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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급열차
04/30/2016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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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동초꽃>

 

쏜살같이 스쳐가는 시간들.

완행열차처럼 더디게 가던 세월이 이젠 특급열차에 오른듯 획획 빠르게 달려간다.

순식간에 옆을 지나쳐버리니 주변 풍치를 감상할 겨를도 없을 뿐더러, 눈 깜빡할 새에 냅다 변화해버리는 풍경들이라 

일일이 따라잡기도 벅차다.  

안그래도 정신없어지는데 이 지역에 오니 꽃조차 절기없이 재빠르게 피고진다.

꽃들도 제각금 급하게 내달리는 특급열차 흉내를 내고있다.


                                                                                                                       <석류꽃>

계절의 여왕 오월에 피는 장미화나 등꽃, 아이리스는 진작에 한물 지났다.

짙어가는 유월 신록숲에 피어나는 찔레꽃, 인동초꽃이 지금 한창이다.

거기다 염천에나 피는 석류꽃, 배롱나무꽃도 서둘러 성급하게 피어났다.

절기 상관없이 질서 무시하고 멋대로 피어나는 꽃들로 하여 더 어지럽고 숨가쁘다.

어느새 사월 끝자락. 그렇게 올봄도 이울어간다 싶건만 벌써 여름꽃들의 행진이 이어진다.

하긴 오랜 세월동안 사철에 길들여진 의식의 혼란일 뿐, 사막기후대에서 꽃들보고 어쩌라구.ㅎ

식물에겐 각각 자라나기 알맞은 생존환경이 있으며 적당한 온도에 꽃피니 이런 투정부림은 괜한 억지겠다.


 

                                                                                                                <죠슈아트리꽃>

아무튼 그래도 내 기억창고 일월 매화, 이월 산수유꽃, 삼월 목련, 사월 라일락, 오월 오동나무꽃, 유월 자귀나무꽃.....

LA 어디서나 자주 보이는 연연한 자카란다나 정열의 꽃 부겐벨리아며 향기로운 레몬트리 산너머 바로인 

우리 동네에서는 만나기 어렵다. 아마도 영하로 잠깐 내려가는 한겨울을 견뎌내지 못하는 것 같다.

그외 모든 화목이 한 절기 앞질러 일찌감치 꽃을 피우는데, 특히 이른 봄 산자락마다 파스텔화를 그리는 야생화와 

깡마른 나무에 비해 꽃송이도 탐스럽게 피어나는 자슈아트리가 장관인 이곳.

뉴저지에서 이사올 때 챙겨온 무궁화와 자귀나무가 어렵사리 정착을 해, 올핸 드디어 자귀나무꽃을 만나는 행운도 누렸다.

그 자랑 겸해 오래전에 쓴 자귀나무꽃에 관한 글 하나를 불러오려고 사설이 길어졌다.


                                                                                                         <자귀나무꽃>


 (향)


연분홍 푼사실이 그만

청록 갑사 치마 위에 함빡 흐드러졌다.

여름의 들머리,
숲 어디쯤에선가 뻐꾸기가 가는 봄을 홀로 전송하는 한낮.
미풍이 자귀나무 잎잎을 애무한다.
밤이면 옷깃 살몃 여미는 정절을 하마 오래 전부터 연모해 왔나보다.
깊은 정한 품은 채로 이울 수 없는 안타까운 정념(情念)이 기어이 몸 풀어 나부낌인가.
갈매빛 숲의 침향(沈香)에 머리 휑군 바람.
그 바람의 어깨짓이 종내는 신들린 듯 하다.

자귀나무 위로 구름 그림자가 지난다.
무심히 흘러가는 구름, 그리고 세월.
아득한 유년의 지층에 화석으로 남겨진 자귀나무.
왜 하많은 나무 중 유독 그 나무에 마음을 여는가.
물빛 그리움으로 매양 설레이며 이리도 연연(戀戀)해 하는가.

오디를 달고 나를 무등 태우던 뽕나무 낮은 가지.
연보라 꿈으로 피어나 너른 잎에 달빛 출렁이게 하던 오동나무.
까마득 높이 치솟아 벽공에 까치집 걸어 준 참죽나무의 훤칠함.
그리고 어느 해 모진 폭풍 뒤 허리가 꺾인 늙은 홰나무, 이끼 낀 샘 가의 배롱나무,
늦가을 감나무 끝의 홍시 빛인들 어찌 잊혀질까마는.

