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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와 진보의 신앙적 본질에 대한 고찰
04/10/2018 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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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신앙인들은 하나의 하나님을 믿으면서 왜 우리들 삶의 밀접한 부분인 정치와 사회를 바라보는 눈이 다를까요? 하나의 진리를 믿는다면 세상을 보는 세계관이 다를수가 없는데 말입니다.

늘 성도들과 정치적 이슈에 대해 논할때 이점이 참 의문이 생기더군요...

오늘은 흔히 말하는 보수와 진보에 대해 세상적인 관점과 신앙적인 관점으로 한번 짚어볼까 합니다.

흔히 보수라 하면 올드하고 권위주의적이고 꽉 막힌 사고를 하는 부류라고 폄하하여 인식하고 진보라 하면 뭔가 미래지향적이고 혁신적인 부류들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히 젊은세대들이 더욱 그러한 인식을 하는경우가 많은데 이는 정말 뭔가 모르고 말하는 것입니다.

먼저 세상적인 관점에서의 보수와 진보의 정의를 말하자면 보수는 기존체제의 안정을 추구하고 유지를 기반으로한 점진적 혁신을 도모합니다. 또한 급진적인 변화보다는 안정적인 변화를 추구합니다. 그리고 자유로운 시장경제체제를 위해 국가의 간섭을 최소화하는것을 주장하고 성장을 통한 자유로운 분배를 지향하며 대체적으로 자유시장경제체제의 부작용인 불평등을 어느정도 인정하는 경향을 띄는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보수적인 세력을 우파라고 칭합니다.

진보는 기존체제의 혁명적 변화를 추구하고 안정보다는 다소 과격하고 급진적인 개혁을 도모합니다. 또한 시장경제체제에서의 사회적 불평등에 크게 집착하는 경향을 보이며 이의 해소를 위해 국가의 간섭과 규제강화 그리고 성장보다는 분배에 중점을 두는것으로 불평등이 해소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칩니다. 그리고 이러한 진보적인 세력들을 좌파라고 칭합니다.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의 보수와 진보는 서로 상호 보완적이며 함께 공유하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선택한 자유민주주의체제에 대해 공통적으로 신봉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두 세력들의 주장이 공존하여 좌익과 우익 두 날개를 갖는것이 한편으로는 건전한 민주주의가 될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살고있는 미국을 비롯한 자유민주주의 국가입니다.
서로 지향하는바인 자유민주주의체제의 고수와 발전이라는 방향성은 같지만 방법적인면에서의 차이를 보일 뿐이라는 말입니다.
(특정한 조건에서는 사실 좌익세력은 필요없음을 넘어 없어져야할 이유도 있습니다 그이유는 차후에 논하기로 하고요...)

그런데 한국의 진보와 보수, 좌익과 우익의 개념은 많이 다릅니다.
그것은 같은 민족이면서 서로다른 체제를 선택한 북한이라는 집단의 존제와 그들의 오랜시간 동안의 남한체제 전복시도의 결과 건전한 우익과 죄익이 아닌 상호 대립적이고 자멸적인 관계가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체제를 전복하고 적화통일만을 염원하는 북한세력들에게 한국의 어느부류가 그들과 손을 잡을 수 있었을까요? 자유민주주의체제를 극히 신봉하고 안정과 점진적 변화를 추구하는 우익세력에게는 씨알도 안먹히는 일이되겠죠? 당연히 불만과 불평을 심어주기 용이한 한국내 좌익세력이 그들에게 적합한 조력자들이 될 수 있었을것입니다. 때문에 그들은 한국내 좌익성향을 띤 부류들과 손잡고 한국의건국과 체제에 대한 끊임없는 폄훼 왜곡작업을 펼칠 수 있었으며 급기야 불순한의도를 가진 주사파와 같은 부류와 통진당과 같은 북한 추종세력이 좌익과 진보의 옷을 입고 우리곁에 있을 수 있었던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눈앞에 펼쳐지게 된것입니다.

이들 세력은 여타 국가의 좌익들처럼 체제수호의 공통분모가 없이 건국의 정통성과 체제 마저도 부정하는 세력들입니다.

