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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고죽국과 백이 숙제
01/31/2019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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孤竹 
(? ~ 기원전 664)

1. 개요2. 역대 군주3. 백이와 숙제

1. 개요

상나라 주나라 때 난하 유역을 중심으로 요서 지역에 있던 제후국으로 탕왕이 봉한 나라이다. 국가의 성씨는 자(子)성 묵태(墨胎)씨, 작위는 후작이다. 초창기에 수도는 하북성 노룡 근처였으나, 영지로 옮기게 되며 상나라가 멸망한 후 흔히 수양산에서 생을 마감한 백이(伯夷)와 숙제(叔齊)가 왕족인 국가로 알려져 있다.

춘추시대 때는 서쪽으로는 연(燕)나라, 남으로는 제(齊)나라와 인접해 있었고 연나라의 압박을 받으며 약해지다가 기원전 664년 제환공의 공격을 받아 멸망했다.

랴오닝성 카줘현(喀左縣)의 구산(孤山)[1] 에서 기후(箕侯)라는 글자가 새겨진 청동기가 발굴되었기 때문에 기자조선의 실체와 위치를 둘러싸고 학계의 큰 관심을 끌기도 했다.

2. 역대 군주[편집]

고죽국의 계보는 대부분 분명치 않으며 7대 ~ 9대 군주만 전하고 있다.
1. 불명
2. 불명
3. 불명
4. 불명
5. 불명
6. 불명
7. 부정(父丁) 묵태죽유(墨胎竹猷) 
8. 아미(亞微) 묵태초(墨胎初) - 부정의 아들, 는 자조(子朝). 윤, 풍, 치 세 명의 아들을 뒀다.
9. 아빙(亞憑) 묵태풍(墨胎馮) - 아미의 차남, 형과 동생이 모두 군주 자리를 거절하면서 그가 즉위했다.
(이 후 군주 불명)


 백이(伯夷)

[편집]

파일:나무위키+유도.png  백이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숫자에 대한 내용은 102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파일:백이와 숙제의 백이.jpg

시호

백이(伯夷)

자(子)

묵태(墨胎)

윤(允)

공신(公信)

생몰기간

? ~ ?


고죽국 후작인 아미(亞微) 묵태초(墨墨胎)의 세 아들 중 맏이. 장남인 자신에게 군주의 자리를 넘겨주려는 동생의 뜻을 거절하고 나라 밖으로 피신한다. 백(伯)은 첫재라는 뜻이고 이(夷)는 시호인데, 후세에 이 둘을 합한 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숙제(叔齊)[편집]

파일:백이와 숙제의 숙제.jpg

시호

숙제(叔齊)

자(子)

묵태(墨胎)

치(致) / 지(智)

공달(公達)

생몰기간

? ~ ?


고죽국의 후작인 아미 묵태초의 세 아들 중 막내. 자신이 물려받은 군주의 자리를 거절하고 장남인 백이에게 양보하려 한다. 백이가 도망치자 형제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따라서 도망쳐나온다. 숙(叔)은 셋째라는 뜻이고 제(齊)는 시호인데, 후세에 이 둘을 합한 숙제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후한말에 황번이라는 사람에게 '백이의 동생'이라는 시신이 자신을 묻어달라고 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사기 백이 열전[편집]

삼형제의 아버지는 삼남 숙제에게 군주 자리를 물려주려 했으나, 숙제는 관례에 따라 큰형 백이에게 왕위를 양보했다. 하지만 백이는 부친의 뜻이라며 사양하고 나라 밖으로 피신해 버렸다. 이에 숙제도 형제간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형을 따라 도망쳐버리는 바람에 그 나라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둘째 아들 아빙을 왕으로 세웠다. 이 후 백이와 숙제는 서백(西伯) 희창(姬昌)이 어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갔으나[1] 이미 서백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백이와 숙제는 서백의 아들 모왕이 부친의 상중에 은나라 주왕(紂王)을 정벌하는 것을 보고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아직 장사도 지내지 않았는데 전쟁을 할 수는 없지 않는가?
주나라 상나라의 신하 국가인데 신하가 임금을 주살하려는 것을 어찌 인(仁)이라 할 수 있겠는가?


라며 만류하려다가 목숨을 위협받았다. 강태공은 형제를 죽이려는 신하들을 만류하며 "이들은 의로운 분들이다" 라고 변호해 형제는 목숨을 건졌다. 무왕의 주나라가 강국이 되자 형제는 주나라 백성이 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수양산에 은거해 고사리를 캐먹으면서 여생을 보냈다.

사마천 사기에서 이 백이와 숙제의 이야기인 '백이열전'을 쓰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궁형을 당한 자신의 비참한 현실과, 백이숙제가 고사리를 캐먹다 굶어죽은 모습을 연관해 보면서 세상의 모순을 상기한 모양.

'"천도(天道)는 공평 무사하여 언제나 착한 사람의 편을 든다."고 한다.[2] 하지만 백이·숙제와 같은 사람은 착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었을 것인가. 그들은 이와 같이 인과 덕을 쌓고 청렴 고결하게 살다가 이렇게 굶어 죽었다. 또한 공자의 고제 칠십인(高弟 七十人) 가운데 중니(仲尼)는 오직 안연(顔淵)만을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추상(推賞)했다. 그러나 회(回)는 가끔 쌀뒤주가 비어 있었으며, 지게미나 쌀겨도 배불리 먹지 못하다가 끝내 요절했다. 하늘이 착한 사람에게 보답하는 것이라면 이것은 도대체 어찌된 셈일까?(중략)
근세에 이르러서도 소행(素行)이 도(道)를 벗어나 오로지 악행만을 저지르고도 종신(終身)토록 일락(逸樂)하여, 부귀가 자손 대대로 끊이지 않기도 한다. 이와는 달리 정당한 땅을 골라서 딛고 정당한 발언을 해야 할 때만 말을 하며, 항상 큰 길을 걸으며 공명 정대한 이유가 없으면 발분(發憤)하지 않고, 시종 근직(謹直)하게 행동하면서도 오히려 재화(災禍)를 당하는 일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래서 나는 천도라는게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참으로 의심스럽다.'


