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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의 좌파
01/04/2016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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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의 좌파

 

 

 

    미테랑은

    현대 프량스에서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이었다.


    미테랑은 분명 '좌파' 였지만

    어떤 우파 대통령보다

    더 사랑받는 대통령이었다.


    프랑스 국민들은 그를 연임시켰으며

    그의

    지성과 애국심을 소중하게 생각했다.


    미테랑은

    공공도서관을 정비했으며

    스스로도 대단한 독서광 이었다.
    일주일에

    평균 3-5권의 책을 읽었다고 한다.


    아탈리의 기록을 읽어보면

    미테랑은 TV 를 전혀 보지 않았으며

    래디오만 조금씩 들었다고 한다.
    시간을 아껴 책을 읽은것이다.


    그는 피렌체, 베네치아, 세비야, 부르혜를

    특히 좋아했는데

    그건 그곳들이 프랑스의
    시골풍경을 생각나게 했기때문이다.


    미테랑은 이런말을 남겼다.
    '내각은 통치하고,
    엘리제궁은 물러난채 있어야 한다.


    나는 모루아 총리가 소신껏 하도록 두었다.
    장관들은

    그들이 맡은 행정의 진정한 주인이 되어야 한다.
    훌륭한 장관은 4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만 해도 상당한 것이다.'


    그는 권력의 속성을 알았기 때문에

    오히려 나서지 않을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분명하게 프랑스를 통치했다.

    1995년 5월 18일,
    임기가 끝나

    퇴임한 그는 엘리제궁을 떠나

    14년전에 살았던 아파트로 돌아갔다.

     

    좌파 대통령이 만든 귀족 도서관


    미테랑을 오래동안 보좌했던

    아탈리가 쓴 '미테랑평전' 을 읽으면서

    그가 좌파 대통령 이었지만

    프랑스 국민의 사랑과

    세계인들의 존경을 받은 이유를 알수 있었다.


    그는

    전형적인 유럽의 지성인 이었다.
    진보적인 사고체계는

    깊은 학문적 뿌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조국에 대한 사랑이 바탕이 되어

    유익한 좌파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더 나은 프랑스를 위해.
    1996년 1월 8일,
    미테랑의 장례식에는

    실로 100만의 인파가 모여

    그를 애도하고 석별의 눈물을 흘렸다.

    진보(進步)라는 단어는,
    시간의 경과와 함께

    사물의 내용이나 정도가

    차차 향상돼 가는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정치진보는 현실정치에 대해

    비판적 자세를 견지,

    더 나은길을 모색하는 입장 이라고 말할수 있다.


    같은 정치적이념을 가지는 정당안에서도

    보수와 진보적 입장이 함께 있을수 있는
    이유가 그것이다.


    하나의 사회공동체나 국가가

    건전하게 발전해 나가기 위해서는

    언제나

    보수와 진보라는
    두개의 수레바퀴가 있어야 한다.

     


    그건 필수적이다.
    하나만 있을때,

    그것은 정체와 파국에 이르는 첩경이다.
    파시즘,

    나치즘,

    스탈리니즘이

    모두 독재라는 바퀴 하나만 가지고 나가다

    쓰러진 체제들이다.


    기존의 정치환경에 대해

    비판적 자세를 가지기 위해서는

    그렇게

    할수있는 당위가 분명해야 하며

    목적과 함께

    그 수단도 합목적적 이어야 한다.
    정반합(正反合)에 이르는

    변증법적 법칙이 그것이다.

    좌파와 진보의 차이는

    일반적으로 체제가 기준이 된다.
    진보가 체제 안에서의

    향상(向上)을 목적으로 한다면

    좌파는 반체제적 입장이다.


    그 정치적 이념이 전혀 상반되는,

    우와 좌의 적대적 개념이 되는것이다.
    서구의 경우,
    사민주의(社民主義)를 채택하고 있는

    이데올로기 자체가

    보수적 우파와 진보적 좌파 라고 할수있다.

     


    때문에

    적대적 이기 보다는

    체제안에서의 정책경쟁으로

    유권자의 선택을 받게된다.


    이 정치적 시스템은

    이미 견고하게 자리잡고 있기때문에

    선거를 통한

    평화적 정권 교체가 가능해 졌고

    국민들의

    선택의 폭도 그만큼 넓어진 것이다.


