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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3) 뜨거운 사랑이 남긴 잔인한 조각 - 로댕미술관
06/11/2018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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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쉐 미술관에서 1km 거리의 로댕 미술관 Musee Rodin을 찾았다. 1919

박물관이 된 이집은, 오귀스트 로댕 Auguste Rodin(1840-1917)이 죽을 때 까지

작품 활동을 하도록 프랑스 정부가 매입하여 지원해 준 곳이다.




 

로댕은 국가 소유의 아파트와 작업실을 사용한 대가로 그의 작품을 국가에 헌납

했다. 그때 헌납한 작품들과 르느와르, 모네, 고흐의 작품 일부도 전시되어 있는

그리 크지 않은 전시관에서, 아늑한 느낌을 받으며 관람할 수 있었다.






 

2일에 48유로하는 뮤지엄 패스로 돌아본 로댕 미술관은 그 건물 자체가 예술이었다

정원 한가운데 있는 로댕의 대표작 생각하는 사람을 감상하기 위해 끊임없이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며,  이성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을 느낄 수 있었다.




 


생각하는 사람 The Thinker’ 은 지옥의 문 시리즈 중 첫 번째로 제작되었다. 지옥의

문 중앙에 있는 인물로, 지옥에 자신의 몸을 던지기 전에 아래를 내려다 보며

심각하게 고뇌에 빠져 있는 인간의 내면 세계를 표현한 작품이다.




 

1880년에 작게 만들었던 첫 작품이, 1904년에 대형의 석고상으로 확대 제작되었다. 

1906년에는, 브론즈로 다시 제작해서 파리의 팡테옹 앞에 설치되었다가, 

로댕이 죽은 후 로댕 미술관으로 옮겨왔다.






파리 장식 미술관의 청동문 제작을 의뢰받은 로뎅은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얻어 

지옥의 문 The Gates of Hell을 만들었다. 그러나 약속한 1884년을 지키지 못하고, 

죽을 때 까지도 완성하지 못한 작품으로, 인간의 사랑과 고통, 죽음을 보여준다.





칼레의 시민 The Burghers of Calais, 1889’은 영국에게 포위당한 칼레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여섯 명의 시민들을 기억하기 위해 만든 작품이다. 100년 전쟁에서 성을

포위한 영국군의 장기전으로, 식량이 바닥난 칼레 시민들은 항복하기로 한다. 





1347년 영국왕 Edward 3세는 성을 파괴하는 대신, 대표 6명만 처형하기로 한다.

피에르가 먼저 지원하자 용기를 얻은 시민들이 자신도 가겠다고 나섰다. 그들은 7

중 제비 뽑기로 누구 한 명을 빼는 것보다, 늦게 나오는 사람을 제외하기로 하였다.

 

다음날 아침, 주동했던 생피에르가 보이지 않아서 그의 집에 가보니 그는 이미 죽어

있었다. 모두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그의 모습에 힘을

얻은 남은 6명은 당당한 모습으로 왕 앞에 섰고, 생피에르 이야기를 들은

영국왕은 이에 감동하여 모두를 살려주었다고 한다.

 



 


1884년 칼레시는 이들의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한 기념상 제작을 로댕에게 의뢰하였다

로댕은 애국적 영웅의 늠름한 모습을 기대했던 의뢰자의 생각과는 달리, 죽음 앞에서

고뇌에 찬 표정을 짓는, 칼레 시민들의 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완벽하게 창조해 냈다.

이 조각상은 12개가 제작되어 뉴욕, 필라 등 전 세계 주요도시에 전시되어 있다.

 


신의 손 The Hand of God은 하얀 대리석의 거칠고 매끈한 질감을 동시에 표현한

작품으로, 어머니의 자궁 안에서 신의 손에 의해 창조물이 잉태되면서 서서히

그 몸체를 드러내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여 준다.

 




분수의 장식을 위해 제작된 성당 The Cathedral’은 휘어진 활 모양의 두 손 사이로

물이 솟아 오르게 되어있었다. 동일한 손가락이 겹치지 않도록, 두 개의 오른손을

마주보게 만든 이 작품은, 텅 빈 공간에서 불쑥 위로 솟은 두 개의 손을 통해

고딕 대성당의 첨탑을 표현하고 있다.




 

입맞춤 The Kiss (1889)은 단테의 신곡에서 형제의 약혼녀와 불륜을 저지른 파올로와

프란체스카를 나타낸 것이다. 로댕은 지옥의 문 오른쪽 아래에 서로에 대한 감정을

깨닫는 순간의 두 연인의 모습을 표현하려고 만들었다. 나중에 지옥의 문과 어울리지

않아 그냥 떼어내고 살롱전에만 출품하였다.






