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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김혜자(nancymo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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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迷路)
05/09/2016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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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연기를 본다. 이곳저곳에서 이글거리는 불꽃이 하늘로 나른다. ! 누군가가 타고 있다. 한 사람의 삶이 사라지고 있다. 망자의 혼이 저승 문턱을 넘어 자유롭게 하늘을 유영한다. 죽음은 육체가 사라지는 것일 뿐 영혼에는 죽음이 없다고 본다. 갠지스 강 변 노천 화장터에는 시체가 늘어서 있다. 삶을 끝낸 시신이 화장의식을 거쳐 강안겨 극락으로 떠나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는 중이다. 수십, 수만 개의 셀 수 없는 사연들이 하나씩 활활 타는 불 속에서 춤을 추고 있다




인간의 겁()을 벗어버린 육신의 잔해(殘骸)는 부처님이 목욕한 어머니의 젖줄, 갠지스 강에 뿌려진다. 화장은 속세에 오염된 영혼을 정화하는 의식이다. 영혼을 정화할 필요가 없는 어린애와 승려의 장례식은 때때로 화장하지 않고 강물에 흘려 보낸단다. 흰 광목으로 감은 시체를 운반하는 나룻배가 내가 타고 있는 배를 스쳐 화장터로 오르고 있다. 떠도는 영혼을 따라 갈매기가 호위하듯 그 위를 나른다. 산 자나 죽은 자나 갠지스 강과 함께 흐른다. 과거와 현재가 삶과 죽음으로 공전하는 문화적인 현실의 물결이 풍랑처럼 밀려와 가슴을 조인다. 책에서 읽고 사진으로 보았지만, 모든 사물이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갠지스 강 변에는 계단식 목욕장이 길게 만들어져 있다. 이른 아침 갠지스 강에서 목욕하는 인도인들을 본다. 가슴이 뛴다. 삶에 매달리지 않고, 생에 발목 잡히지도 않게 살고 싶은 사람들이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그들의 영혼 울림으로 전달돼 온다. 서늘한 바람이 목덜미를 스친다. 세상의 먼지가 온몸에 두드러기로 솟아오르는 기분이다. 오랜만에 강물에 귀 기울여본다. 각자 다른 모양의 죄를 포옹하고 씻어내는 강물의 유유함에서 고통스럽게 울부짖는 인간의 몸부림이 물결로 메아리친다.  



갠지스 강은 내가 본 세계 어느 강()과는 너무 다른 곳이다. 세계 4대 문명발상지인 이집트의 나일 강, 중동에 메소포타미아, 중국의 황하와 다른 또 하나의 독특한 신비가 담긴 곳이다. 만약 인간에게 죽음이 없다면 삶의 의미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 이곳에서 나는 삶 속에 죽음 있고, 죽음 속에 담긴 삶의 철학을 경험하고 있다. 강렬한 힘의 전율이 온몸으로 전파된다. 감정에도 에너지가 있나 보다. 머리에서 못 받아들이니까 통증이 생긴다. 수습할 수 없는 공포와 희열이 피가 거꾸로 도는 블랙홀(Black hole)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다. 하늘엔 은하수가 쏟아져 내린다. 종교는 다르지만, 인간의 번민과 고민, 그리고 사랑은 인류의 공동 감정이며, 죽음은 그 누구에게도 어길 수 없는 생명의 질서로 여겨진다.




인생을 좀 더 알려면 인도를 가라는 말이 생각났다. 인도는 보고, 느끼고, 마음을 비우고, 사색(思索)하게 하는 나라다. 히말리아 산맥 아래, 네팔 왕자인 부처님이 태어나신 곳. 세계 각가지 종교가 공존하는 나라. 멈춰 선 것처럼 옛 모습 그대로 사는 나라. 질서가 없고 차선이 없고 신호등이 없지만, 무질서 속에 질서가 존재하는 나라. , , 염소, 낙타, 양 떼 등 온갖 동물과 함께 사는 나라. “을 밟지 말고 걸으라는 말이 처음에는 이상하게 들렸지만 돌아올 때는 친숙하게 들린 나라. 지구촌에 이런 곳이 또 있을까? 말로 다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낯설고 더럽지만, 이상하게 매력적인 나라다. 힌두교의 윤회 사상은 이승에서 자신의 삶에 불평하면 다음 생()에서 더 나쁘게 태어난다는 것이다. 이런 사상을 이어받은 그들은 비참한 생활환경에도 잘 순응하며 단순하게 살아간다


새벽 안개가 갠지스 강을 솜이불처럼 품고 있다. 작은 금빛 항아리를 들고 맨발로 강가로 들어가는 아낙네를 본다. 어제를 살다간 영혼들의 뼛가루가 뿌려진 강물을 항아리에 소중히 담고 있다. 아플 때 한 숟갈씩 물을 마시고, 때로는 한 방울의 물로 상처를 치료하는 보약 중의 보약으로 쓰기 위해서다. 슈퍼 박테리아가 들끓는다고 생각되는 뿌옇고 탁한 갠지스 강물을 인도인들은 신()이 주신 성수(聖水)로 생각한다.

 

산 사람도 죽은 시체도 찾는 갠지스 강. 시뻘건 불꽃 속에 타오르는 영혼. 웃다 울다, 울다 웃었던 무거운 인간의 삶은 하얗게 타버린 한 줌의 재가 된다. 망자의 그리움과 미움의 세월이 한 순간에 흔적 없이 사라지는 곳. 윤회(輪廻)의 굴레에서 벗어난 영혼들은 이승과 저승 사이를 날고 있다. 천당과 지옥으로 나누어지는 하늘가에 머뭇거리는 하얀 연기를 본다.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는 길목에서 잠시 쉬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길이 우리의 길이 아닌지 조명해 본다.

 

 인생은 되돌아오는 길이 없다. 날아라. 날아라, 하늘 끝까지 날아오르라. 가보면 안다고 끝이 보인다고 둥근 달도 손짓한다. 나의 심장에도 광풍이 분다. 이것이 인생(人生)인데, 인생은 미로(迷路) 인데….



Note: 최근 월간조선문학지에 게재 되었습니다.

월간 조선문학, 2016년 5월호(통권 301), 이달의 수필, P241-244, 조선문학사, 서울, Korea


 


미로, 인도, 갠지스강, 화장,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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