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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기적이라 불렸던 나라
08/01/2017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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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숙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윤희숙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서구 매료시킨 한국의 발전… 사람 중심 성장이라 더 감탄                    
가난 벗어날 돈 주기보다 국가 재원 인재 육성에 투입
英·獨 개혁에도 靈感 줬는데 정작 우리는 나아갈 방향 잃어



한국 경제 발전은 서구에 의해 기적이라 칭해졌다. 1993년 세계은행은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적 성공을 분석한 '동아시아의 기적'을 내놓았다. 타이완이나 홍콩, 싱가포르 등 함께 분석한 국가 중에서도 한국은 단연 백미(白眉)였다. 다른 소국들과 달리 인구와 국토가 상당한 규모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3년간의 전쟁으로 거대한 폐허 덩어리로 남았다가 불과 한 세대 만에 신흥 중진국으로 우뚝 선 드라마였기 때문이다.

고도 성장만으로도 경이로웠지만, 정작 서구 학자들을 사로잡았던 것은 '사람 중심' 성장이었다. 한국 경제 발전의 사람 중심성은 당장의 가난을 덮기 위해 돈을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성장의 과실을 거둘 역량을 갖도록 사람을 키우는 데 전력을 다했다는 것이다. 국가 예산의 절반 이상을 미국의 원조로 메우던 가난뱅이 나라였으면서도 1960년대 사회 지출은 복지나 의료 지원이 아닌 교육 지출에 막대한 비중이 투입되었다. 마을마다 초등학교를 짓고 우수 인력을 교사로 양성하는 데 아낌이 없었다. 전쟁 중이었던 1953년 실시된 전 국민 무상 초등교육에 힘입어 해방 후 80%에 육박했던 문맹률이 급감한 후에도 교육 투자에는 거침이 없었다.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을 위해 직업교육 체제를 마련하고, 중학교·고등학교 접근성을 단계적으로 높여 산업화가 요구하는 인력을 순차적으로 공급했다. 결국 인적 자원 고도화를 통해 국민 대다수를 경제성장에 포용함으로써 성장과 분배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한국의 사람 중심 성장은 2차 세계대전 후 자본주의 최대 호황기에 국가 주도적 복지국가를 건설했다가 신자유주의로 선회하면서 누적된 이중의 부작용으로 골머리를 앓던 서구 선진국에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당시는 연금과 복지 확대, 노동 시간 감소를 통해 넉넉하고 여유로운 생활을 국가가 보장하는 것이 인류 문명의 발전이며 진보라는 오랜 믿음이 세계화와 재정 위기 속에서 뿌리부터 흔들리는 시기였다. 영국의 사회학자 기든스 교수는 우리의 사람 중심 성장에서 '개인과 가족이 자조(自助)할 수 있도록 정부가 돕는다'는 정신을 읽어냈고, '제3의 길'이란 비전을 만들어냈다. 개인과 가족, 국가, 각각의 책임을 강조하는 '제3의 길'은 영국 노동당과 독일 사회당의 공식 노선으로 자리매김했고 2000년대 초반 하르츠 개혁을 비롯한 많은 선진국 복지 개혁의 기반이 되었다.

그들이 우리에게 배워간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가 국민을 돌보되, 시장의 흐름을 막지 않으면서 개인이 그 흐름을 탈 수 있도록 일으켜 세우고 준비시키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재분배의 개념 역시 바뀌고 있다. 단순한 소득 이전이 아니라, 가정 형편과 상관없이 각자의 잠재력을 개발하고, 부유층 자녀가 더 성공하게 되는 구조를 개혁해 소득 창출 능력 자체를 재분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1998년 영국 블레어 총리와 독일 슈뢰더 총리는 '유럽에 놓인 제3의 길'을 통해, 정책 목표가 불분명한 소득 지원으로 국가의 책임을 과장하고 재정 지출의 크기로 진보 정당임을 증명하려 해왔던 사민주의 관행을 통렬하게 자아비판 했다.

우리가 폐허를 딛고 일어나기 위해 닦은 길이 전 세계 정책 서클의 가슴을 뛰게 하고 생각을 바꿔 국가 발전 모델을 전환하게 하였다니 근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기적'이 출간된 이후의 시간은 우리에게도 녹록지 않았다. 준비 없이 맞이한 세계화와 기술 변화 속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생산성 격차, 고령 빈곤, 핵심 조직 근로자와 나머지 근로자 간의 이중 구조, 재정 압박 등이 지금 우리를 짓누르고 있다.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도전이다. 그러나 가장 암울한 것은 방향성의 부재로 말미암은 혼돈이다. 칼날 같은 글로벌 경쟁 속에서 우리가 놓인 위치를 직시하고, 번영과 사회 통합을 모색하기 위한 비전이 절실히 요구되지만 그 갈급함이 방치된 지 오래다.

새 정부의 핵심 모토는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이다. 며칠 전 발표된 경제 정책 방향은 소득수준과 관계없이 전 계층에게 나눠주는 아동수당, 청년수당을 도입한다고 밝혔다. 효과성 미흡이 끊임없이 지적돼온 사회보험 지원 사업은 오히려 확대했다. 국민이 스스로 노력하도록 돕는 것이 아니라 예전 우리에게 배워가기 전, 호(好)시절의 서구 선진국이 안이하게 표방했던 나눠주기 복지 모델을 그대로 닮았다. 이것이 우리가 이제부터 내세울 '사람 중심'이라면, 한국을 기적의 나라로 만든 '사람 중심 발전'은 이제 자리를 잃었다. 우리를 '한때 위대했던 나라'로 치부하게 하는 것은 지킬 것과 버릴 것을 구분하지 않는, 바로 우리 스스로의 자기부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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