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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진사왕 (385-392제위) -나무위키
06/19/2019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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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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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위나라의 진사왕(陳思王)에 대한 내용은 조식(삼국지)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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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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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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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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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연도
음력
? ~ 392년 11월
재위기간
음력
385년 11월 ~ 392년 11월 (8년)
1. 개요
2. 생애
3. 삼국사기 기록
4. 기타


1. 개요

백제의 제16대 국왕이자, 건길지.

2. 생애


침류왕의 동생이자 근구수왕의 차남.

삼국사기에는 “침류왕이 죽었는데 태자(훗날 아신왕)가 어리므로 숙부인 진사가 왕위에 올랐다(枕流之薨也 太子少 故叔父辰斯卽位)”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일본서기에는 백제의 침류왕이 죽자 왕자 아화의 나이가 어리므로 숙부인 진사가 왕위를 빼앗아 왕이 되었다(百濟枕流王薨 王子阿花年少 叔父辰斯奪立爲王)”고 직설적으로 적혀있다. 현대의 학자들도 일본서기 내용대로 진사왕이 왕위를 찬탈했다고 보고 있다. 게다가 침류왕이 젊은 나이에 갑자기 죽은 것으로 보아 진사왕 또는 그를 지지하는 세력이 침류왕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했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보고 있다.

아무튼 진사왕은 비정상적으로 즉위했고 정통성에 문제가 있으므로 실력으로 사람들에게 뭔가 보여줘야 했다. 그 본인은 사람됨이 굳세고 용감하고 총명하고 어질었으며 지략이 많았다고 한다. 왕이 되고 나서도 나쁘지 않은 정치를 보여주긴 하는데.... 일설에는 처음에는 강인한 군주였으나 도중 나사가 빠져 버려(...) 놀고 먹으면서 통치하다가 광개토대왕 크리를 맞았다고도 한다.

386년(진사왕 2년), 15세 이상의 백성을 동원하여 청목령(靑木嶺)에서 북으로는 팔곤성(八坤城)에, 서쪽으로는 바다에 이르는 관방(關防)을 쌓았다. 당시 고구려는 중국이 비수대전 이후 혼란한 틈을 타 고국양왕이 384년 잠깐 요동을 먹었다가 후연이 강해져서 1년도 못 채우고 다시 빼앗겨서, 요동 진출은 불가능하니 칼끝을 남쪽으로 돌려 386년에 백제를 공격했다. 삼국사기에는 공격했다는 것만 있고 과정과 결과가 없다. 진사왕은 보복으로 390년, 달솔(達率) 진가모(眞嘉謨)로 하여금 고구려의 도곤성(都坤城)을 공격하게 하여 200여명을 포로로 하는 전과를 올렸다. 진사왕은 대승리에 기뻤는지 390년부터 궁궐 증축과 사냥을 통해 여유를 즐기며 왕권 강화를 도모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근초고왕 - 근구수왕 - 침류왕 대로 이어지는 전성기 분위기를 유지할 능력이 되어보이는 괜찮은 왕. 진사왕이 생각해도 고구려가 백제를 개발살낼 가능성은 낮았다. 

얼마 안 가 고구려에서 사기캐 광개토대왕이 즉위하고, 멋지게 발렸다. 당시 고구려는 광개토태왕의 훗날 북진 정복 정책을 위한 사병 폐지 및 국군 통합으로 인해 군사력이 강력해진 상태였는데, 광개토 태왕이 정예병을 추려 백제의 구원 행성을 침공하자 진사왕은 그들이 본진일 거라고 생각하여 직접 나가 싸우게 된다. 그러나 그 때 광개토태왕은 별동대를 이끌고 나가 석현성을 치고 있었고, 석현성에서 보낸 구원 요청이 진사왕에게 도달했을 때는 이미 석현성은 함락된 후였다.석현성을 비롯하여 한수 이북의 10성을 빼앗기고[2] 전략 요충지 관미성마저 빼앗겨 나라의 북쪽이 제대로 날아갔다.

관미성이 핵심이었는데,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광개토대왕 기록을 보면 관미성은 사방이 험한 절벽이고 그 주위에는 바닷물이 있어서 군을 7방면으로 20일동안 총 공격해서야 겨우 점령할 수 있었다고 나와있다. 백제의 지원군은.. 어디 있었나? 

