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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김혜자(nancymo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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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의 하루
05/18/2020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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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마음으로 또 하루를 연다.

 

하늘에서 내린 세월이 느리게 흐르고 있다

아침 햇살이 너무 좋아 집 가까운 라카마스 트레일(Lacamas Park Trail) 

숲 속 호수 길을 걷는다


항상 친구와 걸었지만, 요즈음 코로나 바이스 

사회적 거리 두기 (Social Distancing)으로 혼자 걷고 있다

코로나 병균의 긴 무료의 외투를 벗고 넉넉한 마음으로 자연의 품에 안긴다




마른 나뭇가지에 비늘 같은 새순이 돋고 동그랗게 부풀어 오른 

우거진 산길이 손짓한다


동행은 없지만, 튼튼한 다리에 쭉쭉 뻗어 오른 사계절 늘 푸른 소나무

싱그러운 새들의 노래, 하늘과 구름이 나의 친구가 되어 아름다운 길을 걷는다




숲은 사계절의 모습을 안고 천천히 굴러가는 열차와 같다

숲속 열차는 언제나 느긋하게 나를 기다려준다


시간이란 표를 끊어 숲속에 숨겨진 보물들을 찾아 떠난다





봄이 무르익는다

활처럼 구부러진 가지 이끼 사이로 돋아나는 연둣빛 

어린순은 또 얼마나 반가운지! 

눈을 들어 바라보는 숲은 새롭고 아름답다




마치 신세계가 열리는 것 같다

산뜻하게 봄의 새 옷으로 단장한 숲 속이 나를 반긴다

물 안개가 자욱하게 호수에 걸려있다


간밤 별빛이 놀다 간 자리에 이슬방울이 영롱하게 빛을 밝힌다

이보다 더 경이로운 풍경은 없다




어릴 적 남편이 다이빙하며 놀던 작은 폭포를 지난다

시원한 바람을 타고 흐르는 물소리는 새소리와 어울려 교향곡을 연주한다


구름을 뚫고 내려와 어린 잎 새에 앉은 햇살의 숨결 소리도 듣는다.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몸을 옮기며 부르는 새들의 힘찬 합창 소리 따라 

청태 낀 고목 아래 숨어 피는 들꽃처럼 

잊고 살았던 기억을 따라 숨박꼭질 하듯 술래가 되어 본다.


 


너무 멀리 가버린 썰물 같은 소중한 기억들

생명의 분신으로 조각난 작은 기억들이 꿈틀거린다





푸른 이야기는 그리움의 봉투를 열고 날개를 달고 하늘로 날아가다 

따뜻한 햇볕에 녹아 아름다운 향기로 퍼진다


하늘나라에 있는 여동생이 휴가를 얻어 온다면 

아니 5분만 내려온다면 나는 원이 없겠다


소리내 불러보고 숨겨 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아무에게도 말 못 했던 이야기를 나누며 엉엉 울어보고 싶다.



 

어린 시절 우리는 매일 밤 장롱 속에서 가지런히 개킨 요와 이불을 꺼내 

방바닥에 깔고 잠을 잤다

우리가 자던 방은 요즘처럼 난방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방 안이 냉기로 가득했고 몹시 추웠다


이불 속에서 서로의 체취와 체온을 느끼며 

우리는 잠에 빠져들곤 했다

따스했던 그때

푸르게 자라던 우리의 향기

그 향기가 그립다.

 

그리운 것이 향기 뿐인가

아쉽고 그리운 것 투성이다


소녀 시절, 우리의 소망인 두 대의 자전거를 아버지의 선물로 받고, 

타다 넘어진 무릎 상처의 아픔도 잊고 웃던 우리의 웃음




때로는 남자도 못 타는 자전거를 여학생들이 탄다고 

돌을 던진 남학생의 놀림에 넘어진 나를 부추기던 내 동생


수호신처럼 자전거 타는 내 뒤를 따르면서 나를 보호했던 언니 같은 동생

그때의 우리 웃음소리는 오색 빛깔로  알록달록하게 

골목 안에 가득 펴졌었다.


쌍꺼풀의 큰 눈 때문에 양키라고 동래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은 

동생은 학교 성적, 운동도 미모도 나보다 월등했다


아버지가 맏딸인 나에게 베푸는 각별한 배려에도 

한 번도 반항하지 않은 순종파였던 동생


아버지의 일편단심 나를 위하시는 버릇대로 성장한 후 

나는 받는 것에 능숙했고 동생은 주는 것에 숙달 된 마음씨 고운 여동생.





동생은 우수한 유전자를 많이 물려받아 손으로 하는 일은 나보다 더 잘했다

늦게 배운 골프도 멀고 정확한 거리로 날렸고

남자처럼 치는 나의 모양새에 비해 우아한 몸 놀림은 늘 부러움이었다


단추 공장을 운영하던 그녀의 디자인은 일본과 이탈리아에 만든 

단추에 비해 손색없는 상품, 그 인기가 서울 시장을 누볐다.



