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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과 용기
06/04/202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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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6일은 D-Day이다

즉 제 2차 세계 대전 때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한 날이다

암호명으로 해왕성 (Operation Neptunus) 또는 

디 데이(D-Day)로 부르는 날이다.





1944년 미국 아이젠하워 장군이 연합국 원정군 최고 사령관으로

지상군 책임자는 영국의 사령관 몽고메리 장군으로 임명되어 

5,000대의 함선과 160,000명의 병력을 동원한 

지상 최대의 상륙 작전을 시도했다





연합 공수부대 24,000명의 투하되었고 그중에 일원으로 참전한

시아버님은 낙하 도중 발에 총상을 입어 고생하셨다.

꽃다운 나이에 당한 부상을 그분은 자랑스러운 

조국의 명예를 위한 상처라고 생각하셨다




노르망디 상륙 작전(Normandy Landings)은 프랑스의 해안 중 적군의 

방어가 허술한 노르망디의 해안으로 정해졌다

노르망디의 해안가 5곳 상륙 목적지 중

미국군은 유타(Utah)와 오마하(Omaha) 해안영국군은 소드(Sword)과 

골드(Gold) 해안, 캐나다군은 주노(Juno) 해안으로 정해졌다.






상륙 예정일은 6 5일로 정했지만 악천 기후로 6 6일 하루가 연기되었다.

노르망디 폭격은 2,200대 이상의 미.영 연합군의 폭격기가 해안가와 

내륙 지역의 목표를 자정부터 공격하면서 시작하였다.



 



전반적으로 상륙 부대는 몽고메리 (영국) 장군 지휘로 다국적 해군, 공군 

(폴란드, 네델란드, 체코슬로바키아, 프랑스, 노르웨이, 덴마크

부대가 참여하였다.





미국군의 상륙 지역 오마하 해안가 폭탄 공격은 먹구름으로 지정된 목표를 찾기 

어려워 지연되고, 강한 해류와 조수가 높은 거친 바다에 

전차 32대 중 27대가 가라앉고, 해안에 묻힌 지뢰, 철선 장애물이 많았다


대부분의 병사가 절벽 위 공격으로 가장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예상했던 침공 당일의 오마하 해변의 목표는 침공 3일 후에 이루어졌다.  







많은 희생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독일의 항복이 앞당겨졌다. 





노르망디 상륙 작전 (1944) 3년전 1941, 미국 역사상에 

가장 어린 12살의 소년이 해군에 지원하였다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텍사스 휴스턴에 살던 

소년 캘빈 그레이엄(Calvin Graham)이다





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1918년 - 1945), 

제 2차 세계 대전으로 이어진 시절, 

미국은 대 경제 불황으로 가난한 시절을 보낸 때였다


굶주림과 열악한 가정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는 어린 나이에 해군 입대를 자원했다

그의 이야기는 영화 (Too Young the Hero)1988년 상영되었다.

 



군인 입대 자격은 최저 나이 17세가 돼야 할 수 있다

부모의 동의 지원서가 있으면 16세에 군인 입대가 가능했다

다른 아이들보다 발육이 빠른 캘빈은 형의 옷을 입고 지원하지만 

17세의 청소년으로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의 동의 사인을 위조한 서류로 해군에 입대하게 된다






캘빈의 군대 생활은 불우한 환경과 굶주림에서 탈출구였다

6주간의 훈련을 끝낸 그는 하와이 진주만으로 배치된 후

과달카날 근해에서 일본군과 해전을 벌인다




격전 도중 전기장치 고장으로 그가 탄 배(US South Dakota)는 

일본군의 포격으로 3,300명의 선원 절반이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었다

캘빈도 부상을 입었지만 피범벅인 얼굴로 죽어가는 동료들을 위험에서 

구출 작업을 하며 임무를 이행했다





그가 탄 해군 함정은 수리를 위해 미국 뉴욕으로 돌아왔다

캘빈은 허가 없이 텍사스 할머니 장례식에 참여하여 

무단 이탈(AWOL Desertion) 죄로 군인 교도소에 감금된다


감옥에서 그는 13살의 생일을 맞는다

캘빈은 불명예제대 (Dishonorable Discharge)와 

미성년자로 해군 근무 기록은 모두 삭제된다

휴스턴 집으로 돌아온 캘빈은 전쟁 파편으로 다친 후유증으로 고생을 하게 된다



캘빈은 17살 되던 해, 미 해병대에 다시 지원한다

등뼈의 상처로 3년 뒤 제대를 한다

그 후, 삭제된 태평양 전쟁 복무 기록과 훈장을 돌려받기 위해 

국방부에 진정서를 신청했으나 거절 당한다.   




1978년 국회와 카터 대통령에게 재신청한 서류에 감명받은

 카터 대통령으로부터 훈장과 복무기록을 승인받게 된다


1988년 레이건 대통령은 그의 복무 기한에 따른 보상과 의료보험 혜택과 

연금을 받고 국립 묘지에 안장 될 수 있는 권리를 받았다



최연소자 군인이었던 캘빈은 1992년 심장병으로 사망했고 

그의 묘비에는 “Too Young the Hero”라는 묘문(墓文)이 쓰여있다.



