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turalwoman
들꽃사랑(naturalwoman)
New York 블로거

Blog Open 08.03.2011

전체     746095
오늘방문     12
오늘댓글     0
오늘 스크랩     0
친구     102 명
Blog News Citizen Reporter
블로그 뉴스 시민 기자
2015 Koreadaily Best Blog
2014 Koreadaily Best Blog
2013 Koreadaily Best Blog

  달력
 
총칼에 짓밟힌 인간의 존엄성
10/24/2014 17:17
조회  9601   |  추천   46   |  스크랩   1
IP 31.xx.xx.231

 

 

 2 세계 대전중,  히틀러는 1941 부터 1945년 까지  유대인 말살 정책 , 

    전 유럽 대륙에 흩어져 살고있는 유대인의  80%  600여만명을 수십개의

    강제 수용소에  분리 수용,  강제 노역 끝에 학살하였습니다.

 

 패전이 임박하자 나치는 모든 수용소의  문서들을 소각하고 증거를 없앴습니다.

      나치가 세운 강제 수용소 중에서 최대 규모이며, 비교적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던,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서쪽  40여마일에 위치한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찾았습니다.

 

 

 

강제 수용소 박물관으로 들어가는 위에는노동이 그대를 자유케 하리라

   문구가 있었습니다. 나치는 열심히 일하면 풀려날 있다고 수용자들을 속여

   그들의 노동을 착취하였습니다.

 

5 동안 110만명이 희생된  강제 수용소 박물관 입구에는 곳에 끌려오기

전까지 행복한 삶을 살았던 희생자들의 사진과 참혹했던 수용소 생활 모습 등을

담은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유럽대륙의 중앙에 위치하여 이송이 편리했고, 인적이 없는 아우슈비츠 벌판에

   수용소를 설립, 유대인들을 강제 수용했습니다. 노르웨이 곳에서 부터 오던

   사람들은  이송 , 살아남은 사람들 보다 죽은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어디로 가는지 조차 모르는 사람들을 강제로 기차에 태우면서, 많은 사람을

    실어 나르기 위하여, 짐은 따로 보내주겠다는  그들의 말에 속은 사람들은,

    나중에 자기들의 가방을 쉽게 알아보려고  커다랗게 이름을 적어 놓았습니다.

 

 

벗어 놓은 가죽 신발들, 특별히 아이들의 신발들을 보면서, 가슴이 내려앉는

    비통함을 느꼈습니다. 곳에서는 웃거나 잡담을 하지 말아 달라는 가이드의

    부탁도 있었지만, 우리 모두는 침울해져 서로 아무 말도  없었습니다.

 

 

수용자들의 머리카락을 잘라 카펫과 가발을 만들어 놓은 전시장에서는 사진도 찍지 못하게 했습니다.

 인간이 이렇게 까지 잔혹할 있었는지, 너무 기가 막혀 숨이 멎을 같았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이 총칼앞에 무참히 짓밟히는 상상하기 조차 끔찍한 장면이었습니다.

 

 

좁은 시멘트 바닥에 담요 한장씩 깔고 다닥 붙어 누울 밖에 없는 숙소와, 그나마

    부족할 시에는  밀짚을 깔고 자기도 했던 방을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신분이 높은 자들은 이층으로 벙커베드를 사용하기도 했었습니다.

 

 

하루 한끼 정도의 적은 식사와  강제 노역에 시달리며,  영양실조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고, 병들거나 쇠약해져 이상 쓸모가 없는사람들은  샤워실로 위장된

      개스실로 끌려갔습니다.

 

 

 

목욕을 하라고 비누를 나누어 주며 그들을  안심시켜  개스실에 가두고,

    독가스통을 방안에 터트려 죽였다고 합니다.

 

 

 

여자 유대인들을 속에서 생매장을 하거나 빨리 태우기 위하여 옷을 벗게 하고,

불에 태워 죽이는 장면을 멀리서 누군가가 카메라에 담았던 사진,

 

너무 멀고 스냅으로 숨어 찍은 사진이기에  흐릿하긴 하지만, 벗은 여자들의  모습을 

확대한  사진은 포스팅 부분 포토 슬라이드에 담았습니다.

 

 

희생자들의 영정 사진은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복도의 분위기만 담아 보았습니다.

이러한 나치 만행이 독일 역사 교과서에는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고 합니다.

2차 대전중의 모든 만행을 부인하는 일본과는 매우 대조적이었습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강제 노역을 하다가, 수용된지 대략 11개월 만에 총살 당했던

바로 그 자리에 후손들이 꽃과 초로 죽은 영혼들을 달래고 있었습니다.

많은 유대인 후손들과 독일 학생들도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폭동을 우려했던 수용소측은 다른 유대인들이 총살 시키는 장면을 볼 수 없도록,

바로 옆 수용소 건물의 창문들은 모두 막아 버렸습니다.

 

 

 

이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 수용된 130여만명 중 110만명 정도가 유대인이었고,

그 외에 폴란드인, 소련군 포로, 짚시 등 소수 그룹등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또 다시 이런 일을 겪게 될 것이다.'

 

견딜만한 일에도 불평하고 원망했던 부끄러운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면서,

항상 기뻐하고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며, 이 지구촌의 모든 사람들이

더불어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폴란드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서

시민 기자 들꽃 사랑이었습니다.

 



폴란드,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나치 히틀러, 유태인
이 블로그의 인기글

총칼에 짓밟힌 인간의 존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