지금 한국에서 정권을 잡은 세력은 엄밀히 말해 순수한 진보좌파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종북사회주의지향 세력이죠 그래서 우려스러운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끊임없이 진보라는 옷으로 가장하여 남한체제전복으로의 선전선동을 일삼아온 결과 오늘날과 같은 세계적 불황으로 사회적 불만이 많이 쌓여온 젊은세대들에게 크게 어필할수 있었고 다른 민주국가의 좌익과는 달리 자유민주주의체제 자체를 부정하고 사회주의에 열린마음을 갖도록 하는 기현상까지 일어난것이라 사료됩니다.

한국내 종북좌파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더욱 자세히 이야기하는것으로 하고요...
아무튼 한국의 진보좌파는 세계에 유례없는 기형적인 세력이라고 정의하고 넘어가겠습니다.

그렇다면 진보와 보수는 그 사상적 뿌리가 어떠한 성향에서 기인하는 것일까요?

먼저 보수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 보수를 지향하는 부류는 사상적 뿌리에 존재하는 특징적인 개념이 있습니다. 즉 세대가 바뀌어도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다는 진리불변을 믿고 그 변치않는 진리를 보존하고 따르려는 성향을 가진자들이며 그 진리는 종국에는 창조주이신 신의 섭리라고 믿는 신본주의자들이 대부분입니다.

반면 진보를 지향하는 부류는 진리는 상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변치않는 진리는 없고 인간을 중심으로 한 모든 환경에 따라 진리역시 변한다고 생각하기에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며 지극히 인간중심적인 인본주의 사상적 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부류들을 통해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양상과 뉴에이지라는 운동도 전개가 될 수 있었던것이죠.

따라서 이들은 인간의 개인적 쾌락과 자유를 극대치하는데에 어떠한 선을 두지 않으려합니다. 그래서 진보좌파들이 인권옹호라는 기치아래 동성애와 같은 반인륜적 행위에도 열려있게 되는것이고 전통적인 결혼관도 타파하고 성적인 자유에도 한없이 관대한 양상을 보입니다.
심지어 기독교신앙을 가졌다고 하는 목회자들중에서도 마음의 중심에 자신이 주인이되어 성경을 인본주의적으로 왜곡하고 해석한 결과 동성애와 같은 반성경적인 일에도 열린마음을 가진 목회자도 넘쳐나는 중입니다.

때문에 항상 지키고 안정을 추구하고 순종코자하는 성향이 짙은 보수부류들은 기존 질서를 위협하는 사상과 경향에 심히 우려하게되는 것이며 보수주의 성향을 가진 목회자들이 그토록 변함없는 하나님의 진리를 수호하고자 그러한 사조에 반대하는 것이죠.

또한 이 두부류는 인간에 대한 인식도 다릅니다. 주로 보수세력들은 인간자체를 기본적으로 악하다고 봅니다 때문에 체제를 통한 질서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체제에 순응하는것을 안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정해진 질서와 약속 그리고 불변하는 진리를 수호해야 악한 인간들이 어우러져 살 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진보세력들은 인간은 본성 자체가 선하다는 나이브한 생각을 합니다 때문에 인간은 선하고 인간들 스스로 불평등과 조화를 완성할 수가 있는데 저 옳지못한 체제와 기존질서가 문제라는 식으로 대응합니다. 따라서 그들은 인간들 스스로 체제를 뒤바꾸는 혁명을 통해 유토피아가 건설될 수 있다는 착각을 합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공산주의고 사회주의가 되는것이죠...

인간은 선하다는 너무 나이브한 생각에서 기인한 것인데 어느 사회주의와 어느 공산주의도 평등과 번영을 구현해내지 못하고 망했습니다. 그러한 세상은 그들이 생각한데로 정말 인간 스스로가 본질적으로 선하다는 가정이 참일때만 가능한것이기 때문입니다. 평등은 커녕 평등한것으로 보이는 하향평준화와 일부 계층의 극악한 착취와 독제가 드러나 결국 다 망하게 되어있습니다.
그의 가장 치명적인 사례가 북한의 경우고요...