    보수적 우파와 진보적 좌파라는

    그 정치적 입장을 정책으로 정리,

    계속해서 이를 홍보하며

    일반국민들이

    자기들의 정치적 성향과 정책에 대해

    보다 깊은 이해를 할수 있도록

    경쟁적으로 노력한다.

    따라서

    상대에 대한 흑색선전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다.

    의회민주주의의 역사가 일천한 우리에게는

    아직 이데올로기-정치이념에 있어

    정립된 입장이 견고하지 못하다.


    어제까지 여당이었던 사람이

    오늘 야당으로 옮기고

    아침까지 보수라고 외치던 사람이
    오후에는 진보라고 주장한다.

     


    자기가 속한 정당을 떠나는 것은

    생각도 할수없는 일 이라고

    눈물을 흘리며 맹세하던 위인이

    지금은 반대당의 두목이 돼 있는게

    한국정치의 현주소다.


    우리의 정치판에서,
    진정한 의미의 진보는 구경하기 힘들다.
    필요에 의해

    갈아입는 옷 정도의 의미밖에 없다.


    그러나,
    좌파는 분명히 그 정체를 드러내놓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10년간 집권했던 친북좌파다.


    정권이 바뀐지금,

    그들은 18대 국회의 원 구성도 미룬채

    촛불에 얹혀

    집요하게 집권 세력에 공세를 취하고

    자기들이 애써 만들어 추진하던

    한미 FTA 까지 헌신짝 버리듯 던져버렸다.
    국익은 안중에도 없기때문이다.
    한국좌파의 수준을 읽을수 있는 대목이다.

    지금

    우리가 겪고있는 모든 혼란은

    경제, 문화, 사회, 종교가 아니라

    오직 정치환경 때문이다.


    그리고

    그 빌미를 제공하고 있는것이

    좌파세력의 반체제적 행태때문이다.


    그들은

    대한민국의 의회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채택하고 있는

    '체제' 를 전복하는게 목적이다.


    따라서

    한국의 좌파는

    체제 안에서의 진보세력이 아니라

    다른 이데올로기-사회주의
    (공산주의)를 옹호하는 적대세력인 것이다.


    친북좌파라는 표현이 바로 그것이다.

     


    서구의 진보정당들도

    이미 수십년전에 스탈린체제와 결별했다.
    그런데도

    한국의 좌파는

    동구권이 완전히 붕괴된 지금까지도

    그 망령에 사로잡혀 있으며


    소수의 전위대가 대중을 조직하고

    동원, 투쟁하는 원시적이고

    후진적인 행태를 계속하고 있다.
    이데올로기의 시골역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단 한번이라도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정독한 일이 있는지 묻고싶다.
    그건

    수도승 같은 자세와 각오가 없이는

    읽을수 없는 책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좌파는,
    그 이데올로기를

    한국의 현실에 근거하지 못했다.


    교조적인 이념만 구호처럼 외친것이다.
    이미 동구권의 붕괴와

    북한의 참상이 만천하에 알려진 세상에서

    '사회주의 이념'
    더이상 먹혀들어갈수 없는 낡은 사상이다.


    현실에 접목 시킬수 없는,

    일상에

    그 자리가 없는 허상을 붙들고는

    진보가 될수없다.

     


    우리들의 일상안에 ,

    일상과 관계있는 현실적 대안없이

    구호만 외쳐서는 설 자리가 있을수 없다.
    그런데도

    그들은 여전히 과격한 말들의 피켓만 들고있다.

    한국의 좌파는,
    그 사상적인 편협함과 무지때문에

    이데올로기의 근본주의에 빠져있다.


    근본주의가 무서운것은

    다양성을 배제하는 독선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지구촌 시대에서

    그런 독불장군같은 배타성은

    한국을 주변부 국가로전락시킬 뿐이다.


    반미가

    그 대표적인 케이스다.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는 현실이고

    아무도 이를 외면하지 못한다.
    외면한다고 없어지는 문제도 아니다.

    한국의 좌파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타도하려고 한다.
    반시장, 반기업 정서가 그것이다.


