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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만세?
03/19/2016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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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할머니가 머나먼 나라로 여행을 떠나셨다.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나라, 아무도 다녀온 적 없고 여행기도 남겨지지 않은 미지의 나라로.

지난 겨울 몇차례 앰블란스에 실려가더니 엊그제도 앰블란스가 왔었고 그리고는 이후 잠잠해졌다.

꽃잎 지듯이...이슬 잦아들듯이...구름 스러지듯이 그렇게 한 생명체가 아주 조용히 사라져갔다.

어제는 집안의 낡고 허름한 가재도구들이 들려나와, 한낱 쓰레기로 마당가에 아무렇게나 부려져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 자기 이름은 베티이며 나이는 아흔 셋이라 하던 새하얀 할머니.

그러니 올해로 아흔 다섯, 남매를 두었는데 둘 다 오십대에 하늘나라로 갔다고 무심하게 말했다.

마을이 갓 형성되던 70년 전에, 새로 지은 그집에 들어와 평생을 살았다니 우리 동네 역사의 산증인이나 마찬가지인 할머니였다.

쳇머리를 심하게 흔들고 보행시 지팡이에 의지하는 쇠잔한 할머니였으나 총기만은 잃지않아 살짝 화장까지 한 얼굴에, 단한번 내 이름을 듣고도 곧장 이름을 기억해 낮은 목소리로 가끔 불러주던 할머니.

그녀가 아침마다 구형 미색 시보레를 손수 운전하고 외출을 하기에 교회를 다녀오나 했는데, 우연한 기회에 한번 동행하므로써 그녀가 아침먹으러 레스토랑에 가는 줄을 알게됐다.

식사래야 커피 한 잔에 스크램블 에그와 핫도그 하나가 접시에 뎅그러니 놓여진 걸 천천히 나눠 드셨다.

날마다 가는 단골집인듯 주인과는 덤덤히 인사말을 주고받았고 다른 손님들과도 간간 얘기를 나눴다.  

집에 돌아와서는 하루 종일 무얼하는지 집안에서 꼼짝도 안하니 사위는 바닷속처럼 늘 고요했다.   

유일하게 그집에 드나드는 조카라는 남자도 구부정한 노인인데 그가 집 안팎 손을 봤으며 시장도 봐왔다.


이 동네로 이사와 짐을 풀어놓자마자 바로 옆집이라서 화분 하나를 사들고 인사차 찾아갔었다.

현관문 빼꼼 열고 내다보는 그녀와 통성명한 뒤 화분을 선물하니, 받아서 비칠거리며 안에 들여놓았다. 

그때의 느낌이 웬지 집안 공기가 퍽 칙칙하고도 퀴퀴할 것 같아 들어오라 해도 사양할 거 같았다.

다행히 그녀는 문을 활짝 열지 않았고, 그 이후로도 그녀집 현관이나 창이 열린 일을 거의 볼 수 없었다.

어쩐지 냉하니 무겁고 습한 기운이 온데 감돌 것만 같이 어두워보여, 아무리 환기시키길 즐기는 나일지라도 그녀집 쪽으로 난 창문은 되도록 열지 않았다. 탁한 기랄까 음 에너지가 흘러들 것 같은 기분이라서.

아침식사를 하러 외출하는 외엔 나가는 일도 전혀 없고 아무도 그녀를 방문하러 오는 사람이 없었으니, 칩거하다시피 들어앉아 24시간을 뭘로 소일하는지 때론 궁금했다.

반려동물을 키우지도 않으며 암튼 살아 움직이는 무언가와 교류하는 분위기는 도통 아니었다.

그래도 그집 앞뜰에 때되면 아이리스 피어나고 홍장미 붉으며 겨울철엔 크리스마스 장식등이 반짝댔다. 

뒷뜰엔 삭아서 기우뚱한 포도 시렁에 포도가 열리고 반쯤 고사목이 된 백도나무 자두나무 꽃이 펴 열매 맺을 즈음이면 온동네 새들을 불러 모으기도 했다. 


동반자나 가족과 친구, 너르게는 이웃이 있어 더불어 소통하며 관계 안에서 살아가는 게 우리네 삶이다.  

삶의 보람은, 사회 속에서 일정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면서 스스로 어떤 가치를 창조하고 있다는 실감이 들때라야 비로소 느껴지는 것이라 했다

사회적 책임과 연대에서 이탈되어 소외당하는 순간, 아무리 들숨과 날숨을 열심히 쉰다해도 이미 생의 여정은 멈춘거나 진배 없어지는 거 아닐지.  

노년기의 도래란 누구에게도 예외없으며 아무도 거부할 수도, 방관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는 인간 모두에게 당연히 오는 과정이다. 다만 노쇠기를 어떻게 맞아 건강한 삶을 영위하느냐 하는 것은 내적인 힘과 종교적 인생관이 균형있게 다져져야만이 가능하리라고 본다.

노화는 질병이 아니라 적응력 감퇴현상이란 말에 동의한다해도, 심신 건강한 가운데 원할한 인간관계 안에서 비로소 행복을 느끼게 되는 우리가 아닐까.

물론 중풍이나 치매로 너싱홈에서 적막하고 쓸쓸히 시들어가지 않고, 그 할머니처럼 생의 마지막까지 낯익은 집에서 내 식대로 살다 떠나는 것만도 다행이긴 하리라.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이 있다. 고생스럽게 살더라도 죽는 것보다는 사는 게 낫다는 얘기다.

꼭 그럴까? 살아있음은 축복이라 하나 과연 백세시대 장수만세가 반드시 축복이기만 할까도 싶어진다.

그 할머니처럼 사회보장 덕에 다른 걱정없이야 살지만, 자식들 다 앞세우고 노후에 홀로 지리멸렬한 시간을 보내야 함이 축복이랄 수 있을까? 그또한 인간의 능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한계밖의 일이자, 하늘에서 주시는 대로 받아야하는 순명만이 우리의 몫이긴 하다지만.....

때마침 사순시기, 이 시기에는 하느님의 자비가 죄인들에게 쏟아지는 은혜로운 때라 한다. 따라서 수많은 죄인들이 회심하고 하느님께로 돌아오기에 천국문이 활짝 열려있다고 한다. 천국문이 열려있기에 사순 시기에 죽으면 바로 직천당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저마다 희노애락이 서리고 맺힌 한생애다. 노후의 고적한 생을 마감한 그 할머니, 내생은 평화로운 안식 누리시길 기도드렸다. 불쑥불쑥 그분 자취오를 것 같아 한동안 무서울 줄 알았는데 전혀 아무렇지 않도록, 그 할머니 고이 떠나시며 겁많은 이웃 배려도 충분히 하신듯 해 고맙다. 

두루 어우러져 행복하게 웃고 즐기면서 누구나 세상사 바르게 생각하고 판단하고 처신하고, 좋은 일 찾아 행하며 또 모두가 건강한 가운데 아름다움 추구하면서 살 수 있기를......허나 이건 어디까지나 허황스런 봄꿈에 지나지 않으리라.

이리 화창한 봄날과 어울리지 않는 얘기를 하게 돼 미안스런 일이나, 이 역시 생의 이면이자 그림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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