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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마추픽추에 입성하다 - 페루
04/09/2013 13:15
조회  9126   |  추천   20   |  스크랩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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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추픽추에 가장 멋지게  입성하는 방법은 잉카 트레일 트래킹으로  잉카인들이

         가던 길을 따라 쿠스코에서 마추픽추까지 3 4일동안 여행하는 것이다.

 

             년간 방문객수가 50만명을 넘자 페루 정부는  여행객의 안전등을 고려하여

         반드시 자격증있는 가이드와 함께  투어 하게 하였다.

 

             승합차도 타고,  걷기도 하며,  자전거도 빌려 타고,  야외 온천에서 온천욕도 하며

        그 옛날 잉카인들이 성지 순례하던 마음으로, 과거로의 여행을   있는....

 



                                                                                                                               구글에서


 

 

        하루에 잉카 트레일을 있는 사람 수가 정해져 있어 미리 예약해야 한다.

          많은  여행객들은 보다는 편한 방법으로 쿠스코에서 기차를 타고  4시간 걸려

         마추픽추역에 도착, 버스로  30 올라가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구글에서
 

              우리는 우르밤바에서 일박, 버스로 오얀따이담보역까지 30 이동,

              기차로 한시간 걸려 마추픽추역 아쿠아 칼리엔테에 도착,

         다시 버스로 30 비포장 비탈길을 열세번 정도 지그재그로 올라가

         매표소에서 여권을 제시하고 입장권을 다음,

 

 


           가파른 언덕길을 구불 구불 10여분을 걸어 올라가, 숨이 턱에 닿을 때쯤,

        눈을 감고도 올릴 있을 만큼, 사진으로 수없이 많이 보아왔던,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풍경 속으로 빠져들었다

 

        드디어 곳까지 우리가 왔다는 사실이, 바로 앞에 보고 있으면서도

        믿기지 않는 순간이었다.

 

          


            

             아래 보이는  높은 산봉우리는 늙은 봉우리라는 뜻의 마추픽추 ...

         그 아래, 콜카라 부르는 잉카 시대 식량 창고 골조들이 보인다.

              

              9 황제 파차쿠티는 전쟁으로 식량을 확보하기 보다는 계단식밭을

             많이 만들고 농사법을 개량하여   백성들을 부유하게 만들었다.

               

             세금으로 거두어 들인 식량을, 4 km 달하는 잉카트레일 곳곳에 있는

         콜카에 보관하였다.

 

      

 

           .

              신전, 궁전등 석조 건물 공사와 도로 공사에 동원된  인부들에게 보관된 식량을 

              임금으로 지불하고, 흉년이 들었을 때에는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기도하며, 

              이웃 부족들에게도 교역의 형식으로 식량을 제공하였다고한다.

 

               

              파차쿠티의 이러한 베품과 나눔의 슬기로운 정책으로 주위 부족들이 자연스럽게

              잉카제국의 지배를 받아들여 불과 몇십년만에  잉카 제국은 80여개의 속국을

          거느리게 되었으며,  남북으로 4km, 인구 천만의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마추픽추와 능선으로 잇대어  마주보고 있는   산봉우리는 

           젊은 봉우리 라는 뜻의  와니아픽추... 

 

          올라가는 길이 가파르고 험해도, 콘돌이 날개를 펴고 힘차게 나르는 모습으로

      건설된 마추픽추를 한눈에 내려다 있는 곳...

 


 

 

 

         곳에 가기 위해서는 새벽에   마추픽추 입구에서  줄을 서서  400명안에

         들어야만 올라갈 있다.

             오전 7시에 200, 오전 9시에 200명에게만 입장이 허락된다.

      

         

 

 

       

        아침 10 부터 오후 1시반까지 발품으로  해발 2,200미터에서 2,600미터에 걸쳐 

            산등성이에 콘돌 모양으로 펼쳐져 있는 5.5 제곱킬로미터의 마추픽추를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돌아보았다.

 

 

 

      

        예일대 고고학 교수이며  역사학자인 하이람 빙햄(Hiram Bingham 1875 – 1956),

        잉카제국의 수도였던 쿠스코가  스페인군에 의해  점령되자 깊은 산속으로 후퇴하여

        마지막 수도로 세웠다는 빌카밤바를 찾던    1911 곳을  발견, 

        마추픽추는 400년만에 잠에서 깨어난 것이다.

