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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향 (愛鄕)
04/26/2016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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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가는길"      송경희, Oil Paint 10호, 2015.09


 화창한 목요일 이다. 시니어 음악교실을 가기 위해 바쁜 걸음으로 집을 나선다. 봄 학기, 개강 첫 시간이니 많은 분이 오실 것으로 예상한다. 외로운 마음들이 함께 모여 즐겁게 노래하고 손뼉을 치며 동심으로 돌아가는 언어와 느낌이 통하는 즐거운 시간이다.   

 

  워싱턴주 밴쿠버 시니어 센터는 60이 넘으신 분이면 누구나 환영하고 있다. 요즈음은 홍보가 잘 되어, 강 건너 포틀랜드에서도 많이 참석하여 시니어 학생들로 교실은 가득하다. 내가 하는 일은 시니어 교실을 진행하고 때로는 노래도 함께 부른다. 노래할 때 학생들의 얼굴은 아이처럼 순진하고 행복해 보인다. 더욱이 동요를 부를 때는 마치 옛날로 돌아간 듯 생기가 돌고 즐거워하신다.  많은 추억이 담긴 동요 속으로 돌아가고 싶은 얼굴들을 읽을 수 있다.    

 

 두 시간 정도 노래와 초빙 강사의 말씀을 듣고 나면 곧 점심시간이 된다. 사랑으로 봉사하신 분들이 정성껏 준비한 다양한 음식과 맛있는 후식이 시니어 학생들을 기다린다. 기쁜 마음으로 노래하고, 맛있는 음식을 대접받는 학생들의 얼굴은 기쁨으로 가득해 천국이 따로 없는 것 같다. 음식은 단순한 것 같지만 서로 같이 나눌 때 정을 느끼게 하고 넉넉함을 전하는 인간 교류의 매개체인 것 같다. 그때문에서 인지 정이 그리운 시니어들은 여름, 겨울방학을 싫어하고 개학을 기다린다. 기다리는 눈빛이 아름다운 그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나는 항상 기쁘다. 음악 시간을 기다리고 즐거워하시는 얼굴들을 보면 없던 힘도 절로 난다. 한분 한분 모두 귀하신 분들이기에 더 열심히 섬겨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을 만나니 새로운 이야기가 많다. 이북에서 월남하신 장로님 한 분과 말씀을 나누었다. 몇 년 전에 심장 수술을 하신 분이다. ‘세월따라 실속 없는 연륜만 쌓여 이마가 천정에 닿는 심정으로 사신다는 분.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은 두 손자와 함께 사시는 장로님은 막내손자가 내년이 되면 대학을 졸업한다. 부모도 없는 두 손자를 데리고 얼마나 많은 아픔을 겪으며 사셨을까? 고향인 평양을 버리고 타향살이 반세기를 훌쩍 넘기신 장로님. 이젠 어깨에 짊어진 짐을 내려놓을 때가 됐다. 한강과 낙동강이 흐르는 사람 사는 냄새가 짙은 조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꿈이라고 말씀하신다. 빗장을 걸어놓은 삼팔선 넘어 고향은 못 가도 한국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싶다고 했다. 옛날의 가난한 시절도 이젠 따뜻하고 아름답고 그립게 느껴진다고 하신다. 그리움의 종착역은 역시 고향인가 보다. 잃어버린 세월을 향한 그분의 아픔. 부러진 나침반의 바늘을 따라 그 옛날 고향을 그려보는 얼룩진 얼굴이지만 눈빛은 백열등처럼 빛나 보였다. 깊게 파인 주름살처럼 시간에 대한 추억의 그리움이 절실한 그분의 마음이 볼수록 애처롭다.

 

청년을 인생의 아침으로 표현한다면 노년은 인생의 저녁과 같다. 아침도 중요하지만, 저녁은 더 소중하다고 말씀하시는 그분.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있는 그분의 뒷모습은 일몰을 바라보는 몰락의 슬픔보다 찬란하게 작열하는 석양의 장관같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사람은 고향에 대한 애착을 지니고 산다. 시간은 흘러가고 기억은 쌓인다. 시간에 대한 추억이 그리움으로 가슴과 눈빛에 맺힌 장로님. 그리움의 종착역이 된 포근한 고향을 그리는 그분에게서 지는 붉은 노을 보았다. 들로 산으로, 강으로 바다로 숨을 쉬던 어린 시절을 그리는 장로님. 아름다웠던 청춘을 이 땅에 주인 되기 위해 꿀벌처럼 열심히 노력하신 삶. 아름다운 단풍의 계절을 지나 쓸쓸한 겨울의 길목 앞에서 건너온 세월을 뒤돌아보시는 장로님. 다 지나간 아름다운 그림 이야기다.

 

  자의든 타의든 뿌리 뽑힘을 당한 이민자들은 행동과 개념을 공감할 수가 있는 고향을 늘 그리며 산다. 절대로 평범하지 않았던 이민생활의 삶은 순간순간의 연속이다. 우리는 매일 매일, 매시간 선택을 하면서 살고 있다. 고국에 살던, 이민을 왔던, 각기 자기 삶에 충실하고 만족하면 되지 않을까? 모두 걸어온 길이 다른 것과 같이, 각기 인생을 보는 관점이 달라서 인생에 정답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작은 물방울 하나가 냇물과 강물이 되듯이 이민자의 마음에 한 점의 작은 사랑은 시린 가슴으로 녹아 들어 고향의 애착으로 활활 가슴을 지핀다. 원초적인 고향을 완전히 지울 수가 없기에 우리는 오늘도 노래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가 잊혀가는 산천을 그린다.

 

음악 시간을 끝내고 나오니 눈이 부시다. 밝은 태양이 내려와 꽃과 푸른 초목을 태운다. 부서지지 않은 하늘이 한마당에 파랗게 모여 있다. 여름이 오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익숙해져 버린 쓸쓸함. 지치고 힘이 들어 가끔 기대고 싶어질 때 그러나 아직도 그런 쉼터를 마련하지 못해 가슴이 아려 온다.

 

맨발로 황톳길 걷던 고국의 품에 비석만은 모국어로 쓰고 싶다고 하신 그분의 바램처럼 잃어버린 고향으로 나도 달리고 싶어 진다. 나그네 손을 잡아 줄 수 있는 하얀 숨결이 숨 쉬는 시니어. 우리는 그리운 고향을 찾아 하늘을 나르고 있다. 몇 시간이면 날아갈 수 있는 한국인데 오늘따라 왜 고향은 이리 멀고 또 먼 곳으로 느껴지는 것일까? 텅 빈 주차장 하늘에 맑은 구름이 지나간다. 어서 따라 오라는 손짓을 하는 것 같다.


2015.06

애향, 고향, 밴쿠버, 시니어 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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