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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스타' 내려놓은 브래드 피트 "남자다워지는 훈련? 헛수고다"
09/23/2019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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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이탈리아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된 영화 '애드 아스트라'의 배우와 제작진이 레드카펫을 밟고 있다. [사진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나는 늘 남의 시선으로 나를 의식하며 웃는다. 나의 시선은 언제나 출구를 향해 있다.”
19일 개봉한 SF 영화 ‘애드 아스트라’에서 고독한 우주비행사 로이 맥브라이드의 이 독백은 흡사 스타로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온 제작자 겸 주연 배우 브래드 피트(56)가 처음 들려주는 내밀한 고백처럼 느껴진다.
할리우드 미남 스타의 대명사 브래드 피트의 낯선 모습을 담은 영화 두 편이 잇달아 찾아온다. 20년 지기 친구 제임스 그레이 감독과 함께한 ‘애드 아스트라’에서 그는 실제 삶의 고뇌를 실어냈다. 이어 25일 개봉하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신작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이하 원스...)’에선 아예 스타 뒤에 한발 물러선 스턴트 대역 역에 나섰다. 1987년 영화 ‘무인지대’로 데뷔 이래 배우생활 대부분을 최정상에 머물렀던 그가 이런 ‘그림자’ 같은 존재라니. 세월에 자연스레 주름진 피부를 애써 감추지 않는 것도 소탈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브래드 피트를 만날 시간이란 얘기다.

50대에도 근육·액션 실력 여전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오른쪽)와 브래드 피트(왼쪽)는 각각 1960년대 가상의 액션배우와 그의 스턴트 대역 역할로 호흡을 맞췄다. 두 사람이 한 작품에 주연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오랫동안 사랑받은 연기와 환경, 사회운동 등 공통점이 많아 촬영하며 무척 가까워졌단다. [사진 소니픽처스코리아]





세상에 먼저 선보인 건 ‘원스...’다. 올해 5월 칸국제영화제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나란히 경쟁부문에 초청됐다. 1969년 미국을 발칵 뒤집은 실존 배우 샤론 테이트 살해사건을 기상천외하게 비틀어 당대 할리우드 황금기에 경외를 바친 이 영화에서, 그는 가상의 인물인 한물간 액션스타 릭 달튼(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오랜 스턴트 대역이자 운전사?경호원?집사?친구 클리프 부스를 맡았다.

이 과감한 캐스팅에 대해 타란티노 감독은 “브래드의 캐릭터 클리프는 평생을 아낌없이 할리우드에 바쳤지만 그 헌신이 대중에겐 잘 드러나지 않은 무수한 이들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미국 연예 매체 데드라인과 인터뷰에서다. 할리우드 키드를 자처하는 타란티노 감독이 이 “LA에 바치는 러브레터”에서 클리프란 인물에 각별한 애정을 가진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어떤 의미에서 이 설명은 스타 이미지가 너무 강해 오히려 배우로서 자질이 평가 절하되곤 했던 브래드 피트까지 암시한 게 아닐까.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서 브래드 피트는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을 고수한다. 여기에 하와이안 셔츠를 곁들여 멋스럽게 변주. [사진 소니픽처스코리아]





클리프가 젊은 시절 이소룡(한국계 미국 배우 마이크 모가 연기했다)과 촬영 막간 대련을 벌이고, 릭의 집 안테나를 고치기 위해 지붕 위로 훌쩍 뛰어올라 웃통을 벗을 때면 여전히 탄탄한 근육이 50대가 맞나, 싶다. “가급적 CG(컴퓨터그래픽)를 사용하지 않는 타란티노 감독의 방식 상, 역할을 완벽히 소화하기 위해 많은 훈련을 했다”고 브래드 피트는 전했다.

"넌 빌어먹을 브래드 피트야!"
“스턴트치곤 잘생겼다”는 말에 “자주 듣는다”고 능청스레 받아치는 장면에선 웃음이 절로 난다. 그가 실재했던 세기의 살인마 찰스 맨슨 집단을 상대로 벌이는 활약상은 그야말로 허를 찌른다. 브래드 피트 자신은 “1960~1970년대 영화를 무척 좋아하고 시나리오에 끌려 출연했다”고만 했지만, 영화에서나마 스포트라이트에서 탈출한 그는 어느 때보다 여유롭고 즐기는 듯 보인다. 무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브래드 피트의 첫 공동주연이란 환상의 캐스팅은 지난 7월 먼저 개봉한 북미에선 쿠엔틴 타란티노 영화 역대 첫 주말 최고 흥행성적(약 490억원)으로 이어졌다. ‘바스터즈:나쁜 녀석들’을 제치고서다.



수잔 서랜든, 지나 데이비스 주연 영화 '델마와 루이스'에서 데뷔 초 브래드 피트 모습. [사진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넌 빌어먹을 릭 달튼이야! 그걸 잊지 말라고!”
클리프가 자신감을 잃어가는 자신의 스타에게 외쳤던 이 인상적인 대사는 브래드 피트의 애드리브다. 신인시절 스스로에게 외치며 의지를 불태웠던 말이란다. 미국 오클라호마 시골 트럭회사 맏아들로 자라, 무작정 LA로 향했던 배우 지망생 청년은 스트립 쇼걸의 리무진 운전사부터 냉장고 배달, 단역까지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갓 서른에 처음 세간에 주목받은 작품이 풋풋한 히치 하이커를 연기한 영화 ‘델마와 루이스’였다.