 


 

 

        

           안데스 고산지대에서 살아온 원주민들은 희박한 산소량 때문에 심장이 크고

           키가 작은 것이 특징이다.

 

           페루 정부는 해발 2,500미터 이상에서는 축구 경기를 하지 못하도록

          법령으로 정해 놓았지만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훨씬 높은 지역에서도 신나게  축구놀이를...



 


 

      이 생에서 고된 삶을 살았던 잉카인들이  장례를 치루었던 바위...

 

         하늘의 콘돌과 땅의 푸마와 지하의 뱀을 숭배했던 그들은

         마지막으로 바위에서 그들의 신인  태양과  마추픽추 그리고 와이나픽추등

         주위의 신령한  안데스 산봉우리들을 바라보며 행복하게 숨을 거두었다고한다.

 


 


 

          페루의 원주민들은 공용어인 스페인어 보다 잉카의 말인 케추아어를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스페인어가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마추픽추와 와이나픽추 사이의 능선에   일천명정도 거주할 있도록

          지어졌던 공중도시를 우리는 그냥   마추픽추라 부른다.     


 



 

           멀리 양수 발전소가 보인다. 강에서 물을 끌어 올려 다시 물을 떨어뜨려

       전기를 만들어 인근 주민들 한테 공급하고 있다고한다.   

 

 


 

      풀로 엮어 만든 지붕의 들보가  비바람에 날라가지 않도록  건물 몸체에  단단히

         묶어 놓을   있도록 돌로 깍아 박아 놓은 말뚝...


 


 

       

          

 

       

 

             태양의 신전(Templo del Sol) 거대한 암석 바위 위에 주변의 경치를 건축의

        일부로 삼아 자연 경관과 어우러지게 만들었다.

 

         달력이 없었던 시절, 황제는 태양신전의 창문으로 가장 빛이 길게

         들어올 때를 하지, 가장 짧게 들어올 때를 동지로 구분,

             백성들에게 농작물 파종 시기를  알려 주었다고 한다.

          
 

 

           

            아래 부분에는 자연 동굴을 이용, 입구의  돌을  깎아  동굴을 확장, 돌을 깎아

        벽감을 만들어 장식, 자연적인 돌덩이에 계단 형태의 모양을,  오른쪽 공간에는 

            모래시계 형태의 독특한  상감을  박아 넣었다.

 

            사당은  땅의 어머니인, 파차마마를 모신 곳이며 왕족의 미라를 보관하던 곳...


 

 

 

         어쩌면 잉카의 황제들은 지형이 험준하고 광활한 제국을 일사분란하게

         통치하기 위하여 문자도 만들지 않고 모든 정보를 독점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구름이 끼거나 비가 올때에는 해가 뜨는 동쪽을 분간할 없기 때문에

          동서 남북을 가리키는 정확한 방위석을 설치, 동쪽에 제사를 올릴 있도록...


 

 

 

         제일 높은 곳에는   모서리가  동서남북을 가리키는 해시계(Intihuatana) 모양의

         제단이 있다.  춘분과 추분에 태양이 정확히 위에 떠서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다.

       

          잉카인들은 상징적으로  태양을 기둥에 묶어 놓는 의식을  통해,

          하지나 동지때 태양이 너무 가까이 혹은 멀리 가지 못하게 한다고 믿었다.

 

       

 

 

            황제는 이런 의식을 거행,  스스로가 태양의 아들임을 백성들에게 과시,

        자신의 권위를 확고하게했다.

 

       그들은 태양을 숭배하고 태양의 그림자에 삶의 속도를 맞추어 살았던 것같다 .


             

           

             50도의 가파른  능선 위에  무거운 돌로 지어진 신전과 주거지가  무너져 내리지

          않도록 축대를 쌓고 폭우에도 빗물이 빠져 나갈 있도록 배수로를 만들었으며,

 

            사이사이에 계단식밭(Andenes) 수로를 만들어 식량과 제례용 작물을

          자급자족하는  완벽한 도시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아래에서는 보이지않는 마추픽추, 무엇이 잉카인들로 하여금 이렇게 까맣게

             높은 곳에 그들의  보금자리를 만들게했을까?

 

              도시를 불태워 버리고 사라져버린 잉카인들은 어디에 숨어버린 것인가.

 



 

             문자가 없어 기록된 것이 없기에 구전되어 이야기에 의존하다 보니 

             여러가지 학설이 분분하다.

