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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김혜자(nancymo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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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아픔
08/11/2018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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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자     


어둠이 엷어져 내린다.

시간의 흐름이 유일하게 시각적으로 감지되는 꼭두새벽이다

안방 문을 가만히 열고 희미한 불빛에 보이는 어머니를 바라본다

누워 계신 앙상한 작은 체구의 모습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윤기 있고 아름답던 피부는 검게 퇴색된 피부로, 

거칠어진 손 마디와 주름살은 나뭇잎 다 떨어진 겨울 나무같이, 

추수가 끝난 텅 빈 들판을 바라보는 느낌이 든다


혼자 외길을 걷고 있는 어머니

깊어가는 겨울 길을 떠나 지금 어느 길로 가고 있는 것일까

하얗게 타 들어 가는 아픔이 실핏줄 타고 나의 전신으로 퍼진다

사랑하는 만큼 아픈 고통이다.




밤새 안녕이라는 말처럼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전화를 받고 급히 하와이로 달려왔다

어머니는 사계절 늘 아침 산책을 하셨다

잔병 없이 운동으로 다져진 강단(剛斷)의 몸도 가는 세월에는 못 당하는가 보다

혹시나 염려하던 일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나 홀로 갑자기 막막한 사막 한 곳에 서 있는 기분이 든다

전혀 준비되지 않은 낯선 곳에서 홀로 맞이하는 시간의 중압감

하늘까지 이어지는 외로움이 온몸을 감싼다


슬픔도 누군가 함께 나누면 반으로 줄어든다고 하던데... 

먼저 간 여동생이 몹시도 그립고 의지하고 싶다.




 

여름 올림픽이 시작하던 1988년 아버지는 우리 곁을 떠나셨다

목욕을 즐기시던 아버지는 심장마비로 홀연히 수증기를 타고 

78세의 화려한 인생의 막을 내리셨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불상사에 한국에 혼자 남아있던 여동생은 

침착하게 끝까지 정성을 다하여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보내 드렸다

장례식에 나는 참석을 했지만 모든 절차는 여동생이 처리했다


혼자서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얼마나 당황했을까

그렇게 지혜롭고 착한 여동생을 하느님은 왜 빨리 불러들였을까

언니와 같은 동생이 마구 보고 싶다.

 



불볕더위다많은 사람이 오고 싶어 하는 하와이지만 

이글거리는 햇살에 기가 빠지고 맥이 풀리는 여름이 싫다

따갑게 내리는 더위가 앞뒤 돌아볼 여유도 없이 심신을 지치게 만든다

부엌에서 하루 해를 보낸다


붉은색으로 물든 황혼이 지는 시간이 되면 나는 장을 보러 시장을 간다

입맛을 돕는 음식을 만들어 냉장고에 차곡차곡 넣어 놓는다


더위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고 몰려드는 피곤함에 몸살을 앓고 있다

오늘도 뜬 눈으로 새벽을 연다.




 다리 옮기기도 힘든 쇠진한 체력으로 인생의 가랑비 맞으며 걸어가는 어머니

자식에게 부담이 된다고 같이 살기를 거부하시는 어머니

혼자 두고 가는 발 길이 무겁다


슬픔을 넘어 뻥 뜷린 가슴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기에 

심장의 박동처럼 통증이 발목을 잡는다.

 



엄마한 달 후에 다시 올게

아줌마가 잘 돌보아 줄 거야엄마


우리 서로 약속해

잠시라도 힘들다고 생각돼도 울지 말기


혼자 있다고 생각돼도 울지 말기

엄마가 가는 길은 누군가 가는 길이니 힘내고 울지 말기


그래도 눈물이 나면울 수 있다는 것도 축복이라고 생각하기

엄마 내가 다시 올 때까지 힘내!


가정이 있고 생활이 있기에 어머니를 두고 돌아서는 

사랑과 불효의 엇갈림이 계속된다 


떠나는 시간이 가까워져 온다

눈가에 젖어 드는 아쉬움


약한 모습 서로 들키지 않으려고 흐르는 눈물을 가슴에 담는다

셀 수 없이 흘린 깊은 정()은 손가락 끝에 매달린 저림같이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훗날 내가 떠나는 날 나도 낙엽처럼 홀연히 떠날 수 있을까

붉은 노을이 타들어 가고 있다.

 




언니야힘들지너무 혼자 애쓰지 마

인생이 다 그런 거야

낯익은 여동생의 목소리가 들린다


하늘까지 이어지는 나의 슬픔에 띄워 보낸 한 조각의 위로의 말

돌아서는 나의 눈가에 젖어 드는 그리움의 눈물이 가슴을 적신다

인연의 고리로 엮인 사랑의 아픔이 이런 것이구나! 


어느 시인의 말처럼사랑 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남아있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 따뜻한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바람이 분다

동생의 따뜻한 향기가 짙게 다가온다

나와 동생 사이를 이어주는 탯줄을 끊고 탈출한 유성이 

타원형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진다

사랑하자헤어지는 그 날 까지

또 사랑하자얼마 남지 않은 그날까지


엄마 한 달 동안 잘 견디어 줘

나 다시 올 때까지

사랑해 엄마.

 


 


사랑의 아픔, 엄마, 여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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