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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들은 별이 되고
02/11/2017 05:00
조회  2001   |  추천   21   |  스크랩   0
IP 172.xx.xx.124



오늘 2월 11일은 음력 1월 15일로 우리 민족의 큰명절인 정월대보름날입니다. 상원(上元)이라고도 하지요.

정월대보름이면 달이 지구에 가장 가깝게 다가서기 때문에 한 해 중 최고로 크고 밝은 달을 볼 수 있는 날인데요. 

대표적인 세시 명절의 하나인 이날, 대보름날 아침 일어나서 밤 호두 등 부럼을 깨야 일년내내 부스럼도 안 나고 이가 튼튼해

진다 하였구요. 한해 동안 좋은 소식만 듣고 귀밝아지라고 귀밝이술을 남녀노소가 모두 조금씩 마셨지요.

대보름날이 되면 아홉 가지 나물을 마련해 오곡밥 등 시절음식을 나누었는데요. 오곡밥 아홉 그릇을 먹는 날이자 나무 아홉 

짐을 져거나 우물물 아홉 동이를 길어오기도 했는데 이것은 한 해를 부지런히 일하며 살라는 뜻이라요.

저녁이 되어 달이 떠오르면 동산에 올라가 달맞이를 하며 가족의 건강 등 한해 소원을 빌었으며 강강술래 춤도 흥겨웠지요.  

전답의 해충을 없애기 위해 들판에서 쥐불놀이도 하고 달집태우기 등 시절놀이를 했구요

마을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는 농악대가 풍악을 울리면서 마을을 돌았고, 윷놀이 줄다리기 지신밟기를 하며 온마을 사람들이 축제처럼 한데 어우러지는 날이 정월대보름날이었습니다. 

어젯밤은 단비 촉촉히 내리는 흐린 날씨였는데 지금은 구름 사이로 점차 하늘이 트여오니 대보름 만월을 보게될 거 같군요.    

아래 글은 지금보다 한결 순박했던 1982년 대구지역 '오월'이라는 동인지에 실렸던 것입니다.




대보름 달을 기다리며

 


새벽 안개속을 휘돌아 무한 공간으로 스러지는 종소리.

그 긴 여운처럼 가슴에 은은히 남아있는 어릴적 고운 추억이 누구에게나 간직되어 있으리라.


내 고향 겨울은 많은 눈 쌓여 그 무게에 청솔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산골짝 쩡하게 울리며 깊어갔다.

하얀 적막이 깔린 겨울 끝자락에 마련된 빛의 축제이던 대보름날의 민속은 아주 다채로웠다.

이젠 다시 그 고유의 정취에 젖어 볼 수없는 전설같은 얘기들.

설이 지나고 대보름까진 산자며 곶감이며를 갈무리해 놓으시고 달콤한 맛을 쥐어 주시던 할머니께서도

오래전 별빛되어 떠나셨듯이.... 그리운 것들은 모두 별이 되었다.

 

아이들은 삼동 내내 하늘 높이 연 날리며 추위를 띄워보냈는가 하면 씽씽 팽이치며 겨울을 감아 보냈다.

그뿐 아니라 꽝꽝 언 방죽에서 미끄럼타고 덩더꿍 널뛰기도 얼마나 신바람을 일으켰던가.

특히 동네 빈터에다 가마니를 깔아놓고 왁자하니 판을 벌이는 윷놀이는

이웃들과 친선을 도모하는 화합의 자리가 되기도 했다.

그러다 대보름을 맞으면 달맞이, 불꽃놀이가 또 얼마나 마음 들뜨게 했는지 모른다.

 

보름이 가까워지면 엄마는 안방문 위에 생대나무빛이 채 가시지 않은 대조리 한쌍을 엇갈리게 매달고는

그 안에 성냥과 엿을 가득 담아두고 정성스레 한해 동안의 복을 빌었다. 

기원이 담긴 대조리는 일년 내내 그렇게 방앞에 걸려있었다.

그것은 마치 아기 낳은 집에 친 금줄같기도 했고 장 항아리에 걸쳐진 새끼줄과 청솔가지처럼

잡귀의 범접을 막아 집안을 지키는 호신 부적같았다.

