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부부, 정말 특별한 사이
09/22/2017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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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1학년 여름방학때 산악부에서 산행을 한 적이 있다. 오대산에서 태백산까지 능선 40여 킬로미터를 2박3일에 주파하는 산악워킹 훈련이다. 15킬로그램 정도의 배낭을 지고 달리다시피해야 한다. 일반 등산로가 아닌 인도자가 지도를 보고 개척하는 길을 따라간다. 바위와 덤불 속을 헤쳐 나가기도 하고, 허벅지까지 닿는 낙엽 속을 걷기도 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능선산행을 혹독하게 하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끝없이 다가오는 봉우리들이다. 한 봉우리를 젖먹던 힘까지 다해 오르고 얼마간 내리막길을 달려 내려가면 다시 새로운 봉우리를 향해 올라야 한다. 그렇게 한 봉우리를 넘고나면 또 다른 봉우리가 기다리고 … 끝이 없이 봉우리들을 오르고 또 올라야 한다.


이민자의 삶이 그와 닮았다. 능선산행의 끝없는 봉우리들처럼 어려움들이 끊이지 않는다. 신분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앞뒤 가리지 않고 달린다. 경제적인 어려움은 꼬리를 물고, 어느 정도 먹고살만 해진다 싶으면 자녀들 대학진학 문제가 나선다. 영주권이 없으면 등허리가 휘고 기둥뿌리가 휘청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해 한숨 돌릴라 치면 크고 작은 건강 상의 문제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얼굴을 들이민다. 이제 끝나나 저제 끝나나 하지만 크고 작은 봉우리들은 끝이 없다. 이민의 삶은 작은 조각배를 삼킬듯 끊임없이 몰려오는 파도를 뚫고 나아가는 항해다.   


이민의 삶에서 가정은 배다. 온 가족이 안전한 포구에 안착할 때까지 미국이라는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작은 배. 아버지는 파도에 맞서며 방향을 잡고 노를 젓느라 언제나 안간힘이다. 어머니는 행여 누구라도 상할세라 가족들 보살피랴 남편 눈치 살피랴 노심초사다. 아이들은 부모의 노고 덕분에 공부에 전념하지만 긴장이 없지 않다. 어느 누구라도 소임을 다하지 않으면 언제라도 난파할 수 있는 불안한 항해, 가정은 그 항해에 필수인 배다.  


이 작은 배에서 부부는 현재고 아이들은 미래다. 부부는 현실이고 그들의 희망은 아이들이다. 어린 희망들이 안전한 포구에 내려 당당히 빛을 낼 때까지 멈출 수 없는 것이 부부의 소명이다. 아버지가 멈추면 방향을 잃고 표류한다. 어머니가 멈추면 가족들 누구나 돌보는 사람없는 부모잃은 자식같이 된다. 그래서 부부는 이 배의 동력이고 생명이다. 그 작은 배가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항구에 닿을 때까지 그들은 아플 시간도 없고 심지어 죽을 권리도 없다. 부부는 쉬지 않고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를, 그것이 아무리 높고 흉용할지라도, 맞서고 또 맞서야 한다. 


잘 알고 왔든 뭣 모르고 왔든 이민의 삶은 어느 가정에게나 지난하다. 그리고 부부는 그 지난한 삶을 함께 해 나가는 동역자다. 부부는 가까운 사이다. 그러나 맘을 다 주어 의지할 사람이 없는 이역만리에서의 삶을 사는 이민자 부부만큼 가까울 수 있을까. 이민자 부부는 그래서 서로를 날아오르게 하는 날개가 될 수도, 주저 앉히는 족쇄가 될 수도 있다. 서로에게 주는 힘과 위로는 망망대해의 끝없는 파도들을 이겨내고 어린 희망들을 안전한 포구까지 데려다 주는 부부의 날개다. 서로를 아프게 하고 맥빠지게 하는 차가움은 가정이라는 작은 배를 망망대해에서 표류하게 하고 어린 희망들마저 위태롭게 하는 족쇄다. 항해의 성패가 서로가 서로에게 무엇을 주는가에 달려있다. 


뱃전에서 운전대를 잡고 노를 젖는사람이 힘든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배안에서 가족들을 돌보고 보살피는 사람이라고 힘들지 않은 게 아니다. 짧은 영어로 바깥에서 일하는 사람이 힘든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영어 한 마디 못하고 좁은 섬에 갇힌 듯이 사는 사람도 힘들다. 아이들조차도 부모의 희망이 되어 그 희망의 등불을 지키며 사는 것이 그리 가벼운 일만은 아니다. 누구만 힘들고 누구는 쉬운 이민 가정은 없다. 이민의 삶은 누구에게나 버겁다. 그래서 모두 다 위로가 필요하고 모두 다 사랑이 필요하다. 이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 이민 가정이 항해를 성공할 수 있는 지혜다. 


지금까지 못했다면 오늘부터 시작하자. 애쓰는 아내를 위해 소박한 꽃 한다발과 정성어린 손편지를 준비하자. 남편을 위해 따뜻한 밥상과 예쁜 미소를 준비하자. 좋아한다면 와인이나 맥주 두어 캔이 더욱 더 서로를 따뜻하게 해주리라. 그리고 편지로든 말로든 이 말을 잊지말자. “여보 힘들지? 나와 함께 해 줘서 고마워. 사랑해.” (아틀란타 중앙일보 칼럼 <둘루스산책> 9월21일 게재글)


아틀란타 한미 그리스도의 교회, 장민구 목사, 장민구 전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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