 

로댕은 1884년 카미유 Camille Claudel (1864-1943)를 제자 겸 모델로 모델로 삼아

조수로 삼아 작업을 거들게 했다. 재능이 뛰어난 카미유는 바로 실력을 인정받아,

스승이 만들고 있던 대작 The Kiss (1889), The Burghers of Calais (1889), The Gates

of Hell (1880-1917) 등을 함께 제작하였다.






아름다운 갈색 머리와 푸른 눈동자의 카미유는 단번에 로댕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가난에 시달리며 고생하다가 이제야 겨우 성공을 만끽하고 있을 무렵, 예쁜 소녀의

손 끝에서 새로 피어나는 재능을 발견한 로댕의 눈에는, 카미유가 보석 처럼

보였을 것이다. 







두 사람 사이에 애정이 싹트기 시작하면서, 근엄한 남성미가 흐르던 로뎅의 작품에서

관능적 섬세함이 나타났다. 열일곱의 카미유 보다 24살이나 연상인 로댕은 첫사랑에

빠진 소년 처럼 그녀에게 열렬하게 구애했고, 카미유는 결국 그의 뮤즈가 되었다.

 

‘나의 사랑 ! 나의 착한 사람아, 너를 보지 않고는 하루도 견딜 수 없구나.

, 성스러운 아름다움이여 사랑하는 나의 꽃이여, 너의 아름다운 몸을 껴 안으며

그 앞에 이렇게 두 무릎을 꿇는다.’ (로댕이 까미유에게 보낸 편지중에서)







    

두 사람이 사랑한 시기에 만들어진 조각들은 대부분 에로틱한 작품이었다. 카미유와의 

격정적인 사랑을, 풍부한 감성과 뛰어난 구성으로 표현하여, 로댕을 조각의 아버지로

만들어준입맞춤은, 그 당시로는 너무 파격적이어서 한동안 독방에 설치하여 놓고

관람 신청을 받아볼 수 있도록 하였다.






 

하지만 카미유의 마음 한편에는 언제나 불안감이 도사리고 있었다. 자신의 작품이 거장 

로댕에 가려서 빛을 보지 못할까봐 두려웠고, 자신이 로댕의 소모품이 아닌가 의심했다

로댕이 긴 세월 자신에게 헌신해 온 정부를 버리지 못했고, 모델들과도 바람을

피웠기 때문이었다.




 

결국 카미유는 로댕과 헤어져 자신만의 장르를 개척하고, 작품에서 로댕의 영향력을

지우려 노력하며 그의 그늘에서 벗어나려고 애썼다. 하지만 로댕은 단순한 스승이

아니라 연인이었기에, 카미유가 진정 홀로 서려면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사람들은 로댕의 영향력이 드러나는 부분에만 관심을 보였고, 카미유의 독창성이나

실력은 안중에도 없었다. 여성 폄하의 잣대로 세상에 여자가 조각을 다 하네!’

말하는 듯한 세인의 표정은 까미유를 더욱 좌절하게 만들었다.








아들까지 나아준 동거녀이자, 사실상의 부인인 로즈 뵈레의 질투가 시작되면서

예술과 영혼의 반려보다는 생활의 반려를 택한 로댕에게 배신감을 느낀 카미유는, 

8년 만에 그와 결별하고 작업실을 나와 독립한다.






 

외모와는 달리 불 같은 성격으로 로댕을 떠난 카미유는, 젊음을 바쳐 사랑했던

그를 잊지 못하고, 함께 열정적인 사랑을 나누었던 로댕이 생각날 때 마다

그를 기다리며 발가벗고 잠자리에 들었다고 한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또 편지를 씁니다. 당신이 여기 있다고 생각하고 싶어,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 누워 있습니다. 하지만 눈을 뜨면 모든 것이 변해 버립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더 이상 저를 속이지 말아주세요.’   (카미유가 로댕에게 쓴 편지)






카미유는 마치 그런 자기 자신을 다잡기라도 하 듯, 세 인물이 등장하는 ‘The Age 

of Maturity’를 만들었다. 로댕과 그의 정부, 카미유를 상징하는 이 작품에서 무릎을 

꿇고 애원하는 자신을 외면한 채, 정부의 손에 이끌려 떠나는 로댕을 조각하였다.




 애원 The Age of Maturity






1888년 살롱전에서 최고상을 받아 정식 작가로 인정받게 된 카미유는, 이후 작품이

독창적이고 다양해지면서 로댕과의 사이에 갈등이 생긴다. 로댕이 자신의 예술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강박관념으로 결국 우울증 증세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한때 그녀는 로댕의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었지만, 스승이자 연인인 로댕과 맞서려는

그녀의 시도는 그 당시 지배적이었던 남성 상위 시대의 벽을 넘지 못하였다. 그녀는

가족에게서도 버림을 받은 채, 30년 가까이 말년을 정신 병원에서 보내, 누구도

탓할 수 없는 씁쓸한 사랑, 그 잔인한 조각만 남겼다.






 







프랑스 여행, 파리, 로댕박물관, 카미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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