이제 글을 더 진행시켜 나가기전 분명한 것을 밝혀둡니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와 사회주의 공산주의 체제 모두 불완전한 시스템 모델에 불과한 것이지만 차이가 있다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체제는 더이상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실패한 비현실적 모델이라는 것이고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는 사회주의 공산주의 체제보다 비교적이고 압도적인 우위를 보일 뿐 불평등의 심화와 물질만능주의라는 부작용을 가져오는 역시 불완전한 모델에 불과한것이라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와 보수 우익적 사상이 사회주의, 공산주의 체제와 진보좌파 사상보다 우월할 수 있었던것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법칙에 조금 더 가까운 체제이고 사상이기 때문입니다.

자 그럼 왜 보수우익 사상과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가 창조주 하나님의 섭리에 더 부합하는지 논하여 볼까요?

인간의 통찰로 얻은 사상 중에는 성선설과 성악설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인간의 본성은 근본적으로 선하다는 사상과 악하다는 사상입니다.
대체적으로 진보는 성선설을 보수는 성악설을 신봉하는 경향이 있죠. (인간 자체를 본질적으로 선하게 보는 성선설이 성경적으로 얼마나 교만하고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도전하는 사상인지는 차후에 또 논하기로 하구요...)

인간 본성은 선하다는 환상에서 출발한 좌익적 사상인 맑시즘, 레닌주의 등 공산주의 사상이 그 예이고 모두 허구에 그치는 쓰레기 사상인것이 이미 증명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이신 성경은 인간을 어떻게 정의할까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은 분명하게 선포하십니다 인간은 아담의 범죄이후 태생적으로 악한 존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모습과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지만 최초의 범죄이후 선함을 잃어서 절대 선이신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악한 존재들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유일한 중제자이자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도 죽음과 멸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철저히 죽어야 할 죄인들에 불과하지 좌익사상가들의 생각처럼 결코 선한 존재가 아니라는 말이죠 때문에 인간사이의 모든 행사는 악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이유로 평등이라는 선한 의도로 출발을 한다고 하여도 결국 선을 가장한 지배세력의 극악과 대중적 나태함으로 모든 사회주의 공산주의가 망해왔던것입니다.

그러면 그에 반하여 왜 보수우파성향이 강한 부류들이 더욱 신봉하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는 온전한 성공은 아니어도 상대적으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비해 성공적이었을까요?

그 이유는 비록 악한 인간들의 제도이지만 그나마 성경의 가르침에 더욱 가까운 체제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이기 때문인데... 물론 성경의 가르침에 보다 가까운 것이지 이것이 완전히 부합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유의해서 들으세요

이세상은 하나님이 창조하셨습니다, 때문에 가장 삶을 성공적으로 살고자 하면 그 창조주의 의도에 맞게 살아야 가능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일반 섭리는 뿌린데로 거두는 것이고 침노하는자 노력하는 자에게 더욱 넘치도록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노력하는자에게 더욱 차고 넘치게 해주시는것이 섭리입니다. 반면 게으르고 나태한자들에게는 그 가진것도 뺏는다고 까지 하십니다. 
심지어 일하지 않는자 노력하지 않는 자에게는 먹지도 말라고 까지 하십니다.

즉 가진자 노력하는자에게 더욱 넘치도록 부어주시고 가지지 못한자 노력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그 가진것도 뺏는것이 일반법칙이라는 말입니다.

진보 좌파들의 논리인 일하지 않는자에게도 노력하지 않는 자에게도 가진자들의 것을 뺏어서 나눠주는 방식은 하늘의 법칙이 아닙니다. 
따라서 복지 자체가 성경적인 것이 아니지만 그나마 선택적 복지가 무상복지보다는 성경적인 것이라 하겠습니다.

일하여 얻은자들의 축복을 더욱 많이 뺏어서 노력하지 않은자들에게 나눠주는것은 결코 성경적인 가르침이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의 법칙에는 질서와 권위가 있습니다. 가정에서의 권위, 직장에서의 권위, 국가에서의 권위 모든 권위에 순복하라고 하십니다. 탈권위를 기반으로 한 평등은 사실상 성경적이지도 않고 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하늘의 법칙과 맞지 않으니까요...

