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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김혜자(nancymo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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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름이 지나간다
09/27/2017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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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영선

  날이 밝았다. 아침 6시 기분 좋은 느낌으로 기상을 했다. 잠을 잘 잤나 보다. 앞마당 내 꽃밭에 물을 주러 나갔다. 어젯밤 살랑 사랑 비가 온 모양이다. 꽃밭에 물을 주지 않아도 된다. 꽃들이 방긋방긋 웃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조금만 걸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앞마당을 걸어나가니 마당 한쪽에 진홍색 꽃잎이 떨어져 소복이 쌓여있다. 아스팔트 길에 꽃을 수놓은 것 같이 신비롭고 아름답다. 무슨 꽃인지 이름도 모른다. 살금살금 옆을 지나가며 미소를 지었다.


샤워꽃


조금 더 걸어 차도로 나갔다. 무수한 샤워꽃잎이 떨어져 땅 위에 융단처럼 깔려있다. 향기로운 아침 창조주가 주신 아름다운 작품들이다. 한 여름이 또 가니 세월의 연민이 남는다.




  한 삼십 분 걷고 집으로 돌아왔다. 창가에 놓인 오켓꽃이 미풍에 흔들리며 웃는다. 내 방의 포근한 무드. 이곳이 내 삶의 보금자리요, 안락하고 소중한 서식처이다. 나는 식물을 사랑한다. 꽃밭에 있는 나무 하나하나 정성을 들여 키운다. 어쩌다 물을 안 주면 꽃잎도 내 입과 같이 마른다. 빨리 물을 주어 싱싱해지면 목마른 내가 물을 마신 것 같이 치유된다.




나하고 제일 친한 친구는 뒤 창문 밖 키다리 잘 생긴 전 나무 세 식구이다. 그들은 쿨 하고 신선한 매너를 지녔으며 나를 보고 항상 미소 짓는다. 솔솔 부는 바람에도 즐거운 춤을 추며 나를 위로한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풍요로운 환상을 주는 전나무다. 나도 너 같이 우아하게 살고 싶었는데….내 친구 전나무야. 너와 나는 한 시대를 같이 살아온 귀한 인연이었다. 보고 듣고 말할 수 있는 고마운 벗이다. 너는 앞으로 얼마나 더 장수 할 것이냐? 네가 부럽다. 나는 이미 육신이 늙어가고 있다. 하지만 아직 나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노년의 인생 열심히 구가(謳歌)하며 살고 싶다.  나 같은 독거노인은 세상사에 집착 말고 신선한 자연중심으로 시야를 넓혀가며 살아야겠다. 이것이 나의 요즈음 일상에서 얻어진 아이러니한 긍정적인 인생관이다




근간에는 애정의 대상이 동물이나 사물 쪽으로 가는 인간 소외의 현실이 되어가는 것이 아닌가? 인간에 대한 고뇌와 사랑을 뛰어넘으며 살자. 마음 먹은 대로 희로애락을 느끼며 남은 인생 하루하루 작품을 만들어가는 마음으로 살자. 이것이 노년을 보내는 나의 소박한 소망이다.



  

며칠 전 외출을 나갔던 길에 친구를 만나 담소하다 코코마리나 식물원에 갔다. 나하고 사랑을 공유하는 젊은 여인을 만나면 어디든가 훨훨 나다니며 내 나이에서 오는 콤플렉스를 날려 보내주니 고마운 마음이 크다. 코코마리나 식물원은 남쪽 바다 쌘드 비취를 돌아 하와이 가이 골프장을 끼고 산 쪽으로 들어간다.

 

예상치 못했던 골프장을 지나게 되어 잠시 눈길을 멈춘다. 지난 세월을 회상해본다. 갑짜기 가슴이 뭉클해지며 눈물이 맺힌다. 젖은 눈으로 푸른 하늘을 올려다본다. 저 높은 하늘로 날아가 버린 내 딸 생각이 여과되지 않은 슬픔으로 가슴 한 자락에 남아있다. 벌써 간 지가 10년이 흘렀다. 내 딸 잃어버린 뒤 몇 삼 년을 목이 매어 슬픔을 몸에 달고 살았다. 오랜 시간이 흘러 조금씩 잊어가고 있었는데 이 골프장을 지나가니 그리움의 슬픈 추억이 다시 살아나는구나.



   

하와이 대학에 다니고 있는 두 남매를 보러 가끔 한국에서 오면 나와 같이 즐겨 찾던 골프장이다. 시내에서 먼 거리지만 경치 좋고 한가한 곳이라 선호하였다. 아름다운 추억이 담긴 잊지 못할 장소다. 추억 속 내 딸은 날씬한 몸매에 나비같이 공을 날려 제일 먼 곳으로 보내 일행의 찬사 박수를 받았고, 재치 넘치는 위트로 잘못된 스윙을 지적해 주던 내 딸품위 있던 긴 머리 미녀의 영상. 지난날의 그리움이 꾸역꾸역 슬픔으로 다가온다. 그때 우리들의 기뻤던 날들은 행복의 실상이었다, 보고 싶다. 내 딸 정희야.

 

식물원은 산 밑으로 들어가 외진 곳에 있었다. 입구에 문지기가 한가히 앉아있다가 우리를 맞았다. 이 공원은 자연 그대로 손을 대지 않아 길도 돌밭이다. 그녀는 내 팔을 끼고 조심조심 걸었다. 이렇게 커다란 플루메리아 Plumeria 나무를 본 적이 없다. 길가 옆에는 군데군데 부겐베리아 Bougainvillea 꽃들이 한데 엉겨 붙어 흰색, 자주색 그리고 보라색 여러 가지 황홀경의 색깔로 무더기로 핀 꽃 동산 나를 현혹한다. 높이 자란 풀루메리아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나는 큰 거목 앞에 서면 말을 건네고 싶어지고 안도감의 엄숙함을 느낀다.


부겐베리아 Bougainvillea 

  

   나무야 나무야 풀루메리아 나무야. 네가 이렇게 커서 거목이 된 것을 보니 너는 인간보다 긴 수명을 가진 행운목이로구나. 네가 부럽구나


플루메리아 Plumeria


인간이 90년을 묵으면 향기롭지 못하고 아름답지 않으나, 푸른 자연은 날이 갈수록 아름다운 운치를 발휘한다. 나무야 오래오래 살아남아 네가 지닌 그 신비의 향을 날리며 자연의 위대함과 경이로움을 전해다오.

 

  공원 안쪽으로 들어가면 여러 가지 남양 식물이 많다는데 벌써 석양의 쓸쓸한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니, 다시 찾기로 하고 밖으로 나왔다. 돌아오는 차도 위에 가로수 샤워 꽃잎이 낙화로 날린다.


   

머잖아 다가올 나의 모습으로 비쳐 슬픔이 또 밀려왔다. 나이가 들면 모든 게 쇠약해지고 줄어드는데 유독 슬픔만은 줄지 않고 늘어만 간다. 어찌 나만 그럴까




, 한 여름이 또 지나가는구나!



한 여름, 부겐베리아, 풀루메리아, 샤워꽃, 엄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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