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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역사 6 편 :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과 미국의 남북전쟁
04/19/2020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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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강대국 미국의 역사 6   :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과 미국의 남북전쟁


남부의 노예제로 민감한 시기에 1860 대통령선거에 노예제를 달갑게생각하지 않은 링컨이 당선되자 남부인들은 이제 올것이 왔다며 연방에서 떨어져 나와 새로운 연합국가를 만드는데 힘을 뫃았다.  그해 12 사우스 캐로라이나주를 시작으로 미시시피, 플로리다, 앨라바마, 죠지아, 루이지아나, 택사스 7개주가 연방에서 탈퇴했다.  이들은 미시시피 출신 제퍼슨 데이비스를 대통령으로 선출하고 연방정부의 무기고, 요세등을 접수했다.  그러나 사우스 캐로리나주의 찰스턴 항구인근의 섬터요세(Fort Sumter) 항복을 거부하고 반항하자  남부 연합군은 포격을 가했고  미국은 동족간의 피비린내나는 남북전쟁이 시작되었다.


잔쟁이 일어나자 버지니아, 알칸소, 테네시, 노스 캐로리나가 합류해 11개주가 남부연합이 되었고 노예주이면서도 남부에 동조하지 않고 연방에 그대로 남은 주도 4개나 되었다.   전쟁초 북부는 물질적인 자원면에서나  인구면에서 우세했다.  철도망도 잘되어 물자보급에도 우위였다.  그러나 남부는 우수한 장교단과 고향을 지키려는 굳은 의지로 무장한 병사들이 있었다.  전쟁은 주로 남부에서 치루어져 지형지물에 익숙했고 지역주민들의 도움도 남부군에게 이점이 되었다.


신앙의 자유와 가난을 면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쓴 이민대열로 만들어진 미국은 건국 100년만에 이민자의 후손들은 욕심도 , 이념대립도 아닌 자존심 세우기위한 동족상쟁의 비극은 시작되고 있었다.  전쟁은 4년간이나 지속되었고 소규모 전투에서 밀고 당기는 1 1패의 전투가 지속되었다. 서부전선에서 여러번의 남부 승리도 있었지만 남북전쟁의 분수령이 게티스버그에서 3일동안 맞붙어 싸웠다.  수많은 전사자를 속출하며 여기서 북군의 승리로 남군은 퇴각했다.  게티스버그에 국립묘지를 만들고 추모연설이 바로 유명한 국민의,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정부라는 링컨의 개티즈버그 연설이다.  얼마후 리치몬드, 피터즈버그에서 다시 붙은 전투에서 남부의 로버트 장군이 북군의 그랜트 장군에게 항복할 당시 까지 전사자는 61만명에 달했다.


처참하게 무서진 남부의 재건과 전쟁이 할퀴고 남북의 정신적 상처를 회복하는 힘든 시기를 맞이했다. 링컨은 남부인들의 잘못을 너그럽게 다루기를 했고 노예는 해방을 맞았다. 그러나 돈도 기술도 없는 흑인들의 신분은 해방이 되었지만 예전과 크게 다를 바는 없었다.  흑인 단속법, 신분증, 통금제도 등의 제도 장치를 북부는 지지하지 않았다.  전후 재건에 힘써야 중요한 시기에 링컨의 2차임기 42일째 되는 워싱톤에 있는 포드 극장에서 연극을 보던중 남부연합의 지지자로 부터 총격을 받고 링컨 대통령은 사망한다.  따라서 재건 당시의 정책은 고스란히 대통령직을 이어받은 앤드루 죤슨으로 넘어가며 대부분 링컨이 하려고 했던 방향으로 추진된다. 세계인의 가슴에 새겨진 큰 이름 "링컨"은 워싱톤의 링컨 기념관, Rushmore의 큰 바위 얼굴의 4번째 석상을 비롯해 수많은 도시이름, 거리이름의 링컨을 기억하며 미국의 자유와 인권을 지키는 후대의 이정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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