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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생미쉘, 사진 작가들의 로망 Mont-Saint-Michel
08/31/2018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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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베르니에서 260 km를 달려, 노르망디 해안에 있는 몽생미쉘 Mont-Saint-

Michel 찾았다. 꿈 속에서 이곳에 수도원을 세우라는 미카엘 대 천사의 계시에 

따라아브랑슈의 주교 성 오베르 St Aubert708년 몽생미쉘을 세웠다.




 

966, 정상에 세워진 베네딕투스 대수도원은, 개축을 거듭하여 16세기에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래서 내부는 기둥으로 건물을 지탱하는 로마네스크

양식과, 벽으로 건물을 지탱하는 중세의 고딕 건축 양식이 혼합되어 있다.







 

1층은 창고와 순례자 숙박소, 2층은 기사의 방과 귀족실, 1211년 증축된 3층은

수사들의 대식당과 회랑으로 사용되었다. 많은 사도들이 성지 순례지가 되었던

이 곳 마을은, 10세기 때 베네딕트 교인들이 정착하면서 커지기 시작했다.






 


수도원이라기 보다는 성 처럼 느껴지는 견고한 외관은, 백년 전쟁 때 영국군의

총공격을 막아낸 난공불락의 요새로 민족 정체성의 상징이 되었다. 수도원은

프랑스 대혁명으로 해산되었고, 나폴레옹 시절 부터 1863년 까지 감옥으로

사용되다가, 1874년 사적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만조일 때 섬이 되는 이 곳을 육지와 연결해 주는 900m의 뚝길을 따라, 트램으로

10분 정도 섬 앞 까지 가서 성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멀리서 볼 때 아름답게만

보였던 성채가 한걸음씩 다가설 때 마다 웅장한 모습으로 변해 왔다. 









 

좁고 가파른 길에 오밀조밀 들어선 상점들을 지나, 숨을 고르며 천천히 걸어 올라가

30여분 만에 섬 꼭대기의 수도원에 도착하였다. 천사장 미카엘의 금동상이 높이

솟아있는 거대한 수도원 안을 돌아보려면 별도의 입장료 10유로를 내야한다.











 


바위 위에 세워졌다는 흔적...






성벽 쪽으로 내려와, 노르만디 평야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에서 몽생미쉘만을 바라

보았다. 저 멀리 갯벌 위에서 몽생미쉘의 숨막히는 비경과 성스러운 낭만을 제대로

즐기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들이 조그맣게 다가왔다.









 

트램을 타고 나와, 몽셀미쉘 공영 주차장 가까이에 있는 식당으로 갔다. 섬 안에서

이 곳의 전통 요리 오믈렛 만드는 모습도 보며, 맛을 즐겨볼까 했으나, 주문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몽생미쉘이 정면으로 보이는 이 곳에서, 거품

계란 형태의 오믈렛으로 점심식사를 하였다.  










 

1944 6 6, 이 곳에서 140km 북쪽에 있는 세르부르항 Cherbourg 근처에서,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노르망디 상륙 작전이 벌어졌다. 상륙에 성공한

아이젠 하워 장군의 연합군은, 세르부르항을 점령하고, 프랑스로 진격하였다.









프랑스 드골 장군이 지휘하는 레지스탕스의 활약으로 파리에 큰 피해없이 입성한

연합군은 유럽을 나치에서 해방시켰다. 이 노르망디는 국가주의로  개인의 삶을

파괴하려했던 제 3 제국을 패망시키고, 번영을 이룬 유럽의 한 역사적 장소이다.  




 


윌리엄 정복왕 William the Conqueror (1028-1087), 노르망디 공국을 통치하던

영국 출신 로베르 1세와 첩 사이에서 태어났다. 1035년 예루살렘 순례길에서

아버지가 죽자, 그는 프랑스왕 앙리 1세로부터 노르망디 공작 지위를 받았다.




 

어린 윌리엄은 후견인들이 피살되고, 아버지의 친척들도 도움이 안되는 상황에서

어머니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초기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의지력이 강해졌고 무법 행위와 실정을 혐오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104215세가 된 윌리엄은 기사 작위를 받고 공국을 다스렸다. 10여년 동안

주로 친척들에 의해 주도된 여러 반란을 진압한 그는, 1047년 프랑스왕 앙리와

함께 반란 세력들을 완전 격파하면서, 싸우는 법과 다스리는 법을 배웠다.




 

첩의 아들로 태어나, 서자왕이라 불렸던 윌리엄은 열정적인 군인으로, 전제적인

성격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였다. 교육을 받지 못해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총명하고 빈틈이 없었으며 이내 경쟁자들의 존경을 받았다.




 

1066, 영국 왕족으로,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은 왕위 계승권을 주장하며 영국을

공격한다. 도버 해협을 건너 헤이스팅스에서 전투를 벌린 그는 해럴드왕을 꺽고

잉글랜드의 새로운 국왕으로 등극하여, 노르만 왕조를 창건하였다.

 

 






프랑스 일주, 몽생미쉘, 노르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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