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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김혜자(nancymo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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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은 사랑의 시작
11/20/2016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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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의 얼굴에 생기가 돈다. 빛 바랜 어머니의 사진을 보는 그의 눈동자는 해맑은 미소로 가득하다. 나에게 어머니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무척이나 신명 나는가 보다. 행복을 누리는 오늘의 삶이 오직 어머니의 ()’이라고 말하는 남편의 마음이 봄 햇살처럼 상큼하다.

 

남편은 이탈리아 이민자 3세다. 외할머니는 타이타닉 (Titanic 1912 415)을 타고 오던 중 배가 침몰하는 사고를 당했으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분이다. 구출되는 과정에서 배 난간에 부딪혀 평생 한쪽 다리를 못 쓰는 불구로 지내셨다. 외할머니는 구조된 후 첫 관문이던 뉴욕 엘리스 섬 (Ellis Island)에서 신체검사와 입국절차를 받은 후 몬태나주에 정착했다. 구리광촌에서 일하던 이탈리아 광부와 결혼하여 세 명의 딸과 두 아들을 두었다. 할머니의 자녀 중 첫 번째 손주로 태어난 남편은 구리광촌에서 가난하게 자랐다. 남편의 조상이 미국에 뿌리를 내린 이민의 역사다.



 

아메리카대륙의 분수령지대 작은 고장 뷰트 몬태나주 (Butte, Montana)는 지구 상에서 가장 유명한 구리광촌이다. 광산개발로 노던 퍼시픽 (Northern Pacific) 철도가 1889년에 개통된 후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려고 광촌으로 모여들었다. 몬태나의 겨울은 건조한 대륙성기후로 혹독하게 춥다. 연로로 쓰기 위해 탄광에서 버려진 석탄을 주어오는 일이 어린 남편의 몫이었다. 그곳에서는 모두가 그렇게 살았기에, 가난이 무엇인 줄 모르고 행복하게 자랐다고 한다. 미국 독립기념일이 되면 친구와 성조기를 들고 축제 행진 뒤를 따라다녔고, 저녁에 불꽃놀이를 보는 것이 가장 즐거웠고 그것이 유일한 피크닉이었다. 먹고 싶었던 아이스크림도 먹을 수 있는 독립기념일이 한 달에 한 번씩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고 한다. 풍족함은 없었지만 평안함과 안식이 있었던 고향을 떠난 것은 남편이 8살 때였다. 지하 갱도에서 다리를 다친 아버지가 새 직장을 찾아 간 곳이 워싱턴 주였다.



Butte, Montana 1952

 


Butte Miners


 워싱턴 주로 전학을 와서 가난이 무엇인지 처음 느꼈다고 말하는 남편의 눈가에 이슬이 젖는다. 빈민들이 삶을 이어가는 구리 광촌과는 다른 세상이었다. 온 집안 식구가 일을 해야 했다. 남편은 부두에서 일하는 아버지와 함께 9살부터 일을 시작했다. 여름이면 농장에서 딸기와 콩 따는 일을 했고, 비가 오는 겨울이면 신문 돌리기, 깡통 그리고 병을 줍는 일을 하며 부모에게 용돈을 탄 적이 없었다고 한다. 고등학생 때는 주유소와 종이공장에서 일하며 부모를 도와 생계를 유지했다. 배워야 성공하고 몸을 아끼지 않아야 잘 살 수 있다는 신념이 습관화된 남편은 정년 퇴직한 지금도 쉬지 않고 일을 한다. 남의 물건도 아낄 줄 알고, 없는 사람의 어려움을 이해하며, 노력하는 사람에겐 항상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군대에서 나오는 장학금으로 여러 개의 학위도 받았다. 그 은혜를 생각해서인지 남편은 나라에 대한 애국심이 남보다 특출한 사람이다


몇 년 전 독립기념일에 맞춰, 남편의 고향인 뷰트 몬태나주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축제 행진에 동참했다. 여태껏 내가 본 독립기념 행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은 초라한 불꽃놀이였지만 남편은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 듯 무척 즐거워했다. 지금은 폐광되어 인적이 없는 구리광촌도 가 보았다. 코를 흘리며 까만 석탄가루를 뒤집어쓴 어린 소년이 석탄을 줍던 일을 상상해 보니 가슴이 뭉클했다.  남루한 옷에 짝짝이 양말을 신고 외할머니와 정겹게 엄마를 마중 가는 소년의 맑은 웃음이 봄 햇살로 활짝 피어 올랐다.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 찡한 전율이 마음을 적셨다



 Butte Downtown


유년시절의 그리움에 목이 메는 남편은 내 손을 꼭 잡고 산 동네 골목길을 돌며 켜켜이 쌓인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머니가 부활절 선물로 주신 색색 가지 물감을 들여 준 병아리가 얼어 죽어 서럽게 울었던 세 살 적의 슬픔. 외할아버지와 함께 만든 포도주의 향긋한 냄새가 아지랑이로 피어 오르는 듯한 산 비탈에 세워진 작은 판자집. 큰 나무통에 가득 담긴 포도를 밟아 무릎까지 물든 다리를 매일 저녁 닦아주던 어머니의 포근한 손길. 정겨운 오막살이 집은 사라졌지만 흙과 포도 냄새가 어우러진 골목길을 찾아 남편은 추억이 담긴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즐거워했다. 어머니를 그리는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가 샘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어머니는 중학교만 다녔지만, 어느 스승보다 훌륭한 선생이었다고 침이 마르게 자랑을 한다. 어머니가 가진 재산은 오직 아들에 대한 신념과 믿음뿐이었다. 믿음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에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는 언제나 낙천적인 웃음을 담고 사셨다고 한다. 사랑이 있는 고생은 행복이 같이 동반되었나 보다. 고달픈 삶을 살면서도 신념 속에서 자라는 아들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의 희생은 행복으로 가는 밝은 길잡이였다.


웃고 있던 남편 눈이 젖어 들었다. 내 가슴에서 눈물이 흐른다. 단 일분만이라도 어머니를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다면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줘도 아깝지 않겠다는 남편. 슬픔이 밀물 같이 밀려와 얼룩진 그의 얼굴을 껴안았다. 석류 알처럼 터져 피 망울 진 그리움을 닦아주고 싶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에 돌아보고, 또 돌아보는 남편의 손을 잡고 골목길을 내려왔다.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가슴이 타 들어 가는 연민의 그리움이 하늘에 닿아 꽃 비로 내리는 어머니의 눈물이었다.



 

남편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하늘을 찌르는데 나는 구순을 살아가시는 어머니에게 불효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부끄럽다. 살아계신다는 이유로 마냥 믿고 의지하는 철없는 삶을 언제까지 살아야 남편처럼 진한 사랑을 느껴 효에 접근할 수 있을지? 오늘은 멀리 하와이에 계신 어머니께 문안인사 라도 드려야겠다.

 

보석보다 더 빛나는 아들의 어머니 사랑. 찬란한 무지갯빛으로 떠오른 고귀한 사랑. 영혼과 영혼이 맺은 진실한 사랑.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그 사랑의 불꽃은 꺼지지 않으리라. 이별은 곧 사랑의 시작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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