한국에 나가 살던 8 년 되던 어느 날

동생은 이탈리아 산 품종인 몰티즈(Maltese) 강아지 한 마리를 선사했다

이탈리아 남부 몰타섬 품종인 강아지였다





다른 소형견들에 비해 머리가 좋고, 야생성, 사냥성, 공격본능이 강해

옛날에는 항해 중 쥐를 잡기 위해 배에서 길렀다는 귀여운 강아지


작은 체구, 깨끗한 하얀 아름다운 외모와는 달리 성격이 예민하여 

낯선 자극이나 소리에 까다롭고 본능이 강해 훈련하기 어렵다는 견종이지만 

동생을 닮았는지 습관과 행동이 온순한 이쁜 강아지였다


Missy 이름의 강아지는 거의 18년을 나와 동락(同樂)하다 

동생이 떠나기 6개월 전 먼저 하늘나라로  떠났다



위로의 카드와 시()


The Rainbow Bridge

There is a bridge connecting Heaven and Earth. 

It is called the Rainbow Bridge because of it many colors. 

Just this side of the Rainbow Bridge there is a land of meadows, 

hills and valleys with green grass. 


When a beloved pet dies, the pet goes to this place. 

There is always food, water and warm spring weather. 

The old and frail animals are young again.  

Then play all day with each other.


There only one thing missing. 

There are not with their special person who loved the on Earth. 

So each day there run and play until the day comes 

When one suddenly stops playing and looks up. 

The nose twitches! The ears are up! 

The eyes are staring! 

And this one suddenly runs from the group!


You have been seen, and when you and your special friend meet,

 you take him in your arms and embrace. 

Your face is kissed again and again and again, and you look once more into 

the eyes of your trusting friend.

Then you cross The Rainbow Bridge together, 

never again to be separated….


그때의 슬픔을 어찌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재로 남은 Missy의 마지막 온기가 내 곁에 오랫동안 아픔으로 머물렀다


무조건의 사랑, 나의 삶에 활기를 준 Missy가 떠난 후 

다시 애완견을 기를 생각을 접었다


맑음과 순수한 호수의 눈망울을 닮은 Missy 는 

동생이 주고 간 선물 중 가장 귀중한 사랑의 선물이었다.  


내가 정년 퇴직하면 긴 여행을 약속했던 동생은 

어느 날 파릇해질 정도로 살이 빠지기 시작했다


병원 검진 결과 이미 암세포는 위는 물론 소장, 간까지 전이된 상태




얼마나 아팠을까

항상 이쁜 미소의 내 동생은 그렇게 아픈지

10개월 만에 눈을 조용히 감아버렸다.

  젊은 나이에 그렇게 그녀는 떠났다



세상에는 뒤 늦게 깨닫는 것들이 참 많은 것 같다

우리가 익숙한 것에 감사하지 않고 그것을 행복이라 여기지 않는 때가 많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평범한 일들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고 

행복한 일인지 미처 깨닫지 못했다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지, 잃고 나서야 깨달으니 가슴이 너무 아프다

시간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것, 자매 같은 친구가 어디에 있나

자매는 보석과 같은 존재라는 것

그녀는 나의 머리와 팔과 다리였기에 더 애닯고 애닯프다.




 
  비바람에도 끄덕 없이 견딘 인내심이 강한 소나무 숲 길을 걷는다


연록의 숲이 진초록으로 변해 가면, 알에서 깨어난 새끼들을 먹이고 훈련하느라 

새들은 바쁘게 날아다니고, 꿀을 나르는 벌들의 날갯짓 소리가 윙윙거리는  

숲 속은 왕성한 생명력을 자랑하며 여름 곁으로 계절은 천천히 물들어 간다.




자락자족 (自樂自足), 자숙자계 (自肅自戒)


요즈음 코로나바이러스로 일상의 생활이 힘들다

지루한 시간의 함정에 빠져 가야 할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삶을 스스로 즐기며 만족한 줄도 알고 (自樂自足), 

스스로 조심하고 경계하면서 살아갈 줄도 알아야 (自肅自戒

어려울 때를 이기고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




숲 속은 이름 모를 새들이 찾아와 지친 몸을 추스른다

새들이 잠시 쉬다 푸르릇 조용한 공기를 가르고 하늘로 오른다


또 한 차례 소나무 숲은 청명한 소리에 잠을 깬다

은가루 뿌린 듯 빛나는 햇빛에 눈이 부시다

시원한 봄바람이 분다



숲 속은 각종 꽃과 산뜻하게 봄의 새 옷을 갈아입은 향기가 진동한다

내 안에서도 이렇게 향기로운 그릇을 빚어낼 수 있을까!




 

가슴에 얹힌 돌의 무게가 점점 줄어든다


새장을 나온 새처럼 푸른 햇살이 펴진 오월의 하늘을 안아본다

나눔, 용서, 격려, 배려 같은 잔잔한 정을 한없이 쏟아붓고 살자


나를 위한 산길의 파란 하늘이 웃고 있다





나무와 풀이 어우러진 라카마스 호수 주변은 

팔레트의 온갖 물감을 풀어놓은 듯 현란하기 그지없다


길을 걷다가 잠시 걸음을 내려놓는다




주머니 속에서 풀어져 나온,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한 소절을 사뿐 밟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나의 빈 가슴속에는

철없고 아름다웠던 젊은 날의 꿈이 알알이 채워지고 있다.

 



라 카마스 호수, 숲 속의 하루, 김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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