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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4) 파리의 상징 개선문과 에펠탑 Arc de Triomphe, Eiffel Tower
07/01/2018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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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댕 미술관에서 나와, 택시를 타고 개선문 앞에서 내려, 지하도를 이용하여 방사형 

도로의 정점인 샤를 드 골 광장 Place Charles de Gaulle 안으로 들어갔다. 택시비 

15유로일인당 4유로 미만의 비용으로 시간을 벌고, 체력 소모도 줄일 수 있었다.




 




둥그런 원으로 둘러 싸인 개선문은 1923년 부터 불꽃이 타오르고 있는, 1차 세계 

대전의 무명 용사 추모비와 나폴레옹1세를 상징하는 독수리 문장, 드 골 장군의 

포고문 등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올라가는 길과 내려오는 길이 다른 계단을 따라,

개선문 위로 올라갔다.





300개 나선형 계단을 빙글빙글 돌아다리의 힘이 풀리고 어지러움이 조금 느껴질 

무렵 거대한 직사각형 방에 도착하였다한쪽 벽에 승리와 영광을 상징하는 

수십가지 월계관들이 걸려있는 전시실에는, 시대별로 군복과 훈장들을 진열하여, 

이 곳이 프랑스의 Arc de Triomphe 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다시 계단을 올라, 옥상 전망대에 섰다. 샹젤리제 거리를 비롯한 12개의 도로가 

Etoile 처럼 펼쳐져 있는 파리의 비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저 멀리 신도시 

라데팡스에 건물을 커다란 문 처럼 지은 신개선문도 보였다. 40년 전 출장 

길에 처음 이 곳에 혼자 올라 느꼈던 감동이 살아난 듯 하였다.








 


에펠탑과 함께 파리의 상징인 개선문 Arc de Triomphe 1806년 나폴레옹 1세가

프랑스의 전쟁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다. 나폴레옹의 공적을 새긴 10개의

부조가 조각된 높이 50m, 너비 45m의 크기로, 30여년 동안 제작되었다.






나폴레옹은 개선문의 완성을 보지 못한 채, 위암으로 생을 마감하였다. 1840년 나폴

레옹 1세의 유해가 옮겨질 때, 1885년 빅토르 위고가 사망하였을 때, 1944년 샤를 

드골 장군이 2차 세계 대전 승리 후 파리에 입성하였을 때, 이 문을 통과하였다.

 

파리에는 전망대가 있는 에투알 개선문 Arc de Triomphe이 가장 유명하다. 그 외에도

루블 박물관 앞에 있는 까루젤 Carouselle 개선문과 라데팡스에 있는 신개선문 등

3개의 개선문이 있다.



까루젤 개선문


 

개선문에서 에펠탑 쪽으로 가기 위해, 택시로 샤이요 궁전으로 이동하였다. 생각보다

빨리 잡힌 택시에 올라, 사이오에 가자하니 기사가 알아듣지 못한다. 앞좌석에 앉은

패트릭이 손가락을 접어가며, 4 2 5를 보여주어도 멍하는 표정이다.

 

에펠탑 뷰포인트로 가자하니 그때서야 !, 샤이요 팰리스하며 핸들을 꺽는다. 디테일

리스트를 복사해 놓고 그냥 집에 두고 오는 바람에, 포르투갈 혁명일을 기념하여

건축된 리스본의 ‘4.25 다리로 이곳을 기억해 둔것이 착각을 일으킨 것이다.



 


한국말을 모르는 파리지앵을 상대로, 한국말로 사 이 오하며 코메디 아닌 코메디를 

벌린 것이다. 택시 기사가 비슷한 발음과 눈치로 알아들어,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우리는 그 일로 여행 중 서로 눈이 마주칠 때 마다 웃었다.

 

샤이요 궁전 앞 뜰에는, 수많은 관광객이 인증사진을 찍고 있었다. 324m, 81층 높이의

철탑을 제대로 사진에 담으려면, 반드시 이 언덕을 찾아야 한다. 에펠탑을 향하여

1km 쯤 걸어 내려가면서, 점점 커지는 그 위용에 압도되었다.




