타라 산 꼭대기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그후 이 돌은 스코틀랜드를 정복한 켈트족이 

아일랜드에서 스코틀랜드로 가져왔다.







1292년에 스코틀랜드 왕위에 오른 존 드 베일리얼은, 이 옥좌에 앉아 대관식을 올린 

마지막 스코틀랜드 왕이다. 1296년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1세는, 스코틀랜드를 

침략해 스코틀랜드 왕권을 나타내는 다른 표상들과 함께 

이 돌을 런던으로 가져갔다.




 

1307년 에드워드 1세는 이 돌 위에 딱 들어맞도록 특수제작한 대관식용 옥좌를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대수도원에 설치했다. 이 특제 옥좌는 잉글랜드 왕이 

잉글랜드만이 아니라 스코틀랜드의 왕위에도 오르게 됨을 상징하는 

하나의 표상이 되었다.




 

고대에 이 돌에는 예언이 새겨진 금속조각이 붙어 있었다고 하는데, 월터 스콧 경은 

그 예언을 다음과 같이 번역했다. "운명의 여신들이 그릇되지 않고/예언자의 

목소리가 헛되지 않으면/이 신성한 돌이 있는 곳은 어디든/스코틀랜드 

종족이 지배하리라."

 

엘리자베스 1세가 1603년에 자손을 남기지 못하고 죽자,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6세가 

그뒤를 이어 잉글랜드(그레이트브리튼) 왕 제임스 1세가 되었다. 그가 스콘석 

옥좌에서 왕관을 받았을 때 애국적인 스코틀랜드인들은 전설이 

실현되었다고 말했다.




 

아일랜드는 1536년 잉글랜드에 의해 정복되어 아일랜드 왕국의 군주를 잉글랜드 

왕국의 군주가 겸하고 있었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만이 별개의 왕국으로 

분리되어 있었으나, 1707년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가 연합하여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이 되었다.



Holyrood Palace


 

1800년 아일랜드 왕국이 연합되어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 왕국이 되었다.

1922년 남아일랜드가 독립하여 북아일랜드만이 영국에 속하게 됨으로써 현재의

그레이트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 왕국이 형성되었다.



 


로얄 마일을 따라 내려 가, 존 녹스가 종교개혁을 이끌어 낸 세인트 자일러스 성당을 

방문한 후, 아담 스미스 동상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Writer’s Museum을 

찾았으나, -금요일에만 문을 열어, 외관만 찰칵.




 

조식 포함 131불하는 Airth Castle Hotel 방에는 바지 다리미 Trouser Press가 

설치되어 있었다. 한국의 순대와 비슷하게 가축의 내장으로 만든 스코틀랜드 

전통식 Haggis는 본래 맛이 없다는 영국음식에 비하여 먹을만 하였다.

 

 

오른쪽 위에 있는 검정색이 Haggis





영국,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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