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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일암 생각
09/04/2015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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向日庵 생각



 고 3 수험생 엄마인 며느리로부터 딸내미 진로문제와 관련, 조언을 바란다는 카톡이 왔다. 문과 공부를 하는 손녀가 수능을 앞두고 학과선택에서부터 여러가지로 갈등요인이 많은듯 했다. 혼자만 겪는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2017년도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이나 학부모나 초조하고 불안하고 힘들기는 다 마찬가지로 똑 같으니 일단 긴장을 푸는 게 중요하다는 말부터 전했다. 아무쪼록 아이가 심적 부담을 느끼지않도록 최대한 배려해주되 엄마가 할 일은 기도밖에 없다고도 했다.


 문득, 오래전에 갔었던 향일암 생각이 났다. 관음 기도처이자 장관인 일출 명소로 남해에서 첫손 꼽힌다는 금오산 향일암. 어느해 초가을 아침. 비에 젖어 흑요석처럼 윤기나는 남해 고속도로를 달려 여수에 닿았다. 오동도 동백꽃보다 먼저 반기는 곳곳의 섬., 섬, 섬. 굽이 돌면 포구, 다시 포구. 역시 다도해였다. 점점의 섬. 설레이며 너울거리는 창파. 거듭 솟구치다 부서져 물보라로 흩날리는 파도의 탄주곡, 해서 섬 주변은 심심치가 않았다.


 검푸른 옷깃으로 섬을 감싼 채 늘 그만큼한 키로 남실대는 바다. 흰 물살 따르는 목선이 항구를 바삐 떠나자 큰 나래 훨훨 가까이 다가서는 갈매기. 순하다 여긴 그 새, 고쳐보니 예리한 부리에 날개짓 민첩하다. 첨예한 그 기세에 눌려 한결 눅어진 빗발, 대신 안개가 뽀얗다. 주변 풍경 죄다 생략되니 한적한 시야. 차는 안개등을 켠 채 거북이 걸음이나 가로수는 저마다 삽시에 물러선다. 돌산대교를 건너자 희뿜히 개이는 하늘. 쭉쭉 뻗은 해송 사이로 보이는 바다도 점차 희색 너울을 벗었다. 심한 굴곡이 빚어놓은 여기저기의 만. 무수한 부표들이 청옥빛 바다에서 부산을 떨어댔다. 바다를 경작하는 양식장들이었다. 청정해역인 바다의 밭엔 김, 미역, 굴 등이 향기롭게 자라리라.


 해안가 자갈밭에 펼쳐진 채 낮잠 자는 그물. 인적도 없었다. 마을을 지키는 건 오래된 정자나무 뿐이었다. 어촌을 지나자 이어지는 산촌. 비에 씻긴 나무들, 더러 물든 단풍이 곱다 싶어 올려다보니 금시 쓸려내릴 듯한 산기슭 바위더미가 아슬아슬했다. 그 아래 작은 마을엔 촘촘 쌓은 돌담 아래 잊혀진 양 정물로 남은 호박 덩이가 서넛. 차창밖엔 또 다시 비가 몰려온다. 길손에게야 반갑잖은 비지만 기다렸던 듯이 비를 맞으며 김장밭 고랑을 일구는 촌노의 얼굴이 밝았다.

 

 산모롱이 돌 적 마다 터덜거리는 차. 한쪽은 절벽에 이어진 바다로 길이 꽤 험했다. 비 덕에 먼지 일지 않음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한참 계속되던 비포장 도로가 우뚝 멈춰섰다. 돌산 끝머리였다. 생김새부터 특이한 임포 바닷가. 흡사 거북이 팔을 휘저으며 바다로 나가려는 형상이었다. 등에 진 송림조차 가벼이 물에 뜰 듯 쑥 뽑은 머리에 힘이 넘쳤다. 십장생 가운데 하나인 영물답게 한려수도 그 중에서도 가장 절경지인 물 찾아 여기 올라 붙박았던가.


