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hanayana
샘터와 쉴터(nahanayana)
California 블로거

Blog Open 02.22.2009

전체     99250
오늘방문     12
오늘댓글     0
오늘 스크랩     0
친구     0 명
  친구 새글
등록된 친구가 없습니다.
  달력
 
졸업 연설문 I.
05/19/2019 11:24
조회  412   |  추천   7   |  스크랩   0
IP 108.xx.xx.166



내일을 지내고 모래면 졸업식이다. 

졸업연설을 할 기회를 갖고 싶으면 신청을 하라는 광고가 이메일로 전달되었다. 

우선 하고 싶다고 신청을 했다.  신청서에는 무슨 내용으로 하려는지 간략하게

내용을 써서 보내라는 설명이었다.

며칠이 지난 후 연락이 오기를 입학식에서 연설을 할 사람은 이미 정해졌으니

입학식 전날 학교에서 학교 직원들과 졸업생들만이 모여서 축하연회를 갖는데

네 사람의 연사가 필요하다. 혹 당신이 네 사람 중에 하나가 되지 않겠느냐는

이메일이 왔다.  나는 하겠다는 답변을 했다. 


첫째, 졸업식에 연설을 하려고 준비한 연설문을  두번에 걸쳐 포스팅하고,

축하연회에서 하려는 연설문을 영문으로 포스팅하려고 한다.   


연설문 I.


나는 어려서부터 유명해 지고 싶었습니다. 그 때는 유명해 지면 배는 골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지금도 나는 유명해지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유명해져야할 뚜렷한 목표와 당위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족은 육이오 때 이북에서 이남으로 케러밴처럼 걸어서 피난을 왔습니다. 내가 6살 때였습니다.

조그만 농촌마을에서 살던 우리 부모는 공산당들의 박해에 72세 되신 할머니와 딸만 넷을 데리고

이남으로 모조건 내려왔습니다. 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때부터 우리 가족들은 굶주림과 싸우며

난민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굶주림은 나에게 가장 강한 적이었습니다. 학창 시절 친구들의 도시락을

무척이나 부러워했습니다. 그 때부터 굶주림이라는 것이 얼마나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것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능력이 있고 유능한 부모님을 가진 아이들은 도시락은 물론 용돈도 있어

군것질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때부터 난 유능하고 유명해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저는 유능하고 유명해지기 위해 무엇이든지 열심히 배웠습니다.

유명해지려면 유식하고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배우는 데 온 힘을 다했습니다.

지금도 유명해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내가 유명해진다면 유명한 만큼 굶주림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굶주림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길은 오직 내가 유능하고

유명해지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굶주림이란 오직 신체적인 것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육신적(Physical)인 굶주림, 영적인(Spiritual) 굶주림 그리고 정서적인(Emotional) 굶주림이 있습니다.

나와 함께 하는 많은 친구들을 한 사람이라도 굶주림에서 구제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자나 깨나 유명해지는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은 그럭저럭 지냈습니다. 중학교 입시시험 때가 되었습니다.

난 피난민 신분이어서 호적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시절 입학시험에

채점에서 나이가 많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며 담임 선생님께서 나이를 고쳐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의 생년월일은 가호적으로 등록하여 입학원서에 첨부했습니다.

내가 지금 사용하는 나의 생년월인은 그 때 고친 가짜입니다.

소위 명문이라는 학교에 높은 경쟁률을 뚫고 합격을 했습니다만, 입학금 같은 것은

엄두도 못 낼 처지였습니다. 담임 선생님께서 슬그머니 부르시더니 입학금을 나의 손에 쥐어주셨습니다.

그 때의 그 사건은 경향신문 사회면 3단 기사로 게제 되었고 그 기사를 지금도 가지고 있습니다.

  

겨우 입학을 하고 등교를 하게 된 나는 늦깎이 학생이었기에 그 때 벌써 사춘기에 들어섰습니다.

지금의 아이들처럼 사춘기를 어른들이 걱정할 정도로 앓은 것은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집중을

할 수 없었고, 늘 굶주림에 허덕이며 방황하게 되었습니다. 중학교 3년간의 성적은 형편없었습니다.

학교를 그만두려는 생각도 여러 번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 입학시험에

또 합격을 하였습니다. 우리 가족들은 불합격하기를 은근히 바랐는지도 모릅니다.

고등학교 3년을 다니는 동안 두 동생들은 휴학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처음부터

늦깎이 학생이어서 나부터 졸업을 하고 보자는 어머니의 생각이었습니다.

두 동생들을 공장에 보내고 다니는 학교는 정말 괴로웠습니다. 두 동생들 앞에서

책을 펼 수가 없었습니다. 숙제조차 할 수 없는 학교생활을 지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제를 하지 않은 것은 기적이었습니다. 이런 학교생활도 세월이 흐르니 졸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졸업식에는 두 동생이 함께 했습니다.


  

이 블로그의 인기글

졸업 연설문 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