모든 권위는 하나님의 섭리와 뜻에 따라 세우신 권위라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그 권위가 부정하고 악하다면 하나님께서 그의 섭리데로 심판을 하게되실것입니다. 그런데 그 심판자의 자리에 우리 인간이 서서 권위에 반항하고 반역을 일으켜 권위를 무너뜨리는 행위는 결코 성경적인 가르침이 아닙니다.

때문에 행동강령으로써 혁명이라는 기치아래 인간의 힘으로 대항하여 권위를 무너뜨리고 체제전복과 변혁을 추구하는 좌파들의 근본정신은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방법이 절대 아니라는 말입니다. 출발부터가 사악한 틀린방법이라는 것이죠.

또한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의 죄된 본성에 충실하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늘 변치않는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에 순복하여 성화되고 절제된 삶을 살으라고 가르칩니다.

인권과 자유라는 듣기좋은 슬로건을 통해 죄된 인간의 품성에 따라 규범과 법도를 무너뜨리고 욕망에 충실하게 사는 것을 합리화 시켜주는 좌파사상은 충분히 창조주의 노여움을 사기에 합당합니다.

또한 성경의 가르침은 더 가진자에 대한 시기와 질투를 죄악시 합니다. 좌파 사상가들의 혁명은 사실상 노력하여 얻은자들에 대한 시기와 질투에서 출발한 옹졸한 사상입니다.

이러한 이유들만으로도 충분히 진보좌파적인 성향으로 국가를 이끌면 여지없이 망하게되는것을 우리는 목도하는 것입니다.

본성이 사악한 인간들이 어우러져 사는 방법의 또 하나의 모습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는 그나마 하늘의 법칙을 일부 따르는 법칙입니다.

노력하는자에게 사회가 더욱 차고 넘치게 얻을 수 있도록 합니다.때문에 물질적인 번영이 가능해 집니다. 그리고 땀흘려 수고해서 얻으라는 하나님의 가르침에 부합하여 살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되는 체제입니다. 그러한 이유로 인간의 역사에서 적어도 경제부분에서 자유시장경제 체제가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게 되는것입니다

그런데 이 체제에서 큰 부작용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법칙인 노력하고 수고하는자에게 더욱 부어주시는 법칙때문에 가진자는 더욱 많이 갖게되고 못가진자는 더욱 적어지게 되는 부작용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종국에는 그것이 보이지 않는 신분의 벽을 만들게 되고 불평등의 원인이 되는것이죠...

이러한 이유 때문에 소외되고 낙오되는 부류들의 권익을 보호하고자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에서 상호 견제를 위해 좌파적인 세력이 존제하는것이 그나마 균형있는 건강한 민주주의 국가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분명히 밝히는 것은 진보좌파 세력은 보수우익의 견제차원에서 필요한 필요악(惡)인것이지 결코 보수우익세력을 대체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대체되어서 망하는 케이스들이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라고 이미 밝혔습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으셨으면 뭔가 꺼림직 하실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법칙에 가깝다고 한 자유시장경제 체제라면서 너무나 불평등해 보이고... 좌파사상은 악이라고 하면서 또 필요할 수도 있다하니 뭔가 앞뒤가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드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끝까지 들으시면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가 신봉하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체제의 근원에 대해 한번 알아봅시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이하 시장경제)체제는 근원적으로 프로테스탄티즘에서 출발합니다. 변질된 유사기독교인 카톨릭에 저항하여 기독교의 본질을 되살리고 창조주 하나님을 중심으로한 거룩한 삶을 살고자 했던 자들이 프로테스탄트들이고 이들은 박해를 피해 세계각지로 퍼져나갔는데 이들이 가는곳마다 부흥과 풍요가 가능했습니다.

