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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냥 조선 사람으로 살었습니다."
11/20/2013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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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을 사랑하고 한국인을 섬긴 엘리자베스 쉐핑 선교사님의 이야기 입니다.


서서평은 본명이 엘리자베스 쉐핑 (Elisabeth J. Shepping, 1880-1934)으로
독일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공부한 간호사로 
1912년 32살의 나이에 조선에 선교사로 파송 받아 
광주 기독병원에서 22년 동안 간호사로 일했다. 
그녀는 가난한 나라 조선에 와서, 
22년간 조선 사람들과 똑 같이 보리밥에 된장국을 먹었고, 
고무신을 신었다. 
서서평은 조선을 위해서 일하는 선교사로 산 것이 아니고
조선 사람들의 친구로 산 것도 아니고 그냥 조선 사람이 되어 살았다. 
그녀는 조선에 선교사로 왔지만 백성들 위에 군림하지 않았다. 
오히려 누릴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하고 조선 사람들을 섬겼다. 
일제 치하에서 고통 받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전라도 일대의 나병 환자들과 걸인들을 돌보았고, 
고아들을 자식 삼아 한 집에서 같이 살았다. 
나병에 걸린 아이를 데려다 양아들로 삼았고, 
버려진 14명의 아이들을 양아들 양딸로 삼았다. 
소박맞거나 오갈 데 없는 여자들 38명을 데려와 집에서 함께 살았다.
서서평은 1년 중에 100일을 나귀를 타고 전라도와 제주도까지 전도여행을 다니면서 
병자들을 돌보았고, 여성들을 교육시켰다. 
당시에 쓴 그녀의 일기엔 이런 기록이 있다. 
"한 달간 500명의 여성을 만났는데, 
하나도 성한 사람이 없이 굶주리고 있거나, 
병이 들어 앓고 있거나, 
소박을 맞아 쫓겨났거나, 다른 고통을 앓고 있었다.” 
그녀가 활동했던 그 시기의 조선의 어두웠던 실정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그녀는 당시 이름조차 없이 "큰년이", "작은년이", "개똥 어멈" "부엌떼기" 등으로 불리던 
조선의 여자들에게 일일이 이름을 지어 불러주고, 자존감을 살려 주었다. 
그리고 자신이 세운 이일학교 여학생들과 함께 농촌으로 가서 
매년 3-4만 명의 여성들을 교육시켰다.
그렇게 살았던 서서평은 결국 자신을 돌보지 않아 몸이 약해져, 
만성풍토병과 과로와 영양실조로 54세의 나이에 숨을 거두었다.
그녀가 남긴 것은 담요 반 장, 동전 7전, 강냉이가루 2컵뿐이었다. 
한 장 남았던 담요는 반으로 찢어 필요한 사람에게 주었던 것이다.
그녀의 시신도 유언에 따라 의학연구용으로 기증되었다. 
그녀의 전부를 조선을 위해 주고 떠난 것이다. 
그녀의 장례는 광주시민사회장으로 거행되었는데, 
장례식에는 수많은 나병환자와 걸인들이 상여를 메고 뒤따르면서 
"어머니! 어머니!"를 외치며 애도했다.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집에 달려간 친구들은 
그녀의 침대 머리 맡에 걸려 있는 좌우명을 보았다. 
“성공이 아니라 섬김입니다 (NOT SUCCESS, BUT SERVICE).”
서서평을 조선으로 보낸 것이 이 말씀이었다. 
그리고 조선에 와서 그런 삶을 살게 했던 것이 바로 이 말씀이었다.

그 사람이 그 자리에 있을 때는 모르고 있다가
그 사람이 사라지고 나면 그 자리가 커 보일 때
그리고 그 사람의 소중함이 느껴지게 될 때 
그 사람은 우리 가운데서 진정 섬김의 삶을 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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