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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박근혜정부 실패 조연 10인
03/11/2017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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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실패 조연 10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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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 및 관리 혐의로 구속 수감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난달 특별검사 사무실로 소환조사 받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왕태석기자 kingwang@hankookilbo.com

박근혜정부가 집권 1,475일 만에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태로 끝내 파국을 맞게 된 데는 ‘핵심 친박계’로 불리는 정권 실세들의 책임이 적지 않다.

박 전 대통령의 호위무사를 자처한 이들은 정권이 탈선하지 않도록 쓴소리를 내놓은 사람들을 솎아내며 심기 경호에만 몰두했다. 국가정보원 댓글 대선개입 사건, 세월호 참사,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등 정권이 위기에 몰릴 때마다 박 전 대통령은 국면전환용 인적 쇄신 카드를 내놨다. 하지만 핵심 친박계라는 좁은 인재 틀에 갇힌 채 이뤄진 회전문 인사는 불통의 철옹성을 높여 갔고, 내부로부터 붕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① 사정기관 장악, 정권 떠받든 ‘왕실장’ 김기춘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왕실장’ ‘기춘대원군’이라 불리며 박근혜 정권 2인자로 군림했다.

그가 2013년 8월 청와대 2기 참모진의 수장으로 발탁된 계기는 국가정보원 댓글 대선개입 사건이었다. 검찰 수사로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이 드러나면서 정치적 수세에 몰린 박 전 대통령은 취임 5개월 만에 참모진 절반 가까이를 교체하며 김 전 실장을 청와대로 불러 들였다.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을 지낸 김 전 실장은 박 전 대통령의 바람대로 청와대는 물론 내각과 사정기관까지 빠르게 장악해 나갔다. 한 손에는 사정의 칼날, 다른 한 손에는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들고 있기에 가능했다.

김 전 실장은 육영수 여사 피살 사건 담당 검사로 박 전 대통령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이후 정수장학회 장학생 모임인 상청회 회장,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사업회 초대 이사장으로 박 전 대통령과 인연을 이어왔다. 지난 대선 때는 친박 원로그룹인 7인회의 일원으로 박 전 대통령 당선에 일조했다. 하지만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이 발목을 잡아 지난 1월 결국 구속됐다.

청와대 문고리 3인방. 왼쪽부터 안봉근 전 청와대 제2부속 비서관,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 정호성 전 청와대 제1부속 비서관

② 대통령-최순실 연결 ‘靑 문고리 3인방

이재만ㆍ정호성ㆍ안봉근 등 이른바 ‘청와대 문고리 3인방’은 박근혜정부를 실패로 몰아간 주역으로 꼽힌다.

이들은 박 전 대통령이 1998년 4월 대구 달성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이후부터 18년간 박 전 대통령을 보좌했다.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전 남편 정윤회씨가 당시 박 전 대통령의 개인 비서실장 역할을 하면서 이들을 발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 전 대통령이 2013년 2월 취임하면서 문고리 3인방은 청와대 살림을 책임지는 총무비서관(이재만), 대통령 일정을 책임지는 제1부속비서관(정호성), 영부인 일정을 책임지는 제2부속비서관(안봉근)으로 자리한다. 장ㆍ차관도 이들을 통하지 않으면 대통령 대면보고조차 할 수 없었다.

“불통도 이런 불통이 없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지만 문고리 3인방이 자리를 보전한 것은 미스터리였다. 비선실세 국정농단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로 파국을 맞고 나서야, 이들이 박 전 대통령과 최씨를 이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세월호 7시간’의 진실을 여전히 가리고 있는 것도 이들이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사건 최종 선고일인 10일 오전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속행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③ 비선실세 꼭두각시였던 ‘왕수석’ 안종범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은 ‘왕수석’으로 통했다. 하지만 최순실 게이트 수사 과정에서 공개된 56권의 업무수첩을 보면 실상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하수인, 비선실세 최씨의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새누리당 의원이었던 안 전 수석은 2014년 6월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차출됐다. 4ㆍ16 세월호 참사로 박 전 대통령의 통치능력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하자 친정체제를 강화한다는 차원이었다.

안 전 수석은 2005년 당시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대표이던 박 전 대통령의 경제교사로 인연을 맺었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치는 세우자) 등 경제 공약의 밑그림을 그렸고, 2012년 대선에서도 공약을 총괄했다.