 

              공중 도시가 , 언제 ,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정확하게 밝혀진바가 없지만,

             잉카인들이 스페인 정복자를 피해 숨어 살다 홀연히 사라진 잉카인들의

         마지막 도시라는 설이 제일 유력하다.


 


 

         맷돌 처럼 보이기도 하고 물을 담아 놓으면 거울처럼 보이기도 하며, 

             밤에 비치는 별을 보고 천문을 관측하기도 하였을 것같은 조형물은

          정확한  용도는 길이 없다.

 
 


 

            콘돌을 신으로 섬겼던 잉카인들은 마추픽추를 콘돌의 비상하는 모습으로

            조성하고 여기에  콘돌신전을  만들어 놓았다. 희생 제물의 피를 콘돌의

            부리부분에 뿌려 콘돌에게 제사를 지냈다.

 


 


 

            인간의 높이 땅에서는 없는, 하늘의 맞닿은 듯한 공중 도시에

            잉카인들은 이층 구조의 건물도 지었다.

       

           사진에 보이는 석가래 위에 널판지를 깔면 훌륭한 이층맨션으로 변한다.

           옆으로는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보인다.


 


 


 

           마추픽추 절벽 샘에서 흘러 나오는 물은 잉카인들이 정교하게 만든 수로를 통해

           제일 먼저  750미터 떨어진 파차쿠티 황제의 개인 급수대로 떨어진다.

 

           황제가 사용하고 남은 물은  마추픽추의 전지역과  계단식밭에 분당 150리터의

        일정한 속도로 한방울의 누수도 없이 아주 효율적으로 흘러간다.

 

          물을 신성시 했던 잉카인들에게 파차쿠티 황제는 물의 분배를 통해

           신과 같은 힘을 과시하였다고 한다.


 



 

          

             1983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된 마추픽추는 유네스코로 부터 지원도

             받지만 간섭도 받게된다.

       

            기반암이 없이 흙위에 세워진 대신전의 동쪽벽  바깥쪽의 흙이 쓸려 내려가면서

            지반에 영향을 주어 신전의 일부분이 무너지고 있다고 판단,

            많은 사람들의 방문에 의하여 훼손될 가능성이 높다하여 

            하루에 2,500명으로  입장 인원을 제한하고 있다.


 

            페루 정부는 마추픽추를 통하여 일년에  6억불 이상을 벌어들이고 있는데,

            유네스코에서 입장인원을 제한하는 바람에 난감

     


 

                                                                                                                     동영상에서

   

             1438  창카족이 쳐들어왔을 , 아버지 황제는 도주하였지만, 

             왕자는 이길 없었던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다음 

             아버지를 폐위 시키고  9 황제에 오른다.

         


 

 

 

             그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신의 반열에 오르기 위하여 신성한 도시 마추픽추를

        건설하고, 쿠스코를 수도로 정하여 세계의 여행가들의 로망이 되고 있는

        지금의 쿠스코 유적들과 많은 훌륭한 석재 건축물들을 남겼다.

 


              

              

            주위의 부족들을 차례로 정복한 그는 남미의 알렉산더 대왕이라 불릴만큼

       강력한 제국을 건설, 이후 100 동안 잉카의 황금시대를 열었다.

 

           

 

     

       땅의 개혁가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파차쿠티 황제와 잉카인들의 돌을 다루는

       천재성은 마추픽추와 함께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질곡의 삶을 살았던 잉카인들의 , 지금은  세계의 여행자들이  꿈꾸는 이상향이 되었다.

      잉카인들이  남긴 발자취를 따라 걸으며 길고 시간의 강을 넘어

옛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 안에 품고있는 세계의  지평은 안데스의 산맥만큼 넓어지고 깊어졌다.

     

     곳을 방문한 많은 남미의 젊은이들이, 잉카의 부활을  꿈꾸며 세상으로 내려가, 

     남미의 자유와 평등을 위하여 헌신하였듯이, 우리도 세상에 내려가면 먼저

 

   우리 삶의 자세를  바꾸어,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 가기 위하여,

  의미있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본다.

 

 

 
 

            

태양의 신을 섬겼던 잉카인들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연구를 하던 학자들이

저밑에 보이는 우르밤바강에 뗏목을 띄워 어디로 흘러가는지 관찰해 결과

뗏목은 바다의 해류를 따라 흘러 이집트 앞바다에 도달하였다고 한다.

이집트의 태양신이 잉카의 태양신과 무슨 연관이 있지 않나?

 

 

 
 
 








마추픽추,잉카 제국,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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