 


세계 1차 대전과 세계 2차 대전 때 많은 어린 영웅들이 많다

교실에서 공부해야 할 초등학교 졸업을 앞 둔 칼빈은 조국을 위하여 

미국 군대 역사상 제일 어린 12살의 나이로 입대한  

빈 그레이엄(Calvin Graham) 의

영웅적인 영화(Too Young the Hero) 줄거리이다.


 


영국 고위층 자녀들이 다니던 이튼 스쿨 (Eaton School)의 

졸업생 중천 명이 세계 1, 2차 대전에 전사했다.  


한국 전쟁에 중국의 마오쩌둥도 아들을 잃었고 그의 시체는 다른 

중공군 전사자들과 똑같이 한반도에 묻혔다.  

한국 전쟁에 142명의 미국 장성 아들이 참전했고 이 중 35명이 목숨을 바쳤다.

 


  8군 사령관 제임스 밴 플리트(Van Fleet) 장군 외아들 지미 밴프리트 중위도 

임무 수행 중 한국 전쟁에서 실종된다.

 미군은 즉각 수색대를 파견했지만, 그의 시신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인 8군 사령관은 더 이상의 희생을 막기 위해 모든 수색을 중단했다





1,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월튼 워커(Walton H. Walker) 6.25 당시 

8군 총사령관으로 나는 죽을 때까지 한국을 지키겠다

죽는 한이 있어도 무조건 방어하라 (Stand or Die)는 명령으로 

낙동강 방어선을 사수(射手)해 인천 상륙 작전의 발판을 마련한

낙동강 전투를 역전한 승리로 이끈 장군이다.  




장군의 외아들 샘 워커(Sam Walker) 대위도 

24사단 보병 지휘관으로 아버지와 함께 한국 전쟁에 참전하였다


우락부락한 외모로 불도그(Bulldog)’이란 별명의 워커 사령관은 

이승만 대통령을 대신해서 부대 표창을 전하고 승리의 주역인 

아들 샘 워커 대위에게 미국 정부의 훈장을 수여하기 위해 이동하던 중 

한국군 트럭에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US 8th Army General Walter Walker 사고 현장 지점

도봉구, 도봉동 596-5 번지, 전선 대 앞


일본 도쿄 근무 중인 UN군 최고 사령관 맥아더 장군은 

아들 샘 워커 대위에게  아버지 워커 사령관의 유해를 알링턴 

국립 묘지에 안장토록 임무를 맡긴다


워커 대위는 감정을 꾹 누르고 단호하게 거절한다

저는 일선 보병 중대장입니다전쟁터에 군부 대원을 두고 돌아갈 수 없습니다

의전 부대에 맡겨주십시오.’ 


맥아더 장군은 낮은 목소리로 명령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훗날, 그는 당시 명령이라 어쩔 수 없이 군 부하를 남기고 

먼저 전장을 떠나왔다는 생각에 오랫동안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General Sam Walker


아버지 워커와 아들 워커는 미국 역사상 최초의 육군 대장(4, Four Star),

 영웅적 공로를 세운 사람이며 미 육군의 군인으로 두 세대를 걸쳐 

대한민국을 지켜준 부자(父子)이다


육군 참모 총장으로 유력했던 재직 중, 카터 대통령의 

주한 미군 철수 입장에 반대하다 예편 된 한국과는 질긴 

인연의 장군 아버지와 장군 아들이다

그들은 한국 전쟁의 영웅이다


20세기 가장 끔찍한 한국 전쟁 속에서 꽃다운 목숨을 바친 

모든 군인들의 용기와 희생에 머리가 숙인다. 


많은 장성(將星)의 아들이 남의 나라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참전하여 

부상을 입고 목숨을 바친 희생과 용기에 숙연해진다

전쟁이 남기는 것은 핏물 밴 총 칼 만이 아니다




자식을 화약 냄새, 땅에 내려 꽂히는 폭탄의 불기둥의 처참한 전쟁터로 보낸 

부모의 마음은 어떨까




전쟁이 시작되면 조국에 헌신한 젊은이들을 군대로 보낸 부모는 

길고 불안한 밤을 기도하며 밤을 지샌다.





살아남은 자들 가슴에 묻어 놓은 사연 들

잘 알지도 못하는 나라에 삶의 희망을 갈구하며 목숨을 던져 버린 그들


애국은 독립 운동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국민의 의무를 충실히 하는 것이 애국 정신이다

전쟁은 항상 수많은 생명이 사라지고 또 수많은 비극을 낳는다.  





76년이란 세월 속에 일제 강점기(日帝 强占期)의 근원이 된 D-Day가 돌아 온다.

그들의 희생, 용기, 숭고한 정신에 감사를 보낸다.


 


국가를 위해 숭고한 정신으로 책 대신 총대를 잡은 

12살의 어린 영웅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끈 

지도자와 각 개인의 용맹성이 

오늘날 미국을 지키는 힘의 뿌리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God Bless America and Our Military Service Memb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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