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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과 개인
01/17/2020 10:00
조회  249   |  추천   10   |  스크랩   0
IP 99.xx.xx.50




5.18 반란, 광우병 난동, 촛불 광란....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


개인의 집합이 군중이 되지는 않는다.
수 많은 사람이 한 곳에 모였다고 군중이 아니며,
흩어져 있다고 군중이 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지금은 SNS가 흩어진 개인을 군중으로 묶는 도구 역할을 한다.


군중엔 이질적 군중과 동질적 군중이 있다.
이질적 군중은 다시 익명과 비익명 군중으로 나뉜다.
이질적 익명 군중의 대표적 예는 '광장'이고,
이질적 비익명 군중의 한 예는 '국회'다.
동질적 군중의 예는 '노조'를 들 수 있겠다.


그러나 군중의 분류는 달라도 특성은 매우 동일하다.
군중은 개인의 소멸을 전재로 하며 개인과 다른 특성을 지닌다.
개인의 개성은 상실되고, 논리보다는 정서에 이끌린다.
군중은 다수가 주는 힘을 믿고 무책임해진다.
군중의 정서는 감염되며 피암시라는 일종의 최면상태에 빠진다.


국회에서 탄핵소추라는 반란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으며,
복잡한 논리로 군중의 동의를 이끌어내려는 노력은 성공하지 못한다.
국민이라는 군중의 동의를 얻으려는 우파는 논리를 버려야 한다.


똑똑한 개인이 모였다고 현명한 군중이 되지도 않는다.
군중은 한결같이 우매하며 집단적 정신상태를 가지고 있다.
군중은 충동에 복종하며 단순하고 과민하다.
그래서 군중은 과장된 감정에만 감동한다.
'집단이성'은 그 집단이 군중이 되지 않았을 때에만 가능하다.


언어는 이미지로 군중에게 던져진다.
그 이미지가 과장될 수록 군중이 설득된다.
설득된 이미지는 신념이 되고,
신념은 범죄마저 신성한 의무로 느끼게 한다.


이러한 예는 역사에 너무나도 많다.
프랑스 혁명이 그랬으며, 독일이 나찌에 광분했고,
이슬람의 지하드가 그렇다.


5.18 반란은 범죄를 신성한 의무로 보았고,
광우병 난동은 '뇌 송송 구멍 탁'이라는
아무 논리도 없으나 진저리쳐지는 이미지에 감동되었었다.
촛불 광란은 무언지도 모르는 변화라는 허상에 지배되었고,
탄핵소추는 국회라는 군중이 다수가 주는 무책임에 넘어간 경우다.


군중은 강자의 고통을 즐기며, 강자보다 더 강자가 되어

강자에게 고통을 줄 수 있다는 상황에 도취된다.


또 군중은 민족성의 지배도 받는다.

동일 사안에 대해 상대적으로 더 정서 쪽인 라틴계 군중과
더 이성 쪽인 앵글로색슨계 군중은 분명히 다르게 반응한다.
한국의 군중은 어떠한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
사람이 우선인 사회.
평화...


이런 말이 주는 이미지에서 군중은
근거도 없이 '더 나은 장래'를 상상하며 감동한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에는 관심도 없고, 무엇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군중은 이미지에 의해 조정된다.


그러므로 군중은 논증이 아니라 단언에 의해 설득된다.
이 단언이 얼마나 권위를 갖느냐 하는 것은
그 단언을 발언하는 자의 위엄에 달려있다.
독재국가가 지도자를 우상화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탄핵 때 온갖 추문으로 박근혜의 위엄을 깎아내린 이유이기도 하다.


군중의 행동 동기를 만드는 감정은
사유의 영역이 아니라 심리의 영역이다.
군중의 행위는 충동적이고 돌변적이며 본능적이나
때로 영웅적 정신을 지니기도 한다.


황교안이 행정가에서 정치가로 변신하기를 원한다면,
국민을 감동시켜 대한민국을 회복하길 원한다면,
그는 군중심리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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