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겪은 6.25는...”
06/24/2016 15:41
조회  1273   |  추천   11   |  스크랩   0
IP 173.xx.xx.25




“오직 애국심 하나로 싸웠습니다”

일촉즉발 사선 넘나든 전장의 비극 회고

 6.25 참전 이원한·김진호 옹


대한민국 민족사에서 영원히 지워질 수 없는 비극이 바로 6.25전쟁이다. 국군 사망자 14만, 미군 사망자 5만4천여명을 남긴 6.25 전쟁은 영원히 지워질 수 없는 한국 민족사의 비극이다. 더구나 다시 실종된 한국군 2만여명의 소식은 아직도 알 수 없다.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된 6·25전쟁이 올해로 66주년을 맞았다. 66주년을 맞아 전쟁 당시 전국 곳곳의 전장을 누볐던 이원한·김진호 참전 용사들을 만나 당시 상황을 들어봤다.

▶위기의 조국 구하기 위해 참전

6.25가 발발하던 해 19세였던 이원한(85세)중서부 6.25참전유공자회 회장은 1950년 겨울, 조국을 지키겠다는 신념 아래 입시 공부를 포기하고 육군 종합학교에 자진 입대했다.

1950년 6월 보성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었던 이 회장은 “6월 1일 새 학기가 시작하고 의사를 꿈으로 입시 준비를 할 때였다. 하지만 국가가 위기에 처했는데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며 참전 동기를 담담히 설명했다.

1931년 함경남도 북청 태생인 이 회장은 5남매 중 막내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고 설명했다. 자진 입대를 한 이 회장은 맏형이 인민군에 납치된 사실을 알게 된 후 입대를 늦출 수 없다고 다짐했다.

포병 하사를 지낸 이 회장은 육군종합학교 27기 장교로 임관했다. 육군종합학교는 북한군의 남침으로 국군이 괴멸상태에 직면하자 보강책으로 육군보병학교와 사관학교를 통합, 10개월 만에 7천여 명을 육군소위로 임관시켰다.

 적들과 대치하며 생사를 건 전투

포병 훈련 8개월, 포병 하사 훈련 1개월 그리고 육군 소위로 임관한 그도 입대하자마자 사투의 현장에 바로 투입돼 격전을 벌였다.

몇 미터 거리가 안 되는 사이를 둔 동해안 금강산 부근에서 북한군과 대치하며 포를 쏘는 포대장(포병중대장)으로 맞서 싸운 이 회장은 “전투상황을 파악할 겨를 같은 것도 없었다. 그냥 죽느냐 사느냐만 눈앞에 있었다”며 그 당시를 회고했다. “당시 후유증으로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고 말한 이 회장은 인터뷰 중 다시 말해줄 수 있겠냐며 거듭 미안해했다. 그는 전장에 나섰던 그때를 생생히 기억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전쟁을 통한 가장 큰 후유증은 기억이라고 덧붙였다.
351고지 전투에서 적의 직사포를 맞아 그 자리에서 전사했던 동기 문병길의 이름 석 자는 6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지운 적이 없다. 

이 회장은 “10대, 20대 꿈과 희망을 품고 살아가던 젊은 청년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군말 없이 입대했다. 많이들 죽었고 많이들 아파했다. 하지만 아무도 후회를 하진 않을 것이다. 포병 230명을 이끌던 포대장 시절, 고향 생각에 눈물짓던 부하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내 명령에 그리고 내 지휘에 수백 명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살기 위해 그리고 부하들을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고 설명했다. 

지난 1월  6.25 한국전쟁 참전 유공자에게 수여된 호국영웅기장을 받은 이 회장은 “60여년 전의 희생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아이들에게 호국영웅기장을 보여주며 지난 날을 설명했다. 더 좋은 것을 해주지 못했던 미안함을 호국영웅기장으로 대신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안보교육 중요, 올바른 역사 가르쳐야

서울 출신의 김진호(85)옹도 나라에 힘이 되어보자는 마음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20세의 나이로 군대에 지원했다.

공병 교육을 받고 3사단 수색 중대로 제주에서 최전방 강원도까지, 홍천, 원통, 양앙, 중동부 전선의 각 전투를 거친 김 옹은 “사잣밥을 짊어지고 전장을 뛰어다녔다. 그 당시 하루살이 소위라는 유행어까지 생겼다”며 “나도 내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모르겠다. 우리 중대에서 귀대한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그리고 요즘에도 하루가 멀다고 가는 소식밖에 들리지 않는다”며 한숨을 쉬었다.

김 옹은 “6.25 참전 용사들 누구도 그때의 희생을 자랑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라가 지금 6.25 세대에게 무엇을 보상하였는가를 묻고 싶다. 우리는 꿈을 버리고 나라를 위해 싸웠다. 하지만 요즘 청년들은 6.25 이야기가 노인네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6.25에 대한 교육조차 받지 않는 현실이다. 이런 잘못된 인식을 나라가 그리고 어른들이 잡아주지 않으면 누가 해주느냐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이 회장도 “산 게 고맙고 또 먼저 간 전우들에게 미안하다. 세월이 너무 빨라 6.25 전쟁이 발발한 지 벌써 60여 년이 지났고 팔순에 이르도록 살아온 지금도 그때를 잊지 못한다. 오늘을 살아가는 모두가 나라를 위해 목숨까지 던진 호국 용사들의 기백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 또한 어머니가 해주신 따뜻한 밥을 가족과 오손도손 먹고 싶어 했던 꿈 많던 청년들일 뿐이었다”고 강조했다.

김민희 기자 kim.minhee@koreadaily.com 

이 블로그의 인기글
minhee0715
김민희(minhee0715)
Illinois 블로거

Blog Open 10.31.2013

전체     43561
오늘방문     27
오늘댓글     0
오늘 스크랩     0
친구     0 명
Blog News Citizen Reporter
  최근 방문 블로거 더보기
  친구 새글
등록된 친구가 없습니다.
  달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