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산다는 것
03/31/2017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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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처음 어떤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을 때 성경을 읽으면서, 믿음이 무엇인가가 너무나 궁금했었다. 그래서 멀리 본당에계시는 그 교회 담임 목사님에게 편지를 써서 믿음이 뭐냐고 질문을 했었는데 끝내 답장이 없어서 답답했던 기억이 난다. 누구에게나 믿음이 무엇인가를 정의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믿음은, 소망하는 것이 실재로 존재한다고 믿게 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과 같이 확실하게 믿게 한다고 한다 (히브리서 11장1절). 많은 분들이 크리스챤의 믿음이 뭐냐고 할 때 이 성경구절을 떠올릴 게다. 이 구절을 통해서 믿음의 정의를 찾을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하박국 선지자 가 말씀하신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느끼게도 한다.


신뢰게임이라는 것을 해 본 적이 있는가? 눈에 안대를 해 보지 못하게 하고, 뒤에서 친구가 받아준다는 약속을 믿고 몸을 꼿꼿이 세운 채로 서서 뒤로 벌렁 넘어지는 것이다. 물론 게임 상대는 뒤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넘어지는 사람을 다치지 않도록 받아 주는 것이다. 믿음이 어려움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예다. 첫째, “내가 널 다치지 않게 받아줄께”라는 친구의 약속을 믿어야 하고, 친구가 받아주는 것에 온전히 신뢰를 해야 한다. 둘째, 안대로 인해 친구가 안전하게 받기 위해 뒤로 가서 철저히 준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없지만 그렇게 하고 있음을 믿어야 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친구의 받을 준비가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말로는 쉬운데, 그 게임을 실제로 해보면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상대방이 누구인가에 따라 좌우되는 면도 있지만, 뒤에서 받아줄 사람이 남편이나 아버지라 하더라도 쉽지 않다. 이 게임이 시사해 주듯이, 믿음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두가지 요소다. 즉, 그것이 “바라는 것” 즉 ‘약속’에 대한 것이라는 점과 “보이지 않는 것” 즉 물질적인 것이 아닌 ‘영적인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이 게임은 영적인 것에 관한 것은 아니지만). 약속만을 믿고 지금 당장 무슨 결정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가까운 친구가 당신에게 여유 돈이 있음을 알고, 내일 모레 돌려 줄테니 백만원만 빌려달라고 한다고 생각해 보라. 아마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거다. 믿음을 어렵게 하는 것은 또 그것이 보이지 않는 것 즉, 영적인 것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물질 세계에 사는 우리는 영적인 세계에 대해서는 오직 영적 세계의 왕이신 하나님의 계시, 즉 성경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사후 세계에 갔다 왔다고 하는 사람들도 적잖이 있지만, 그것이 그들의 착각인지 환상인지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오직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뿐이다. 따라서, 이러한 측면에서 믿음이란 이 세상에서의 우리의 삶이 영적인 세계인 하나님 나라에서 무엇인가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그런데, 그 영적 변화라는 것은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느껴지지도 않고, 지금 당장 현실에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위해 당장 처해있는 현실과 반대되는 결정을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믿음의 어려움을 몇 갑절 더 크게 하는 요소가 있다. 참된 믿음은 그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점이다. 즉, 그 믿음으로 살지 않으면, 믿음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담배는 몸에 해롭기 때문에 피우지 말아야 한다고 믿어”라고 말하면서 담배 피우는 것을 즐긴다면, 그 사람이 그에 대해 정말로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이 참된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아닌가는 그 사람이 그 믿음대로 사는가로 알게 된다. 믿음대로 살지 않을 때, 그 사람은 말로는 그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는 그 믿음이 없는 것이다. 야고보서가 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하는 것도 이 말이다 (2장26절). 따라서 성경이 말하는 구원을 위한 믿음이란 그 믿음으로 살 때 비로소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믿음과 삶 사이의 필요불가결한 본질적 연관성이 믿음을 몇갑절 더 어렵게 만든다. 

