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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김혜자(nancymo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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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의 슬픔(下)
07/11/2016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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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자


   윈디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너무나 우연한 계기로 만나게 되었기에 필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계약서류를 결제갔을 국장 사무실에서 새로 부임한 장교와 인사를 나누었다. 가끔 우리 사무실을 찾는 소령이 하루는 나보고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자기 여자 친구도 한국에서 왔다고 했다. 얼마 소령과 같은 공사업무를 맡게 되어  만나는 회수가 많아졌다. 현장을 오고 가는 속에서 공무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했지만, 가끔 사생활 이야기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대화 그의 여자 친구가 윈디 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6살의 아기가 있는 이혼한 여자라고 했다. 나는 윈디의 입양과정을 들려주며 울보 아가씨가 어느 곳에 있는지 보고 싶다했다. 다음날, 출근하니 자기 사무실로 달라는 소령의 메모가 있었다. 간밤에 현장에서 급한 일이 발생한 알고 그의 사무실로 달려갔다. 그는 웃는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어젯밤 집에 돌아가서 낮에 일어났던 이야기를 여자 친구에게 했더니, 자기 아버지 어머니 이름이 내가 알고 있는 분들과 같은  사람이었다. 어머 이럴 수가! 묘한 기분이 들었다.

 

 뛰는 가슴 안고 다음날 메리와 윈디를 만나러 갔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한구석에 바란 노인이 손을 들며 반겼다. 길에서 보면 알아볼 없도록 메리는 많이 변해 있었다. 25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니 어찌 변할 수가 있을까! 우리는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며 반가움에 떨었다. 옆에는 예쁘게 생긴 윈디가 무심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지난날들을 이야기하는 동안 메리는 계속 울고 있었다. 미국에 돌아온, 얼마후 남편과 이혼했고 메리 혼자서 윈디를 기르며 살았다고 한다. 생활이 윤택해 보이지 않았다. 윈디는 이쁘게 성장했고 어느 누가보아도 탐을 낼만한 미모를 지니고 있었다. 며칠 메리, 윈디와 아기 그리고 소령을 집으로 초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숙명처럼 깊은 우리들의 인연을 이야기하며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냈다. 사실 나는 윈디와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목을 끌어안고 울던 울보가 생생하게 기억 속에 있었기에 마치 잃었던 딸을 만난 기분이 들었다. 윈디도 어린 시절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싶고 한국에 대해 알고 싶어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한국 가보고 싶지 않아? 만약 그렇다면 시간 내서 한번 . 같이 줄게

 

아니 

 

 한마디로 거절을 했다. 말문이 막혔다. 윈디는 차갑고 냉정했다. 예상치 않았던 대답에 곤혹스러웠다. 난감해 하는 표정을 보며 윈디는 말을 계속했다. “내가 생각나는 한국은 울음뿐이야. 그래서 싫어. 나를 버린 부모도 싫고 생각하기도 싫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아파 숨이 막혔다. 더는 말이 없었다.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윈디를 만나지 않았다. 윈디는 과거를 알고 있는 나를 만나고 싶지 않을 것으로 생각 했기 때문이었다. 얼마후 메리는 여동생 집으로 여행을 떠났고 그들과 소식이 끊어졌다. 이따금 소령에게 윈디의 소식을 전해 듣었다. 어느 이른 아침에 소령이 사무실로 나를 찾아왔다. 동생 집에서 돌아오면 연락하겠다던 메리가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했다




그날 저녁 나는 윈디를 만났다. 윈디는 외롭게 자랐다고 이야기하며 많이 울었다. 태평양 바다를 건너 피부색이 다른 가족에게 입양된 다시는 버림받지 않기 위해 양부모의 눈치를 보며 피나는 노력을 하고 살았다고 했다. 어린 시절은 혼자서 자기를 버린 친부모를 그리며 울었던 어둡고 슬픈 기억뿐이라고 했다. 정확한 나이도 모르기에 입양한 날이 생일로 정해졌고 어쩌다 같은 피부색의 학생을 만나면 무엇인가 연결되는 민족, 언어, 단일성과 순수혈통성의 이데올로기를 찾아 방황하며 살았다고 했다. 존재부터 거부당했다는 느낌과  배반으로 받은 무서움은 남에게 정을 주기가 힘들었다고 했다. 자기는 버려진 아이라는 생각으로 괴로웠다고 했다. 양부모가 이혼한 엄마인 메리는 약물 중독으로 폐인이 되어 어두운 생활을 하였다. 모든 고통의 원인은 자기를 버린 한국의 친부모로부터 시작한 것이라고 생각되어 용서를 없다고 울며 말했다. 가지의 슬픔과 상처를 안고 살아온 입양아. 끊임없이 닥쳐왔던 파란 많은 삶을 살아왔을 윈디의 슬픈 고백을 듣고 나는 그가 조국의 뿌리를 부정했는지 이해할 있었다. 한국은 윈디가 태어난 곳이기는 하지만, 자신이 버려진 곳이기도 했다.

 

  메리의 장례식은 몇몇 친지과 함께 간단한 예식으로 끝났다. 그날 윈디는 울지 않았다. 다시 고아가 윈디를 바라보며 나는 생각에 잠겼다. 입양이 되어 새로운 가정이 생겼다고 해서 지내고 행복한 것만은 아니었다. 잘난 부모 만나 행복해 지리라고 믿었던 것도 나의 착각이었다. 상처가 깊을수록 치유될 없었던 어린 마음. 제거될 없었던 친부모에 대해 미움과 용서할 없었던 마음. 훌륭한 교육 환경 속에서 올바르게 성장할 있도록 키워준 부모도 있지만, 현실에서 출구를 찾지 못하고 상처투성인 입양아도 많다고 느껴졌다. 이것이 입양의 다른 슬픔이 아닐까?




  장례식장에서 나오니 색색 가지의 고무풍선을 사람씩 나누어줬다. 동시에 풍선을 하늘로 날렸다. 여름 맞이 준비를 하는 초목은 더없이 싱그러웠다. 파란 하늘빛에 조화된 오색 무늬 풍선이 둥실둥실 뭉개 구름 타고 날았다. 애틋이 멀어져 가는 풍선을 향하여 입양된 모든 아이에게 하나님 원하옵건대,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절망이 있는 곳에 소망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




 눈물이 흐른다. 풍선이 모두  날아간 하늘은 왠지 쓸쓸하게 보였다. 추억이란 가끔씩 아름다운 구슬처럼 꿰어지는데, 메리와 윈디의 추억은 입양의 슬픔으로 마음속에 영원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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