그중 프랑스의 프로테스탄트들인 위그노들의 삶을 조명해 보면 이들은 삶이 곧 예배이고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었습니다, 이들은 물건을 만들때도 곧 하나님에게 드리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여 물건을 만들었습니다. 음식을 만들어 팔때도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목적만이 아닌 하나님 앞에 떳떳할 수 있도록 최고의 재료로 최선을 다해 만들었고 폭리가 아닌 합당한 가격을 받았습니다. 모든것을 하나님과 함께한다는 마음으로 대하니 물질적인 욕심없이도 제품의 혁신과 질적 향상도 가져올 수 있었고 서로 타당하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거래도 가능하니 그들 사이의 시장에서는 활발한 거래와 부의 축적이 가능했습니다.
또한 이들은 부와 번영을 이루고서도 그 삶이 향락과 퇴폐함으로 변질되지 않았고 거룩했으며 모든것이 창조주 하나님에게서 온 은혜임을 알기에 교만하지도 않고 더 적게 가진자들에게 자발적으로 내어주는 관용과 덕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을 완전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세이며 이러한 자세로 살때 진정한 부와 번영 그리고 다수가 행복해지고 평등해지는 사회가 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이들이 가는곳마다 번영이 이루어지는 자동적인 현상을 두고 여기에서 기인하여 고안된 체제가 바로 서구의 자유시장경제체제입니다.

그런데 왜 오늘날 자유시장경제체제가 자본주의라는 더러운 체제로 변질되었을까요?
그것은 늘 우리 인류의 삶에 끊임없이 관여하여 타락시키는 사탄의 전략과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물질인 맘몬을 숭배하는 자들이 이 시장경제체제에서 자신들의 부를 추구하기 때문에 물질만능주의와 착취, 불평등이라는 크나큰 부작용을 수반하게 된 것입니다.

때문에 신본주의를 잃은 시장경제에서 자발적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덜가진자들을 돌아보며 폭리와 착취가 아닌 합당성을 추구하는 미덕이 사라진 부분을 저항과 반항이라는 좌파적인 힘을 통해 대체하여 견제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감이 오시나요? 좌파사상이 철저한 인본주의에 기인한 악하고 옹졸한 사상이지만 오늘날 필요악이된 것은 오늘날 시장경제가 노력하는자에게 차고 넘치게 해준다는 하나님의 일반은총만을 취하고 그 주인된 자리에 하나님을 끌어내리고 맘몬을 숭배하는 더러운 자아를 올려놓은 착취구조로 변질되었기에 그 착취에 대한 견제와 저항의 기능에 한하여 또다른 악인 좌파세력이 필요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록 변질되었지만 여전히 체제상으로는 우월한 자유시장경제 체제에서는 그나마 프로테스탄티즘의 흔적을 고수하는 우파사상이 득세를 하여야 하며 이들을 견제하는 차원에 한하여 좌파사상이 존제해 두날개로 공존하는것이 합리적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좌파의 필요악적인 견제기능을 넘어 좌파사상이 주류로 득세한다면 그나마 하늘의 법칙을 일부 따르던 기능마저 사라지고 100% 인본주의의 악한 체제가 도래하여 완전폐망의 결과가 초래되는데 그것이 실패한 공산주의이며 사회주의라는 말입니다.

물질만능 자본주의로 변질된 오늘날의 보수우익 사상과 시장경제체제의 부작용인 불평등... 그 불평등의 도가 지나친다면 늘 더 허망하고 악한 좌파사상과 사회주의 체제가 대안처럼 떠오르는데... 이는 치명적인 눈속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부작용을 극복하고 바로잡는 길은 그나마 인간의 체제중 가장 완전한 체제인 자유시장경제체제를 뒤엎는것이 아니라 온인류가 다시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의 법칙에 따라 거룩하게 살아가도록 회기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이 시장경제체제에서 살아가는 우리 개개인이 하나님을 마음의 중심에 두고 열심히 사명을 다하여 삶을 살고 부를 이루고 거룩한 삶을 통하여 주위를 둘러보고 자발적으로 나누는 그러한 삶이 될때 우리의 시장경제체제는 더욱 완전해지는것이며 이러한 풍조가 만연해진다면 더이상 필요악이라고 했던 악한 사상인 좌파사상은 필요없는것을 넘어 사라져야할 사상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을 사는 우리들... 변질된 시장경제인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우리들... 그 부작용으로 인해 또다시 우리는 실패한 체제인 사회주의와 악하고 옹졸한 좌파사상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합니다.

우리 모두는 체제의 본질과 부작용의 원인을 근원적으로 파악하여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함과 경외함을 회복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현명함과 통찰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 그리고 그분이 창조한 우리 인간과 세상은 그분의 법칙을 거스른다면 결코 우리가 꿈꾸는 유토피아는 존재하지도 존재할 수도 없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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