안 전 수석은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라는 날개를 달았지만, 학자이자 정치인으로서의 소신과 철학을 펼칠 기회는 끝내 얻지 못했다.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그는 미르ㆍK스포츠 재단 설립과 관련해 “대통령 지시에 순응한다는 차원에서 나름대로 판단을 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뒤늦은 후회를 했다.

④ 朴정부 ‘신데렐라’ 서 ‘범법자’ 추락 조윤선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박근혜 정부의 신데렐라’로 불렸다. ‘박근혜의 여자’로 때로는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맡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의 신임 속에 승승장구 했지만, 정부의 문화ㆍ예술인 지원 배제 명단인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으로 한순간에 범법자로 전락했다.

조 전 장관은 여성가족부 장관으로 박근혜정부 초대 내각부터 국무위원으로 참여했다. 여성부 장관이면서도 박 전 대통령의 첫 해외 순방 때 터진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파문에 대해 무대응으로 일관하면서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을 받았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는 첫 여성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발탁됐다. 지난해 4ㆍ13 총선 때 서울 서초갑 지역구에 도전장을 냈다 당내 경선에서 패했지만 이내 문화부 장관으로 다시 기용되면서 회전문 인사의 결정판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김앤장 등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다 2002년 한나라당 대통령선거대책위원회 공동대변인을 맡으며 정치권에 발을 디뎠다. 지난 대선 때 박근혜 캠프 대변인을 맡으면서 박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⑤ 정윤회 문건 무마로 민정수석 오른 우병우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 인물이자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최종 타깃이었다.

정윤회 문건유출 사건을 깔끔하게 처리한 공으로 민정비서관에서 민정수석으로 영전한 그는 측근들을 검찰 요직에 앉히며 ‘역대 최고의 민정수석’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권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민정수석은 대통령 친인척과 권력 실세의 비리를 예방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최순실씨의 국정농단을 막지 못한 책임이 누구보다 크다. 심지어 최씨와 인연으로 청와대에 입성했으며 K스포츠재단이 검찰의 롯데그룹 압수수색 하루 전날 돌연 롯데의 재단 출연금 70억원을 반환하는 과정에 개입하는 등 최씨를 비호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만 20세에 사법고시에 합격한 뒤 엘리트 검사 코스를 걸어 온 우 전 수석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직접 수사한 경력도 있다. 특검팀이 청구한 구속영장이 기각되기는 했지만, 그는 문화체육관광부 국ㆍ과장 5명을 좌천시키라고 당시 김종덕 장관에게 압박을 가하고,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의 미르ㆍK스포츠재단 내사를 방해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해 11월 6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해 질문을 던진 기자를 응시하고 있다.

⑥ 사드 갈등만 키운 외교안보 실세 김관진

박근혜정부 외교안보 분야 실세였던 김관진 청와대 외교안보실장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 논란을 비롯한 외교안보 정책 실패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는 지난 1월 중순 당시 트럼프 행정부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였던 마이클 플린을 만나 “중국이 (사드 배치를) 반대하더라도 상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언했다. 이 발언이 외교라인과 사전 조율을 거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김 실장이 불필요하게 중국을 자극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국내 업계가 막대한 대가를 치르자 김 실장이 외교로 풀 수 있는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는 비판도 거세다.

김 실장은 이명박정부에 이어 박근혜정부에서 국방부 장관을 지내고 곧바로 안보실장에 발탁될 만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웠다. 실제로 경질 위기가 수차례 있었지만 청와대는 늘 관대했다. 국방장관 재직 시 ‘군 사이버사령부 정치댓글 사건’과 ‘윤일병 구타사건’이 발생했지만 제대로 보고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책임론에서 벗어났다. 또 한국형 전투기(KF-X) 사업이 기술이전 문제로 차질을 빚었음에도 당시 기종 선정을 주도한 김 실장 대신 주철기 외교안보수석만 경질돼 ‘대리 경질’ 논란이 일었다.

2014년 최경환(왼쪽) 당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박근혜 전 대통령. 고영권 기자

⑦ 당정 넘나들며 권력 휘두른 최경환

집권 여당 원내대표와 경제부총리를 두루 거친 최경환 자유한국당 의원은 당정을 넘나들며 권력을 행사한 박근혜정부의 실세 중 실세였다. 요직에 있을 때는 물론이고 평의원으로 돌아와서도 청와대와 보조를 맞추며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행사했다.

