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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나무에게
03/02/2016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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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은 실로 많다.

 별과 꽃과 눈.

 종소리며 달빛이며 젊음이며.

 산수풍경도 예술의 세계도 사람 사는 모습도 아름답다.

 어머니 우리의 어머니. 늘상 염려의 눈빛으로 그윽히 지켜주는 그 지고지선의 사랑.

 누리를 밝히는 일출의 무구한 눈부심은 물론 이내빛 서럽게 휘감고 잦아드는 석양의 장엄함.

 옹아리하는 아가, 유채꽃 사이에 선 신부, 오월 숲 찔레 향 , 겨울 솔바람, 꽃을 받아 든 수로부인, 

 잠든 지귀에게 웃옷 벗어 덮어준 선덕여왕, 클라라 슈만과 브람스, 로마의 휴일 속 오드리 헵번....


 또한 사계의 변화는 그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기실 어떤 수사법도 무색할 뿐인 사계의 변모와 질서. E플렛 장조의 화평한 曲想을 겨울의 끄트머리에 얹어 남풍을 전해 주던 비발디. 철이 바뀌는 기척이야 비단 바람결에서만 감지하랴. 五感 어디나 할 것 없이 스멀스멀 파고드는 신비로운 속삭임. 화창히 무르녹는 봄기운에 키질 당하며 나는 지금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도취는 매양 황홀한 것. 段盛한 연녹두빛 물굽이에 나 이대로 침몰해도 좋으리니.


 잡목 어우러진 동산을 곁에 두고 사는 덕에 사계의 표정을 세세히 읽을 수 있는 이 은혜로운 청복. 특히 오리나무 숲의 변신에서 누구보다 먼저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음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며칠 전까지도 안개 어리듯 아스라하던 오리나무 숲. 그의 綠衣가 하루 다르게 부풀어 간다. 한무더기 솜사탕의 부드러움으로 몽실대는 오리나무 숲은 은근히 유혹적이다. 숲 새새에 산벚꽃은 구름으로 피어났고 발치마저 화사히 참꽃을 깔아 둔 배려가 은근스럽다.


 연두빛과 연분홍의 어울림. 음양의 조화가 이런 것이리. 천생연분의 배필이 바로 이런 것이리. 오리나무 숲은 요즘 한창 신혼이다. 그러나 이제 곧 찬란한 신록이 잎잎에 빛나리니. 조춘의 설렘 지나 경이로운 변화가 손에 잡힐 듯한 이 무렵이 오리나무 숲은 가장 아릿다웁다. 갓 잠깬 누에처럼 고물거리는가하면 초원의 양떼같이 굼실대는 푸른 숲. 이어서 건강한 신록되어 굽이치며 승천할 청룡.


 만화방창 흐드러졌던 뭇꽃 지고 난 뒤의 허망을 채우기 위함인가. 푸른 숲에다 뻐꾸기 소리를 준비하고 더불어 암녹빛 무성해지면 매미 청하여 품에 안는 오리나무. 그 여름 오리나무 숲은 밀밀한 녹음이 숨막힐 정도다. 보잘 것 없는 체구 어디에 그런 정기가 축적 되었을까 싶게 작은 잎새마다 내뿜는 열정은 뜻밖에도 아주 대단하다.


 한껏 왕성한 생의 찬가가 격정이듯 넘실대는 여름 지나 풍요로운 거둠의 가을. 오리나무는 떠날 채비 서둘러 黃布 필로 감싸고 자신을 정리하며 조락의 아픔을 견딘다. 묵상의 시간 겨울. 빈 몸 겸허히 바람에 맡긴 뒤 禪에 드는 오리나무. 그러나 내밀히 부활의 봄을 가꾸는 오리나무. 이렇듯 오리나무 숲의 사계는 다채롭기 그지없다. 그 봄날 환상적인 파스텔화로 몽롱히 꿈꾸는 숲. 量感 풍부한 여름 숲이 유화라면 현란한 가을 숲은 크레파스화이리라. 비장하리만치 절제된 수도승의 삶 닮은 겨울 숲은 아무래도 담채화다.


