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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자유한국 46편 : 6.25 기념일에 다시 돌아 보는 6.25의 기적
06/25/2019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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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자유 한국 46 :    69 6.25 기념일에  다시 돌아 보는 6.25 기적


, 잊으랴, 어찌우리 이날을..” 시작되는 6.25 노래는 자유를 위하여서 싸우고 싸워, 다시는 이런날이 오지 않게 하리..” 끝난다.  6.25 자체는 우리 민족이 격은 시련이지만 우리 민족은 오히려 강해 졌고 살게 되었다.  첫번째 기적은 이승만 지도자를 갖은 것이다. 조선말기 에서 새로운 국제정세의 변환기에 기독교 정신에 입신한 지도자는 한반도 주변의 열강들의 압력이 가중됨을 느끼면서 영어에 열중하며 신학문을 받아드렸다. 반정부 활동을 염려한 정부에 의해  감옥에 갇친 이승만은 외세의 압력에 대항할 인제를 키워야 겠다는 고종의 뜻에의해 유학의 길을 떠난다.


아이비리그의 명문 조지 와싱톤대, 하바드대를 거쳐 푸리스턴 대학에서  수학 기간중 사귄 친구들이 후일 정부고위직에 임용되어(우드로우 윌슨:  프리스턴대 총장, 후일 대통령, 기숙사 동문 댈레스: 후일 국무장관, 맥아더 소령의 장인 ) 후일 풍전 등화 같은 대한민국을 구하는데 인맥이 아낌없이 발휘 되는 일은 기적이었고 이승만은 한국을 위해서는 천운을 타고 인생이었다. 두번째 기적은 전쟁이 일어나자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가 소집 되었는데 무슨 이유에서 인지 스타린의 지시로 이사국 소련 대표가 참석하지 않았다.


세번째 기적은 인천 상륙작전의 성공이었다인천항은 밀물, 썰물의 차이가 9M 되어 성공률이 낮아 반대에 부딛쳤지만 밀어 붙여 성공했고 전황을 역전 시켜 일대 쾌거를 이루었다. 사학자들은 인천상륙 작전의 성공을 동양의 노르만디 작전이라고 극찬하였다.  6.25 초기의 전세는 아군이 풍지박산 되어 퇴보를 거듭했지만 개성-문산-파주의 백선엽 1사단과 춘천의 김종오 6사단, 강릉지역의 8사단은 대오를 유지 하면서 후퇴해 낙동강 교두보를 확보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맞추어 8 워커 장군의 낙동강 방어전투는 전세를 전환시키는 기적을 가져왔다.


하나의 기적은 일명 모세의 기적인 흥남철수 작전이었다. 중공군이 일거에 30만명이 넘는 병력으로 인해전술로 밀려왔다.  개마고원의 겨울은 영하 40, 극심한 추위로 전사자가 많이 발생했다. 엄청난 손실을 입고 흥남으로 철수 하였다. 1950 크리스마스 이브를 마지막으로 병력 10만명과 피난민 91천명을 전투장비와 군수물자와  함께 안전하게 남한지역으로 철수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깊은 고심 끝에 상당한 전투장비와 군수물자를 포기하고 피난민을 구조 하기로 결정하였다.  철수 하는 동안 5명의 생명이 배안에서 태어났다우리 민족은 잿더미 속에서 오늘 번영한국의 기적을 이루어 내었다우리는 6.25 노랫말 처럼 공산세력에 싸우고  싸워 다시는 이런 날이 오지 않게 하리라는 결심을 하게 된다. (6.25.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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