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빠따' vs 내리사랑
09/13/2017 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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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순환(vicious circle)의 좋지 않은 예가 근현대 한국문화에 검질기게 살아왔다? ‘줄빠따’다. 젊어서 군대에 다녀온 한국 남자들에게 익숙한 비속어다. 선임병을 때려 놓으면 그 아래로 계급을 따라서 차례로 때리기 때문에 간편하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그러나 그 암적 문화가 번식하고 있던 것은 비단 군대만이 아니었다. 직장도 그랬다. “나도 맞으면서 배웠으니까 너도 .…” 80년대 후반 대학생 때 공장아르바이트를 할 때 농담반 진담반으로 자주 들었던 말이다. 전혀 그런 일이 없을 것 같은 맛깔나는 음식을 만드는 주방에서도 주방장과 보조들 사이에 비일비재했단다. “시집살이 한 며느리가 또 시집살이 시킨다”고, 가정에서도 있었다. 그뿐 아니다. 사랑과 용서로 가득해야 할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나도 사례비 없이 몇 년을 일했으니 너도 …” 라는 식의 부목사, 전도사 등에 대한 착취가 그것이다.


그런 문화 속에 사는 삶은 무섭고 암울했다. 새로 밝아오는 하루가 무서웠다. 당해본 사람만 안다. 오늘은 또 무슨 꼬투리를 잡혀서 위로 부터 얼마나 받을지, 또 아래로 얼마나 내려 보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루하루가 암울하다. 웃어도 웃는게 아니다. 웃는 것조차도 트집꺼리가 되기도 한다. 그런 부대들, 가정들, 직장들, 학교들, 심지어 교회들은, 정치적 독재와 독선, 부정과 부패, 그리고 경제적 불평등과 착취의 고질적 병을 앓고 있던 한국 사회에 퍼져있던 그 암적 문화의 숙주들이었다. 그들 속에서의 인생은 컴컴하고 무섭기만 했다.  


대부분의 사회적 악순환들이 우연적인 것인데 비해, ‘줄빠따’로 표현되는 이 악순환은 누군가가 그 메카니즘을 악용하는 전략적이고 의도적인 것이다. 그것은 일제가 우리 민족을 분열시키고 서로 서로 싸우게 하기 위해 사용한 식민통치 전략이었다. 맨 윗 사람 하나만 다그치면 나머지는 저절로 되니 얼마나 효율적이었겠는가? 그 잔혹한 효율성은, 시작하면 중간에 끊어지지 않고 끝까지 내려가게 되어 있다는 연쇄성에서 온다. 또 그 연쇄성은 당한 만큼 갚아야 하는 보통 인간들의 연약함 때문에 나타난다. 그 연쇄성으로 인해 그것은 인간그룹이 존재하는 한 끝없이 아래로 내려가게 한다. 급기야 그것은 암울하고 무서운 ‘전통’이 되고 만다. 그 사회는 정신적으로 파괴되어 간다. 


끊어야 한다. 아래로 아래로, 심지어 대를 이어 내려가는, 그 악의 전통을 끊어야 한다.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 외에는 해결방법이 없다. “나도 맞았으니 내 밑으로 다 집합!” 하는 생각 대신 “내 선에서 끝내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나는 시집살이를 했지만 대물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실천해야 한다. “내가 받지 못한 사랑을 주자”는 마음으로 매 대신 사랑을 내려 보내야 한다. ‘줄빠따’는 나에게서 멈추고, 내리사랑은 나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내리사랑으로 그 악의 사슬을 끊어야 한다. 암울함과 무서운 전통이 아니라, 건강함과 따뜻함의 전통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래야 인생이 밝아지고 사회가 살아난다. 


아틀란타 지역 한인 사회는 ‘줄빠따’가 난무하던 암울한 시대를 피해 새로운 희망을 찾아 오신 분들이 만들어 가는 새 사회다. 아직도 문화적으로 성장해 나가고 있다. 그런데 항간에 이곳 한인 사회에서도 ‘줄빠따’가 자행되고 있다는 말이 들린다. 그것이 무슨 좋은 것이라고 여기까지 갖고 왔을까 안타깝다. 사실이 아니길 바라면서, 그 암적 문화가 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제안을 하고 싶다. 주변을 둘러보라! 한인들 사이에서는 그것이 아무렇지 않았을지 몰라도, 외국인들 앞에서는 말할 수 없이 부끄러운 것임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범죄로 여겨질 수 있는 것임을 쉽게 알게 될 것이다. 요즘 한국에서 갑질 회장들이 언론과 법의 심판을 받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식민지배를 위해 일제가 쓰던 비인간적이고 비열한 통치방식이 21세기 미국 사회에서 용인될 리 만무하다. 


새 삶을 꿈꾸며 정착한 이곳을 암울함과 무서움이 아니라, 건강함과 따뜻함이 넘실거리는 커뮤니티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경우에도 더 이상 매가 아닌 사랑을 내려 보내기 시작하는 사람이, 마이클 잭슨의 노래, “Man in the mirror”가 말하듯, 거울 속 사람 즉 내가 되어야 한다. (아틀란타 중앙일보 목요칼럼 '둘루스 산책' 게시글)


장민구 목사, 아틀란타 한미 그리스도의 교회, 체스트넛 영어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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