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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곡의 벽 아래에서 발견된 히스기야 수갱 - 예루살렘
08/04/2018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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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에게는 약속의 땅이며, 기독교인에게는 메시아가 나타난 구원의 땅 이스라엘의

에루살렘을 찾았다. 무슬림에게는 메카, 메디나와 함께 이슬람 3대 성지인 예루살렘은

이스라엘과 주변 아랍 국가들 사이에서 폭탄의 뇌관과 같은 곳이다.





1948년 아랍-이스라엘 전쟁 결과, 요르단이 동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이 서예루살렘

지역을 점령, 분할 통치하게 되었다. 1967년 예루살렘을 점령한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을 분할할 수 없는 영구적인 수도라 주장하고 있다.






감람산에 올라,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구시가지의 예루살렘 성전을 내려다 보았다.

그 안에는 무슬림 성소인 황금돔과 알아크사 모스크도 보였다. 감람산 아래 통곡의

벽까지 이어지는 산자락 공동묘지에는 메시야가 오실때, 죽은자들도 함께 부활한다는,

성경 말씀에 수 많은 신도들이 그날을 기다리며 잠들어 있었다.




 


201712 6, 트럼프 대통령이 텔아비브에 있는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긴다고 발표한 날 아침, 예루살렘 투어를 하였다. 무슬림 성지를 사실상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는 이 조치에, 아랍계의 테러를 우려한 이스라엘은 무장한 군인들을

골목마다 배치하여, 삼엄한 경계를 펼치고 있었다.






 

100세가 된 아내 사라로 부터 얻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이삭을 올려 놓았던 바위가 있는 이 곳은, 유대교의 성지가 되었다.

무슬림들은 그 바위 위에서 마호멧이 백마를 타고 하늘로 승천하였다 하여

그 곳에 사원을 짓고 500kg의 황금으로 황금돔을 만들었다.








지금의 예루살렘성은, 처음 솔로몬이 지었던 성전이 무너진 후, 헤롯왕에 의해 

네번째로 재건된 성전이다. 70년 로마의 티토스 장군이 이 성전을 완전히 파괴

하였으나, 서쪽 통곡의 벽 Western Wall은 지금까지 남아 유대인들의 

기도처가 되었다.






 

높이 19m, 길이 488m의 성벽 아래에서, 유대인들은 성전의 폐허를 슬퍼하며, 통곡하는 

마음으로 온 몸을 흔들며 기도를 한다. 기도 제목을 적어 성벽 틈새에 꽂아 놓으면

계속해서 기도하고 있다는 상징이 되어, 벽 틈새에는 수많은 기도 메모지들이 

눈에 띄었다.



남성과 여성들의 기도처가 나뉘어 있다.


 

유다 베들레헴 이새의 막내 아들인 다윗은, 이스라엘 초대왕 사울의 궁전 악사로

사울의 아들 조나단과 절친으로 지내며, 7명의 형들과 함께 사울왕가에 충성을 

다했다. 3m 전설적인 블레셋 거인 골리앗과의 전투 승리로 훗날 그는

사울왕의 사위가 되었다.




 

점점 백성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다윗에게 두려움을 느낀 사울왕은, 그를 죽이기로

작정한다. 사울에게 쫓겨 다닐 때에도, 저변층의 서민들과 동고동락하며, 민심을

얻은 다윗은, 사울이 전쟁에서 죽은 후, 2대 왕이 되었다.








평평한 지붕을 생활 공간으로 사용했던 이 곳 윗 집에서 아랫집 사생활을 보게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다윗왕이 왕궁에서 아랫쪽을 내려다보다, 옥상에서 목욕하고

있는 밧세바의 아름다운 모습에 반하여, 그녀를 궁으로 불러들여 동침하고 집으로

돌려 보냈다. (사무엘하 11)








다윗은 충성스러운 장수였던 그녀의 남편 우리아를, 최전선으로 보내 전투 중 

죽게하고밧세바를 부인으로 맞이하였다. 첫 아이가 태어난 후, 나단 선지자가 

찾아와 그의 잘못을 지적하자, 다윗은 바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그 아이는 여호아의 징벌로 죽고밧세바가 두번째로 낳은 솔로몬은 훗날 

이스라엘 최고의 지혜로운 왕이 되었다.




 

하나님은 이 밧세바 사건에 대한 교훈으로 사무엘하 12 11절에서 내가 네 처들을

네 눈 앞에서 다른 사람에게 주리니 그 사람이 네 처들로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라는 예언을 주셨다. 그 후, 사무엘하 16 22절에서 아들 압살롬이 이스라엘 무리들

앞에서 옥상에 장막을 치고, 아버지의 후궁들을 욕보이는 패륜의 역사로 남았다.





다윗은, 아들 압살롬의 반역이 극심해지자, 다윗성에서 전투를 벌리면 많은 백성이

다칠 것을 염려하여, 이 기드온 Kidron 계곡을 지나, 감람산을 넘어 요르단으로 피신

하였다. 성경 말씀이 그림 처럼 그려지는 골짜기의 가파른 내리막길로 내려가

히스기아 터널 Hezekiah’s Tunnel을 찾았다.






 

기원전 701년 히스기아왕은 아시리아의 침공을 대비해, 기혼샘에서 실로암을 연결하는

533m의 수로 공사를 하였다. 이 터널은 윗쪽 기혼의 샘 물줄기를 막고, 땅 속에 굴을

뚫어서 그 물줄기 한쪽을 기드온 골짜기 아래 까지 흐르게 하여, 성 밖 백성들이 

마시게 하고, 또 다른 쪽은 성 안으로 둘러쳐서 성 안에 물을 공급하고, 실로암 까지 

흘러가도록 하였다. (역대하 32:30)










 

변변한 도구가 없던 시절, 그들은 정과 망치로 바위를 뚫어 지하수로를 만들었다

어느 구간은 지상에 있는 왕의 묘지나 구조물을 피해 갑자기 방향이 틀어진 곳도 

있었고 사람이 겨우 통과할 만큼 아주 좁아 으시시한 기분이 들기도 하였다.







히스기아 수갱 끝자락에 있는 실로암 유적터를 찾았다. 예수께서는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맹인의 눈에 바르고, 그에게 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으라 하시며, 치유의

기적을 행하셨다. 그 눈먼 사람이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요한복음 9:6)








다윗이 기초를 놓고, 아들 솔로몬이 완성하여 다윗성, 솔로몬성이라 부르는 예루살렘

성을 사수하려 했던 이스라엘 민족의 신앙과 나라 사랑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그들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쾌적하고 편리한 인프라를 구축하여, 그들의 문화

유산을 전 세계에 열심히 알리고 있었다.

 

 










이스라엘, 예루살렘, 다윗성, 히스기야 수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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