 

대보름 아침엔 눈뜨자 마자 밤, 호두, 잣등 부럼을 깨게 하고

좋은 소리만 들으라며 엄마는 귀밝이 술도 한모금 먹여 주셨다.

집집마다 색스럽고 푸짐한 오곡밥에 아홉가지 나물 무치는 참기름내가 고소히 감돌 즈음.

아이들은 귀하게 구해두었던 깡통에 구멍 숭숭 뚫어 불꽃놀이 준비를 했다.

미리 송진덩이나 고무조각, 장작개비 따위를 모아 놓고 냇둑에 불 피울 자리도 봐 둔 다음

날이 저물어 어서 달뜨기만을 기다렸다.

 

드디어 어둠이 먹물처럼 초가 지붕에 스미면 솔밭 동산에서 휘영청 솟아오르던 맷방석만큼 큰 대보름달. 

어른들이 일러주신대로 달을 향해 두 손 모아 소원을 비는 건 아주 잠시, 시늉만 내고는 들로 내달렸다.

와아─ 아이들의 신나는 함성이 일면서 점점의 불길이 요괴처럼, 꽃잎처럼 여기저기 피어났다.


불씨 담은 깡통을 윙윙 소리나도록 휘두르면 불꽃의 원이 춤을 추던 높직한 향교마당.

평소 그 근처에 얼씬도 안하던 아이들인데 이 날만은 떼로 몰려다녀서인지 겁도 없어졌다.

향교 생울타리인 암록빛 향나무는 늙고 구부러진 몸으로 침침하니 주술같은 향을 뿜고있어

왠지 으시시해 낮에도 지나다니길 꺼리던 곳이었으나 이날만은 예외였다.

 

마른 잡초 태우는 냇둑에서는 무리지은 아이들 모습이 불빛따라 일렁댔다.

그들중 하나인 나 역시, 고무타는 냄새가 옷에 밴채 앞머리 몇 오리쯤 끄슬러졌어도 괜찮았다.

탄광갱도가 된 콧속도 개의치 않았으며 우린 선머스마처럼 쥐불놀이에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달이 한참 기웃해서야 그 흥겨운 놀이는 끝이 났고 아이들은 하나씩 달빛아래 잠든 자기집으로 향했다.

 

그렇듯 즐겁기만 하던 대보름이 이젠 오곡밥을 짓는 외엔 너무도 평범한 하루로 주저앉았다.

의미없이 사라져가는 우리의 민속이 어디 하나둘 일까 마는. 도회의 대보름은 더욱 삭막하기만하다.

요란한 소음을 내며 곳곳에서 터지는 폭죽에다 대문간에 던져진 빨갛고 파란 플라스틱 조리는

왜 그리 멋없이 냉랭하게만 느껴지던지.

 

대보름인 오늘, 아침결에는 하늘을 볼 수가 없었다.

하긴 하늘이란 무한대의 공간을 뜻하지만 내게 있어 하늘이란 

해와 달 그리고 별이 뜨는 드높은 창공을 의미하는 것.

오후부터 날씨가 들며 차츰 하늘이 열려왔다.

비에 씻긴 달빛이라 ‘학이 물어다 빚은 옥비녀’ 란 시처럼 투명히 맑고 아름다울 오늘 저녁의 대보름달.

어쩌면 계수나무 잎잎에 스민 고운 달빛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과학문명 앞에 신비의 옷을 벗고 오래 전 아폴론가하는 우주선이 왕복한

한낱 지구의 위성에 불과해진 달. 하지만 난 곱게 간직하리라.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달을 보고 소원을 빌면 그것이 이뤄진다고 믿었던 순수함 뿐이랴.

송판 담장 너머로 대단치도 않은 별식일지언정 서로 주고 받으면서 

이웃과 훈훈한 정을 나누며 자연과 하나되어 살았던 그날의 추억들을.

 

더불어, 점점 더 황막해져 가는 세상을 살아가야 할 나의 아이들에게

옛이야기 들려주듯 가슴에 미리내되어 흐르는 내 고향의 정겨운 사연들을 두고두고 펼쳐보여주리라.

대보름 달빛만큼이나 운치있고 정감어린 그 옛날의 이야기들을‥‥‥.

 

《8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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