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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꽃신 한짝
11/01/2017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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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영선

 인생행로에는 두 가지 상반된 길을 수반하며 살아간다. 나쁜 일 좋은 일, 기쁜 일 슬픈 일, 행복과 불행, 어느 쪽이든 다 겪어가며 산다. 나는 오랜 세월을 살아오며 많은 일을 겪으며 살아왔다. 우선 나의 유아기 때를 상기해 본다. 기억이 떠오를 수 있는 가장 어린 나이라면 네다섯 살쯤 될까? 그야말로 가물가물 몽롱한 기억이다. 그것도 내 의식 표면에 떠오르는 특수한 일들이다. 그때는 시대적 상황이 뒤떨어진 구시대라 기독교가 많이 보급되지 않은 때였다. 나는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서 따뜻한 가정의 보금자리에서 자랐다. 어릴 때의 평생 잊지 못할 기억들이 더러 남아 있다. 1년 중 최고의 기쁜 날은 크리스마스였다. 특히 미국에서 배 타고 오는 선물이 있다. 한번 본 적도 없는 미국 할아버지가 해마다 귀한 선물을 보내 주셨다. 이 분은 한국에 계실 때 우리 아버지를 공부시킨 은인 같은 분이시다. 크리스마스 아침에 눈을 뜨면 보물 상자가 머리맡에 놓여 있었다.



밤사이에 산타 할아버지가 왔다 갔단다. 그 산타를 꼭 한번 보고 싶은데 눈을 비비며 기다려도 본 적은 없다. 크리스마스만 되면 버릇이 되어 가슴속에 오색 풍선을 달아 놓고 크리스마스 아침이면 드디어 그 풍선이 부풀어 환호의 기쁜 환성을 지르며 터져버린다. 선물 상자에서는 그야말로 듣도 보도 못한 보물들이 터져 나온다. 맛본 적이 없는 은종이에 싸인 초콜릿. 그 당시에는 그렇게 고급스럽게 하나하나 오색 가지 은종이로 싸여 있었다. 하얀 설탕이 눈같이 뿌려져 있는 땅콩, 입안에서 살살 녹는 처음 먹어보는 과자, 설탕도 일반 가정에서는 귀했던 그 시절에 이런 것 등은 놀랄 만큼 환상적인 맛이었다




어떤 상자를 여니 반짝반짝 꽃수를 놓은 신발도 나왔다. 나의 생애 동안 비약하는 세상 문화 속에서도 이렇게 귀한 물건은 두 번 다시 본 적이 없다.

 

그 당시 사진을 찍는 것이 처음 생긴 때였다. 아버지는 어린 내가 과꽃을 양손에 들고 있는 사진을 미국 할아버지께 보냈다. 나는 그 사진을 오래 두고 보았는데 너무 귀엽고 어린아이가 어쩌면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할 만큼 오랜 시간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던 귀한 사진이다.




   

미국 할아버지가 그 사진을 보시고 구슬 각띠와 꽃신을 보내신 것이다. 맛있는 초콜릿과 과자는 아껴가며 야금야금, 꽃신과 구슬각띠는 항상 머리맡에 놓고 잤으며 낮에는 품에 안아보고 책상 위에 놓았었다



하루는 그 진귀하고 예쁜 꽃신을 신고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어 대청 앞 댓돌 위에 가지런히 놓았다. 잠깐 방 안으로 들어갔다 나오니 이게 웬일인가!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꽃신 한 짝이 없다. 기절초풍할 노릇이다.



이것은 분명히 예스가 물어간 소행이다. 우리 집에는 보통 한국 개와 다른, 처음 보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포인터 강아지가 있었다. 나는 그 강아지를 아기같이 예뻐해서 늘 안고 다녔는데 그 예스가 안 보인다. 엄마 손을 잡고 이곳 저곳을 돌았으나 끝내 예스는 보이지를 않았다. 집에 돌아오니 예스는 먼저 와서 마루에 앉아있다. 그러나 꽃신은 보이지 않는다. 꽃신이 신기하여 예스가 물고 다니다 버렸는지, 누가 집어 갔는지, 끝내 꽃신 한 짝은 못 찾았다


사는 동안 그 꽃신 잃어버린 기억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아쉬운 기억으로 남아있다꿈에라도 좋으니 어린 날로 돌아가 그 예쁜 꽃신 찾아서 한 번이라도 신어 봤으면… 




일기

                                              
 

나는 가끔 
꿈길에서 
어린 소녀가 된다 

낯설면서도 낯익은 
하나의 나를 본다 

엄마가 지어준 
노란 원피스를 입고 
나비처럼 춤을 추거나 
엄마가 놓아준 
푸른 헝겊 가방에 
책과 공책을 잔뜩 넣고 
학교 길을 걸으며 
지각할까 마음 조이는 
콩새 가슴의 학생이 된다 

, 다음에 커서 무엇이 되고 싶니
내게 묻는 나무들에게 
아직은 몰라, 천천히 생각해야  
새침을 떨며 조용히 걸어가는  

아직 어른으로 깨어나지 못하고 
속으로 들어갈수록 
더욱 어린 날의 추억과 뒹구는 
작은 인형이 된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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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신, 크리스마스 선물, 이해인, 엄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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