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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김혜자(nancymo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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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하늘에 부르는 노래
10/30/2016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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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자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린다. 밑도 끝도 없이 내리는 가을비에 나무는 옷을 벗기 시작한다. 붉게 물든 단풍잎이 비를 안고 땅에 내려앉는다. 나뭇잎처럼 마음도 엷은 우수에 젖어 든다.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나도 하나하나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가 지나도록 입어보지 않은 옷과 쓰지 않은 물건들을 버려야겠다. 정리되지 않은 서랍과 옷장을 열어 본다. 친구에게 선물 받은 아프리카 원주민이 만든 스웨타, 동대문과 남대문에서 자질구레한 물건을 한구석에 밀어 놓는다. 순서 없이 넣었던 물건들도 하나하나 꺼내 본다. 어느것 하나 사연이 없는 물건이 없다. 무척 아깝다. 미련은 금물, 누구든 주인에게 나눠 주기로 마음을 굳힌다. 한때 소중했던 물건을 버린다는 것은 나의 추억을 버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옷장 구석에 걸린 빨간 원피스가 손에 잡힌다. 순간 울컥 눈물이 쏟아진다. 손이 떨리고 목이 멘다. 눈이 앵두 빛으로 충혈되고 마음이 후벼 파듯 아프다. 동생이 마지막 사다 빨간 원피스를 때마다 나를 슬프게 한다. 이별을 생각하기 싫어, 고이 간직했던 옷이다. 오래도록 느끼고 싶은 동생의 그윽한 향기다. 하얀 동생의 얼굴이 에리 깃을 타고 그려진다. 버리지 말라고 애원하는 눈빛이다.  



   우리는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자매였다. 나는 활동적이고 대담했고, 동생은 차분하고 조용했다. 감수성이 많은 나는 때때로 감정의 노출이 많았지만, 동생은 침착하고 냉철했기에 실수가 적었다. 아버지는 맏딸인 나를 유별나게 사랑하셔 동생보기에 민망한 때도 있었다. 편식하는 나에게 맛있는 음식과 좋은 물건을 양보하는 것이 동생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성인이 되어 각자의 삶을 때도 나를 위한 마음이 습관처럼 동생에게 젖어있었다. 그러던 어느 동생은 청천벼락 같은 위암 수술을 받았다. 가슴 치며 태우는 기도와 함께 태평양을 건너오고 갔지만, 그해 10 중순, 사랑하는 동생은 붉게 물든 단풍과 함께 야속하게 떠났다


어제는 동생이 떠난 12년이 되는 날이다. 세상에 가장 쓸쓸한 바람이 부는 날이었다. 주말의 도시는 조용히 비에 젖고 있다. 월레미트 (Willamette River) 물결도 빗물에 반사되어 번쩍거렸다. 동안 밤을 지새우며 단련했던 아픔이 다시 뜨겁게 붉은 반점으로 돋아났다. 옷깃을 여미고, 비를 맞아 떨어진 낙엽과 함께 걸었다. 바람 곁에 잔가지 하나가 눈앞에 떨어진다. 앙상한 가지 속으로 동생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워하는 나의 마음을 위로해 주기 위해 그가 보낸 선물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에 대한 그리움이 갈색의 사연으로 문신처럼 전해졌다. 조용한 카페에 문을 열고 들어가 앉았다. 동생이 미국에 때마다 즐겨 먹던 매콤한 피자와 맥주를 주문했다. 우린 모락모락 김이 나는 피자를 나누어 먹으며 행복을 쌓고, 웃음으로 사랑을 나누곤 했다.




 생각나니? 지금부터 14 , 어느 늦가을. 우리 함께 낙엽을 밟으며 걸었던 강가. 그날도 비가 내렸지! 네가 사는 그곳에도 비가 내리니? 비가 오는 날에는 너는 무얼 하니? 너도 이파리 무성한 가지에 숨겨진 둥지를 나처럼 보고 있니?” 

 

  () 조용히 비에 젖고 있다. 무리의 새들이 젖은 위를 나른다. 날아가는 새들이 코스모스처럼, 풋풋한 가을 향기가 배어있는 동생의 이야기를 전해줄 것만 갔다. 인생을 알고, 맛을 느낄 만한, 육십도 넘기고 가버린 동생이 그립다. 조각, 조각 모자이크 같은 시간을 주워 모아 찻잔 속에 띄어본다. 지금은 어떤 삶의 그림을 그리며 하늘에서 살고 있을까? 어렸을 우리는 함께 다녔다. 내가 성악 렛슨을 받으러 선생님 집에 때도 동생은 나와 동행해서 얌전히 밑에 앉아 시간, 시간도 기다렸지. 세파에 부딪혀 찢겨진 몸의 상처를 눈물로 감싸주던 너는 언니 같은 동생이었는데...  너는 갔지만, 나는 너를 보내지 않았단다. 지금도 마음속에 너랑 나랑 강가에서 함께 뒹굴고 있잖니?

 



  시간은 누구도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누가 모르랴, 적어도 나는 세월이 오는 것이 아니라 가는 것이라고 믿고 산다. 과거의 시간을 퍼즐 맞추듯 재조립해 보지만, 복원되는 순간들은 환상일 우리 곁에 되돌아와 주지 않는다. 그것이 가혹한 현실이라는 나는 안다. 오늘도 그토록 많은 아쉬움을 남겨놓고, 속절없이 하루를 보내고 있다.

 

 종업원이 가져다 영수증에 음식 금액보다 $12불을 팁을 놓고 식당 문을 나섰다. 영수증 끝자락에 동생과 함께 즐겨 찾던 곳입니다. 오늘은 동생이 하늘나라로 12 되는 날입니다. 슬프지만, 즐거운 추억이 담긴 곳입니다라고 써내러 간다. 더운 눈물이 소리 없이 쏟아졌다.  


 빗소리가 제법 굵게 창문을 때린다. 낡은 수첩 속에 기록된 주소록을 펼쳐본다. 세상에 주소가 없는 동생의 이름. 모아 놓았던 편지를 읽어본다. 문장마다 따뜻한 마음이 살아 춤을 춘다. 그리운 이름을 노래처럼 하늘을 향해 불러본다. 얼굴도 그리고 음성도 기억해 낸다. 가을날 맑은 하늘빛처럼 그윽한 향기로 다가 것만 같은 희망을 지울 없다. 망각의 시계바늘을 뒤로   돌려도 회상에 젖은 수채화는 가슴을 적신다. 그리움이 방안에 뭉게구름으로 피어 오른다.

 


  어제의 모습을 통해 오늘의 상처를 어루만질 있어야 한다. 발걸음이 머무는 곳마다 사랑을 나누어야 한다. 내가 찾고 있는 동생도 하늘에서 나를 찾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다시 만남을 믿는다. ‘오늘은 나의 시간, 내일은 신의 시간이라 한다. 나에게 주어진 오늘도 사랑하고 싶다. 앞마당의 고운 단풍이 지기 전에 하늘을 향해 동생의 이름을 목청껏 불러 본다.

"정희야보고 싶다!"


조선수필 4 2015 12 20 출판

 




빈 하늘, 여동생, 추모, 낙엽,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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