    기십만, 기백만이 굶어죽는 북한을 보면서

    이런 주장을 펴고 있다는것은

    비 현실적 이기에 앞서

    태생적 반감이 가져온

    모순으로 밖에는 설명할 길이없다.


    그들도 밥을 먹을것이다.
    그 밥이 어디에서 왔는가.
    시장을 엎겠다면

    시장이 주는 밥도 먹지말아야 한다.

    그들은 모든 사회문제를

    정치적으로만 풀려고 한다.
    '잃어버린 10년' 이 그 증거다.

     


    서민의 일상에서 정치는

    여러가지 사회적 조건중 하나일 뿐이다.


    오히려

    더 중요한게 경제다.
    성장없이 분배가 없다는것은

    애들도

    다 아는 사실인데

    그들만이 모르고 있다.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선동, 선전, 투쟁,개혁이 만들어낸게 무엇인가.
    종주국 소련과 함께

    전 동구권이 붕괴된게 무엇때문인가.
    여기에 대한 대답이 있어야 한다.

    한국의 좌파는

    유별나게 민족주의를 들먹인다.
    지구촌 시대에서

    민족주의에 갇히는것은 새로운 쇄국주의다.


    구한말의 악몽이 아니더라도

    그게 얼마나

    무서운 함정인지는 모두가 알고있다.


    이제는

    '고유한 우리것' 은 기대할수 없는 시대다.
    이미

    우리문화 안에는

    다른 나라들의 문화가 깊숙히 들어와 있다.


    민족주의는

    우리와 다른것은 차단 하겠다는

    치졸한 발상일 뿐이다.

    그들은 국가안보를 우습게 봤다.
    주적(主敵)개념이 없어진 군대가 어떻게 됐는가.
    북한의 핵무장에 대해

    친북좌파정권이 보여준 행태는 그저 놀라울 뿐이다.


    북이 핵으로

    무장 한다는것은 무슨 의미인가.
    정말

    그들이 핵을 무기로 쓴다면 그게 어디일까.
    외국에 대해서 일까.
    생각하면 소름이 끼치는 일이다.


    그런데도

    핵문제에 관한한

    북한편에 섰던게 친북좌파 정권이었다.


    오히려

    미국을 비난하지 않았던가.
    지금 우리가 빌려쓰고 있는

    핵우산의 임자가 누군가.
    이데올로기도 나라가 있고난 후의 얘기다.

    친북좌파의 가장 큰 자기모순은,
    '북한인권' 에 대한 침묵이다.

     


    하기야

    입이 열개라도 할말은 없을것이다.


    또하나,
    아직 평양가서 살겠다고 나서는

    좌파를 본 일이없다.
    말과 행동이 같지않으면 그게 거짓이다.


    뿐만 아니라

    일신상에 문제가 생기면

    너도나도 미국으로 가는게 그들이다.


    그들의 반미가

    구호적 허구임을 그대로 보여주는

    작태가 아닐수 없다.
    정말 가소로운 일이다.

    지금,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자'

    구호를 외칠수 있을까.
    그건

    마르크스가 살았던 시대의 구호다.


    이미

    노동귀족은 한둘이 아니다.
    그들은

    결코

    푸롤레타리아트가 아니다.
    좌파가

    보호해야할 약자가 아닌것이다.


    파업을 빌미로 국가를 위협하는

    오만한 자리에까지 가 있는게 그들이다.
    더이상

    그들을 통해 반사이익을 얻을수는 없다.


    노동,

    노동윤리,

    생산성,

    임금에 대해 새 페러다임을 짜야한다.



    한국의 좌파는,
    조직노동계급중심,

    종북주의(從北主義),

    이념적근본주의,

    산술적평등주의로

    편협하고 집단이기적인 모습을

    더이상 견지해서는 안된다.


    뿐만 아니라

    아웃사이더 로서의 좌파가 아니라

    체제안에서의 '진보' 로 바뀌어야 한다.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는

    정체세력으로 거듭나야 하는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것은,
    '개혁적보수' 와 '합리적진보' 의 두 바퀴다.


    결국

    태생적 불구인 좌파가

    '합리적진보' 가 될수 있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그건 전적으로

    그들의 선택이기도 하다.

     

    by/yoro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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