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cymoore
수필가:김혜자(nancymoore)
Washington 블로거

Blog Open 04.15.2016

전체     108393
오늘방문     36
오늘댓글     0
오늘 스크랩     0
친구     19 명
  최근 방문 블로거 더보기
  달력
 
삶의 길 위에서
01/27/2019 18:21
조회  2546   |  추천   21   |  스크랩   0
IP 24.xx.xx.17


                                                         나의 어머님 엄영선의 수필 



  날이 밝아온다

2019년 새해를 맞이한 지도 한 달이 지났다

지난해를 생각하면 몇 번 아픈 적이 있지만

그런대로 풋풋하고 행복한 날이었다


창문을 연다

뒷마당 키 큰 반얀 트리(Banyan Tree)에 사는 

새의 합창 소리가 맑은 공기를 가른다

새날을 맞이하는 축복과 환희의 노래처럼 들린다.





천장까지 오른 아이비(Ivy) 화초에 물을 주며 굿 모닝인사를 한다

구석에 자리 잡은 화초에 눈웃음으로 인사를 한다


어항 속에 사는 작은 물고기 하나에도 따뜻한 미소를 보낸다

감미로운 잔잔한 음악이 내 방에 가득히 흐른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가 될 것 같다





세상은 하루하루 변하고 있다

노인이 되면, 사연(事緣), 지연(地緣), 학연(學緣)은 물론 혈연(血緣)까지도 

멀어지는 현실에 나는 잘 적응하며 지내고 있다


노인 우대(優待)라는 유교 사상은 없어졌고 분별없이 나서면 

주책없는 노인이라 백안시 당한다는 것을 나는 가슴에 새기면서 산다

새로운 물결을 타고 슬기롭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작년 추수 감사절 교회에서 주님께 예배를 드렸다

정성껏 준비된 맛있는 음식과 과일, 곡식과 함께 모든 신도가 감사 예배를 올렸다

다음 날, 교회에 남은 음식을 양로원과 교회 90세가 넘은 분에게 

선물로 나누어 주었다


우리 집을 방문한 권사님께 차() 대접하며 물었다

우리 교회 90세가 넘은 분은 몇 집이나 됩니까?’ 

세 집입니다’ 


권사님의 대답을 듣는 순간, 어둡고 싸늘한 슬픔이 가슴에 퍼진다

천 여 명의 신자 중에 90세가 넘은 분은 셋 뿐이라니…. 

순간, 내 방문 앞에 서성거리는 어두운 장막이 깔린 것도 모르고

철 없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청춘의 파랑새 같은 기분으로 살았다는 생각이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땡 땡 땡 머릿속에서 정신차리라는 경종이 울린다

삶에 굴복하라는 강()한 전달이 온다

멍멍한 허탈감이 피부 속으로 스며든다.



()의 마지막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생각해 본다

수명의 길이를 생각할 것인지, 삶의 질을 택할 것인지는 

내가 선택해야 할 숙제이다

고립감과 우울한 몇 날을 보냈다


오랜 세월 살고 보니 삶의 결론이 나온다

내가 살아온 한국 현대사의 처절한 아픔과 불행은 

오랜 세월과 함께 치유됐지만

또한 소중하고 귀한 값진 슬픔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밑 바탕에 자리 잡은 어린 시절 아름답고 순수한 감정은 

평생 기억에 남고 향기로운 여운으로 마음을 적신다.  





나는 소중한 희로애락(喜怒哀樂모두 누리며 살았다

산다는 것은 시간이며, 시간은 생명(生命)이다

삶은 영원한 현재이며, 죽음 후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귀중한 시간 속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다


황금 같은 삶이 허락하는 날까지 나는 사랑으로 채우고 싶다

나이와는 상관없이 신체적, 감성적, 사회적인 모든 것을 귀한 가족

친구와 함께 사랑으로 일취월장(日就月將) 나누며 살고 싶다.





정신을 가다듬고 주일 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옷을 입고 교회로 나선다

정성스러운 기도를 드린다


예배 후, 교회 문에 서신 세 분 목사님과 인사의 악수를 한다

먼저 담임 목사님께 인사를 드린다

평소에 말씀이 적은 목사님이 빤짝빤짝 하십니다하며 미소로 답례를 하신다


순간, 나는 악수하던 목사님의 손을 끌어당겨 손등에 키스했다

마치 나의 영혼이 닻 줄을 타고 하늘로 나는 기분이 든다

어찌 그리 따뜻한 배려와 슬기로운 표현을 하실까? 




놀라워라

하늘은 푸르고 금빛 화살처럼 강하고 눈이 부시다


좌절하고 무너지고 넘어질지라도 살아있다는 즐거움은 

기쁨으로 나를 유혹한다


바로 이것이 삶의 사랑이다





지난날 돌아보니 자랑할 것 하나 없지만

이제 나의 남은 저녁 노을 길은 

하늘로 가는 길에 이쁜 꽃씨 뿌리며 

가는 것이 남아있을 뿐이다.


 감사하며 또 감사하며,

사랑하고 또 사랑하며



 

 20191월 어느 날



삶의 귀중한 시간, 가족, 친구, 사랑
"어머니 엄영선님의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 블로그의 인기글

삶의 길 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