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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속에 행주치마
03/06/2016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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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속에 행주치마


고등학교 졸업을 하고

마땅히 입을 옷조차 없던 시절

교실에 나란히 앉아 수업을 받던 친구들

모두 모두 서울대, 이대, 연대 고대,

화려한 출발을 했건만

민중들의 삶의 터전

직장이라는 곳을 다니며

자존심을 추수리기에 급급하던 시절


그런대로 몇 년이 지나니 적응이 되어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아니,

이러다간 정말 뒤쳐진 인생을 살게 되면 어쩌지?

그 때부터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눌리기 시작했다.

대학을 다니지 못해도 대학 다닌 친구들보다

좀 더 나을 수는 없을까.


생각해낸 것이 무언가 배워서

이름을 날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때부터 배울 것을 찾아 다녔다.

우선 내게 소질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부터

성우학원, 펜글씨, 붓글씨, 속독, 속기 학원을 필두로

미술학원, 피아노학원, VIDEO 학원, 그리고 꽃꽂이 학원을

다녔다. 어떤 것들은 그냥 수료증으로 끝내고, 어떤 것들은

자격증을 획득하고, 어떤 것들은 아직도 배워야 하는 것.


이렇게 유명해지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때론 반짝 소문이 나거나

언론을 타는 적도 없지는 않았다.

우리나라 학원이라고 이름을 가진

배움터를 섭렵하면서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그게 바로 행주치마다.


먹을 갈면서 입어야했고,

그림을 그리면서 입었고,

꽃꽂이를 하면서

행주치마를 챙겨 입었다.


1989년 3월 4일 내 나이 45세

정식으로 미국 유학을 왔다.

시골 조그만 신학교에 입학을 하고

주말에는 조그만 교회에 가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2년이 지난 후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오듯

LA이로 왔다.

자그마한 학교가 아닌 이름있는 학교로 전학을 하고,

교회도 역시 커다란 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강당 꽃꽂이를 시작했다.

그 때부터 또 행주치마를 걸치게 되었다.


그런 생활로 8년이 지난 후

이름 있는 명문 신학교를 졸업하고

이름 있는 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1999년 목사안수를 받고

곧이어 선교회를 설립하고,

홈리스 사역을 시작하였다.

그 때부터는 행주치마를 벗을 날이 없었다.


20여 년이 다 되도록 행주치마를 입고 살았다.

나의 행주치마는 나의 삶의 유니폼이 되어

어떤 행사에도, 예배시간에 설교를 할 때도

늘 걸치고...


나름대로 행주치마에 대한 애착과

신념이 생겼다.

행주치마를 걸치는 것은

말로만 하는 사역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역을 말한다는.


Ready to Serve anytime, anywhere!

행주치마는 말이 아니요, 행동이다.

행주산성에서 아군들이 가진 무기라곤

어린 다윗이 가졌던 오직 돌맹이뿐

그 돌맹이를 나르기 위해 걸쳤던 앞치마

용감한 여인들의 유니폼(?)

그래서 일컬어진 행주치마


난 오늘도 행주치마를 걸치고

오라는 곳 없어도 갈 곳이 많은 사역을

즐겁고 행복하게 감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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