광개토왕에게 발리고 있을때, 진사왕은 구원의 행궁에서 사냥을 했다. 이모습이 나라에 외적이 침입했는데 한가하게 사냥이나 즐기고 있는 무책임한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는데 고대 시대의 사냥은 단순한 여가가 아니라 군대 점검 정도로 봐야 한다. 진사왕 나름대로 외침을 극복하기 위해 군대를 수습하고 점검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삼국사기에는 그냥 구원의 행궁에서 죽었다고 되어 있는데, 일본서기에는 아신왕 세력에게 시해당한 것으로 되어있는 듯 하다. 혹은 패전의 책임을 느껴 자살했다는 말도 있는데 이쪽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사냥터란 원래 인적이 드문 곳이기에 유인만 잘 한다면 사람 암살하기엔 더 없이 적합한 장소로 변하기 때문이다.[4] 재위의 시작과 끝 모두 삼국사기는 애매하게, 일본서기는 좀 더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5]

결국 백제는 이때 잃은 북부 영토를 다시는 되찾지 못했다.

3. 삼국사기 기록

《삼국사기》 진사왕 본기
一年冬十一月 진사왕이 즉위하다
二年 청목령 일대에 관방을 쌓다
二年秋七月 서리가 내려 곡식을 해치다
二年秋八月 고구려가 침입하다
三年春一月 진가모를 달솔로 임명하다
三年秋九月 관미령에서 말갈과 전투를 벌이다
五年秋九月 고구려의 남쪽 변경을 공격하다
六年秋七月 혜성이 북하 성좌에 나타나다
六年秋九月 진가모가 도곤성을 공격하여 함락시키다
六年冬十月 구원의 북쪽에서 사냥하여 사슴을 잡다
七年春一月 궁실을 중수하고 연못을 파다
七年夏四月 말갈이 적현성을 공격하여 함락시키다
七年秋七月 서해의 큰 섬에서 사냥하다
七年秋八月 횡악 서쪽 지역에서 사냥하다
八年夏五月一日 일식이 일어나다
八年秋七月 고구려의 공격을 받아 석현성 등을 상실하다
八年冬十月 고구려에게 관미성을 상실하다
八年 구원에서 사냥하다
八年冬十一月 진사왕이 죽다

고구려와 관련된 내용이 다수.

4. 기타

삼국사기에는 진사왕에게는 아들이 없었다고 했지만 일본서기의 기록과 신찬성씨록, 속일본기 등에 왕인과 함께 입조한 귀수왕(=근구수왕)의 손자 진손왕(辰孫王)에 대한 기록, 그밖에 스가노(菅野)씨, 후지이(葛井)씨, 후네(船)씨 등의 집안이 근구수왕을 시조라고 하거나 근구수왕의 손자 진손왕을 시조라고 하는 것이 국내에 소개되면서 알려지게 됐다.

진사왕의 아들 진손왕은 할아버지 근구수왕의 치세에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것으로 보아 그 당시 이미 15세는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버지 진사왕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자 진손왕은 귀국하지 않고 일본에 눌러앉는다.[6]

[1] 중국사서에 등장하는 이름으로 부여가 없고 여휘만 나오는데 여기서는 여가 성이다. 하지만 진사왕의 재위 기간에 왕세자가 조공을 온것에 아신왕이라는 설이 있다. 진사왕이 본인의 이름으로 왔으면 백제 왕의 명의로 왔을 것으로 추정하여, 그러므로 백제 왕세자 여휘는 본인 이름이 아닌 아들의 이름이라는 설이 존재한다.
[2] 삼국사기의 기록에는 담덕이 용병술에 능하다는 말에 쫄아 나가서 막지 못했다고 전한다.
[3] 윤명철의 '고구려 해양사', 실제로 강화도의 옛 이름이 '갑비고차'다.
[4] 삼국지에 나오는 손책이나 뒷날 잉글랜드윌리엄 2세가 대표적 케이스. 손책은 사냥 중에 허공 문객들의 습격을 받았으며, 윌리엄 2세는 사냥을 간 숲속에서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르는 화살에 맞아 죽었다.[5] 사실 삼국사기 백제 본기 기록 자체가 빈약한 데다가 은유적인 표현이 상당하게 들어갔다. 백제가 망한 지도 이미 오래됐고... 그래서 당대에 남은 백제 측의 기록을 인용한 일본서기의 기록이 삼국사기보다 자세한 경우도 적지 않다.[
6] 일본서기에 의하면 진사왕이 일본 천황에게 거만하게 굴자 백제의 조신들이 진사왕을 살해했다 한다. 진사왕은 형 침류왕이 죽자 조카들이 나이가 어려서 왕위를 계승했지만, 아신왕은 삼촌이 찬탈한 것으로 간주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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