 소월은 ‘산새도 오리나무 위에서 운다’ 고 노래하였다. 산새 깃들인 그 오리나무는 전국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허름한 樹種이다. 촌락의 야산이든 도시 한 귀퉁이 언덕이든 개울가 비탈이든 자리 가림 없이 잘 자라는 나무다. 자작나무과에 딸린 낙엽 교목인 오리나무는 미루나무나 전나무처럼 훤칠하지도 미끈하지도 못하다. 태생이 워낙 시원치 않은걸까. 목질 단단하거나 무늬결 고운 귀목이긴 커녕 나무 자체도 오종종하니 볼품없는 모양새다. 그렇다고 과실 여는 나무도 아닐뿐더러 아름드리 재목감도 아니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지만 오리나무가 운치 있는 분재용이란 얘기도, 기품어린 정자나무로 마을 어귀 지킨다는 말도 들은 바 없다. 그저 그런 잡목 중의 하나로 긴하게 사용될 곳 마땅찮아 땔감으로나 쓰임직한데 요새 나무 때는 아궁인들 있을까. 해서 소나무 곁가지처럼 지천이 된 오리나무다.


 그러나 나는 안다. 봄 동산은 오리나무로 하여 눈 뜸을. 겨울이 채 비껴 서지 않은 이월 초만 되도 벌써 오리나무는 가지 끝마다 붉으레 물이 오른다. 바지런하게 제일 먼저 깨어나 탄력 넘치는 봄을 여는 오리나무. 뒤늦게 순 튀우는 감나무 쯤 아직 한밤중일 때 오리나무는 홀연 깨어나 환하게 세수를 한다. 첫 새벽 정화수 길어 지성 드리던 옛 여인의 성심으로.


 오리나무는 잎보다 먼저 피어나는 게 꽃이다. 명색이 꽃일뿐 산수유 꽃빛깔도 아기자기한 개나리의 귀여움도 아니다. 더더구나 우아한 목련화를 연상한다면 대단한 실망이다. 길둥근 자색 방울 같은 암꽃에 이삭처럼 길게 늘어진 숫꽃은 아무리 잘 봐 주려해도 꽃 비슷한 형태조차 갖춘 바 없으니까. 하지만 실한 씨앗 가득 머금은 오리나무.


 또한 오리나무는 지조와 절개를 의미하는 상록수가 아니다. 가을이면 끈끈한 집착이나 미련없이 훌훌 낙엽 떨구는 갈잎나무이다. 어쩌면 오리나무는 머물 시기와 떠날 무렵을 제대로 가릴 줄 아는 지혜롭고 용기있는 나무인지 모른다. 어느 낙엽수나 응당 잎이 지게 마련이지만 봄의 새잎 나오도록 악착같이 매달려 있는 떡갈나무도 있지 않던가. 그에 비해 일제히 숲 전체를 텅 비우는 오리나무.


 空은 헛된 것 혹은 비어 있음의 허무가 아니라 아무런 애착이나 흔적 남김없는 상태를 이른다 하였다. 윗자리 높은 어른도 물러설 때 분별 못해 결국 추한 뒷모습 보이는데 반해 오리나무는 의연한 기상으로 큰 가르침을 준다. 그 뿐이랴. 오리나무의 다른 계절 감각은 세월에 뒤쳐져 사는 나를 일깨우곤 한다. 이외에도 내가 모를 따름이지 오리나무는 제 몫의 가치있는 역할이 더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타닌 성분을 추출하여 염료로 쓰는 그 열매처럼.


 오리나무 곁에서 그의 근면과 성심과 空에 가까운 득도의 경지를 지켜보노라니 문득 나 오리나무에게 청하고 싶어진다. 내세에는 오리나무 이웃의 수수한 풀꽃되어 그를 배우고 싶은 내 원을 들어달라고.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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