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cymoore
수필가:김혜자(nancymoore)
Washington 블로거

Blog Open 04.15.2016

전체     105022
오늘방문     8
오늘댓글     0
오늘 스크랩     0
친구     19 명
  최근 방문 블로거 더보기
  달력
 
인연생기 (因緣生起)
03/24/2017 06:14
조회  2857   |  추천   34   |  스크랩   0
IP 173.xx.xx.212

김혜자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찡하고 온몸에 전율이 돋는다. 같은 미국에 살면서도 가족이 함께 모인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남편의 배려로 하와이에 사시는 어머니와 버지니아에 사는 동생 내외가 넓고 푸른 태평양 바다가 눈앞에 보이는 캘리포니아주 뉴포트비치 리조트에서 일주일 휴가를 함께 보낼 있었다.



  

  내가 먼저 웨인 공항에 도착하여 식구들을 기다렸다. 오랜만에 만나는 동생 부부가 손을 흔들며 출구를 빠져 나왔다.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며 선수생활 하던 좋은 체격은 어디가고 홀쭉한 키에 병색이 완연한 얼굴로 나타나 놀랐다. 동생을 보필하며 살아온 착한 올케 얼굴에서도 이민생활의 고달픔이 보여 반가움과 슬픔이 한꺼번에 파도처럼 가슴에 밀려왔다. 붉게 타던 노을이 태평양 바다속으로 숨어버린 늦은 시간에 어머니는 환한 미소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셨다. 영화배우처럼 고와 학부형 모임 때마다 수군거리던 친구들과 선생님께우리 엄마야라고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말했던 어머니였다. 고상하고 품위 있던 얼굴과 손에는 온통 깊은 주름이 잡혀있고, 하얗게 바랜 머리와 점점 야위어진 몸을 보고 눈물이 돌았다. 이번 재회는 기쁨과 놀람이 뒤섞인 그리운 만남이었다.



  미 북서부 와싱톤주에 사는 나는 매년 번씩은 어머니를 보러 하와이에 가지만 어머니와 동생은 오랜만의 만남이었다. 동부 버지니아에 사는, 몸이 불편한 동생과 태평양 한복판 하와이에 사시는 연세 많은 어머니가 서로 자주 만나기에는 거리만큼이나 힘들었다. 노모의 손을 잡은 동생의 눈시울이 붉어졌고, 동생을 바라보는 노모의 눈에서도 이슬이 맺혔다.

                                       

이리 말랐니? 밥은 먹고 다니니? 잠은 자니? ”

어머니의 물음에

 

엄마 피곤하지 ? 시에 떠났어? 서로 즉답을 피했어도 표정과 몸짓으로 마음을 읽을 있었다. 한동안 정지된 시간속에 잠겨 눈시울을 붉혔다. 말하지 않아도 많은 이야기가 눈빛 속에 녹아났기 때문이다.




내가 기억하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결혼 생활은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고급 공무원이셨고, 어머니는 교육을 많이 받은 신여성이었지만 마음고생을 많이 하고 사셨다. 경제적으로 누구보다 풍요를 누리고, 모든 것을 갖추어 사는데 무엇이 부족해서 어머니가 가끔씩 우시는지 어린 나로서는 알 수 가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애정을 바탕으로 결합하지 않았던 두 분 모두 서로 적당한 배필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는 돈으로 가정을 샀고, 어머니는 사랑과 이해를 원했기에 같은 공간에서 산다 해도 단절된 삶을 사신 것 같다. 어머니가 꿈꾸던 이상은 하나의 희망 사항일 뿐 자신의 감정, 생각을 모두 접고 살아야 했다.


 노르웨이 극작가 헨리 입센의 ‘인형의 집’에 나오는 아내 노라처럼 관습과 인습에서 탈피할 수 있는 강한 성격의 소유자도 물론 아닌 어머니였다. 어린 우리를 두고 혼자 나가 살기에는 사회적으로 도덕적으로 용납될 때도 아니었기에, 어머니의 심적 고통은 컸으리라 여겨진다. 그런 환경에서 우리는 장성했다. 부모의 갈등과는 아랑곳없이 우리들은 사랑으로 뭉쳐 살았다. 내가 결혼한 후에야 어머니도 여자라는 것을 알았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힘들었던 지난 세월의 흔적들이 오늘의 어머니를 문인으로 키워준 자양분이 되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는 평생 자식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살아오셨다. 자식들에게 좀 더 잘했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하는 마음은 석양이 짙게 지는 나이로 접어들면서 더 깊어지신 것 같다.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얼굴에는 연민의 눈물로 가득했다. 자식에게 신세를 지지 않으려는 마음이 역력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우리는 파도같이 밀려오는 가슴속 이야기들을 나누며 웃고, 때로는 가슴 저리며 갈증의 아쉬운 시간을 보냈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도산스님 글이 떠올랐다.

 

‘오고 가다 옷깃만 스쳐도 삼백생의 인연이요.

같은 좌석에 앉아 대화하면 오백생의 인연이요.

같은 솥에 밥을 먹으면 칠백생의 인연이요.

같은 피를 나누면 구백생의 인연이요.

부부로 만나는 것은 천생의 인연이다.

 

우리는 구백생의 인연으로 만났으니 나누는 정도 깊을 수밖에….




창밖에서 짙은 바다냄새가 코끝에 밀려왔다. 파도를 타는 갈매기들의 기교가 신비롭다. 밀려오는 파도를 용케도 밀어내고 또 다른 물결을 여유롭게 맞는 저들의 행위가 평화롭게 보였다. 헤어짐을 생각하며 아쉬움의 정원에 갇혀 있는 우리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오고가는 인연들에 집착하지 않고 자유롭게 보낼 수는 없는 걸까? 생각해 보지만 아직 우리에겐 자신이 없다. 놓아주어야 할 것이 너무 많지만 지금은 함께하는 순간이 더 고귀하고 사랑스러울 뿐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우린 또다시 각자의 생활로 되돌아가기 위해 이별의 아픔을 받아들여야 할 순간이 기다리고 있다.

 

지나간 슬픔도 아름답고, 아름다움도 슬퍼지는 졸수의 나이가 된 어머니, 힘든 삶의 무게를 몸으로 지탱하면서 낡아 버린 동생 내외를 오늘만이라도 가슴에 가득 담고 취하고 싶다. 언제 또 만나게 될지 알 수 없는 그날을 기약하면서 손가락이 파르르 떨도록 이별의 손사래를 치고 싶다. 뜨거운 눈물이 웃음으로 피어 올랐다.




  

인연생기, 가족, 어머니
"나의 가족 나의 사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 블로그의 인기글

인연생기 (因緣生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