믿음으로 살기가 어려운 것에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그 믿음으로 살기 위해서는 믿음의 내용인 “약속”을 이루기 위해 현실에 분명히 보이는 이익 혹은 기회를 포기하거나 희생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 포기와 희생이 어려운 것은, 그 기회와 이익은 보이거나 가까이 있는 것인 반면, 그 포기와 희행은 보이지 않는 영적인 약속을 이루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어려움은, 대학을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면 좋은 직장을 가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공부를 열심히 하기 위해 참고 견디는 정도의 어려움이 아니다. 주님의 가르침에 순종하여 살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성경의 약속을 믿고, 눈 앞에 보이지만 불의한 사회적 경제적 이익의 기회를 포기하거나 희생하면서, 주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순종의 어려움이다. 자신의 생각, 성격과 기질을 자제하고, 오직 하나님의 의를 행하기 위해,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해 사는 사람이, 영으로써 육신의 욕망을 죽이는 어려움이다 (로마서8장13절). 다른 사람들이 욕하고 손가락질하고 왕따를 시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의를 행하기 위하여, 그들의 욕과, 모욕과 심지어 폭력적인 언사를 되갚거나 욕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용서하고 그들을 위해 진정으로 기도하기 위해 평정한 마음을 가지는 어려움이다 (마태복음5장10-12절). 한마디로,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이유없이 왼뺨을 맞았을 때, 용서와 기도의 마음으로 오른뺨을 조용히 돌려대는 어려움이고, 원수를 사랑하는 어려움이다(38-48절).  

그러나 아직도, 믿음을 어렵게 하는 것이 더 남아있다. 그것은 죽기까지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젊은 용사들과 같이, 천국의 소망과 약속을 얻기 위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육신의 죽음을 택해야 할 때 믿음을 가장 어렵게 하는 게 아닐까? 즉, 진정 믿음으로 살기 위해서 죽어야 할 때 믿음의 어려움이 최고조에 달할 것이다. 실제 죽지는 않아도, 정말 죽은 자와 같이 수모와 모욕과 능멸과 환란과 고난과 핍박을 견뎌야 할 때, 즉 자신에 대하여 죽어야 할 때 믿음의 어려움은 최고조에 달할 것이다. 그 어려운 믿음을 자신의 몸으로 친히 온전하게 보여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그래서 그분을 “믿음의 주시요 믿음을 온전하게 하시는 주님”이라고 하는 것이다 (히브리서12장2절). 그분은 본래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으로서의 모든 영광을 내려 놓으시고, 온 세상을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을 죄인들을 위한 완전한 희생제물로 드리기 위해, 우리 육신을 입으시고 오셔서, 우리와 똑같이 고난과 시험을 받으시되, '죽기까지' 겸손하여 견디신 분이다 (빌립보서2장5-8절). 그분은 모든 고난 뒤에 올 구원의 길의 완성이라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육체로 고난을 받으시되 '죽기까지' 받으셨다. 그분은 미래에 올 하나님의 영적인 영광을 위하여 십자가의 죽음을 이겨 내셨다. 그분은 믿음으로 살기 위한 어려움의 최고조에 임하여서도, 하나님의 뜻을 지키시고, 자신의 손에 못을 박고도 조롱하고 비웃는 그들을 용서하시고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셨다 (누가복음23장34절). 그래서 그분은 구원의 믿음의 근원이시다.

믿음으로 살기가 이렇듯 어려운 것이니, 믿음으로 사는 자들을 하나님은 의롭다 하시고 끝까지 죽기까지 믿음으로 산 자들에게 부활을 의의 면류관으로 주시는 것이다. “예수를 믿노라”고 말하면서도, 그분을 따르는 길을, 좁고 힘들기에 가지 않고, 쉽고 편안한 넓은 길을 택하여 가는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말하는 믿음으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그들이 말하는 예수에 대한 믿음은 그들에게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과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은은 죽은 믿음이라고 야고보가 질타한 죽은 믿음에 불과하다 (야고보서2장26절). 그들을 구원해 줄 수 있는 믿음이 아닌 거짓 믿음이다 (2장14절). 인생의 어떤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어떤 죄의 유혹에도 끝내 지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길을, 느리고 더디더라도, 따라 사는 사람들만이 예수님에 대한 참된 믿음을 가진 것이고, 바로 그 믿음이 결국 그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구원의 믿음이다 (베드로전서1장9절). 이런 구원의 믿음으로 거듭난 후 여생동안 그 믿음의 복음을 전파하신 사도 바울의 고백은 다시 한 번 참된 믿음으로 사는 것의 어려움과 영광을 생각하게 한다. “내가 그(부활의 소망)를 위하여 모든 (세상적으로 유익한)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 (빌립보서3장8-9; 괄호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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