반면 사기 열전과 반대로 본기에서는 서백이 멀쩡히 살아있어 백이와 숙제가 멀쩡히 도착했고, 무왕은 문왕이 세상을 떠난 후에 바로 주왕을 치지 않았다. 사기 본기에서 진시황 장양왕의 아들이라고 서술하고, 사기 열전에서는 여불위의 아들이라고 서술한 것과 같이 받아들이면 될 듯.

여담[편집]

'백', '숙'은 백중숙계 항렬이고, '이'와 '제'는 두 형제의 시호다. 따라서 차남인 아빙후 풍의 시호는 중□이겠지만 군주가 되었으므로 따로 전하지는 않는다.

기본적으로 절개를 지키는 충신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인물들이지만, 일각에서는 단순히 왕에게 절개를 지키는 것만을 지키는 걸 중시하는 소극적인 의미의 충신에 지나지 않으며 그들의 주장은 잘 보면 현실성이 없다고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도 극소수나마 있다. 기실 은나라는 필연적으로 거의 망해가서 왕조교체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은나라가 망하기 직전까지 한 걸 생각해보면 아래에서 들고 일어나도 이상할 거 없는 상황이었다. 여기서 인이니 뭐니 하고 들먹이면서 왕조 교체를 바라는 세력들을 말려봤자 결국 의미가 없다는 것. 

사육신 중 한 명이었던 성삼문도 백이와 숙제가 주나라에게 등을 돌렸다고 하면서도 그들이 먹은 고사리는 결국 주나라의 것이 아니었냐고 깠다고 한다. 

주나라 건국 이후 후일담격으로 나오는 일설 중에는 이런 얘기도 있다. "백이와 숙제가 수양산에서 고사리를 캐어 먹다가 산나물 캐러 다니던 아낙네에게 성삼문이 한 것과 같은 지적을 받았는데, 처음에는 불쾌하게 여기고 무시했다가 나중에 학식이 높은 어떤 사람이 이를 똑같이 지적하자 그제야 오류를 인정하고 식음을 전폐한 뒤 아사했다." 

[1] 참고로 백이와 숙제 이야기를 실은 사기열전에서는 둘이 어떻게 다시 만났는지 그동안 뭐했는지는 실려있지 않는다.[2] 노자 79장에 나오는 구절이다.

출처 : 나무 위키


고구려 발생지 고죽국은 서역에 있었다.

 

요서지역은 서역에, 고죽국이 있었던 수양산도 서역에 있었다.

 

 

 자료의 근거

천상희 지음

 

1. 요사(遼史)  卷三十九?志第九  地理志三  

 

興中府  古孤竹國。漢柳城縣地。

 

(흥중부는 옛날의 고죽국이다. 한나라때 유성현 이다.)

 

 

2.  연경재전집 외집 권48 지리류 서북강역변 하

 

土默特。本古孤竹國。漢之柳城縣。

 

屬遼西郡。爲西部都尉治

 

...........隋復置柳城縣。爲遼西郡治。唐爲營州都督府治。

 

後爲奚所據。遼太祖平奚置興中府。置興中縣。

 

(토묵특은 본래 옛날의 고죽국이다. 한나라때의 유성현이며

 

 요서군에 속했으며 서부도위가 다스렸다........

 

수나라때 다시 유성현을 두었으며 요서군이 다스리게 되었다.

 

당나라때는 영주도독부가 다스리게 되었다.후에 해가 살게 되었다.

 

요태조때 해를 평정하여 흥중부,흥중현을 두었다.)

 

 

魯陳。一名柳城。在西域中

 

經大川沙?無水草。馬牛過此輒死。大風?起。人馬相失。

 

道傍多骸骨有鬼魅。行人失侶。白日迷亡。謂之旱海

 

西有流沙河。北有火焰山 . 山色如火。

(노진 일명 유성이다. 서역 안에 있다.

 

큰 개천을 지나면 모래가 쌓여 있고 수초가 없다. 우마가 이곳을 지나면 언제나 죽는다.

큰바람이 빨리 일어나 사람과 말이 서로 헤매어 잃는다.

길가에 많은 해골에는 도깨비가 있어 행인이 동반객을 잃는다.

서쪽에 유사하가 있어 이를 일컬어 한해라 한다. 북쪽에 화염산이 있어 산이 불과 같다.......)

 

 

사전적 의미

연경재전집- 다음사전참조

 조선 후기의 문인 성해응(成海應 : 1760~1839)이 쓴 총서적인 전집.

 

평 

 

위의 기록에서 고죽국은 유성현으로 나오고, 모래가 쌓여 있는 엄청난 사막이 나오고, 이 지

 

역이 서역에 존재해 있다고 나온다고구려의 무대가 재검토해야 한다. 고구려는 발생지가 중

 

국이 아닌 서역이었다는 것이다. 서역은 중앙아시아에서 서쪽으로 소아시아, 서남아시아까지

 

를 말한다. 그곳에 고죽국이 있었고 , 고구려가 그곳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백이와 숙제가

 

지냈던 곳, 수양산도 역시 서역에,  요서도 서역에 있었다고 한다.  - 러브 선 ?김.(2011.6.4)

 

자료:  본 블로그  펌글 " 고구려 발생지 고죽국은 서역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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