꽃다이 고운 향기도, 예쁜 꽃잎도 지닌 바 없으나
이맘때쯤이면 나는 자귀나무 꽃을 찾아 산에 오른다.
자귀나무를 만나지 않고서는 도무지 심란하여
갈피갈피 스며드는 허기 혹은 빗물 같은 걸 감내할 수가 없으므로.
그러다 자귀나무를 만나면 나는 아예 그 그늘에 묻혀 버린다.

외가의 뒤꼍, 볕바른 장독대만 지나면 곧 바로 동산이었다.
굳이 울타리 따윈 없었다.
굴뚝 모퉁이 짬에 엄나무 가지를 쳐다 걸쳐놓은 외에
솔게 난 노간주 나무가 생울타리 역할을 했다고나 할까.

뒷산과 통하는 길, 그러니까 장독대 제일 큰 장 항아리 옆으로 비스듬 길은 나있었다.
겨우내 구들을 데운
청솔가지 섞인 마른 나뭇단이 점차 허술해 질수록 길은 넓어졌다.
그 낟가리 같이 큰 나뭇단이 몸체를 의지한 나무가 바로 자귀나무였다.
그 나무는 약간 구부정한 허리만 빼면 귀골 타입의 아주 잘 생긴 나무였다.

한겨울 자귀나무는 굳게 잠긴 덧문 너머로 잊혀진 나무였다.
그러다 종달이가 날고 창포가 피고 보리가 영글 무렵이면
자귀나무는 어느새 연분홍으로 수줍게 치장을 시작했다.
정부인(貞夫人) 가슴에 늘여진 노리개의 차랑한 매듭 술과도 닮았고
춤사위 산들산들 휘돌아 펼쳐내는 부채춤에서 본 것과도 같은 자귀나무 꽃.

그 꽃이 필 무렵이면 얼마 남지 않은 나뭇단 속에선
농주(農酒)가 저 혼자 보글거리며 숨결을 삭히고 있었다.
보리 바심이나 모내기 때 쓰려고 담아 둔 술이 꼭꼭 숨은 채로 노오랗게 익어갔다.
외숙모는 때때로 항아리를 두드려 울려오는 음향만으로도 술 익은 정도를 잘도 아셨다.

술을 뜰 때는 한밤중이었다. 밀주는 그렇게 은밀한 어둠 속에서 걸러질 수밖에 없었다.
심지 낮춘 남포불을 받쳐들고 나는 외숙모 곁에서 무서움도 잊은채
꿈꾸듯 아예 몽롱히 그 내음에 취해갔다.
그때 성긴 잎 사이로 자귀나무 꽃은 수만 개 자그마한 꽃등을 밝혀 주었고
더 멀리 까만 밤하늘 가득 미리내 은물결이 흐르고 있었다.

지금도 자귀나무 아래에 서면 나는
은은한 꽃향기 대신 취할 듯 감겨오는 그 새콤달큰한 술내음을 느낀다.
때론 흠뻑 취해들고 싶을 적이 있다.
무릇 술에만 취하랴.
브람스에, 렘브란트에, 보들레르에 그리고 저 자연의 무량함에. 


햇살도 비껴가는 유월 오후.
바람이 이는가 보다.
자귀나무 긴 그림자가 다시 너울거린다.
그리움이란 아름다운 것인가.
아름다움이란 얼마쯤 슬픈 것인가. 차라리 나는 눈을 감았다. 


- 1986 -



* 자귀나무:연분홍 색실을 풀어놓은 듯한 꽃은 예전 코티분 뚜껑에서도 보았을 터이다.

              미모사처럼 저녁마다 서로 마주 합쳐지는 잎이 매우 특이한 나무다 

              한자로 합환목(合歡木), 야합수(夜合樹), 유정수(有情樹) 등으로 불린다. 

              집에 심으면 가정이 화목해진다는 속설이 있으며 흔히 정원이나 길가에 심는다. 

                 꽃으로 술을 담기도 하고, 말린 꽃잎을 가루내어 기관지염, 천식, 불면증, 임파선염, 폐렴 등 치료에 쓴다. 

              자귀나무는 껍질을 합환피라 하여 민간과 한방에서 요통, 타박상, 어혈, 골절통, 근골통 약으로 흔히 쓰였다. 

 



                                                               


向, 자귀나무꽃, 인동초꽃, 석류꽃, 자슈아트리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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