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sabon
주춧돌(nasabon)
기타 블로거

Blog Open 08.28.2017

전체     69870
오늘방문     39
오늘댓글     0
오늘 스크랩     0
친구     0 명
  친구 새글
등록된 친구가 없습니다.
  달력
 
건국 70주년: 임시정부들
07/05/2018 10:00
조회  705   |  추천   7   |  스크랩   0
IP 104.xx.xx.143


(임정요인 58명이 태극기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 2열 7번째가 이승만, 2열 11번째가 안창호.)



3.1을 전후해 세워진 임시정부는 하나가 아니었다.
알려지기로는 7개의 임시정부가 있었다고 한다.
그 중 세 곳은 임시정부 추진주체가 밝혀졌지만
나머지는 이름만 남고 누가 어떻게 세웠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임시정부 추진주체가 밝혀진 세 곳은
한성정부라 불리는 서울에 세워진 대조선공화국,
노령정부라 불리는 블라디보스토크(연해주)에 세워진 국민의회,
그리고 상해에서 세워진 상해임시정부다.
(여러 임시정부의 이합집산은 별도의 포스팅으로 올립니다.)


전단지를 통해 이름만 알려진 임시정부들:

  • 조선민국임시정부(朝鮮民國臨時政府)
  • 고려공화국(高麗共和國)
  • 간도임시정부(間島臨時政府)
  • 신한민국정부(新韓民國政府)

(최근 LA에도 탈북자가 주축이 된 임시정부가 세워졌다고 한다.)


상해임시정부의 정식명칭은 대한민국임시정부다.
일제 식민통치를 부인하고 독립운동을 주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1919년 4월 11일 상해에서 설립되었다.


위키백과에는 '대한민국의 망명정부'로 풀이 되었지만
대한제국이었지 대한민국이 선행하지 않았고,
대한제국에서 통치권한을 가진 어느 누구도 망명해 가담하지 않았다.
그러니 '대한민국의 망명정부'라는 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좌파의 부지런함에 의해 위키백과의 대한민국에 관한 기술은 서서이 좌경화되고 있다.
공산/노동당의 주요 3대 기능은 조직, 선전, 선동이라 한다. (이영훈 저 「대한민국 역사」 p459)
자유·민주사회에서의 정당의 기능과 사뭇 다르다.


임시헌법이 있었는데 국호는 대한민국, 정체는 민주공화국,
행정부는 대통령제이고 입법·행정·사법의 3권분립을 채택했다.
대한제국의 영토를 계승하고 구 황실을 우대한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상해임시정부는 불행히도 합법적 대표권이 없었다.
민주공화국이라 하면서도 투표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뜻이 숭고하고 민족의 독립을 위해 많은 희생이 있었으나
막말하자면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를 뽑은 단체였다.


헌법 전문의 변천을 살펴보자.

  •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1948년 7월 12일 제헌헌법)

  •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4·19의거 와 5·16혁명의 이념에 입각하여... (1962년 12월 26일 5차 개헌)

  •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과
    4·19의거 의 이념을 계승하고... (1972년 12월 27일 7차 개헌)

  • 유구한 민족사, 빛나는 문화, 그리고 평화애호의 전통을 자랑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1980년 10월 27일 8차 개헌)

  •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1987년 10월 29일 9차 개헌)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문구는
1987년 전두환 대통령 말기에야 삽입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상해임시정부 초대 수반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헌헌법에 임시정부 법통을 계승한다는 말을 넣지 않았다.
국제관계와 법에 정통한 바른 판단이었다.


「대한민국 역사」를 저술한 이영훈 박사는 이를
정신적(법적이 아니라)으로 계승한다고 해석했다.
의지의 표현이 법적 당위성을 가지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임정요원 어느 누구도 그 직이 당연직으로
1948년에 건국된 대한민국에 계승되지 않았다.
상해임시정부는 대한민국과 법적으로 절차적으로 완전한 단절이었다.

* 당연직: 當然職, potition of the ex-officio.
               현재나 직전의 직책으로 인해 투표 과정 없이 마땅히 가질 수 있는 직책.
               사람에게 직을 부여하지 않고 직책에게 직을 부여함.


우파진영은 대한민국 건국일이 1948년 8월 15일이라고 본다.
이 시점에서야 비로소 국가의 3요소인 영토·국민·주권을 충족했다.
임시정부는 통치할 영토도, 국민도, 주권도 없었다.


앞서 말한 대표권 문제는 국제사회의 불인정으로 이어졌다.
모든 독립은 국제적 사건이어서 국제사회가 승인해야 한다.
특기할 만한 점은 2차대전 후 100여개 나라가 독립했지만
이스라엘과 대한민국만이 UN의 결의에 의해 건국되었다.

대한민국에 대한 국제적 승인은 1948년 12월이었다.


요약하면 이렇다. 상해임시정부는

  1. 여러 임시정부 중 하나였다.
  2. 법적 대표권이 없었다.
  3. 대한민국과 법적으로 절차적으로 단절되었다.
  4. 국가의 3요소를 하나도 갖추지 못했다.
  5. 국제사회에서 승인받지 못했다.



해방 후 임정요인들은 개인자격으로 귀국했지만
임시정부가 개개인의 뜻과 의지, 그리고 희생으로만 끝나지는 않았다.
국민저항이 없었던 중국과 달리 민족의 기개를 널리 알리는 결과도 있었다.


더욱 중요하게는 집요한 외교적 노력으로 (주로 이승만의 노력이었다.)
카이로선언, 포츠담선언, 얄타회담에서 독립에 대한 열강들의 약속을 받아냈다.
무엇보다도 풍찬노숙(風餐露宿)하면서 독립에의 의지를 불태우던
그 노심초사의 애국심은 크게 평가받을 만하다.


위 사진에서 보듯 임시정부의 국기는 태극기였다.
태극기를 부정하며 상해임시정부로부터 건국을 찾자는
종북좌파의 모순에서 건국절 쟁론이 무엇을 목적하는지 알게 된다.





이제까지 이 주제에 관련된 포스팅:


건국, 70주년, 임시정부
이 블로그의 인기글

건국 70주년: 임시정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