 큰 거북 띄운 바다. 빗발 마중하려 자락자락 솟구치는 물결, 그 술렁임에 아득히 이어지는 파랑. 그러나 다시 돌아와 가파른 벼랑에 흰 피 뿌리는 순교의 넋이 되는 파도. 바다와 마주선 나는 순간 남해를 통째로 마시고 싶어 훔훔거리며 한껏 해풍을 들이켰다. 탐욕스러움도 잠시, 나의 동작은 주춤해졌다. 세찬 비도 아랑곳하지 않고 미끄러운 급경사 조심스레 내려가 해안에 선 여인들. 이제는 점차 형태가 바뀌어 가고 있지만 아직도 불교행사로 여전한 방생 불사를 위함이었다. 두 손 모아 거듭거듭 빌고 또 비는 뒷모습의 숙연함에서 지고지순이 읽힌다. 수험생을 둔 모성의 극진한 간원은 비감하다 못해 눈가 아릿하게 했다. 기도 공덕만으로 합격되는 건 아니나, 그렇게라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어미 마음. 거센 바람에 촛불이 위태로이 일렁거렸다. 해조음 속으로 잦아드는 독경소리 목탁소리, 이윽고 가뭇없이 스러졌다.


 행장을 수습하고 빗속에 모습 감춘 금오산에 올랐다. 남해 일출을 마주하고 섰다는 향일암 신령스런 거북 바위에 솟은 암자라서 영구암으로도 불려지는 기도처다. 원효대사의 창건 설화만 신비로운게 아니고 암벽 사잇길 역시 놀랍기만 했다. 한 사람 겨우 통과할 정도로 비좁게 난 바위와 바위틈새 길. 통천문을 지나듯한 외경심마저 일었다. 새집마냥 암벽에 얹힌 암자는 한폭의 신선도였다. 휘휘 둘러봐도 스멀거리는 안개에 가려 모습 드러낸 게 없어 아슴한 뱃고동 소리로 저 아래는 바다이리라는 짐작뿐.


잠시도 한눈 팔 수 없을 정도로 아득한 시계. 미로처럼 나 있는 암굴 돌층계 짬에서 벙그러진 동백꽃을 만났다. 의외로 인근은 동백 숲이 우거졌다. 어깨를 스치는 동백가지에 젖으며 어둑한 길을 지나자 홀로 우뚝선 관음전이 보였다. 일망무제로 거칠 것 없는 조망터임직한데 보이는건 오직 발치의 반석 뿐이었다. 거북등처럼 특이한 줄무늬가 바위를 감쌌다. 문득 내가 거북등에 오른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가 나 자신이 또 하나의 거북 바위로 굳어질 것만 같았다. 하긴 거북도 바위도 그 아니 좋으랴. 세사에 얽매여 조바심치고 안달부리며 아둥바둥 살아야 하는 한낱 범부 중생일 바엔.


 비 그치면 안개도 걷히겠지만 머리 속 자욱한 안개로 혼미를 거듭하는 나의 미망은 어찌해야 깨어날까. 차라리 무명이 편안해 눈 뜨길 꺼리는 어리석음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게 또한 나를 암담케 하는 것. 명철한 의식으로 부지런히 뛰어도 도토리 키재기인 판에 눈 먼 거북 행보를 계속하니 답보 상태를 못 벗는가. 그러나 그러나, “사람들이 애써 찾는 것이 사실은 한줌의 값어치도 없는 것. 사람들이 평생을 바쳐 구하려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알아 버린다는 것은 절망입니다.”라고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에서 독백하지 않던가. 실상은 말을 떠나 있고 입을 열면 곧 착오에 빠진다 하였거늘 어수선히 늘어놓는 이 번설은 또 무슨 어리석음이련가. 향일암 뜨락에 잡다한 상념들을 부려두고 비에 떠밀리다시피 내려와 임포를 떠날 무렵. 안개 스러지고 산은 자태도 선명히 정색을 하며 다가섰다. 날아갈 듯 반공중에 걸린 향일암 처마선이 그제사 또렷이 보였다.   

                                                                                                   <1991년 글에 윗머리 일부 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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