특히 지난해 4ㆍ13 총선 때는 김무성 전 대표의 상향식 공천을 흔들며 ‘진박 마케팅’에 나섰다가 총선 참패의 주범으로 낙인 찍혔다. 또 친박계 좌장인 서청원 의원 지역구에 공천을 신청한 김성회 전 의원에게 압력을 행사하는 전화 녹취록이 공개돼 공천 개입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원내대표 시절이던 2013년 자신이 데리고 있던 인턴 직원을 중소기업진흥공단에 취업시키기 위해 박철규 이사장에게 인사청탁을 했다는 혐의로 최근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실세 장관으로 야심차게 추진한 경기부양책 ‘초이노믹스’도 박근혜정부의 실정 중 하나로 지목된다. ‘빚내서 집 사라’로 요약되는 부동산 부양책으로 서민들이 대출을 받아 집을 샀지만 경제성장률 상승은 얼마 가지 못했고 가계부채만 폭증했다.

⑧ 여당 분열 부추긴 친박계 좌장 서청원

친박계 좌장인 서청원 자유한국당 의원은 친박 패권주의의 상징으로 당이 청와대의 하부기관으로 전락하는 데 일조했다. 당내 최다선(8선) 의원으로 당의 화합을 이끌기보다 분열 조장에 앞장섰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친박계 지원에도 2014년 7월 새누리당(한국당 전신) 전당대회 당대표 선거에서 김무성 의원에게 패하자, 서열 2위 최고위원으로 김무성 당시 대표에게 사사건건 반기를 들었고 당보다는 청와대 입장을 대변하는 데 치중했다.

2015년 국회법 파동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당시 원내대표였던 유승민 의원이 공무원연금법 개정안과 연계해 야당이 요구한 국회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이에 격노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자 당은 의원총회를 열어 국회법은 재의에 부치고 유 원내대표는 유임하기로 했다. 이 조치로 사태가 정리되는 듯 했으나 청와대 의중을 파악한 서 의원이 친박계를 동원해 실력행사에 나서면서 유 의원은 결국 원내대표직을 내려놔야 했다. 이후 새누리당은 정부를 향해 쓴소리를 못하는 ‘청와대 2중대’로 쪼그라들었다.

⑨ ‘대통령 내시’ 자처하며 朴 비호한 이정현

박근혜정부에서 청와대 정무수석ㆍ홍보수석과 여당 대표까지 지낸 무소속 이정현 의원은 맹목적이다 싶을 정도로 박 전 대통령을 섬겼다. 스스로 “대통령의 내시라고 해도 부인하지 않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지나친 헌신은 독이 됐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보도 개입 논란이 대표적이다. 홍보수석이었던 이 의원은 김시곤 당시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축소 보도를 요구했다. 참사 진상을 규명하기보다 대통령 심기 보좌에 급급한 것이다.

친박계 지원으로 지난해 8월 새누리당(한국당 전신) 대표에 당선된 후에도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한다면 여당 의원 자격이 없다”고 말해 ‘당무수석’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지난해 10월 국정농단 사태 주범인 최순실씨가 대통령의 연설문을 미리 받아 고쳤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도 “나도 연설문 쓸 때 친구 도움을 받는다”며 박 전 대통령을 두둔했다. 이 의원은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목한 인적청산 대상에 포함되자 1월 2일 새누리당을 탈당했다.

⑩ 당청 관계 왜곡한 ‘일요일의 남자’ 윤상현

박근혜정부 출범 직후 여당의 원내수석부대표와 사무총장 등 중책을 맡았던 윤상현 자유한국당 의원은 당청갈등이 있을 때마다 청와대 입장을 옹호한 ‘원조 친박’이다. 박 전 대통령을 누나라고 부른다고 자랑할 정도로 정권 실세임을 자임했고, 최근까지도 태극기 집회에 참여해 탄핵 반대 여론을 주도했다.

원내수석을 지낸 2013년에는 ‘일요일의 남자’로 불리며 주말마다 국가정보원 댓글사건, 서해 북방한계선(NLL) 대화록 파문 등 청와대 입장을 대변하는 현안브리핑을 진행, 대야 협상의 당사자가 정국분란을 주도한다는 비판이 거셌다. 친박계 위주의 국가경쟁력강화포럼을 주도하며 노동개혁, 역사교과서 국정화 등 주요 국정과제와 관련해 청와대 입장을 옹호했다. 2015년 삼권분립 위배 논란 속에 임명된 청와대 정무특보 3인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지난해 4ㆍ13 총선 과정에서 “내가 대통령의 뜻을 알잖아”라며 김성회 전 의원에게 지역구 교체 압력을 넣은 전화 녹취록과 김무성 전 대표에 대한 ‘욕설 녹취록’이 공개돼 파문을 일으켰다.

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출처 :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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