졸리와 이혼 고통에 마약·술…



2014년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가 HBO 행사에 참석한 단란한 모습. [AP=연합뉴스]





이제 출연작만 80편이 넘는 그는 2001년 설립한 영화사 플랜B를 통해 새로운 전성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2년 전 봉준호 감독의 첫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 ‘옥자’와 2017년 ‘라라랜드’로 잘못 부른 수상 호명을 번복하며 아카데미시상식 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작품상을 거머쥔 퀴어 영화 ‘문라이트’를 바로 그가 제작했다. 직접 주연을 겸한 좀비물 ‘월드워Z’론 전세계 6000억원 넘는 흥행수입을 올렸다.
그 중 ‘애드 아스트라’는 지난 8월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첫 공개됐다. 이 영화가 그에게 더욱 각별한 건 전 부인이자 배우 안젤리나 졸리와의 이혼으로 힘겨워하던 시절 그를 다잡아준 작품이기 때문이다. 최근 뉴욕타임즈와 인터뷰에서 그는 올해에야 마무리된 이혼소송의 주요 요인 중 하나가 음주문제였다고 털어놨다. “이혼 과정에서 1년여에 걸쳐 알코올중독 치료 프로그램에 나갔고, 나 자신의 치부를 솔직히 드러냄으로써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고 했다. CNN 인터뷰에선 “이혼의 고통을 추스르기 힘들어 마약?술?넷플릭스?군것질까지 안 해본 게 없다”고도 털어놨다. 2005년 액션 영화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로 만난 두 사람은 올해 연세대에 입학한 매덕스를 비롯해 입양한 세 아이 등 여섯 자녀를 키우며 2014년 혼인신고 이전부터 10년 넘게 사실상 부부로 살았다.

브래드 피트 얼굴이 곧 우주다



영화 '애드 아스트라'에서 브래드 피트는 16년 전 실종된 아버지를 찾아 나선 우주비행사 로이 맥브라이드를 연기했다. [사진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이번 영화의 각본?연출을 겸한 제임스 그레이 감독은 1995년 선댄스영화제에서 자신의 감독 데뷔작 ‘비열한 거리’를 흥미롭게 본 브래드 피트가 먼저 연락을 해오며 우정을 쌓은 사이다. 그는 각본에도 아이디어를 보탠 이 오랜 친구가 “주인공 캐릭터의 본질을 자신으로부터 찾으려 했다”고 돌이켰다.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우주비행사 로이 맥브라이드는 16년 전 임무 도중 우주에서 실종된 아버지(토미 리 존스)를 찾아, 태양계 끝으로 향한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워야 한다는 강박 때문일까. 죽을 고비를 넘기고도 분당 심박 수가 80을 넘지 않을 만큼 자신을 짓눌러온 그는 영웅이라 믿었던 아버지의 진실에 다가설수록 감춰왔던 감정, 연약한 상처들을 드러낸다. 다소 공허한 줄거리를 채우는 건 광활하고 아름다운 우주 풍광, 그리고 자신을 옥죄어왔던 무언가로부터 서서히 해방되며 섬세하게 변화하는 브래드 피트의 표정 그 자체다. 얼굴이 스펙터클이란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남자다워지는 훈련을 받다 보면 왜 사랑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자기 자신과도 깊고 충만한 관계를 맺지 못할까. 나는 항상 강해야 하고 약점을 보이면 안 되고 무시당하지 말라고 배우며 자랐는데, 헛수고가 따로 없었다. 사랑하는 가족, 아이들, 자기 자신을 위해 마음을 열려면 자기 안의 모든 것을 이해해야만 한다. 자기 의심과 연약함까지 부정하지 말고. 강점만 인정하려는 건 자신의 나머지 부분들을 부정하는 것과 똑같다.”
그가 영화사에 전한 얘기다. 그가 삶에서 배운 것들은 그렇게 영화 속에 녹아들었다.

제작자 피트, 배우 명성 넘을까



지난 8월 이탈리아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된 영화 '애드 아스트라'의 배우와 제작진이 레드카펫을 밟고 있다. [사진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배우로서 그는 최근 히어로물 ‘데드풀2’에서 투명인간으로 깜짝 출연할 만큼 흥미로운 시도에 거듭 뛰어들고 있다. “(영화를 작업하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부 다 정확히 안다고 생각하면 끝장”이란 지론대로 제작자로서도 새로운 재능·작품을 쉬지 않고 발굴하고 있다. 마틴 스코시즈 감독의 ‘디파티드’, 스티브 맥퀸 감독의 ‘노예 12년’ 등 플랜B 제작 작품이 잇따라 아카데미시상식 작품상을 거머쥐며 ‘제작자’ 브래드 피트의 수상경력이 ‘배우’로서 그를 조금씩 앞지르는 추세다. 다음 달엔 그가 제작을 맡은 티모시 샬라메 주연 사극 영화 ‘더 킹:헨리 5세’가 부산국제영화제를 찾는다.

묵직한 주연작을 두 편이나 선보인 올해는 영화 시상식에서 그의 이름이 호명될지도 모를 일이다. 라틴어로 “고난을 헤치고 별을 향하여(Per Aspera Ad Astra)”란 말의 줄임말 ‘애드 아스트라’처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브래드 피트의 세계는 계속해서 먼 우주로 나아가고 있다.



브래드 피트가 아카데미시상식과 골든글로브시상식 남우주연상 후보에 모두 올랐던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8) 한 장면. 그는 노인의 몸으로 태어나 점점 젊어지는 기이한 운명의 주인공 벤자민을 연기했다. [사진 일레븐엔터테인먼트]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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