 

에펠탑은 알렉상드르 에펠 Alexandre G.Eiffel (1832-1923)에 의해 1887년에 시공하여,

프랑스 대혁명 200주년 기념에 맞추어 1889년에 완공되었다. 이탑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았던 워싱턴 모뉴먼트보다 두배나 높게 지어지느라 160만불이 소요되었다.

 

파리의 경관을 해친다는 반대 의견을 수렴하여, 20년 뒤에 철거할 계획으로 완공된

에펠탑은 마침 그 당시 발명된 무선 전신 안테나로 요긴하게 사용되면서, 철거 

위기를 면했다. 그러나, 1944 8월 히틀러가 파리를 불태워 버리라는 명령을 내려

다시 사라질 운명을 맞이하였다.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를 확인하는 히틀러의 전화가 불이 나게 걸려왔지만, 예술을

사랑한 점령군 사령관 Choltitz 장군은 전화를 받지 않은채, 항명으로 일관하였다.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 많은 동료 장군들이 사형을 받았으나, 그는 파리와

에펠탑을 지켜낸 공을 인정받아, 3년형을 언도받았다.

 

1966년 바덴바덴에서 72세로 생을 마감한 그의 장례식에 많은 프랑스 장군들이 참석

하여 그의 마지막 길을 위로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살아남아, 이제 파리의 랜드마크가 

된 에펠탑은, 매년 700만명이 찾는 세계 최고의 관광 명소가 되었다.






에펠탑에서 내려다 본...2014 



에펠탑 바로 아래 까지 걸어 내려가, 수백만개의 금속 조각으로 조립한 정교한 철탑을 

감상하였다. 2014년 가을, 많은 사람들 틈에 끼어 장시간 기다림 끝에 힘들게 올라간

기억 때문에, 25유로하는 에펠탑 등정은 생략하고, 세느강 야경 크루즈가 출발하는

바토 무슈 Bateaux Mouches 선착장이 있는 Port de la Conference로 갔다.




 

점심은 시내 관광 중에 맥도널드에서 간단히 해결하였기에, 저녁식사는 에펠탑 

등정이 생략되어 생긴 시간 여유로, 선착장 근처 파리 전통 식당에서 느긋하게 

할 수 있었다식사비용은 일인당 15유로 정도 

 

알마 다리 아래에 있는 바토 무슈 선착장에서 승객 대부분이 한국, 중국 사람들인

유람선에 올랐다. 뮤지엄 패스에 포함되지 않아, 일인당 14유로의 티켓이 필요했으나,

패트릭, 정미 커플이, 인터넷으로 Chase Credit Card 포인트를 이용하여, 감사하게도

우리 것까지 미리 준비해와, 4년 전 단체 투어에 이어 두번째 크루즈를 할 수 있었다.




 

선착장을 출발한 유람선은 콩코르드, 카루젤 다리 밑을 지나 루브르 박물관과 

파리 시청을 보여주었다. 노트르담 성당이 있는 시테섬을 한바퀴 돈 다음1606년 

돌로 건축된 다리로,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퐁네프 다리 밑을 지나 오르쉐 

미술관 앞을 지나, 한시간여 만에 출발 지점으로 돌아왔다.








 

파리는 홍콩이나. 부다페스트와는 달리, 건물에서 나오는 빛이 거의 없어, 유람선의 

조명으로 야경을 보도록 되어있다. 좀 약한 빛으로 지루해질 무렵, 이 크루즈의 

백미로, 화려한 조명을 발산하는 에펠탑을 만났다. 







새벽 1시 까지 (여름에는 2시) 매시간 처음 5분간, 2만개의 전구가 빤짝거리는 섬광과 

함께 레이져 쇼를 벌리는 그 앞에서  모두들 함성을 지르며, 인증 사진을 찍었다.





크루즈에서 내리지마자, 빠른 걸음으로 큰 길에 올라, 택시를 쉽게 잡을 수 있었다. 

호텔로 돌아와 사진 정리를 하며, 위트 넘치는 패트릭이 아니면 결코 연출될 수

없었던 샤이요가 떠올라, 또 한바탕 유쾌하게 웃을 수 있었다. 




프랑스여행, 파리, 개선문, 에펠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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