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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백제 비유왕 (427-455 재위) - 나무위키
06/18/2019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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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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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왕
성씨
부여(扶餘)
비유(毗有) / 비(毗)
왕자
부여경사(扶餘慶司),
부여문주(扶餘文周)(?), 부여곤지(扶餘昆支)(?)[1]
부왕
구이신왕(久爾辛王) / 전지왕(?支王)(?)[2]
생몰연도
음력
재위기간
음력
427년 12월 ~ 455년 9월(29년)

1. 개요
2. 생애
3. 삼국사기 기록

1. 개요

백제의 제20대 왕이자, 건길지. 《삼국사기》에 따르면 구이신왕의 맏아들이다. 전지왕의 서자라는 설도 있으나 확실한 근거는 아니다.

2. 생애

구이신왕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송서(宋書)에 따르면 이름은 비(毗). 용모가 아름답고 언변이 좋았다고 하며, 그 능력을 잘 살렸는지 외교에서 재능을 발휘했다. 특히 남북조시대송나라에게 조공을 자주 바쳐 백제 왕으로 책봉되었고, 그 유명한 나제동맹을 성립시켰다.

秋九月 黑龍見漢江 須臾雲霧晦冥飛去 王薨
가을 9월에 흑룡이 한강에 나타났는데, 잠시 구름과 안개가 끼어 어두워지자 날아가 버렸다. 왕이 죽었다.

사망 시 기사가 의미심장한데 기록에 따르면 한강흑룡이 나타났다가 날아가자 죽었다고 한다. 이 사건을 백제 내부의 정쟁에 휘말려 죽었다고 해석하기도 하고, 검은색이 북방을 뜻함에 따라 백제의 북쪽에 위치한 고구려에서 죽였다고도 하는 해석도 있다 다만 비유왕의 해골이 빈 들판에 가매장되었다는 도림의 언급으로 보아 매장조차 제대로 되지 못했던 듯. 아무래도 비유왕의 사망시 정치적으로 혼란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어쨌든 자연스러운 죽음은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

고구려에서 죽였을 수 있다는 설도 어느 정도 일리는 있는 게, 이 사건이 있은 직후 곧바로 고구려의 백제 침공이 이어졌다는 거다. 백제 왕이 죽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처들어왔을 수도 있지만, 먼저 자객을 보내 왕을 암살시켜 백제의 혼란을 야기하는 사전 모략을 벌이고 쳐들어왔을 가능성도 있다. 특히 '검은색'은 북방을 상징하고 용이 나타났다는 위치도 고구려와 국경이 맞닿은 '한강'이었다는 점에 착안해서 백제의 북쪽에 있던 고구려에서 비유왕을 죽였다고 보는 시각이 있는 것. 둘 다 수용한다면 당시 백제 내부에 정쟁이 있었고 고구려 역시 이 점을 이용해서 비유왕 반대 세력과 모종의 결탁을 해서 비유왕을 죽게 해 백제 내부를 더욱 흔들어 놓았다는 해석도 해 볼 수 있다
.

다만 동맹을 맺었던 신라는 약속대로 원병을 보내와서 반고구려 노선을 확실히 했으니 적어도 외교는 성공했다.[3] 물론 결과적으로는 나제 동맹이 깨지게 되지만 그건 100여년이나 뒤의 일이고, 이후 50여년간의 역사를 보면 나제 동맹이 없었으면 전성기 장수왕의 남진에 위례성와 한강 유역 털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나중에 성왕이 전성기 시절의 신라의 힘을 빌려 중흥을 맞이한거도 다 이 나제 동맹 덕분이였다.

이름이 비슷하다고 백제의 11대 국왕인 과 헷갈리면 곤란하다.

3. 삼국사기 기록

《삼국사기》 비유왕 본기
一年冬十二月 비유왕이 즉위하다
二年春二月 왕이 4부를 순행하고 백성들을 위무하다
二年 왜국에서 사절이 도착하다
三年 송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다
二年冬十月 해수를 상좌평에 임명하다
二年冬十一月 지진이 일어나고 큰 바람이 일어나다
二年冬十二月 겨울에 물이 얼지 않다
三年夏四月 송의 문황제가 선왕의 작호를 책봉하다
七年 봄과 여름에 비가 오지 않다
七年秋七月 신라에 사신을 보내 화친을 요청하다
八年春二月 신라에 사절을 보내 좋은 말 두 필을 선사하다
八年秋九月 신라에 흰 매를 보내다
八年冬十月 신라에서 좋은 금과 구슬을 보내 오다
十四年夏四月一日 일식이 일어나다
十四年冬十月 송에 사절을 보내 조공하다
二十一年夏五月 대궐 남쪽 연못에서 불길이 일어나다
二十一年秋七月 가뭄이 들어 백성들이 굶주리고 신라로 달아난 사람들이 발생하다
二十八年 별이 비처럼 떨어지고 혜성이 나타나다
二十八年秋八月 누리 떼가 발생하여 곡식에 해를 끼쳐 흉년이 들다
二十九年春三月 한산에서 사냥하다
二十九年秋九月 검은 용이 한강에 나타나고 비유왕이 죽다

기록이 의외로 많은 편

[1] 삼국사기엔 문주와 곤지는 개로왕의 아들로 기록돼있으나 일본서기엔 비유왕의 아들로 기록돼있다.[2] 삼국사기엔 전지왕의 서자라고도 한다며 어느 쪽이 맞는지 모른다고 기록했다.[3] 신라는 이전부터 백제보다는 친고구려에 가까웠고, 400년 광개토대왕의 남정 이후 고구려군이 신라를 지켜준 대가로 고구려군을 주둔시켜 반속국 상태였다. 신라가 고구려 종속을 떨쳐내고 나제 동맹을 맺도록 비유왕이 끌어들인 것만 해도 상당한 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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