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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신문.........
08/30/2017 05:24
조회  730   |  추천   16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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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를 끊었습니다 / 최성령 


나는 어릴 때부터 신문과 같이 살았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신문을 7개나 보셨기 때문이다.
그 종류는 이렇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경향신문,
한국일보, 충청일보, 소년한국 등 7개다.
월간지로는 신동아가 있다.
 
아버지는 사업차
신문사 支局長들과 親分관계도 있고
로타리 회원들과의 交分도 있어서 그렇다.

나는 그렇다고 그 신문을 다 본 것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신문과 親睦을 도모할 수 있었다.
그 당시는 신문에 한자가 많이 실렸다.
나는 아름아름해서 자연스럽게 한자를 익혔다.
나는 독립해서 조선, 중앙, 국민일보를 보았다.
국민일보는 기독교 신자이므로
의무적인 마음에서 보았다.
 
정권이 여러 차례 바뀌면서
언론이 受難을 당하기도 했다.
京鄕이 폐간되기도 했으며
東亞는 광고가 없는 신문으로 발행되기도 했다.
언론도 정권의 압력을 받아가며
영욕(榮辱)의 세월을 보냈다.

언제부턴가 신문들이 이상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左派性向이 짙어지기 시작했다.
朝鮮이 앞장서고 國民이 뒤를 이었다.
5년 전 쯤에 조선 국민을 끊고 中央만 남겼다.
이것 하나로 平生을 보내자고
다짐을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중앙도 점점
내 기대를 저버리기 시작했다.
작년 태극기 집회 때 중앙은
기사 한 줄 사진 한 장 보도하지 않았다.
그렇게 아우성을 치며
한겨울 광야를 헤맸는데 그랬다.

나는 그 후로 중앙과의 거리가 멀어졌다.
그러나 40여 년 知己를 버리기에는 아쉬움이 컸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오늘 용기를 내서 支局을 찾아갔다.
신문을 끊겠노라고.
빨갱이 신문을 더는 볼 수가 없다고.
 
支局長은 정색을 하며
그렇지 않다고 변명을 늘어 놓았지만
내 마음은 이미 멀어질대로 멀어진 상태다.
지국장은 마음이 풀릴 때까지
無料구독을 권했고
지방지 하나를 더 넣겠다고 했으나
나는 이 말을 던지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本社에 연락해서 實態를 보고하라.
지국들이 망하게 생겼다고.
보수층들이 단단히 화가 났다.
종이신문은 老年층만이 보는데
그들이 뿔을 내면
더 이상 신문의 存立이 어렵다.
권력의 눈치만 보지 말고 讀者를 살펴라.
그것이 신문사의 운명이며 존재이유다."
 
이렇게 일갈(一喝)하고
지국을 나와 집으로 가는데
눈앞이 흐려진다.
눈에 안개가 끼면서 물기가 젖는다.
40년 지기와 헤어지는 아픔이 밀려온다.
이 달 말일까지면 그와 영영 離別이다.
신문 없는 아침을
어떻게 맞이할까가 걱정스럽다.
 
신문은 내 인생의 일부였다는
깨달음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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